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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문학뉴스 & 시산맥 신춘문예 당선 작품
시부문
당선자 강비아
당선작 베이비박스 외 4편
평론부문
당선작 없음
본심 이혜미 고선경(시부문) 이병국 최연수(평론부문)
예심 이사람 최재훈 문이레 서이교 이 언 김시홍
수상작
베이비박스 외 4편
낙원에도 있고 난곡*에도 있지요
지명이 바뀌어도
낙원은 구원이 열린 정원
난곡이란 말은 떨어진 열매 같았죠
고양이처럼 착지하는 우리는
떠날 곳만 찾아다녀
남겨진 곳에는 물웅덩이만 차올랐어요
하필 이런 곳에 물방울 방이라니
하얀 손의 그루밍
감싸고 있던 털이 소스라칩니다
봉제선이 조금씩 부풀어 터지려고 해요
지퍼를 올리면 입술이 꿰매지는 줄도 모르고
비를 피하는 간판 뒤에서
가방처럼 웅크리고 있었는데요
머리가 벗겨진 제단사가
붉은 조명 아래서
허밍을 자르고 용서를 자르고 빛을 자르면
그 여름이 지나갔어요
매미들의 울음이 떠내려가고 수박 넝쿨은 뽑히고
아이들이 한꺼번에 물에서 걸어 나왔지요
떠나온 적도 없는데 기다린다는 말
겨울을 견디려 했던 털들은 겨울을 본 적도 없고
비상구가 없는 그곳은 옮기는 손만 있었어요
휴짓조각 위에 쓰인 텍사스 그 어딘가의 주소
쉿, 입술을 가르는 검지는 문고리 같고
물에 젖으면 그만인 것을
아직도 모르겠다구요?
밤마다 굴뚝 위로 솟아오르는 봉제선을 봐요
뜯어지며 하나씩 튀어나오는
얼굴들이요
소리소문없는
* 최초의 베이비박스는 난곡로26길 1004길에 있음
물의 기억
모두 물이 되었어 문을 잠갔다고 생각했는데 틈이 있었어 반드시 물은 틈새로 빠지니까 현관을 적시고 발목을 적셨어 거실이 젖고 소파가 젖고 꽃병 속의 물이 젖었어
젖은 손으로 똑똑 꽃잎을 따고
물이 되었다고 생각한 건 너였는데 나 혼자 첨벙첨벙 물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어 나는 팔을 휘저으며 물과 맞짱 뜨듯 손바닥을 쳤어
멀리 뱃고동 소리 노동요에 맞춰 그물을 잡아끄는 사람들
나는 돌고래가 되는 꿈을 꿨어 새우춤을 구경하고 머릿속 해마의 기억을 추억으로 이야기했어 그런 꿈 같은 것은 나와 무관한 일이었지만
내가 지느러미로 찰싹 수면 위를 쳤을 때 그물은 나를 한 번에 휘감아 들어 올렸어
물 안의 숨
물 위의 숨
한 숨 차이
나는 숨을 돌려주려 물속을 들여다보았어
방문이 닫힐까 봐
얼른 손을 뻗어보았지만
틈은 생각보다 컸고
튜브를 띄우고 배를 내밀며
유영하는 자세를 따라 해보고 싶었지만
물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나는 그냥
돌돌 말린 이불 속을 빠져나오고 있었어
한숨을 쉬며
흥건한 이마 위
젖은 손
“우리 꼭 돌고래 보러 가자”
꽃잎 같은 손가락을 걸고
찰리 채플린이 그려진 극장 앞에서
오빠를 오랜만에 만나 걸었다
중앙로까지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으며 갔다
천상의 소리로 들렸다
오빠는 가게에서 바나나 빵을 사 주었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빵을
바나나 나무에서 열매를 따 주듯이 주인이 웃으며 건넸다
바나나 빵은 바나나 맛은 아닐 테지만
바나나 맛으로 알고 먹었다
등은 안개에 싸여 있었고
그 속에서 걷는 느낌이 좋았다
오빠가 왜 아직 신부님이 되지 않았는지
묻지 않았다
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거지
된 것이 중요한 게 아니야
오빠는 나의 손을 꼬옥 쥐었다 놓았다
손끝이 추웠다 입김이 새어 나왔다
성가는 하도 들어서 외울 경지가 되었다
멀리서 총소리가 메아리쳤다
유리창을 깨는 아이와 수리공*이
양 갈래로 흩어졌다
탄내가 났고
찰리 채플린의 그림이 기우뚱거렸다
골목에 들어서자 뒤따라오는 그림자가
닿을락 말락 해서
그것이 앞서가기를 기도했다
갑자기 등 뒤로 땀이 났다
아무래도
오빠는 신부님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찰리 채플린의 1921년작 : 키드
한 잔의 물
정확히 이 물잔은 언제 출발이 되었나요?
