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13일 고전읽기 자료입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칼 맑스의 『철학의 빈곤』 독일어 초판] 서문
본 저술은 1846/47년 겨울, 맑스가 자신의 새로운 역사 고찰 방식 및 경제 고찰 방식의 윤곽에 관하여 스스로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 시기에 나온 것이다. 막 출간되었던 프루동의 『경제적 모순들의 세계, 혹은 빈곤의 철학』은, 생존하는 프랑스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그때부터 내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던 그 인물의 견해에 반대하여 위의 윤곽을 발전시킬 기회를 맑스에게 주었다. 두 사람이 빠리에서 종종 밤새껏 경제에 관한 문제들을 토론했던 시기 이래로, 이 두 사람은 점점 더 제각기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 프루동의 저술은, 이제 이미 두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놓여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 이를 무시한다는 것은 당시 가능하지 않았다 ; 그리고 맑스는 이와 같은 자신의 응답 속에서 불치의 균열을 확인해 두었다.
프루동에 대한 맑스의 전체적인 판단은 이 서문에 뒤이어 나오는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베를린의 『사회 민주주의자』 1865년 제16, 17, 18호에 실렸던 것이다. 그것은 맑스가 그 신문에 쓴 유일한 기사였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명백하게 드러난 슈바이쩌 씨의 시도, 즉 그 신문을 봉건적인 항로로, 정부의 항로로 이끌려던 그의 시도는 우리로 하여금 몇 주도 지나지 않아 우리의 기고 계약의 해소를 공개적으로 통지하지 않으면[198] 안 되게 만들었다.
독일에서 본 저술은 바로 이 순간, 맑스 자신도 결코 예감한 바 없는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맑스는 프루동을 두들겨 팸으로써, 그 당시 자신에게는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던 로드베르투스라고 하는 오늘날의 출세주의자들의 신을 적중시키고 있었는데, 맑스가 이를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여기는 맑스와 로드베르투스의 관계를 논할 곳은 아니다 ; 그러한 것을 위해서는 아마 곧 나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정도만 지적하겠다. 즉 로드베르투스가 맑스는 자신을 “표절”하였고 자신의 저술 『인식을 위하여』를 “자신을 인용하지도 않고 자기의 『자본』에서 무지막지하게 이용해 먹었다” 며 맑스를 탄핵할 때, 그는 인정받지 못한 천재가 으레 터뜨리는 역정으로밖에 설명되지 않고 또 프로이센 바깥에서 진행되는 일들에 대한, 특히 사회주의 문헌 및 경제학 문헌에 대한 자신의 현저한 무지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그러한 중상에 사로잡히도록 자신을 맡기고 있다는 것만 지적하겠다. 맑스는 이와 같은 탄핵도, 또 언급된 로드베르투스의 저술도 본 적이 전혀 없다 ; 그가 도대체 로드베르투스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는 세 편의 「사회 서한」뿐이었으며, 이나마도 1858년이나 59년 이전에는 전혀 알고 있지 못하였다.
로드베르투스는 이 서한들에서, 자신이 이미 프루동에 앞서 “프루동의 구성된 가치”를 발견하였음을 더 많은 근거를 대며 주장한다 ; 그리고는 그는 최초의 발견자인 양 분명 다시 잘못을 범하며 우쭐한다. 아무튼 그리하여 그는 우리의 저술에서 함께 비판되고 있으며, 이것은 나로 하여금 『우리나라의 경제 상태의 인식을 위하여』(1842년)라는 그의 “기초를 놓는” 소저작을 간략하게 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렇게 논하는 것은, 그 저작이 요컨대 그 안에도 마찬가지로 (다시 무의식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바이틀링 류의 공산주의 이외에 프루동에 대한 선취도 드러내는 한에서이다.
그 경향이 어떠하든 현대의 사회주의가 부르주아 정치 경제학으로부터 출발하는 한, 그 사회주의는 거의 예외 없이 리카도의 가치 이론과 결부[199]되어 있다. 리카도가 1817년에 자신의 『원리들』의 서두에서 공표한 두 가지 명제, 즉 1. 각각의 상품의 가치는 전적으로 그것의 생산에 요구되는 노동량에 의해서만 규정된다는 것과 2. 전체 사회적 노동의 생산물은 토지 보유자(지대), 자본가(이윤), 노동자(임금)라는 세 계급 사이에 분배된다고 하는 이와 같은 두 가지 명제는 이미 1821년 이래로 영국에서 사회주의적인 결론들을 위해 활용되어 왔으며, 게다가 이제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가 맑스에 의해 대부분이 비로소 다시 발견된 이 문헌은 부분적으로는 『자본』의 출간 전까지는 비할 데 없는 상태로 있었을 정도로 예리하고 단호하게 활용되어 왔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살피기로 하겠다. 따라서 로드베르투스 측에서 1842년에 위의 명제들로부터 사회주의적인 결론들을 이끌어 냈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독일인에 대해서는 당시 확실히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었겠지만, 기껏해야 독일에 대해서만 새로운 발견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리카도 이론의 그러한 적용이 새로운 것과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는, 유사한 망상병에 걸린 프루동에 맞서 맑스가 입증하였다.
