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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좌우 살피며 노천시장을 찾는 수현)
씬 48. 병원복도 (E) (실내)
(가운 걸쳐 입으며 달려오는 선영. 제정신이 아니다. 동료의사. 간호사와 함께 나타나 선영과 나란히 걷는 진명)
선영: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진명: (암담) 그 친구 다시 살아났어.
선영: (기막힌) 농담할 기분 아녜요.
진명: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건너편 복도 꺾어 무더기로 우르르 몰려 오는 기자들. 반대편 의사그룹, 기자들 발견하고 긴장한다)
진명: 아무 얘기도 하지 마.
(할로겐 조명등. ENG 카메라.
순식간에 의사들 주위를 둘러싼다.
몸으로 막는 의사들. 손으로 카메라 막고)
기자 1: 다시 살아났다는 환잔 어디 있죠?
2: 담당 의산 누구예요?
3: 병원의 오진이나 실수로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4: 사망 직후에 각막 이식 수술을 한 걸로 아는데.
(왁자지껄. 선영, 진명 곤혹스럽다. 노코멘트)
씬 49. 노천시장 있던 광장 (E) (실외)
(수현, 자전거 대여 아저씨와 얘기한다.)
아저씨: 시장? 머슨 시장?
수현: 저, 서로 물건 교환도 하고, 개미시장 같은 거 말입니다.
아저씨: 여거 오일육 광장이여. 시장은 동대문, 남대문 가야 쓰지. 고래 등짝 같은 여기에 웬 개미는 개미여.
(자전거 끌고 앞으로 가는 아저씨. 그 앞을 막아서는 수현)
수현: (답답) 아니 저, 바로 어제 여기서 제가 침댈 사갔어요.
아저씨: 어따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갖고 침대는 무신 놈에 침대여. 여거 자정거 빼놓고 뭐가 있어.
수현: 어제까지 분명히 여기서 시장을 열렸었어요.
아저씨: 어따 참말로 환장허것네. 그려 가봐. 어디여? 컬컬하던 참에 썬(시원)하게 대포나 한잔하게, 잉?
(답답하고 황당한 수현, 머리를 내젓는다)
아저씨: (off) 가장께. 어디여.
씬 50. 작업실 안. (실내)
(음산한 작업실 내부.
침대 쪽으로 다가가는 수현의 시야.
그 위로 미단의 off)
미단(off): 조금 전 그 사람은 당신을 죽일지도 몰라요. 당분간 그곳엔 가지 말아요. 어디든 멀리 떠나요. 이곳에 다시 돌아와선 안돼요.
(수현, 질끈 어금니를 깨문다.
조심스레 침대 앞으로 다가가는 수현, 뚫어지게 침대를 보고는 손을 가져가 만져본다.
분명 헛것이 아닌 실체다. 긴장과 흥분에 휩싸인 수현)
수현: (도리질) 이럴 수 없어. 뭔가 잘못된 거야. 대체 넌 뭐야. 내가 본 시장은 허상이었어. 그럼 너도 없어야 돼. 말해봐.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수현, 막상 침대에게 얘기한 자신이 우스웠는지 피식 코웃음. 도리질하며 일어선다)
수현: 정말 이러단 미치고 말겠군.
(누군가의 시선이 좌우 왔다 갔다 하는 수현의 뒷모습으로 접근해 간다.)
수현: 아냐. 아무것도 아냐. 뭔가 착각한 거야. 신경쓸 거 없어. 잠시 꿈을 꾼 거야.
(점점 더 다가가는 시선.
별 느낌 없이 돌아보는 수현.
순간 퍽!!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는 손짓.
석판용 돌기둥이 수현의 머리통을 치고 나간다.)
악!
휘청. 맞고 침대위에 쓰러지는 수현.
수돗물처럼 솟구치는 피.
피범벅이 된 수현, 손 내저으며 몸빼려한다.
퍽!
연달아 돌기둥을 휘두르는 R. 괴력에 가깝다.
무방비로 당하는 수현, 얼굴이 찢기고 몸통 곳곳의 뼈가 으깨져 흐느적.
섬뜩한 얼굴로 수현의 가슴을 내리찍는 R.
욱! 피 토하는 수현.
R의 얼굴에 피가 튄다.
갈갈이 찢기고 피범벅으로 끔찍한 수현.
무자비하게 계속 내리찍는 (R)
씬 51. 작업실 복도. (실내)
(복도를 달리는 수현의 시야.
먼 길을 달려온 탓에 가쁜 숨을 몰아쉰다.
작업실 문 쪽으로 가는 수현)
씬 52. 작업실 안(N) (실내)
(쾅! 문을 떠밀고 들어서는 수현.
문소리를 휙 돌아보는 R, 죽어 축 늘어선 사내를 움켜쥐고 있다. 아-!
피범벅돼 죽어있는 사내가 바로 자신이다.
순간 경기하듯 움찔 온 몸을 떠는 수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다시 확인해 보지만 분명 수현 자신이다.
R, 부릅 두 눈을 치켜뜨고 수현을 노려본다.
