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신윤복의 풍속화1(파리 기메국립아시아미술관 소장)~>
♡♡♡♡♡♡♡♡♡♡
오늘은 허진사 둘째딸이 시집가는 날이다.
우수가 지나자 봄기운이 완연해졌다.
허진사네 집 넓은 안마당 차양막아래서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신랑 신부가 맞절을 올리자 온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족두리를 쓰고 연지곤지 찍은 신부와 사모관대를 쓴 신랑을 보겠다고 발디딜 틈이 없었다.
부잣집답게 소 한마리 돼지 세마리 잡고 해산물도 바리바리 싣고 와 뒤뜰에서는 가마솥을 걸어 놓고 장작불을 지펴 쇠고깃국이 설설 끓고, 뒤집어 놓은 솥뚜껑 위엔 부침개가 노릇노릇 익고, 과방에는 떡과 고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혼례식이 끝나자 사랑방엔 허진사네 집안어른들과 사돈댁어른들이 이어놓은 음식상을 마주한 채 술잔이 오가고 아낙네들은 안방에 자리잡고 손님들은 안마루 바깥마루에 넘쳐 안마당 뒷마당 멍석위에도 와글거렸다.
해가 저물어도 여기저기 횃불을 밝히고 노래판 춤판이 이어졌다.
과거에 떨어져 낙향하는 길에 이 동네를 거치게 된 젊은 선비가 이 동네엔 주막이 없다는 걸 알고 허진사네 잔칫집에 들어갔다.
잔칫상 소반을 받아 게 눈감추듯 비우고나자 동네 젊은이들이 소매를 당겨 술판에 끼게 되었다.
동네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인 백면서생 새신랑과 어울려 술잔은 부리나케 오갔다.
술판은 삼경이 지나도록 이어지더니 모두가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고 여기저기 불 밝히던 관솔불도 하나둘 저절로 꺼지자 흐지부지 파장이 되었다.
두주불사 과객선비도 술이 취해 소피를 보고 난 후 볏단뒤에 주저앉았다가 비스듬히 쓰러졌다.
허진사네 집사와 행랑아범이 호롱불을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신랑을 찾고 있었다.
“여기 쓰러지셨네.”
젊은 선비를 일으켜 세운 두사람은 선비를 부축해 옷의 지푸라기를 털고는 신방에 넣어 줬다.
선비는 신부가 따라 주는 합환주를 마시고 신부의 분냄새에 이끌려 옷고름을 풀었다.
새색시야 똑바로 신랑을 쳐다본 적도 없어 그냥 몸을 맡겼다.
이 여자가 기생 춘심인가 주막의 주모인가 비몽사몽간에 과객 선비는 운우를 치르고, 허진사 둘째딸은 초야를 치렀다.
닭이 울고 난 새벽,
밖에서 잠가 놓은 과방 속에서 쾅쾅 소리가 요란하게
“문 열어 주시오”
하는 고함이 들려 열쇠를 찬 새신부의 막내삼촌이 과방 문을 열었더니 웬 미친(?)놈이 비틀거리며 나와 신방이 어디냐고 소란을 피웠다.
진짜 신랑이 술이 취해 과방에 들어가 식혜를 마시고 쓰러졌다가 새벽녘에야 정신이 들어 나온 것이다.
집안이 발칵 뒤집혀졌다.
가짜(?) 새신랑이 포박을 당했을 무렵, 날이 샜다.
새색시는 까무러치고 허진사의 안방마님도 혼절하고 진짜 새신랑은 털썩 주저앉고 허진사는 번쩍이는 장도를 빼들고 나왔다.
포박당한 가짜 신랑이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소인의 계략이 아닙니다.
그리고 소인이 죽더라도 새신부는 한평생 멍에를 지고 살 것입니다.
새색시를 제게 주십시오.
그것만이 모두가 사는 길이오!”
그때 사랑방 문이 열리고 새색시의 조부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와
“백년손님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
포박을 풀고 칼을 치워라”
고함을 치고 진짜 새신랑을 제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듬해 새색시는 아들을 낳고 과객 선비 신랑은 과거에 급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