“영국에서의 정치 경제학의 발전에 대해 조금이라도 익숙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다른 시기에 리카도 이론의 평등주의적(즉, 사회주의적) 적용을 제안한 바 있다는 사실을 어쨌든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프루동 씨에게 아래와 같은 것들을 인용해 줄 수도 있다 ; 홉킨스의 『정치 경제학』, 1822년 ; 윌리엄 톰슨, 『인간의 행복에 최고로 공헌하는 부의 분배 원리에 관한 연구』, 1824년 ; T, R, 에드몬즈, 『실천 도덕, 정치 경제학』, 1828년, 등등 등등. 이러한 등등은 네 면이나 더 된다. 우리는 영국의 한 공산주의자들에게만 귀를 기울이려 한다 : 브레이가 자신의 주목할 만한 저술인 『노동의 부당한 처우와 그 구제책』(리즈, 1839년)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주어진 브레이로부터의 인용문만으로도 로드베르투스에 의해 청구되는 우선권의 상당 부분은 제거된다.
당시 맑스는 아직 대영 박물관의 열람실에 전혀 발을 들여놓고 있지 않았다. 빠리와 브뤼셀의 도서관 말고는, 나의 책들과 발췌들 말고는, 그가 열람할 수 있었던 책이라곤 단지 1845년 여름 우리가 함께한 여섯 주에 걸친[200] 영국 여행 동안 맨체스터에서 조달할 수 있는 책들뿐이었다. 따라서 사십년대에 해당 문헌을 가까이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헌이 로드베르투스에게는 언제나 알려져 있지 않은 채로 있었다면, 그것은 다만 그의 프로이센 식 지방적 편협성이 책임질 일일 뿐이다. 그는 특유의 프로이센 사회주의의 원래의 창시자이며, 이제는 마침내 그러한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가장 사랑스러운 프로이센에서도 로드베르투스는 교란되지 않은 상태로 있을 운명은 아니었다. 1859년에 베를린에서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제1분책』이 출간되었다. 거기에서는 리카도에 대한 반박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이 두 번째 반박으로서 40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
”만약 어떤 생산물의 교환 가치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 시간과 동일한 것이라면, 일 노동일의 교환 가치는 그 생산물과 동일하다. 또는 임금은 노동의 생산물과 동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이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주가 이어지고 있다 : ”경제학자들 진영이 리카도에 대해 제출한 이와 같은 반박은 후에 사회주의자들 진영에 의해서 끄집어내어졌다. 정식의 이론적 올바름을 가정하여, 이론과 모순인 실천이 견책되었으며, 부르주아 사회는 자신의 이론적 원리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추정되는 결론들을 실천적으로 이끌어 내는 데에 관여하게 되었다.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적어도 이런 식으로 리카도의 교환 가치 정식을 정치 경제학에 반하는 것으로 전환시켰다.” 바로 이 주에서 맑스의 『철학의 빈곤』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 책은 당시 어디서나 책방에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따라서 로드베르투스에게는, 자신의 1842년의 발견들이 참으로 새로운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스스로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에 그는 그 발견들을 재차 공표하고 있으며, 또 그것들을 너무도 비길 데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어서, 맑스가 자기, 즉 로드베르투스 자신만큼 독자적으로 리카도로부터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그의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절대 불가능하다! 맑스는 그를 “표절했다”−조야한 형태로나마 로드베르투스에게서도 여[201]전히 나타나는 이러한 최종 결론들이 두 사람보다 얼마나 오래전에 영국에서 이미 공표되었는가를 확인할 모든 기회를 그에게 제공한 바로 그 맑스가 그를!
리카도 이론의 가장 단순한 사회주의적 응용은 위에서 제시된 것이다. 그 응용은 많은 경우, 리카도를 넘어서는 잉여 가치의 원천과 본질에 대한 통찰로 통한다 ; 다른 누구보다도 로드베르투스의 경우에 그렇다. 이 점과 관련하여 로드베르투스가 자신보다 이전에 적어도 그 자신의 수준에 버금갈 만한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았음을 그 어디에서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별도로 하더라도, 그의 선행자들의 서술과 마찬가지로 그의 서술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부터 고통을 겪고 있다. 즉 노동, 자본, 가치 등등과 같은 경제학적 범주들을 그것들의 내용을 탐구하지 않은 채 경제학자들로부터 그에게 넘겨진 조야하고 외관에 달라붙어 있는 형태로 검토하지도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고통을 겪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이 하여−이제 64년 전 이래로 그렇게도 자주 되풀이되고 있는 이와 같은 명제들로부터 그 무엇인가를 비로소 만들어 낸 맑스와는 반대로−더 이상의 발전의 모든 길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보게 되듯이 그 자신을 유토피아로 인도하는 직통 코스를 열어 놓게 되었다.