뒷걸음치는 수현)
씬 53. 동 복도. (실내)
(쾅! 문에서 튕겨져 나와 미친 듯이 달려 나가는 수현)
씬 54. 작업실 안. (실내)
(침대위에 팽개쳐진 죽은 수현의 얼굴이 어떤 다른 남자의 얼굴로 바뀐다.
변한 남자의 얼굴 역시 만신창이. 피투성이다)
씬 55. 근처 도로 1. (실외)
(수현, 인파 헤치고 달린다.
노점상 물건들이 부딪혀 구른다.
피하는 행인들.
단순히 도망치거나 특정된 목적도 없다.
너무 큰 충격에 자신도 모르게 달리고 있는 것이다)
씬 56. 근처 도로 2. (실외)
(빠아앙 -!
끼이익 -!
수현, 미친 듯 도로를 가로질러 달린다.
제정신이 아닌 듯.
아슬아슬 차들이 비켜 지나고)
씬 57. 유흥가 락 카페 입구. (실외)
(요란뻑쩍한 락 카페 입구.
수현, 용수철처럼 튀기듯 돌아와서는 유리벽에 부딪혀 멈춘다.
숨 가쁜 호흡.
땀이 비 오듯 흘러 등짝을 흥건히 적셨다.
수현, 속이 매스꺼웠는지 가슴을 움켜쥐고 꺽꺽댄다.
한참 만에 숨을 다듬고 고개 드는 수현.
유리에 비친 자신을 본다.
거울속의 수현.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몸과 얼굴을 만져본다.
유리벽 앞의 남자는 분명 자신이고 살아 있다.
그렇다면 조금 전 R의 손에 죽어 있던 그는 누구란 말인가.
<인터넷 - R에게 멱살 잡힌 채 죽어있는 수현 자신>
수현, 공포. 혼돈.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씬 58. 동 카페안. (실내)
(자욱한 연기. 현란한 춤. 강한 조명.
락카페 구석 전화박스 앞의 수현 뒷모습.
뭔가 얘기하고 싶은데 말이 안 나온다)
(휠 터): 경찰입니다. 말씀하세요. 여보세요? 거기 어디예요? 죽은 사람과는 어떤 관곕니까?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수현, 답답함에 수화기 놓고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헤치고 비틀대며 나온다)
씬 59. 작업실 안. (실내)
(어둡고 음산한 작업실 분위기.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R의 실루엣)
R: (시니컬한) 사랑의 재물이 된 가엾은 친구.
(침대에게) 재회의 인사가 기껏 이건가?
얼마나 더 죽이고 싶어?
이따위 눈속임은 너완 어울리지 않아.
다 소용없는 짓이야. 어서 거기서 나와.
(흉상) 쾌쾌한 그 침대속이 지겹지도 않나?
(R을 보고 있는 듯 한 침대 흉상)
씬 60. 카페 or 체인점 (주류). (실내)
(스탠드에 나란히 앉은 선영. 진명)
선영: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죠? (픽)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돼요?
진명: 각막 이식만 안했어도 이렇게까지 문제될 건 없는데.
선영: 세상 사람들 모두 날 비웃겠죠? 죽지도 않은 환자를 죽었다고 안구 이식까지 시켜 병신 만든 돌팔이 의사. 해외 토픽 깜이죠.
진명: 곧 밝혀지겠지만 이건 누구의 실수나 잘못이 아냐.
선영: 괜히 위로할거 없어요. 그 사람은 제 환자고 모든 게 내 책임 이예요. 이미 얼간이 병신된 건 나라구요. 그 사람은 다시 살아났고 난 죽었어요. 모든 게 끝장 이예요. (눈물 핑) 내일 뵈요.
(일어나 백들고 나가는 선영.
진명, 착잡한 심정으로 안쓰럽게 본다)
씬 61. 선영 오피스텔 복도. (실내)
(띵!
엘리베이터 문 열리며 나오는 선영.
좁고 긴 복도를 따라 걷는다.
신경질 섞인 발걸음. 키를 꺼내 자신의 룸 앞에 멈춘다.
누군가 바로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 한 시선.
철컥. 키를 꼽아 돌리지만 열리지 않는다.
다가가는 그림자. 다른 키를 꼽아보는 선영.
문을 열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씬 62. 동 오피스텔 안. (실내)
(안으로 들어서는 선영.
불쑥 그 앞을 가로막는 수현.
화들짝 놀라는 선영.
수현, 선영을 벽 쪽에 몰아세우며)
수현: 잠깐.
(수현, 문으로 다가가 문구멍으로 밖을 확인한다)
선영: 무슨 짓이야. 사람 놀라게.
(수현, 안절부절 룸 안으로 걸어 들어오며)
수현: 아무래도 다시 병원에 가봐야겠어.
선영: 검사 결과 나왔어. 죽을 병 걸린 거 없으니까 걱정 마. 완벽해 무좀 빼놓고. (냉장고 문 연다)
(수현, 탁자위의 위스키를 마시고는)
수현: 날봐. 나좀봐. 나 맞어?
