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은사
하루에 세 번씩 반성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필요한 말입니다.
인간의 교양과 수양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자기를 반성하는 것은 겸허하게 만들고
그 사람을 내적으로 깊게 만들며,
또 맑게 만드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인격의 수양을 위해서는 내성하는 것이나
또는 내관하는 일이나, 반성하는 일이나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반성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것이 아닙니다.
속을 자꾸 들여다 보고 있으면
인간에게 보이는 것은 짐승 같은 자아뿐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원이 어디에서 옵니까? 주님에게서 옵니다.
자기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스스로 닦고 닦는다고 옥이 될줄 압니까?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의 생각 이것이 자유 종교입니다. 인간의 종교입니다.
이것이 도덕적 방법입니다. 정신적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방법은
절대 타자와 절대 타율과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내게는 없은 것입니다.
내게 없는 의를, 주님을 통해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불입니다. 물입니다. 바람입니다.
비둘기 같은 성령은 없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죽은 것을 살리십니다. 병든 것을 고치십니다.
자연법, 자연 은사, 인간의 잠재력, 가능성, 정신력을 포함해서,
신념을 포함해서, 심리학적 법칙을 포함해서,
적극적 사고 방식을 포함해서, 인간능력의 전 한계를 포함해서
절대로 안 되는 것을,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는 것을
성령께서 특별하게 은혜로 믿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무 합리적 생각을 하다가 보면 기도할 것이 하나도 없어집니다.
믿을 것이 하나도 없어집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조건없이 특별히 주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초자연을 믿고 기적을 믿어야 합니다.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특별 법칙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과 나 사이는 특별 관계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
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장 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