유일한 현실적 생산자인 노동자들에게 전체 사회적 생산물, 그들의 생산물이 속하는 것이라고 하는 위와 같은 리카도 이론의 응용은 직접적으로 공산주의로 통한다. 그러나 맑스가 위의 문장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그러한 것은 경제학적으로는 형식상 잘못된 것인데, 그 이유는 그것은 그저 도덕을 경제학에 적용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의 법칙들에 따르면, 생산물의 대부분은 그것을 산출한 노동자들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그것은 부당하고 또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고 해도, 이것이 바로 경제학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와 같은 경제학적 사실이 우리의 도의적 감정에 모순된다고 말하는 것이 불과한 것이다. 맑스는 따라서 결코 자신의 공산주의적인 요구들을 이와 같은 것 위에 정초한 것이 아니라, 필연적이며, 우리의 눈앞에서 날마다 점점 더 완성되어 가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붕괴 위에 정초하였다 ; 그는 잉여 가치[202]가 불불 노동으로 구성된다고 말할 뿐이며, 이는 단순한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는 형식상 잘못된 것이라도 세계사적으로는 올바른 것일 수도 있다. 만약 대중의 도의적 의식이 한때의 노예제나 부역 노동과 같은 경제적 사실을 부당한 것으로 선언한다면, 이것은 그러한 사실들 자체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또 그와는 다른 경제적 사실들이 대두하게 되어 이러한 것 때문에 앞의 것들은 견딜 수 없고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는 증거이다. 형식적인 경제학적 부정확함의 배후에는 따라서 아주 참된 경제학적 내용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잉여 가치 이론의 의미와 역사를 더 깊숙이 파고드는 일은 여기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와 나란히 리카도의 가치 이론으로부터 다른 결론들을 도출할 수도 있으며, 또 도출해 왔다. 상품의 가치는 그것의 산출에 요구되는 노동에 의하여 규정된다. 그러나 이제, 조악한 세상에서 상품들은 때로는 그 가치 이상으로 때로는 그 이하로 판매되고 있으며, 게다가 이것은 참으로 경쟁의 동요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님이 밝혀지게 된다. 마치 상품 가격이 수요와 공급을 매개로 노동의 가치로 환원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윤율은 모든 자본가들에 대해 동일한 수준으로 평준화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윤율은 그러나 하나의 업계에 투자된 총자본에 근거해서 계산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두 개의 서로 다른 부문의 업계에서 연 생산물이 동일한 노동량을 체화하고 따라서 동일한 가치를 표현할 수 있으며 또 양자에서의 임금은 동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한 부분의 업계에 입체된 자본이 다른 부문에 입체된 자본보다 두 배 또는 세 배나 더 많을 수도 있고 또 종종 그러하다. 그렇다면 리카도의 가치 법칙은 리카도 자신이 이미 발견하였듯이 동일 이윤율의 법칙과 모순되는 것이다. 만약 양 부문의 업계의 생산물들이 그 가치대로 판매된다면, 이윤율은 동일 할 수 없을 것이다 ; 그러나 만약 이윤율이 동일하다면, 양 부문의 업계의 생산물들은 틀림없이 그 가치대로 판매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모순, 즉 두 가지 경제 법칙의 이율 배반을 마주하게 된다 ; 실제적인 해결은, 리카도에 의하면(제1장 4, 5편) 통상적으로 이윤율을 위하여 가치를 희생시키는 것에서 찾아진다.[203]
그러나 이제 리카도의 가치 규정은, 그 불길한 속성들에도 불구하고, 갸륵한 시민에게 사랑을 받고 또 소중한 것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어떤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그들의 정의감에 호소한다. 정의와 권리 평등, 그것은 18세기와 19세기의 시민이 봉건적 불의, 불평등, 특권 등의 폐허 위에 자신들의 사회라는 건물을 세우고자 했던 주추 기둥이다. 그리고 노동에 의한 상품 가치의 규정과 이러한 가치 척도에 따라 동등한 권리의 상품 보유자들 사이에서 수행되는 노동 생산물의 자유로운 교환, 이것이 이미 맑스가 지적하였듯이 현대 시민 층의 전체 정치적, 법적, 철학적 이데올로기가 건축되는 실제적 기초이다. 노동이 상품 가치의 척도라는 인식이 일단 주어지게 되면, 갸륵한 시민의 선량한 감정이라 해도, 이러한 정의의 기본 법칙을 명목상으로는 인정하지만 실상은 어느 순간에나 거리낌없이 제쳐놓은 것으로 보이는 세계의 조악함으로 인해 상당히 기분이 언짢아지게 된다. 