(선영, 발로 냉장고 문 닫고 캔 맥주 딴다. 벌컥 들이키며 전화기 쪽으로)
수현: (off) 내 말 안 들려?
(선영에게 몇 걸음 다가가는 수현)
수현: (가슴 치며) 나 맞냐구!
수현: (전화기 쪽으로 가며) 무슨 소리야.
수현: (답답) 난. 난 분명 죽었었어. 죽었었다구!
(선영, 전화기 메모리 버튼 누르고 되돌아가며)
선영: (혼잣말 하듯) 죽은 건 그 사람이야. 분명히 죽었지.
수현: 누군가 날 죽이려 하고 있어!
선영: 다시 살아나겠지
(앞장서 가는 선영. 뒤따라는 수현)
수현: 농담이 아냐!
선영: 농담이 아니길 바랬어.
수현: 그 자의 손에 죽어 있던 사람이 분명 나였어.
선영: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이건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야.
(서로 제각기 딴 얘길 하고 있다)
수현: 영화나 소설이 아냐! (뒤따라가다 멈춰서며)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구!
선영: (휙 돌아보며) 너까지 왜 이래! 난 지금 내 정신이 아냐!
수현: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선영: 더 이상 헛소리 지껄이려면 (손짓)밖에 나가서 혼자 해!
수현: 난 지금 심각해!
선영: 난 심각하다 못해 미쳐 죽어 버릴 것 같아!!!
수현: 나의 생사가 걸린 문제야! 어쩌면!
선영: 귀가 열 개라도 지금 내 귀엔 안 들어와!! 아무 얘기도 하지마! 아무 얘기도!!!
수현: !! !
(선영 다가와 와락 껴 안긴다)
선영: 안아줘
수현: (착찹. 답답)
선영: 생애 최악의 날이야. (글썽) 내가 왜 이러는지 내일이면 알게 될 거야. 저명인사가 되어 있을 테니까.
수현: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씬 63. 철로 건널목. (실외)
(지평선 같은 느낌의 다소 현실적인 건널목.
달리는 열차 바퀴. 바퀴 뒤편으로 미단의 하반신이 보인다)
씬 64. 노공 창고 안. (실내)
(미로 같은 창고 안을 훑고 지나는 카메라.
따가운 역광이 내려쬐고, 친정을 찌를 듯 즐비하게 늘어선 가야금 재료 목재들)
씬 65. 철로 건널목. (실외)
달리는 열차 부감.
건널목 정차중인 버스 000번.
버스 속에는 아무도 없고 노공만이 창밖을 보고 있다)
씬 66. 궁내 연못 (새벽) (실외)
(물안개 자욱한 새벽 연못.
무아지경의 종문, 탑 아래 앉아 가야금을 뜯고 있다.
종문을 바라보고 있는 미단 공주)
씬 67. 노공 창고 안. (실내)
(계속 안쪽으로 파고드는 시야.
곳곳에 늘어서 있는 가야금)
씬 68. 철로 건널목. (실외)
(달리는 열차. 열차 반대쪽에 선 미단)
씬 69. 노공 창고 가는 길 1. (실외)
(주위 사방을 살피며 독특한 이미지의 길을 달리는 수현)
씬 70. 노공 창고. (실내)
(가야금 뜯고 있는 종문. 연못에서 입은 고전 복장 그대로다)
씬 71. 노공 창고 앞. (실외)
(창고 같은 허름한 집을 향해 달려오는 시야)
씬 72. 철로 건널목. (실외)
(와이프 되듯 열차 지나가면 정면 향해 서 있는 미단)
씬 73. 노공 창고 안 앞. (실내외)
(열리는 문. 그 앞에 서 있는 수현. 등을 보이고 가야금 치던 종문, 연주를 멈추고 돌아본다)
씬 74. 종문 귀양지 바닷가 (저녁) (실외)
(초췌한 몰골의 미단, 간신히 버티고 서서 종문 바라보고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미단의 머리칼)
씬 75. 노공 창고 안. (실내)
(빨려들 듯 걸어오며 손 내미는 수현.
산발적으로 늘어서 있는 <어느 정도 일직선>
노공. 종문. 미단. 황 장군.
수현의 시야, 마지막 황 장군의 얼 굴속으로 파고든다)
씬 76. 선영 오피스텔. (실내)
(획! 고개 돌려 눈을 뜨며 잠에서 깨는 수현.
꿈이 너무 생생했는지 한동안 넋을 놓고 두 눈을 끔벅인다.
그 옆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선영)
선영: (잠꼬대) 죽은 놈이 어떻게 살아나. 뭔가 잘못됐어. 그딴 속임수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사람 잘못 봤어. 잘못 봤어.
(엎치락 뒷치락.
일어나 앉아 꿈 생각에 빠져 있는 수현.
선영, 휙 돌아서 수현위에 다리 걸친다.
수현, 점점 깊은 혼 돈속에 빠진다)
씬 77. 수현 작업실 복도. (실내)
(다음날.
쾅! 작업실 문 닫는 수현.
괜한 두려움에 쫓기는 사람처럼 좌우 살피며 키 꺼낸다.
