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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토너먼트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월드컵의 조별예선이 계속 치뤄지고 있습니다. 어떤 팀은 웃고 어떤 팀은 울고, 그리고 어떤 팀은 허탈해하고 있기도 하네요.
일각에서는 재미없다거나 심지어는 최악의 월드컵이라고까지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까지 남아공 월드컵을 비난하고 있는지 저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완화된 오프사이드 규정
지금의 오프사이드 규정은 설사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더라도 볼의 진행에 관여가 되지 않으면 오프사이드 판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코스타리카의 파울로 완초페의 골이 이 규정의 득을 본 경우였죠.
어떻게 보면 골이 더 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 규정이 나온 후부터 좀처럼 골이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들이 완화된 오프사이드 규정 때문에 전진시켰던 수비라인을 후방으로 내려버리는 바람에 슈팅을 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줄어버렸다고 합니다. 당연히 수비하는 입장에선 새로운 오프사이드 규정은 불안요소일 수 밖에 없죠. 수비가 불안하면 공격도 잘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팀들은, 특히 비교적 약한 전력이라 불리는 팀들은 아예 수비라인을 내리고 시합에 임하게 되었죠.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선 기존 오프사이드 규정을 이용해 전진 오프사이드 트랩을 많은 팀들이 사용했습니다. 어차피 공에 관계되지 않더라도 수비라인만 밀고 올라가면 오프사이드 파울을 유도해낼 수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프랑스 월드컵 때의 경기들을 보면 수비에 대한 부담을 지금보다는 비교적 덜 받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골을 내야 승부를 낼 수 있기에 양쪽 측면 수비수의 오버래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윙어도 지금보다는 수비부담이 적어 공격에만 집중했죠. 물론 공격수들도 압박의 강도도 지금처럼 심하지 않아 찬스에서 골을 넣는 데 집중합니다.
만약 이번 월드컵에서 전진 오프사이드 트랩을 썼다면 배후침투를 하는 윙어에게 공간을 열어주게 되었을 겁니다. 설사 오프사이드 트랩 안에 상대편 공격수가 있어도 배후에 들어오는 선수는 적용이 되질 않으니까요. 제가 감독이라도 적극적인 공격 전술은 지양할 겁니다.
2. 절대적 약팀은 없다
98년과 2002년까지만 해도 강팀과 약팀의 실력차가 어느 정도 존재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98년때는 우리나라가 네덜란드에게 5:0 대패를 당했고 중국은 첫 월드컵 진출의 감격을 맛보기도 전에 3전 전패를 당했습니다. 설사 이변이 일어난다고는 해도 이변을 일으킨 팀은 준비가 잘 되고 이미 수준급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거였죠. 유로 96에서 8강까지 진출한 크로아티아는 이미 유럽에서는 다크호스로 지목된 팀이었고 그 당시 노르웨이는 브라질 킬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강한 전력을 보유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비 강호(어디까지나 전세계적인 시선으로 볼 때)를 제외한 아시아, 북중미 몇 팀은 세계무대와의 벽을 실감해야 했죠.(이 때도 흑형들의 파워는 대단했기에 논외로 합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개최지와 부부젤라, 자블라니라는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절대적인 약팀은 없어 보입니다. 오늘 스페인이 스위스에게 진 것은 98년을 놓고 보자면 정말로 대이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결과도 있을 수 있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충격적인 결과는 뉴질랜드가 슬로바키아와 무승부를 기록한 일이지요. 물론 점유율은 경기 전에 우세할 것이라고 예측되었던 팀들이 가져갔지만 상대적으로 약체라고 평가받는 팀들의 경기력이 형편없지는 않았습니다. 뉴질랜드는 마지막까지 동점골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방심하던 슬로바키아를 허탈하게 했죠.
개막전부터 지금까지 경기를 보고 나서 전세계적으로 축구실력이 상형평준화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나 수비조직력은 공격전개보다 더 공을 들여야 하는데 이 점에서 약체로 평가받던(우리나라도 포함) 팀들의 수비가 예상외로 강했다고 외부 언론 매체들이 평가를 했죠. 이는 결국 월드컵에 참가하는 32개국이 적어도 기본은 갖추고 나왔다는 점에서 발전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수비에 중심을 두는 축구는 언뜻 보기엔 골이 좀처럼 나질 않아 재미가 없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세계축구의 질적 발전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이런 변화는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압박을 통한 점유율 증대가 주를 이뤘고 이를 파괴하기 위해 빠른 템포와 정확한 패스를 장착한 스페인의 축구가 유로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빠른 템포의 패싱축구(바르셀로나로 대표되는)는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첼시를 잠깐 맡았던 거스 히딩크, 이번에 챔피언스 리그를 제패한 무리뉴의 인테르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축구로 또 다시 파괴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월드컵은 이러한 전술 흐름의 연장선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패싱이 비교적 잘 되는 팀을 파괴하기 위해 패스의 길을 막고 공간을 점유하는 전술을 생각보다 많은 팀들이 적용하고 잘 해내고 있다는 점에 놀라웠습니다.