그리고 특히 자신의 성실한 노동−비록 이것이 그저 그들의 일꾼들이나 도제들의 성실한 노동이라 할지라도−이 대규모 생산 및 기계로 인한 경쟁에 의하여 날마다 점점 더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소시민 층, 특히 소생산자들은, 노동 가치에 따른 생산물의 교환이 마침내 언젠가 하나의 완전하며 예외 없는 진리가 되는 그러한 사회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 다른 말로 하면 이렇다 ; 그는, 단 하나의 상품 생산 법칙이 배타적이면서 손상되지 않은 채 통용되기는 하지만 그 법칙이라는 것이 전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조건이 제거된, 즉 상품 생산의 그밖의 법칙과 나아가서는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 법칙이 제거된 그러한 사회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유토피아가 현대의−현실적인 것이든 이념적인 것이든−소시민 층의 사유 방식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었는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한 유토피아는 이미 1831년에 존 그레이에 의해 체계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삼십 년대에 영국에서는 실제로 시도되고 이론적으로 퍼졌으며, 1842년에는 독일에서 로드베르투스에 의해, 1846년에는 프랑스에서 프루동에 의해 최신의 진리로 선포되었으며, 게다가 1871년에는 로드베르투스에 의해 다시 한 번 사회 문제의 해결책, 말하자면 그[204]의 사회적 유언으로 공포되었으며, 1884년에는 로드베르투스의 이름으로 프로이센 국가 사회주의를 이용해먹을 채비를 하는 엽관 운동가 무리에서 다시 추종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러한 유토피아에 대한 비판은 맑스에 의해 프루동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레이에 대해서도(이 저술의 부록을 보라) 남김없이 제공되었으므로, 나는 여기서 유토피아를 정초하고 채색하는 로드베르투스 특유의 형식에 대한 약간의 언급에 그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한 바 있다 ; 로드베르투스는 전래의 경제학적 개념 규정들을, 그것들이 경제학자들로부터 그에게 넘겨진 형태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는 그것들을 탐구해 보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 가치란, 그에게는
“양에 따른 그 밖의 다른 사물들에 대한 한 사물의 통용력이며, 이 통용력은 척도로 파악된다.”
이와 같은, 부드럽게 말하면 전혀 야무진 데가 없는 정의는 기껏해야 우리로 하여금 가치가 대략 어떤 것처럼 보이는지에 대한 표상은 제공하겠지만, 가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로드베르투스가 가치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할 줄 아는 전부이므로, 그가 가치의 외부에 놓여져 있는 가치 척도를 추구한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아돌프 바그너 씨가 그토록 무한히 찬미한 추상적 사유의 힘을 가지고 삼십 면에 걸쳐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를 뒤범벅이게 만든 후에, 그는 현실적인 가치 척도는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대용 척도로 만족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한 것으로 노동이 제시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동일한 노동량의 생산물들이 항상 동일한 노동량의 생산물들과 교환될 때에만 그러하다 ; 이것이 “이미 자체로 실정이 그러하든 또는” 이를 보증하는 “대비책이 강구되어 있든”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첫째 장 전체가 상품이 “노동을 필요로 하며” 게다가 다른 것이 아닌 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것과 또 왜 그런지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 데에 할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치와 노동은 그 어떠한 사실상의 연관 항도 없는 채로 남아 있게 된다.[205]
노동은 이제 검토되지 않은 채, 경제학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형태로 취해진다. 그리고 그것조차 못 된다. 왜냐하면, 비록 두세 마디의 말로 노동의 강도 차이를 지적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은 여전히 아주 일반적으로 “필요로 되는” 것으로 내세워지고 있으며, 따라서 표준적인 사회적 평균 조건에서 지출되든지 그렇지 않든지 상관없이 가치를 측정하는 것으로 내세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자가 하루에 제조될 수 있는 생산물의 제조에 열흘을 사용하든 아니면 하루만을 사용하든, 자신의 노동 시간을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물품에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양만큼 제조하는 데 사용하든, 아니면 전혀 열망하지 않는 물품을 제작하든 열망하는 물품을 수요 이상으로 제작하든 수요 이하로 제작하든−모든 것은 이야깃거리도 안 된다 : 노동은 노동이며, 동일한 노동의 생산물은 그것과 동일한 노동의 생산물과 교환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적절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언제나 민족적 입장에 서서 일반적인 사회적 고려라는 관측소의 높이에서 개별 생산자의 관계들을 조망할 채비가 되어 있는 로드베르투스는 여기서는 아주 근심스레 삼가고 있다. 게다가 그 이유는 단지, 그가 이미 자신의 저서의 첫째 줄부터 직접적으로 노동 화페라는 유토피아로 육박하기 때문이며, 또 노동을 가치 형성적인 속성에서 탐구하는 일이 매번 그에게는 통과할 수 없도록 항로에 바위 덩이를 던지는 일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의 본능은 여기서, 로드베르투스에게는 가장 구체적인 무사유를 통해서만 부수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추상적 사유보다 훨씬 더 의미 심장하다.