작업실 문 윗쪽 자물쇠를 잠그로 키 뭉치에서 아래쪽 키를 찾는 수현. 여전히 주변 의식하는 수현의 불안감. 누군가의 시선 하나가 수현에게 다가간다. 철컥! 아래키 꼽고 잠그는 손. 복도 쪽으로 돌아서는 수현. 이때 불쑥 그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옆집 할머니.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는 수현.
할머니: (표정 없이 소포들이 대며) 소포 왔어.
수현: (너무 놀란 자신이 겸연쩍다. 휴- 안도)
할머니: 아침에 왔어. 외박했나봐.
수현: (받아들며) 일이. 좀 있어서요.
(어물쩍 받아 들고 본다)
씬 78. 병원 회의실. (실내)
(탁자 위 TV 모니터.
환자 영철의 동생, 두 눈 부라리며 인터뷰)
동생: 멀쩡한 사람 죽었다고 해서 형님 생전에 말씀대로 안구 기증했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구요! 모든 게 그 돌팔이 여의사 때문이예요!
기자: 가족 측에선 직접 사망유무를 확인해 보지 않았나요?
동생: 아! 의사가 죽었다는데! 뭘 확인합니까?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기예요? 우리 형님 봉사됐어요. 병원이 뭐하는 댑니까. 사람 살리러 병원 왔다가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어요!!
(동 병원 앞 기자)
기자: 이번 사건을 놓고 갖가지 언측과 이견이 떠도는 가운데 분명한 것은 죽은 사람은 되살아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병원장, TV를 끄고는 팽개치듯 리모컨을 내던진다. 선영, 진명, 동료 의사들 숨죽이고 앉아 있다)
원장: 병원 문 닫을 일만 남았군.
선영: (모멸감에 파르르 떨고 있다)
원장: 얘기들 좀 해봐요.
(서로 눈치만 본다)
원장: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진명, 히끗 선영 보고는)
진명: 주위 분위기에 휩쓸려서 감정적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좀 더 철저한 조사를 해서.
원장: (시비조) 조사? 김 선생 뭘 알고 싶어? 알고 싶은 게 뭔가.
진명: 단정할 순 없지만 가끔씩 의학적으로 풀 수 없는 불가사이한 일들이 종종 생기니까요.
원장: (돌변해 핏대 세우며) 김 선생 지금 제 정신이야! 죽었다가 예수처럼 부활했단 얘기야? (벌떡 일어나 진명쪽으로 오며) 여긴 병원이야! 병원! 우리가 사이비 교주 추종하는 광신도들인가? 여긴 파러필드 마술 공연장이 아니란 말이야! 어떻게 의사 까운을 입은 당신이 그런 얘길 할 수 있어!
선영: (단호한) 그 사람 분명 죽었었어요.
원장: 지금 살아 있잖아!
선영: 그걸 부인하고 있는 게 아녜요. 난 그 사람의 사망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원장: 오! 사망 진단에 이상이 없었다. 난 아무 잘못도 없다! 이 얘기야!
선영: 안구 이식 팀들도 사망 사실을 확인 했어요!
원장: 그렇게 떠넘기면 좀 낫나?
선영: 전 제 소임을 다했고
원장: (말 가로채) 뻔뻔스럽게 그 소리가 나와! (쾅쾅 탁자 치며) 병원 꼬라지 이 지경된 게 누구 때문인데!
선영: (선영 벌떡 일어서며) 사람 그딴 식으로 매도하지 말아요!
원장: (동시에 일어서) 매도당하고 있는 건 나야!!
선영: 절 더러 뭘 어떡하란 거예요!!
원장: (얼굴쪽 대고 손가락질) 당장 여기서 나가!! (조용히 손 끝질) 당장.
선영: (경멸스레 본다)
(또렷이 원장 노려보며 가운 벗는 선영. 보란 듯이 탁자위에 팽개치고 나간다)
씬 79. 동 병원 복도. (실내)
(모멸감 참고 걸어오는 선영. 진명, 인되어 나란히 붙어서며)
진명: 얘기 좀 해,
선영: 가서 전해요. 오늘 진 빚 꼭 갚겠다고.
진명: .
(저만치 앞서간다. 선영 성격을 잘 아느 터라 진명, 더 이상 뒤 지 않고 본다. 선영, 분을 못 참고 입식 쓰레기통을 걷어찬다. 와당탕! 요란하게 구르는 쓰레기통)
씬 80. 수철 이벤트 사무실. (실내)
(컴퓨터 앞의 수철.
그 뒤 수현, 어수선 서성대며)
수현: 물론 믿기지 않겠지. 나 역시 귀신에 홀린 기분이야. 하지만 사실이야.
수철: (작업하며) 죽인다. 이번 작품 테마는 귀신으로 해.
수현: (답답한) 악령의 흑암에서 깨어난 친구가 날 죽이려 하고 있어. 이건 사실이야. 농담이 아니란 말이야!
수철: 바로 그거야. 이번엔 너의 작품 스타일을 깰 필요가 있어.
