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곡. 여덟 번째 구렁, 국가와 교회에 관련된 죄인, 기만적 조언, 이간질
이야기를 나누던 오디세우스는 떠나고 그를 뒤따라오던 불꽃 하나가 혼탁한 소리를 내지르며 우리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자기 몸을
줄로 다듬어 준 사람의 울음을 따라
처음으로 울었던 시칠리아의 황소가
그 안의 비탄에 빠진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울부짖으면
비록 놋쇠로 만들어졌지만, 마치
고통으로 찢어지는 자의 신음처럼 들리듯,
아테네의 명장 페릴루스는 시칠리아 폭군 팔라리스에게 놋쇠로 만든 황소를 만들어 바쳤습니다. 폭군 팔라리스는 죄인을 황소 안에 넣어 태워 죽이면서 죄인의 비명 소리가 황소의 울음소리처럼 울려 나오도록 했습니다. 첫 번째 희생자는 페룰스르 자신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불꽃 안에 있는 불타는 영혼으로부터
벗어날 길도, 틈도 찾지 못하던 고통의 소리는
불의 언어로 변해 갈 뿐이었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는 고대 신화와 역사 속에 있었던 사실을 지옥에 빗대어 그 상황에 맞게 묘사하는 솜씨에 놀라는데 이곡에서는 대비와 비유가 재미있습니다.
황소 안에서 태워 죽이는 죄인의 비명소리가 황소의 울음소리처럼 울리듯, 죄인의 혀는 불꽃 안에서 소리를 만들어 고통의 소리가 불의 언어가 되어 우리에게 이런 말이 들려왔습니다.
“당신은 지금 룸바르디아 말로 말했소.”
그 불꽃 속에는 구이도 다몬테 펠트로라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는 로마냐 지방을 다스리던 기벨리니의 당수였습니다. 그는 국가와 교회에 관련된 죄인으로 이탈리아를 통 털어서 동 시대인 중 가장 지혜롭고 교활한 자인 그를 여우라 불렀습니다.
여러 곳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지만 지옥의 영혼들은 과거와 미래의 사실은 잘 알고 있으나 현재 사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옥으로 처음 들어오는 영혼들에게 밖의 세상의 현재 상황을 들어야만 알 수 있습니다. 베르길리우스가 만난 영혼도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에 처음 온 영혼으로 생각하고 로마냐(라벤나가 중심도시) 사람들이 평화로운지 아니면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지 물어봅니다.
선생님은 이 영혼이 라틴 사람이니 단테 네가 말을 하라고 합니다.
단테는 영혼과 대화를 합니다.
단테는 폭군들이 전쟁을 생각하고 있지만 떠나올 적에 전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가문의 문장이 독수리인 폴렌타 가문이 지배하고 있는데 체르비아도 함께 다스렸다고 합니다.
라벤나는 오랫동안 그대로이니,
폴렌타의 독수리가 그곳을 품듯이
채르비아도 그 날개 아래 들어가 있소.
라벤나는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떠돌다 정착한 도시입니다.
라벤나에 단테의 무덤이 있습니다.
2012년 이탈리아 여행중 라벤나에서, 단테의 무덤
2012년 이탈리아 여행중 라벤나에서, 단테의 무덤
피렌체에서 교황파와 황제파가 싸우던 시절(13세기), 교황파에서 정치 싸움에 휘말려 추방당한 단테는 이탈리아를 떠돌다 이곳 라벤나에서 세상을 뜹니다. 피렌체는 뒤늦게서야 라벤나에 단테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하나 라벤나는 끝까지 거부하고 이곳에 단테의 시신을 안치하고 있습니다. 단테의 묘 안에 들어가면 지금도 단테의 무덤 앞에 꺼지지 않는 작은 등불(램프 불)이 있습니다. 피렌체 시에서는 별도의 예산을 세워 라벤나 시에 이 기름 값을 단테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보낸다고 합니다. - 내 여행 블로그에서-
2012년 이탈리아 여행중 라벤나 단테의 장례가 치러진 프란체스카 성당
고대 로마 문화와 비잔틴 문화가 융합된 모자이크로 장식된 건축물로 유명한 라벤나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이 8곳이나 되는 초기 비잔틴 문화를 꽃피운 도시입니다. 모든 성당과 채플의 천장, 벽, 바닥 등 모든 그림이 다 돌 모자이크입니다. 그중
산 비탈레 성당 Basilica dis Vitale입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527년부터 565년까지 로마 제국의 황제였습니다
이들은 한 번도 와 본적이 없는 라벤나의 성당에 미사에 참여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모자이크로 새겨 라벤나 사람들이 자신들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이들이 의도한 대로 그들의 이름은 1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모자이크와 함께 전해오고 있습니다. 권력도 이름도 예술과 함께하면 영원하나 봅니다.
이 그림들이 모두 예쁜 색깔의 돌조각으로 된 모자이크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모자이크들입니다.
성당 벽면에 있는 유명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부부 모자이크입니다.
산 비탈레 성당 Basilica dis Vitale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부부 모자이크 - 2012년 라벤나 여행에서
안드레아 채플 입구위 둥근 천장 모자이크 부분
안드레아 채플 입구위 둥근 천장 모자이크 부분 확대
-내 블로그의 라벤나의 단테의 무덤의 사진을 가지러 갔다 라벤나의 성당과 채플의 모자이크가 너무 아름다워 딴 짓을 좀 했습니다. -
그리고 영혼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달라고 하며 당신의 이름이 세상에서 오래 남기를 바란다면 친절하게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불은 한동안 제풀에 펄럭이며 한숨을 짓듯 말을 했습니다.
나의 대답이 세상으로 돌아갈 사람에게
하는 것인 줄 알았더라면 이 불꽃은
나풀거리지 않았을 것이오 만
이 깊은 바닥에서 산 채로 돌아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인즉, 아무렴 그럴 테지,
불명예를 두려워 않고 다 말하겠소.
나는 군인이었다가 속죄하는 마음에서 수도사가 되었는데 사제를 잘못 만나 그자가 나를 옛날의 죄악으로 다시 밀어 넣었습니다.
그는 위 세상에서 살아 있을 때 사자가 아니라 여우처럼 모략과 술수를 잘 부렸지만 이런 생활에 싫증을 느껴 죄를 뉘우치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이때 구원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한탄을 합니다.
새로운 바리새 사람들의 왕(보니파키우스 8세)이
라테나로(교황이 거주하던 로마 궁전)에서 싸움을 시작했는데,
사라센이나 유대인과의 전쟁이 아니었소.
보니파키우스 8세가 싸움을 시작했으나 그의 적은 사라센이나 유대인과의 전쟁이 아니라 모두 그리스도교인들(황제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너의 죄를 사면해 줄 테이니 프라이네스테(교황 보니파키우스와 대립하던 로마의 유력한 콜로나 가문의 본거지)를 어떻게 공략할지 가르쳐달라고 하여 그들에게 협조하여 지금의 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죽었을 때 성 프란체스코께서 나를 보러
오셨는데 까만 천사 한 마리가 그분께
말했소. ‘데려가지 마시오. 옳지 않소!
저놈은 기만적인 조언을 했기 때문에
내 졸개들 속으로 떨어져야 마땅합니다.
내가 먼저 저놈의 머리채를 움켜쥐었소.
그는 말을 마치자 불꽃을 펄럭이며 이내 떠나갔습니다.
우리는 둔덕에 올라 또 다른 활꼴 다리 위에 도착했는데 그 밑구멍에는 이간질 때문에 짐을 지은 자들이 죄 값을 치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