유토피아로의 이행은 이제 손바닥 뒤집듯 이루어진다. 노동 가치에 따른 상품 교환을 예외 없는 규칙으로 보증하는 “대비책”은 어떠한 어려움도 야기하지 않는다. 그레이로부터 프루동에 이르는 이러한 경향의 그 밖의 유토피아주의자들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할 사회 장치들을 머리를 짜내 생각해 내기 위해 천신만고를 하고 있다. 그들은 적어도 경제 문제는 경제상의 방식으로, 교환하는 상품 소유자들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로드베르투스에게는 훨씬 손쉬웠다. 선량한 프로이센 인으로서 그는 국가에 호소한다 ; 국가 권력의 칙령 하나가 개혁을 명령한다.[206]
이렇게 한다면 가치는 운 좋게도 “구성되게” 되지만, 로드베르투스에 의해 청구되는 이러한 구성의 우선권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이와는 반대로 그레이와 브레이−많은 다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로드베르투스에 앞서 오랫동안, 그리고 빈번히, 넌더리가 날 정도로 반복되어 오고 있는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 생산물들이 모든 상황에서 항상 그 노동 가치대로, 그리고 단지 그 노동 가치대로만 교환되도록 하는 대비책들에 대한 경건한 소망.
국가는 가치−적어도 생산물의 일부의 가치라고 하겠는데, 그 이유는 로드베르투스도 신중하기 때문이다−를 이런 식으로 구성한 다음에, 자신의 노동 지폐를 발행하여 그것 가운데서 산업 자본가들에게 입체금을 지불하는데, 그들은 그것으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자들은 얻은 노동 지폐로 생산물을 구매하고, 그리하여 지폐의 출발점으로의 역류를 매개한다. 이러한 일이 얼마나 놀라우리 만큼 아름답게 일어나는지, 우리는 로드베르투스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조건과 관련하여 말하자면, 전표에 증명된 가치가 현실적으로 교통 속에 현존하도록 하는 필수 대비책은 어떤 생산물을 실제로 내놓은 사람만 전표를 얻는다는 것을 통해 행해지는데, 그 전표에는 생산물을 제조한 노동량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이틀 노동의 생산물을 내놓는 사람은 ‘이틀’이 기록되어 있는 전표를 받는다. 발행할 때 이러한 규칙을 엄격히 준수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이러한 두 번째 조건 또한 충족됨에 틀림없다. 그 이유는, 우리의 전제에 따르자면 재화의 현실적 가치는 항상 그것의 제조에 필요로 된 바로 그 노동량과 일치하며, 또 이러한 노동량은 일상적인 시간 분할을 그 척도로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틀 노동이 사용된 생산물을 내준 사람은 누구든지 이틀이 증명된 것을 얻는다면 이는 그가 실제로 제공했던 것보다 더 많거나 더 적은 가치를 증명 받거나 할당받게 되는 것도 아니다 ; −그리고 나아가 현실적으로 교통 속에 생산물을 제공한 사람들만이 그와 같은 증명서를 얻으므로, 전표에 기록된 가치가 사회를 충족시키기 위해 현존하고 있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분업의 범위를 아무리 넓게 생각한다 해도, 이러한 규칙이 정확히 지켜진다면, 현존하는 가치의 총액은 증명된 가치의 총액과 정확히 같게 될 것이다. 하지만 증명된 가치의 총액은 정확히, 할당받은[207] 가치의 총액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현존하는 가치와 필연적으로 상쇄되지 않을 수 없으며, 모든 요구가 충족될 것이며, 청산은 올바로 매개될 것이다.”(166, 167면)
이제까지는 로드베르투스가 자신의 새로운 발견들과 함께 너무 늦게 도착하는 불행을 항상 맛보았다면, 이번에는 적어도 일종의 독창성이라는 공적을 가지고 있다 : 그의 어떤 경쟁자들도 이러한 어린애처럼 순진한, 뻔히 들여다보이는, 참으로 포메른 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형태로 노동 화폐-유토피아의 어리석음을 감히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모든 종이 증명서에 대하여 그에 상응하는 가치 대상이 제공되고 또 어떤 가치 대상도 그에 상응하는 종이 증명서 이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내놓아지지 않기 때문에, 종이 증명서의 총액은 항상 가치 대상의 총액에 의하여 담보가 제공되지 않을 수 없다 ; 계산은 조금의 나머지도 남기지 않고 진행되며, 그것은 노동초勞動秒에 이르기까지 일치하고, 제 아무리 장기 근속한 정부-중앙금고-출납국 회계원도 조금의 계산 착오를 입증할 수 없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려 하는가?