수현: (컴퓨터 모니터를 막아서며) 나도 처음엔 환청이나 순간적인 착시 현상 정도로 생각 했었어. 하지만 이건! (한숨, 답답)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듣고! 얘기까지 했어! 물론 이런 얘길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지겹도록 한심하고 기막혀. 하지만 모든 게 사실이야!
(수철 일어서더니 수현 어깨 끼고 심각하게 걸어나간다)
수철: 나 지금, 바쁘거든. 너 하고 노닥거릴 시간이 별로 없어.
수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손짓. 몸짓)
수철: 전시회 날짜가 얼마 안 남았어. 작품 긁어야지.
수현: 작품? 나 보고 지금 작품 하라고?
수철: 아, 아 힘든 거 알아. 하지만 이번엔 나도 좀 벌어야지. 너 내 소원 알잖니. 저승 갈 때 노잣돈 무거워 디스크 걸리는 거.
수현: (답답해 미칠 지경)
수철: 물론 신끼가 내렸을 수도 있어. 내림굿을 하더라도 전시회는 끝내고 하자고. 내가 아주 섹시한 처녀 무당을 알고 있으니까. 소개 해주면 되지 않겠니?
수현: (포기).
씬 81. 동 건물 엘리베이터 안 (유리로 되어 밖이 보이는).(실내)
(등을 보이고 서 있는 수현.
답답함에 한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반복해서 친다. 멍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본다)
(인터컷 - 건널목, 달리는 열차)
(인터컷 - 가야금 치던 종문, 멈추고 돌아본다)
(인터컷 - 와이프 되듯 열차 지나면 정면 보고 서 있는 미단)
(인터컷 - 노공 혼자 창 밖 보고 있다)
(멍. 얼굴 만지는 수현)
씬 82. 거리.(실외)
(화면 앞을 스치듯 달리는 000번 버스)
씬 83. 달리는 동 버스 안 (한산). (실내)
(펼쳐진 소포 상자. 그 속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정하게 벤치에 앉아 있는 점토 or 목각인형. 그 위로 카드 내용)
선영: (소리) 훗날 난 예쁜 할머니가 될 거야. 그때 내 곁에 누가 같이 있어 줄지는 몰라도. 히. 죽음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외롭고 차가운 땅 밑도 견딜 만 할꺼야.
씬 84. 한강 (유람선 위) (해저문후 여름 초저녁-E) (실외)
(갑판 위에 혼자 나와 캔 맥주를 들이켜고 있는 선영)
병원 일로 착잡하다.
강바람. 흩날리는 머리칼 사이 눈언저리가 빨갛다. 계속되는)
선영: (소리) 우리 올해 칠 년째야. 이제 삐걱대는 소파 싫어. 이상한 고물 침대두. 우리 둘만의 침댈 갖고 싶어. 결혼 얘기만 나왔어도 징그러웠는데 나도 이제 나이 들었나봐. 진심으로 생일 축하해.
씬 85. 버스 정류장 (E)(실외)
(멈춰서는 123번 버스. 문이 열리지만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다. 흥분된 얼굴로 내리는 수현. 수현 앞쪽으로 꿈에 본 열차가 지나고 있다. 넋 놓고 바라보는 수현)
씬 86. 노공 창고 가는 길 1 (씬 69와 동일 장소) (E) (실외)
(현기증을 느끼며 거의 뛰듯 걸어가는 수현)
씬 87. 노공 창고 앞 (씬 71과 같은 장소) (E) (실외)
(성큼 성큼 다가오던 수현, 멈춰 선다. 담장위에 고양이까지 꿈속 그대로이다. 수현, 창고 문 쪽으로 다가간다. 문 앞에 멈춰선 수현, 실제인지 꿈인지 손을 들어 문을 만져 본다. 문 촉감이 느껴지는 수현. 갖가지 혼미한 생각에 도리질한다. 수현, 긴장한 채 천천히 문을 떠민다)
씬 88. 노공 창고 안 (E) (실내)
(노을이 스며들며 열리는 문
한걸음 한걸음 흥분과 떨림으로 들어서는 수현.
높다란 천정과 곳곳에 즐비하게 늘어선 가야금 재료 목재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수현, 숨을 죽이고 내부를 따라 들어간다.
천정을 찌를 듯 세워진 나무들.
갖가지 공구들.
다소 을씨년스럽고 음산한 분위기.
들어가다 멈칫 한곳에 멈춰서는 수현.
꿈속에서 본 붉은색 베옷의 노공이 등을 보인 채 끌질을 하고 있다. 순간 수현 숨이 막혀 터질 것만 같다)
노공: (끌질)
수현: (off). 어젯밤 꿈속에 어르신을 뵙습니다.
(끌질 멈추는 노공, 천천히 허리를 편다)
노공: (세명 대쪽으로 가는 노공) 자네가 갖고 있는 그 침대는 내 고조부께서 만든 것이네. 악령의 저주로 쓰러진 은행나무로. 오래전 일이지.
수현: (당혹) 제가 그 침대를 갖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아시죠?
노공: (손 닦으며) 미단이 날 찾아 왔었어. 자넨 영혼을 볼 수 없잖은가.