-제가 이 잔에 물을 따를 때 시작합니다
이 출발은 얼마나 오래 물잔의 모습으로 있을까요?
-제가 바꿀 때까지요*
출발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고
너의 자리는 공중에 떠 있었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고
모래를 걷던 사람도 없고
푹푹 빠지는 발자국
가버리는 것은 어제인데
어제의 발끝이 아직 오늘에 걸쳐 있었다
떨어지기 위해 오르는 사람의 무게를
마음의 무게를 알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시소
천사는 날개가 있어 추락하지 않아
믿는 등 뒤에서 손을 내밀고
걱정하지 말아요
울음을 터뜨리기 위해 눈물을 모으는 사람도 있어요
모래 위에 숨겨놓기 좋은 말을 써서 지웠다
기억을 가라앉히고 들여다보며 덮었다
언제쯤 우리는 마주 볼 수 있을까
혼자 발을 구르며 시소를 탔다
훔쳐보기 좋은 하늘
어긋나기 좋은 인연이구나
모든 받침이 떨어져 흩어졌다
지나가던 개가 컹컹 짖었고
모래 알갱이 같은 말들을 재빨리 주워 담았다
말은 채워지며 몸을 바꾸고 있었다
한 잔의 물처럼
물은 출발하고 있었고
물잔이 흔들려
다시
발을 구르며 시소를 탔다
네가 할 말이
무거워져 있었다
*마이클 크레익 마틴- 초기작 “참나무” 인터뷰 내용
골목 블루스
인사동에서 만나자 했지? 성수동이라고 했나?
너는 골동품가게에서 고른 도자기를 함께 보러 가자고 했다
그 빛을 보아야 한다고
백자의 은은함은
건반의 샵이 동시에 눌러지는 것이야
꾹꾹 눌러 쓴 뒷면을 기억하는 종이처럼
악보를 그릴 수 없어도 들을 수 있는 거지
빛을 소리로 보다니
매력적인 말로 들렸다
좁은 골목 끝까지 돌다 나오는 마을버스를 타고
접힌 우산 끝 빗물에 발등이 젖는 것을
그늘이 쌓인 지하방에서 듣는
재즈라고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는 우리가 가 본 카페가 맞지?
지금은 전통찻집으로 바뀌고 십전대보탕이 크게 붙어 있는 곳
열 가지 몸에 좋은 것을 한 데 모아두면
열 가지 맛이 아니고
부딪히는 소란들이
목 좋은 길로 모여들 수 있는지 궁금했다
찻잔이 테이블에 올려지고
놓아둔 자리는 동그란 자국이
시간이 지난 만큼 선명하게 드러난다
다음에 찾아오면 무엇으로 바뀌어 있을까?
별걸 다 궁금해하네
웃어넘기는 너의 손가락에 상아색 반지
들어올릴 때마다 뿔피리 소리가
지지직거려
노래가 끊겼다 다시 이어지는 여기는
비가 고여 웅덩이가 생겼다
첨벙거리며 뛰어가는 아이들이
비의 뒤로 가려진다
당선소감
밤이 길었다. 길지만 찰나였다. 순간 깜박이는 가로등이었다. 길을 잃은
별꼬리였다. 누군가 서성이다 남긴 발자국이었다. 잠 못 드는 이의 눈빛이
었다.
펼쳤다 꽉 쥔 주먹 속에는 내가 구겨지고 있었다.