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산업 자본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만큼, 단독으로 생산한다. 하지만 사회적 수요는 그들에게 미지의 크기로 남아 있는데, 이는 그 질, 수요되는 대상의 종류뿐만 아니라 그 양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오늘 신속히 충분히 제공될 수 없는 것이, 내일은 수요를 훨씬 초과하여 매물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수요는 이러저러하게, 좋게든 나쁘게든 충족될 것이며, 이렇게 하여 이제 생산은 전체적으로 보아 결국 수요 되는 대상을 겨냥하게 될 것이다. 모순의 이와 같은 조정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경쟁을 통해서. 그러면 경쟁은 어떻게 하여 이와 같은 해결책을 준비해 내는가? 이것은 아주 단순한 것인데, 이 경쟁이 그 종류나 양에 있어서 목전의 사회적 수요를 위해서는 쓸모가 없는 상품들을 노동 가치 이하로 평가 절하하고 또 이와 같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생산자들이 도대체 쓸모가 없는 물품들을 만들었다거나 아니면 쓸모가 있는 물품일지라도 그것을 쓸모없이 흘러넘치는 양으로 제조했음을 느끼게 함으로써이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208]은 두 가지가 뒤따른다 :
첫째, 상품 가치로부터 상품 가격의 지속적인 이탈이 필요 조건이며, 이 조건 아래에서, 그리고 이 조건을 통해서만 상품 가치는 현존할 수 있다. 경쟁의 동요들, 따라서 상품 가격의 동요들을 통해서만, 상품 생산의 가치 법칙은 자신을 관철시키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에 의한 상품 가치의 규정이 현실로 된다. 이와 함께 가치의 현상 형태인 가격이 일반적으로는 가격이 현상시키는 가치와는 다른 그 무엇처럼 보인다고 하는 것, 이 운명은 가치가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왕은 자신이 역할을 맡고 있는 왕정하고는 대개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교환하는 상품 생산자들의 사회에서 경쟁으로 하여금, 일반적으로 가치 규정이 성립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인 가격에 압력을 가하여 가치 규정을 성립시키는 것을 금지시킴으로써 노동 시간에 의한 이러한 가치 규정을 성립시키려 하는 것은 따라서 경제 법칙에 대한 그 밖의 유토피아적 경멸을 적어도 이 영역에서는 전유했음을 증명할 뿐이다.
둘째 ; 교환하는 상품 생산자들의 사회의 내부에서 경쟁은, 상품 생산의 가치 법칙이 통용력을 갖도록 하는 가운데 위와 같은 작용을 함으로써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사회적 생산의 조직과 질서를 관철시킨다. 생산물들의 평가절하와 과대평가를 매개로 하여서만 개별 상품 생산자들은 생산물들 가운데 어떤 것을, 또 얼마만큼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로드베르투스가 함께 대표하고 있는 유토피아는 바로 이와 같은 유일한 조절기를 폐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때 우리가 묻는다면, 즉 생산물 가운데 필수적인 양만큼 생산되어 더 많이 생산되지 않게 되도록 하는, 우리가 첨채당에 질식하고 감자 소주에 익사하면서도 곡식과 고기가 없어 굶주림으로 고통당하지 않게 되도록 하는, 바지 단추는 수백만 개씩이나 여기저기 넘치는데도 우리의 맨몸을 가릴 정도밖에 바지가 없게 되지 않게 되도록 하는 어떤 보장이 있는지를 묻는다면−로드베르투스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유명한 계산법을 가리켜 보이는데, 그것에 의하면 여분의 설탕 파운드마다, 판매되지 않은 화주 통마다, 바지에 달리지 않은 단추마다 정확한 증명서가 발행된다. 이[209] 계산법은 정확히 “일치하며”, 그것에 따르면 “모든 요구가 충족될 것이며, 청산은 올바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믿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러한 계산을 감사하고 옳은지 인정해 주는 일을 하고 있으며 또 여태껏 현금 부족으로 체포되어 본 적이 없는 완전히 믿을 만한 포메른의 정부−중앙 금고−출납국 회계원 X에게 의뢰해 보라.
