노아 홍수에 관한 성경을 읽을 때 참 놀라운 것은, 모세가 노아 홍수가 발발한 날짜를 정확히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는 (창 7:11)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달 열이렛날이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고 적었다. 이 말은 노아 홍수의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홍수 이야기를 그냥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 같은 전설이 아니라 실재적인 사실이며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오늘날 수많은 고고학적인 자료들을 통하여 증명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한가지가 어제 언급했던 미시간에서 발견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석판이다. 이 석판에는 좀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는데 태양이 타원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고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보는 태양은 둥글지 않고 타원형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노아 홍수 이전의 사람들이 바라본 하늘의 태양은 당연히 지금처럼 둥근 태양이 아니라 타원형의 왜곡된 모습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는 하늘에 물 층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 1: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창 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창공 위의 물과 창공 아래 물로 나눴다는 뜻은 하늘 위에 수증기층이 있어서 지구가 전반적으로 생물들이 살기에 적당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금의 북극지방에도 생물들이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기에 시베리아 지역에 매머드의 유해가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증기층은 그 이면의 사물을 왜곡되게 보이도록 만드는데 고대 아프리카 인디언들이 보았을 때 태양은 우리가 물속의 떨어진 동전을 바라볼 때처럼 둥글지 않고 타원형처럼 보였을 것이다. 창공 위의 물은 지구의 온도를 유지해 주고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지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외선으로부터 과도한 노출도 막아 주었다. 하지만 노아 홍수 때 이 물 층이 찢어지고 한꺼번에 이 땅으로 쏟아져 내린 것이다.
(창 7: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창 7: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 창공 위에 있던 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듯한 엄청난 폭우로 이 땅은 금방 물로 덥혀 버린 것이다.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도 이삼일만 폭우가 몇백 미리 씩 쏟아지면 홍수가 나고 물난리로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고 마는데 사십일 동안이나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으니 세상이 온통 물천지가 되지 않았겠는가? 마치 창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이제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 때에는 하늘의 문들이 열려서 비가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불덩어리들이 대기권 안으로 쏟아져 내릴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멸망했던 것처럼 세상은 불로 최종적인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날에 우리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창 19: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창 19: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소돔의 멸망은 마지막 지구의 심판의 예표로 남아 있다. 그때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영혼의 방주이신 예수님께 온전히 숨어서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전쟁으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수많은 아이가 희생되고 생명은 비참하게 죽어갑니다. 이 참혹한 세상은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셔야만 그칠 것입니다. 주님, 하나님의 나라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반목과 질시와 원한이 사라지고 온전한 사랑만이 가득한 세상을 위해 오늘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