긴 밤이 지나면 다시 긴 밤. 이 어둠을 언제 다 읽어야 하나?
벽지를 긁어대는 벽의 소리, 비명처럼 흔들어대는 창의 소리, 돌아오지 않
는 메아리를 닮은 달, 달, 달, 달의 소리.
모두 나를 지나가며 흔들었다. 흔들흔들 밤은 늘 아팠다.
이런 내게 또 다른 흔들림의 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긴 밤을 주겠노라고, 다시 긴 밤을 뚫고 서 있는 찰나의 반짝임을
주겠노라고. 어깨를 툭, 치는 빛의 소리. 흰빛이 쏟아졌다. 갑자기 눈이 멀
었다. 심장이 걸어와 내 손을 잡았다. 함께 뛰었다.
빛 속을 뚫으며 나를 만나러 간다. 두근거린다.
이제는 나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야 함께……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흔들리던 나를 지켜 준 가족에게 감사합니다.
부녀시집이 소원이던 아버지께도, 늘 그리운 엄마에게도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준 황인찬, 송승언, 김근, 하린, 류근, 이승하 교
수님들과 문우들께도 감사합니다. 힘들 때마다 홧팅!을 외치던 시동인 자
몽 선생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는 긴 기다림 끝의 찰나였습니다.
그 순간이 나를 있게 했습니다. 나를 살게 했습니다.
찰나의 반짝임을 주신 계간 『시산맥』과 이혜미 고선경 시인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밤이 길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박또박 그 어
둠을 소리내어 말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강비아(본명 강정희)
1970년 보성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공자과정 수료.
수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 졸업.
2025년 문학뉴스 & 시산맥 신춘문예 시 당선.
popi9632@gmail.com
심사경위 및 심사평
2025년 문학뉴스 & 시산맥 신춘문예에 480여 명이 응모하였다. 일일이 작품을 읽고 예심위원들은 좋은 작품들을 매의 눈으로 낚아 올렸다. 총 16명의 응모작이 1차 예심을 통과하였다. 그중 6명의 응모작을 최종심에 올리기 위해 다시 한번 예심위원들은 옥석을 골랐다. 그 작품은 아래와 같다.
1번 강비아 「베이비박스」 외 8편
2번 김성윤 「밈」 외 6편
3번 도라지 「기하학의 저항」 외 5편
4번 이상돈 「야영」 외 5편
7번 손예니 「BLOSSOM」 외 9편
8번 김호애 「멀리건」 외 5편
평론부분은 올해 10여 편의 응모작이 들어왔으나 아래 세 편이 본심에 올랐다
1번 이수현 「생성과 소멸의 순환 속 소통의 필요성 – 정현우 시 연구 ‘천사’ 이미지를 중심으로」
3번 전명숙 「순은(純銀), 고요한 애착 - 오탁번 시의 장소성을 중심으로」
5번 이상명 「무관심의 속삭임, 그 냉소 속의 온기 - 장승리 시집을 중심으로」
위의 응모작품을 본심 심사위원 앞으로 무기명으로 보냈다. 심사위원은 시부문은 시산맥 편집위원 이혜미 시인과 고선경 시인, 평론부분은 시산맥 편집위원 이병국, 최연수 시인 겸 평론가가 맡았다. 아래는 심사위원의 수상작 선정과정이다.
시 부문 심사위원들은 무기명 응모작품을 읽고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작품성이 있는 수준작을 뽑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결과 두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1번 강비아의 응모작이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심사위원의 심사평은 아래와 같다.
시 부문 심사평
이혜미 심사위원은 “강비아 시인은 이미지의 단단한 구심력을 바탕으로 언어의 원심력을 획득하는 에너지를 가졌다. 시인의 투고작을 읽으며 오래, 깊이 쓰고자 하는 마음의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울음을 터뜨리기 위해 눈물을 모으는 사람’(「한 잔의 물」)은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언어를 오래 수집하는 시인을 닮았기 때문이다. 또한 ‘행복해지고 싶니?/아니/덜 불행해지고 싶어’(「회전력」)과 같은 독백은 내적으로는 스스로를 자전하며 외적으로는 세계를 공전하는 인간의 외로움을 간곡히 포착한다. 시집이 기다려지는 묵직한 시인의 등장을 환영하며, 당선을 거듭 축하드린다.”라고 평하였다.