그러면 이제는 로드베르투스가 자신의 유토피아를 매개로 산업 공황과 상업 공황을 제거하려고 할 때 보여 주는 순진함을 보기로 하자. 상품 생산이 세계적 차원의 시장을 획득하자마자, 사적 계정으로 생산하는 개별 생산자들과 시장 사이의 조정, 즉 그들이 그것을 위해 생산하며 또 그 수요의 양과 질의 면에서 다소간 그들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은 시장 사이의 조정은 세계 시장의 뇌우, 상업 공황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 만약 개별 생산자들에게 세계 시장의 상태가 어떤지를 가격의 상승이나 하락을 통하여 알리는 일을 경쟁에게 금지시킨다면, 그것은 생산자들의 눈을 완전히 가리는 일이 될 것이다. 생산자들이 시장, 즉 그들이 그것을 위해 생산하고 있는 시장의 상태에 대해 더 이상 전혀 알 수 없도록 상품 생산을 조직하는 것−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아이젠바르트 박사로 하여금 로드베르투스를 부러워하게 만들 수 있었던 공황 병에 대한 치유책인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왜 로드베르투스가 상품의 가치를 “노동”에 의하여 쉽사리 규정하며 기껏해야 노동의 서로 다른 강도를 허용하고 있는지 이해할 것이다. 만약 그가 노동이 무엇을 통해 또 어떻게 가치를 창조하는지, 따라서 또한 규정하고 측정하는지를 탐구하였더라면, 그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즉 동일한 종류의 다른 생산물들뿐만 아니라 사회적 총수요에 대해서도 개별 생산물에 필요한 노동에 도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210]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 사회적 총수요에 대한 개별 상품 생산자의 생산의 적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그리고 그럼으로써 그의 유토피아 전체는 불가능한 것으로 되어 버린다. 그는 이번에는 사실상 “추상화하는” 것을, 즉 바로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을 “추상화하는” 것을 택하였다.
이제 드디어 우리는 로드베르투스가 우리에게 새로운 그 무엇을 현실적으로 제시하는 지점에 도달하였다 ; 그룹 노동 화폐-교환 경제의 그의 모든 무수히 많은 동료들로부터 구분시켜 주는 그 무엇. 그들 모두는 이러한 교환 장치를 자본에 의한 임금 노동의 착취를 폐지할 목적으로 주장한다. 모든 생산자는 자신의 생산물의 완전한 노동 가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그레이로부터 프루동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가 일치한다. 절대 아니라고 로드베르투스는 말한다. 임금 노동과 그 착취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첫째,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사회 상태에서도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물의 가치 전체를 소비를 위해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 생산된 기금으로부터, 경제적으로는 비생산적이긴 하지만 필요한 일련의 기능들이 지출되어야 하고 따라서 관련 인물들도 함께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오늘날의 분업이 통용되는 한에서만 올바르다. 전반적인 생산적 노동의 의무가 있는 사회 또한 분명히 “생각할 수” 있으며, 그런 사회에서는 이러한 것은 없어진다. 그러나 사회적 예비 기금 및 축적 기금의 필요성은 남아 있을 것이며, 따라서 그때에도 노동자들, 즉 모두가 자신들의 총생산물을 소유하고 향유한 채 있을 것이지만, 각각의 개별 노동자들이 자신의 “완전한 노동 수익을” 향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 생산물로부터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기능들이 유지된다는 것은 다른 노동 화폐-유토피아주의자들에게서도 간과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목적을 위해 통상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과세하도록 하는 반면에, 1842년의 사회 개혁안을 모두 당시 프로이센 국가에 맞게 마련한 로드베르투스는 노동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그들의 몫을 위로부터 아래로 규정해 주며 또 은총을 베풀어 양도해 주는 관료제의 재량에 사태 전체를 맡긴다.[211]
그러나 둘째로, 지대와 이윤 또한 손상을 입지 않은 채 지속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토지 보유자와 산업 자본가도, 비록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기능이라 하더라도 특정한, 사회적으로 유용한 또는 필수적이기까지 한 기능을 행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대가로 지대와 이윤으로 일정한 봉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1842년에는 전혀 새롭지 않은 파악이다. 오늘날 그들은 자신들이 수행하고 있는, 게다가 나쁘게 수행하고 있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아주 자그마한 일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벌고 있다. 그러나 로드베르투스는 실로 적어도 다가올 500년에 대해서는 하나의 특권 계급을 필요로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내 생각을 올바르게 표현하자면−현재의 잉여 가치율이라고 하는 것은 유지된 채 있어야지 상승해서는 안 된다. 