수현: ……. !
노공: (다기장 쪽으로 오며) 얼마 전 미단이 자네 앞에 모습을 보인 것도 다른 이의 몸을 빌어서지. 산자의 심장에서 기를 빼내 일시 환생 하는 거지.
(당혹감과 경스외러움으로 듣는 수현)
노공: (off) 하지만 이젠 안 돼. 죽어가고 있어. 서서히
수현: 죽다뇨?
(노공, 찻잔에 잎을 띄우고 물을 붓는다)
노공: 선악의 신은 미단과 황 장군에게 사랑과 증오의 이름으로 영생을 주었네. 사랑과 증오의 완성을 위해. (물 부으며) 내조 부께서 침대에 새긴 남녀의 흉상 역시 이별한 미단과 종문의 사랑을 다시 맺어주기 위한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어.
수현: …….
노공: (찻잔 들고 오며) 며칠 전 그녀는 황 장군으로부터 자넬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였어. (수현에게 잔 건네주며) 그 죄로 지금까지 그녈 지켜온 사랑의 화신이 그녈 떠나고 말았어. (수현 지나쳐 멈춰서며) 다시는 자네 앞에 모습을 나타낼 수 없을 걸세.
수현: (돌아서며) 대체, 무슨 얘길 하는지 모르겠군요.
노공: 물론 믿기지 않겠지.
(작업대 위 가야금. 노공, 가야금위에 한 손 얹는다. 뚜둥! 가야금 뜯는 손. 예사롭지 않은 손놀림.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아름다운 선율. 미단의 모습과 함께 환청처럼 들리던 바로 그 가락이다. 수현, 자못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노공, 연주를 멈추고는)
노공: 자네가 즐겨 쳤던 곳이네.
수현: .!
노공: 가만히. 가만히 귀를 기울여봐. 들리지 않는가. 기나긴 역사 속에 묻혀버린 자네의 연주 소리가.
(흘린 듯 노공을 바라보며 듣는 수현. 들릴락 말락 아련히 울리는 가야금 소리. 그 위로 노공의 off)
노공: 미단 공주가 자넬 부르고 있어. 보이는가. 자넬 오라 손짓하고 있어. 어서 종문의 가락 속으로 들어가 미단을 맞이하게.
(인터컷 - 종문의 연주에 취해 있는 미단. 새벽 여명. 안개.
바람이 어우러져 있다)
노공: 어서!
(고조되는 음악.
카메라, 급류처럼 수현의 얼굴 지나서 빈 공간으로 파고든다)
씬 89. 궁내 연못 (새벽) (실외)
(물안개 자욱한 새벽 연못.
무아지경의 종문, 탑 아래 앉아 등을 보인 채 가야금을 뜯고 있다. 지켜 보고 있는 미단 공주. 종문, 전혀 모른 채 연주에 열중해 있다)
노공: (off) 자넨 궁중 악사 였네.
(가야금 뜯는 종문의 능숙한 손놀림)
노공: (off)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천상의 소리였어. (주룩! 한줄기 땀. 코끝으로 뚝뚝 흐른다)
노공: (off) 하늘의 소리.
(물 흐르듯 흐르는 물안개. 바람에 종문의 옷고름이 흩날린다.
종문, 어느 순간 뚝! 연주를 멈춘다. 턱 끝으로 흘러내리는 땀.
종문의 머리에 김이 솟는다. 가야금에 얹어진 손위로 들어오는 미단 공주의 손. 종문, 멈칫 올려다본다. 신기한 눈으로 종문의 손을 어루만지는 미단. 공주 알아본 종문, 얼른 무릎꿇고 상체 숙이며 예를 갖춘다. 하지만 넋이 빠진 공주미단, 종문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본다. 종문 손을 자신의 볼에 갖다 대는 미단 공주.
지그시 눈을 감는다. 당혹감에 어쩔 줄 모르는 종문.
물안개, 한차례 그들을 스치고 지난다)
씬 90. 미단 처소 앞. (실외)
(아름다운 음률. 밤의 운치를 더한다. 미단, 종문을 청해 그의 연주를 듣고 있다. 쳐진 발 너머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 간간이 풀벌레 소리. 턱 괴고 듣고 있는 미단, 종문에게 매료된 듯. 종문, 몸둘 바 모르고 다른 곳 보고 친다)
씬 91. 처소 안. (실내)
(미단에게 가야금을 가르치는 종문, 한음을 튕긴다. 따라 치는 미단, 서툰 동작이지만 열심이다. 다른 음을 쳐주는 종문. 미단, 다른 음을 따라 친다. 그 다음 음을 치는 종문.
뚜둥! 미단의 실수음.
겸연쩍어 얼굴 가리며 웃는 미단의 얼굴.
처소 밖. 휙! 매서운 속도로 접근하는 화살시야.
빠르게 문 쪽으로 접근하다.
문 박살나며 들어오는 화살, 종문의 가야금에 꼽힌다.
움찔 놀라 화살과 문 쪽을 번갈아 보는 종문.