한편 고선경 심사위원은 1번 응모작품에 대하여 “일상에서 시적 정황을 포착해 한 편의 시로 견인해 나가는 힘이 느껴졌다. 섬세한 시각과 언어로 구현한 장면들은 맑으면서도 짙은 여운을 남겼다. 전체적으로 일상과 화자의 내면을 얽어내는 솜씨가 두드러져 보였고, 장면 속에 사유를 적절히 녹여 낸 작품들이었다. ‘울음을 터뜨리기 위해 눈물을 모으는 사람’으로서 시라는 ‘한 잔의 물’을 채워 보기도 하는 미래를 기대하며 당선을 축하합니다.”라고 평하였다.
평론 부문 심사평
헌정사상 초유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혼란의 와중에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지 고민하는 시기이다.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당면한 여러 위기는 그것이 정치적, 사회적인 것을 넘어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사유해야만 비로소 성찰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문학은 우리 삶의 총체성에 가닿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고 말 것이 분명하다. 문학, 특히 시를 읽는 평론 역시 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 우리를 둘러싼 존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비평적 열정을 허투루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시산맥 신춘문예 평론부문 응모작은 총 10여 편이었다. 응모작 수의 아쉬움은 차치하더라도 그중 대다수는 감상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느껴졌다. 시를 읽고 그 안에 얼비친 세계의 문제를 읽어내는 비평가만의 밝은 안목이 보이지 않았다. 또한, 비평적 소양을 드러내는 적절한 문체를 갖추지 못한 것도 지적할 만하다. 사유의 깊이는 삶의 질감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문체는 오랜 시간 다듬는 과정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대부분의 응모작은 작품에 대한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허술했다.
그 와중에 주목한 작품은 「생성과 소멸의 순환 속 소통의 필요성 – 정현우 시 연구 ‘천사’ 이미지를 중심으로」와 「순은(純銀), 고요한 애착 – 오탁번 시의 장소성을 중심으로」였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각각의 작품은 작가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생성과 소멸의 순환 속 소통의 필요성」는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AI시대인 오늘날에도 문학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또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임을 정현우 시인의 ‘천사’ 키워드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다만 의도와 달리 인용된 시를 분석하는 시선이 표피적인 것에 머물러 있어 시를 장악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게 여겨졌다. 「순은(純銀), 고요한 애착」은 오탁번 시인의 삶을 중심으로 한 전기비평의 방법을 차용하고 있다. 이는 한 시인의 시 세계를 시인의 삶과 연동하여 살펴봄으로써 시의 기원을 톺는 데 유용한 방법론일 수 있다. 다만 삶과 작품을 동일시하는 것은 작품이 표상하는 것을 제한하고 그 너머를 사유하지 못하는 위험을 내포한다. 그렇기에 작품이 아닌 시인의 삶에 평문이 복무하고 만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두 편의 작품은 이러한 아쉬움을 상쇄할 지점의 부재가 특히 더 안타까웠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는 당선작을 내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작품과의 치열한 대결을 통해 비평적 안목을 넓히고 자신만의 문학적 지향을 모색하는 글을 기대해본다.
응모작품 중에는 실제로 아직 시와 평론으로 영글어지지 않은 작품들이 많았으며 단단한 내공을 갖추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는 시쓰기를 꾸준하게 해야 한다고 모두 입을 맞추어 말하였다. 서정시는 마음이 흘러가면서 대상을 통과하는 지점을 참신하게 자기만의 시어로 적어내는 것이다. 이미 익숙한 표현이나 상투적인 내용 그리고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성에 머문다면 좀 더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치열성과 열정을 가지고 계속 도전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당선된 신인은 이제 시작이라 생각하고 참신성을 갖도록 노력하기를 바라며 신인으로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아가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본심 심사 : 이혜미 고선경(시부문) 이병국(글) 최연수(평론부분)
예심 심사 : 이사람 최재훈 문이레 서이교 이 언 김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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