이 현재의 잉여 가치율을 로드베르투스는 200 퍼센트로 상정하고 있으니, 다시 말하자면 열두 시간 노동의 경우에 날마다 노동자가 12시간이 아니라 단지 4시간이 증명된 것을 받게 되며 나머지 8시간에 생산된 가치는 토지 보유자와 자본가 사이에 분배된다는 것이다. 로드베르투스의 노동 증명은 따라서 직접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동자 계급이 4노동 시간이 증명된 것을 얻기 위해 12시간 노동하는 것을 감수할 것이라고 상상해 보려면, 다시 한번 포메른의 기사령 보유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자본주의적 생산의 마법 주문이 이와 같은 순진한 언어로 번역된다면, 그것은 노골적인 강도짓으로 보일 것이며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모든 증명서들은 직접적인 반란 도발이 될 것이며, 독일의 제국 형법전 제110조에 해당될 것이다. 사람들은, 곤봉과 채찍이 지배하고 마을의 모든 반반한 계집들은 자비로운 영주의 규방에 소속되는 포메른 기사령에 사실상 절반은 농노 신분으로 갇혀 있는 날품팔이 프롤레타리아트와는 다른 프롤레타리아트를 전혀 본 적이 없음이 틀림없는바, 이는 그러한 모욕을 노동자들에게 가할 수도 있다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보수주의자들이 이제 바로 우리의 가장 위대한 혁명가들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노동자들이 고된 열두 시간 노동 내내 현실적으로는 네 시간만 노동했다고 하는 것에 속아 줄 정도로 그렇게 온유한 사람들[212]이라면, 그에 대한 임금으로 그들은 영원히 그들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그들의 몫은 삼분의 일 이하로 떨어지는 일이 없게 되리라는 보장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어린애의 나팔로 부는 미래 음악이며, 이를 위해서는 단 한마디라도 허비할 가치가 없다. 따라서 로드베르투스의 노동 화폐-교환 유토피아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제시되고 있는 한, 이 새로운 것이란 단지 유치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또 그것은 로드베르투스 이전이나 이후의 그의 수많은 동지들의 업적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것이다.
로드베르투스의『인식을 위하여 등등』이 나왔던 시기로 보자면, 그 책은 무조건 중요한 저서였다. 그가 리카도의 가치 이론을 한 방향으로 진전시킨 것은 전도 유망한 출발이었다. 비록 그것이 그와 독일에게만 새로웠다고 할지라도, 전체적으로 그것은 그 사람보다 더 훌륭한 영국의 선행자들의 업적과 동등한 높이에 올라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겨우 출발일 뿐이었으며, 이로부터 근본적이고 비판적인 그 이상의 작업을 통하여서만 이론을 위한 현실적인 성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계속 전개해 나아가는 것을 그 스스로 차단하였다. 그는 리카도를 이어 계속 전개하는 것을 애초부터 두 번째 방향에서, 즉 유토피아의 방향에서 착수함으로써 그렇게 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는 모든 비판의 첫째 조건인 다음과 같은 것을 상실하였다−공평 무사. 그는 사전에 규정된 목표를 향해 노력하였고, 그는 경향 경제학자가 되었다. 일단 자신의 유토피아에 사로잡히게 되자, 그는 과학에서 전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스스로 봉쇄하였다. 1842년부터 죽을 때까지 그는 원 안에서 돌고 있었으니, 이미 최초의 저술에서 언급했거나 암시해 놓았던 생각들을 끊임없이 반복하였고,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으며, 표절될 것도 없는데 표절 당했다고 알고 있었으며, 결국에 가서는 자신이 근본적으로는 이미 오래 전에 발견된 것들을 재발견했을 뿐이라는 인식에 대해 고의적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 * *
몇몇 구절들에서 번역은 인쇄된 프랑스어 원본과는 상이하다. 이것들[213]은 맑스가 손으로 적어 놓은 변경 사항들에 근거한 것인데, 준비되고 있는 새로운 프랑스어 판에서는 이러한 변경 사항들도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 저술에서 사용되고 있는 표현 방식이『자본』의 것들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여전히 노동력 대신에 노동이 상품으로 간주되고, 노동의 구매와 판매에 대해 이야기되고 있다.
이 판에는 부록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추가되었다 ; 1. 맑스의 저술 『정치 경제학의 비판을 위하여』(베를린, 1859년) 가운데서 존 그레이의 최초의 노동 화폐-교환 유토피아에 관한 부분과 2. 저자의 『빈곤』과 동일한 발전 시기에 해당하는, 자유 무역에 관한 맑스의 브뤼셀에서의 연설(1848년)의 번역.
1884년 10월 23일, 런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출전 : 칼 맑스, 『철학의 빈곤,
프루동의『빈곤의 철학』에 대한 응답』,
E. 베른슈타인과 K. 카우츠키의 독일어 번역.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서문과 주해 첨부.
슈투트가르트, 1885년.
『맑스·엥겔스 저작집』
제21권, 175-187면.
김태호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