미단 역시 놀라 돌아본다)
씬 92. 사냥터. (실외)
(달리는 말발굽.
왕과 황 장군(R)이 멧돼지를 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무관 그룹. 왕과의 동행 알리는 깃발이 하늘을 찌른다. 긴박한 쫓고 쫓김. 등에 묶은 활통에서 화살 뽑는 황 장군. 매서운 눈으로 활시위를 당긴다. 휙! 활 맞고 쓰러져 뒹구는 멧돼지)
씬 93. 궁터 한곳 (야외 연회장) (오후) (실외)
(왕과 미단 공주, 황 장군이 동석한 야회 연회. 궁중 악사와 장고 춤 무의들이 분위기를 돋구고 있고 왕이 황 장군에게 술을 따른다. 무릎 꿇고 받는 황 장군.
주위 몇몇 대신들도 웬만큼 술이 올랐고 통째로 굽힌 멧돼지 옆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궁중 요리사들. 부관에게 귓속말로얘기 하는 황 장군. 원그리며 춤추는 무희들. 연주와 춤 중지를 명하는 표시로 손을 드는 왕. 위엄 있게 소리치는 부관)
부관: 중지 -!
(무희들 동작 멈추고 예를 갖춰 퇴장한다. 어느새 종문 옆에 와 서있는 군졸 하나, 좌우 손짓을 하자 종문 제외한 악사들 퇴장한다. 당혹스런 종문 머리위로 술항아리 올려놓는 군졸. 창들고 황 장군에게 달려가는 군졸, 무릎 꿇고 창을 바친다. 받아드는 황 장군. 낄낄대던 좌중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다. 보다 놀란 미단 공주, 달려와 말리려 하나 왕이 손을 들어 막는다)
미단: (도리질) 안돼요.
왕: 황 장군은 이 나라 최고의 무관이다.
미단: 모두 취했어요.
왕: 물러 있거라.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는 미단.
둥! 둥! 둥! 대북의 울림이 퍼지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창을 쥔 채 쭉 뻗어 종문 주시하는 황 장군. 부릅, 황 장군 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종문. 가슴 졸이는 미단, 종문과 황 장군을 번갈아 본다. 미단 쪽을 의식하는 황 장군, 빙그르 창을 돌리며 겨눈다. 마른침을 삼키는 종문. 숨 막힐 듯 울리는 북소리. 종문을 보던 미단, 다급한 심정에 황 장군을 본다. 황 장군, 달려와 창을 던진다. 휙!!
바람을 가르며 나르는 창. 화살시야, 종문의 몸 중앙을 향해 날아간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입을 막는 미단. 창이 가슴에 닿기 직전 어느새 가야금을 세워 몸을 가리는 종문. 떨어져 박살나는 술항아리. 실망한 듯 웅성대는 좌중. 모멸감에 부르르치를 떠는 황 장군, 단박에 부하를 칼을 빼들고 종문 향해 달려간다.
가야금 밀어내고 의연하게 앉아있는 종문. 단숨에 달려온 황 장군, 두 팔로 칼을 치켜들어 종문의 목을 내려친다. 순간 종문 앞을 가로막는 사람, 노악사(노공)다. 피를 토하며 거꾸러지는 노악사. 더욱 분노한 황 장군, 다시 한번 칼 치켜 드는데 미단이 그 앞을 막아 선다. 황 장군, 칼을 쥔채 부르르. 노려보는 미단. 어쩔 수 없이 칼을 거두고 예를 갖추는 황 장군, 무릎을 꿇는다. 황 장군, 공주가 사라지자 종문을 노려본다)
씬 94. 악사 숙소 뒤뜰 (장대비) (새벽)
(악사 뒤뜰로 가는 길.
장대비가 퍼붓는 쏟아지고 있다.
부감. 예쁜 우산 하나가 오고 있다. 빨랫줄에 빨래를 걷고 있던 종문, 인기척에 한곳을 보면 미단이 우산을 바쳐들고 서 있다.
너무 뜻밖에 깜짝 놀라는 종문. 미단, 다가와 옷보자기를 건내 준다. 엉겁결에 받아든 종문, 옷보자기와 미단을 번갈아 본다. 천천히 다가오는 미단, 종문의 볼에 입 맞추고 뒷걸음질. 종문 얼 떨떨. 미묘하고 벅찬 감정에 휩싸인다. 미단, 왔던 길로 되돌아가고 종문은 넋 잃고 바라본다)
노공: (off) 그 당시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
공주와 궁중 악사와의 사랑.
씬 95. 성문 (아침)
(성문 밖으로 달려 나오는 군마.
등에 가야금 둘러맨 종문이 고삐 잡아채고 그 뒤 남장한 미단이 종문의 허리를 잡고 있다. 급류처럼 성문을 빠져나가는 군마)
씬 96. 울창한 산림 아래
(나무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햇살과 안개.
울창한 나무 사이를 손잡고 신나게 달리는 미단. 종문)
씬 97. 들판.
(말이 끄는 썰매. 가죽 안장을 펴서 고삐와 연결해 만든 썰매다.
