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믿음이 죽은 딸을 살리고, 혈우병 걸린 여인의 믿음이 그를 딸로 부름받게 합니다. 두 딸 모두 예수님께만 닿아도 낫겠다 라는 믿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14,15절 신랑 되신 메시아 예수께서 신부인 자기 백성을 용서하시고 새 언약의 관계를 맺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습니다. 그러니 혼인집 손님들인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고 잔치를 흥겹게 즐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금식할 날이 올 것인데, 신랑을 잃을 때,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부활하실 것이니 그 슬픔도 오래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완전히 구원의 날까지 우리에겐 죄로 인한 애통의 금식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삶이 우리 가운데 이미 와 계신 신랑으로 인해 기쁨이 가득한 예배가 되게 합시다.
16,17절 새 시대를 여셨습니다. 그러니 율법이나 유대교의 종교체제로는 역동적인 새 시대를 담을 수 없습니다. 내게 익숙한 것만 고집하다가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가로막는 형식뿐인 신앙이 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18,19절 죽은 딸에게 손을 얹어 살려 달라는 아비가 예수님에게 나아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을 살려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간청이지만 예수님은 가능성의 유무로 움직이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손에만 닿아도 낫겠다 라는 믿음만 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이 믿음으로 나아갑니까? 합당한 논리와 가능한 전략을 들어야만 움직이는 건 아닙니까?
20-22절 혈루증 앓는 여인과 접촉하는 것은 부정으로 여겨졌지만, 예수님의 겉옷자락에만 닿아도낫겠다 라는 여인의 믿음만 보십니다. 기나긴 병으로 누구 하나 연결된 이 없이 소외된 여인을 딸 이라 부르시며, 그 여인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딸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곧 구원입니다.
23-26절 율법에서는 시신에 손을 대면 부정해진다고 규정하지만, 예수님은 관리의 딸을 자는 것으로 여기시고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딸의 아버지는 믿음이라는 새 부대로 나아갔고, 딸을 다시 얻는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구원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아낌없이 주실 줄 믿는 태도로 예수님에게 나아가는 자마다 그 기쁨을 누립니다. (매일성경, 2023.01/02, p.128-129, 예수님께만 닿아도, 마태복음 9:14-26에서 인용).
① 아버지의 믿음이 죽은 딸을 살리고, 혈우병 걸린 여인의 믿음이 그를 딸로 부름받게 합니다. 두 딸 모두 예수님께만 닿아도 낫겠다 라는 믿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신랑 되신 메시아 예수께서 신부인 자기 백성을 용서하시고 새 언약의 관계를 맺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습니다. 그러니 혼인집 손님들인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고 잔치를 흥겹게 즐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금식할 날이 올 것인데, 신랑을 잃을 때,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부활하실 것이니 그 슬픔도 오래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완전히 구원의 날까지 우리에겐 죄로 인한 애통의 금식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삶이 우리 가운데 이미 와 계신 신랑으로 인해 기쁨이 가득한 예배가 되게 합시다.
② 새 시대를 여셨습니다. 그러니 율법이나 유대교의 종교체제로는 역동적인 새 시대를 담을 수 없습니다. 내게 익숙한 것만 고집하다가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가로막는 형식뿐인 신앙이 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③ 죽은 딸에게 손을 얹어 살려 달라는 아비가 예수님에게 나아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을 살려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간청이지만 예수님은 가능성의 유무로 움직이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손에만 닿아도 낫겠다 라는 믿음만 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이 믿음으로 나아갑니까? 합당한 논리와 가능한 전략을 들어야만 움직이는 건 아닙니까?
④ 혈루증 앓는 여인과 접촉하는 것은 부정으로 여겨졌지만, 예수님의 겉옷자락에만 닿아도 낫겠다 라는 여인의 믿음만 보십니다. 기나긴 병으로 누구 하나 연결된 이 없이 소외된 여인을 딸 이라 부르시며, 그 여인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딸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곧 구원입니다.
⑤ 율법에서는 시신에 손을 대면 부정해진다고 규정하지만, 예수님은 관리의 딸을 자는 것으로 여기시고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딸의 아버지는 믿음이라는 새 부대로 나아갔고, 딸을 다시 얻는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구원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아낌없이 주실 줄 믿는 태도로 예수님에게 나아가는 자마다 그 기쁨을 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