이러한 전술적 움직임의 진보는 아무래도 각국 축구 대표팀을 맡고 있는 지도자의 역량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외국인 지도자의 영입, 혹은 국내 지도자의 발전을 통해 축구를 보는 시각이 넓어졌고 선진 시스템을 도입하여 체질화하는 작업을 많이 거쳤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는 유럽 지도자가 선진축구를 들여오고 북중미는 자국 지도자의 역량 증대를 통해 자신에 맞는 전술을 극대화했습니다.
이제는 강팀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전술을 잘 준비했느냐가 승패를 가리고, 나아가 강팀의 조건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 공인구의 퇴보(!)
조금 자극적인 문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감히 공인구가 98년 이후로 '퇴보'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98년 때 화려한 축구(특히나 네덜란드)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앞서 말한 엄격한 오프사이드 룰도 있었지만 적당한 탄성과 스핀이 잘 걸리는 트리콜로라는 공인구도 한 몫을 했다고 봅니다.
축구를 몰랐던 사람들도 98년때의 브라질, 네덜란드의 플레이에 매료되어 축구에 빠져든 사람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약속된 플레이'가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트리콜로라는 공인구가 있었죠. 94년 공인구였던 퀘스트라의 단점을 보완하여 반발성을 조금 더 증가시켜 중거리슛의 파워를 증대시켰죠. 프랑스 월드컵 때의 경기들을 보면 중거리슛이 정말 위력적으로 날아가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반발성이기에 가능했단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피버노바부터 아디다스는 공인구를 좀 더 원에 가깝고 탄성이 뛰어나게 하여 아예 '예측이 불가능한' 쪽으로 공을 제작하게 됩니다. 이 덕에 조별예선에선 독일이 8골을 쓸어담아 골이 많이 터진다고 자랑했지만 막상 토너먼트에 들어가자 공의 반발성을 의식해 각 팀들이 공을 다룰 때 모험보다는 안정을 우선에 두고 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게 수비에서만 일어난다면 골이 많이 터질 수도 있겠지만 공격 입장에서도 그건 마찬가지기에 오히려 골 숫자는 적어지게 되었죠.
그리고 지금의 자블라니는 사실상 원에 가깝습니다. 거기에 독일 월드컵의 공인구인 팀 가이스트보다 인사이드 킥을 통한 회전도 잘 안 먹는 편이죠. 조기 축구회에서 아무나(어디까지나 볼 좀 찬다는 전제 하에) 공을 차도 무회전이 나오는 공이 좋은 공이라 할 수 있을까요? 골을 더 넣기 위해 제작된 공이 오히려 골 넣는 데 방해가 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퇴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가지 주제로 한 번 나눠서 살펴봤는데, 많은 분들이 모르시듯이(응?) 사커월드 눈팅족이면서 지금의 다음 카페에선 신입인 저이기에 이런 장문의 글은 처음이라 많은 지적을 받을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글은 써야 제맛이니 올리고 저는 도주하도록 하겠어요.<-어이;;;;
이성적인 태클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설마 이곳에서 악성댓글은 없겠죠?! 그럴거라고 믿습니다, 암요.
P.S. 16강에 올라가는 것 보다는 후회없는 경기를 하기를...
첫댓글 ^^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완화된 업사이드룰이 오히려 팀이 수비적인 모습을 보인다는것은 흥미로운 주제인것 같습니다. ^^
어익후, 재밌게 읽으셨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
확실히 공격에 유리하라고 만든 게 오히려 수비축구를 하게 된 원동력이 된 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음.. 완화된 옵사이드 규정..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주제인것 같네요. ㅇㅅㅇ
절대적 약팀이 없다는 것 역시 공감합니다. 공인구는.. 월드컵 개막 전까지만 해도.. 골키퍼들이 막기 어려운 공이라 골이 많이 날 것이다! 라고 예상했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필드 플레이어들이 더 고생을 하는 듯한.. ㅋ
FIFA랑 아디다스가 뭔 생각으로 저러는지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잘 안 갑니다. 공격축구의 시작은 수비의 안정화인데 말이죠.
어제 스페인 전을 보면서 자블라니가 잘 안감긴다는 걸 확신했습니다.
감아차는 선수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게는 좋은....? 쿨럭...
박주영 선수나 기성용 선수는 감아차는 프리킥을 하죠. 그리스전에서 기성용 선수가 잘 감아찼던 걸 보면 공에 대한 준비가 잘 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