들판 능선 따라 튕겨져 올랐다 내렸다 하는 썰매위의 미단. 종문. 치달려 내려오는 말의 부감)
씬 98. 폭포 계곡. and (저녁)
(거대한 물기둥이 The아지는 폭포 아래. 바위에 앉아 가야금 배우는 미단)
죽창 든 종문, 미단.
물속 들여다보며 조심조심. 살금살금.
물속 물고기들이 유연하게 지난다. 종문, 물속으로 죽창을 찌르자 연이어 미단도 찌른다. 부감. 사방팔방 마구 찔러 대는 미단과 종문. 제각기 빙글빙글 돌다 머리 부딪힌다.
<저녁> 모닥불(꼬챙이)에 굽히고 있는 물고기
얼굴에 숯검정을 묻히고 고기 먹는 미단.
즐거운 듯 씨익 미소.
씨익 따라 웃는 종문의 얼굴에도 숯검정이 시커 다 물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미단과 종문.
미단, 종문 볼에 남아있는 숯검정을 닦아준다)
씬 99. 성문 (저녁 - 황혼)
(황혼. 성을 향해 달리는 미단과 종문의 군마. 노을 속으로)
씬 100. 미단 처소 앞.
(처소 뒷문 담장. 미단. 종문 막 헤어지려 하고 있다. 문 바깥쪽에 서 있는 종문)
종문: 잘 자요.
미단: (아쉬움에 바라본다).
(종문, 돌아서 간다.
멀어지는 종문을 바라보는 미단.
가슴이 저민다.
미단의 슬픈 표정. 그 표정이 서서히 바뀌면 인되어 나타나 다가가는 종문. 끌어안고 입맞춤. 간절하고 감미로운.)
씬 101. 미단 처소 안.
(스며드는 달빛. 옷고름을 매는 종문의 눈에 눈물이 맺혀 흐른다.
종문 등에 얼굴 기대는 미단)
미단: 그 어떤 것도 우릴 갈라놓지 못해요. 그대 곁에 언제나 내가 있을 꺼 에요. 영원히.
(종문, 더욱 가슴이 저민다. 뭔가 얘기하고 싶지만 입속에서 맴돌 뿐 눈물만 자꾸 솟구친다. 이때, 쾅!! 떨어질 듯 요란하게열리는 문. 황 장군이 파르르 떨며 노려보고 있다. 그 너머로 보이는 횃불 든 군졸들)
씬 102. 무관청 마당 (아침 - 해뜨기전 푸른 색조)
(머리채가 잡혀 질질 끌려 나오는 종문. 팔다리에 채워진 쇠고랑.
온몸이 찢기고 터져 처참한 몰골이다. 종문, 황 장군 발아래 내팽게 쳐진다.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황 장군)
씬 103. 왕 집무실 (왕의 처소) (아침)
(왕 뒤에 무릎 꿇고 있는 미단)
미단: (결연한) 그 사람 죽으면 저도 죽습니다.
씬 104. 무관청 마당 (아침)
(무릎 꿇고 앉아있는 종문의 처참함.
그 앞에 내리 꽂히는 대검. 황 장군,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온몸을 떤다)
씬 105. 바닷가 귀양지 (절벽 위 or 절벽 아래 바다) (저녁)
(수평선. 억센 파도. 바위틈에 쓰러져가는 움막 하나.
남루한 몰골의 종문, 미단을 그리워하며 멀리 바다 바라보고 있다.
노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 종문)
씬 106. 궁내 연못 (새벽)
(종문이 연주하던 곳에 앉아 가야금 뜯고 있는 미단.
글썽 눈물이 맺혀 있다)
(몽타주 - 나무 사이 달리는 종문과 미단.
종문이 물속에 죽창 찌르자 따라 찌르는 미단.
물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종문과 미단, 미단 숯검정 닦아준다.
미단 처소 앞. 입마추는 둘.
들판에서 안장 썰매 타는 종문과 미단.
악사 뒤뜰에서 옷보자기 건네고 종문 볼에 입 맞추는 미단)
(가야금 뜯는 미단의 처절한 고독. 뚝뚝 눈물 흘린다)
씬 107. 바닷가 귀양지 (시간 경과).
(강풍. 눈보라. 움막이 벗겨져 날아갈 것 같다. 움막속의 종문, 미단이 준 옷 보자기를 펼친다. 쾡한 눈, 움푹팬 주름. 산발된 머리. 산 자의 모습으로 보기 힘들다. 움막을 덮칠 듯 솟구치는 파도. 종문, 저고리를 부둥켜안고 꼼짝도 않는다)
씬 108. 미단 처소 앞.
(함박눈, 불상처럼 정좌하고 있는 황 장군.
머리 위엔 눈이 한 뼘은 쌓였다.
미음을 끓여온 미단 몸종도 마냥 기다리고 있다)
몸종: 마마. 공주 마마.
씬 109. 동 처소 안.
(처소 안. 미단 역시 예전 모습이 아니다. 끔찍할 정도로 창백하고 말라있다. 밖의 동요에도 묵묵부답. 단지 그녀를 감싸고 있는 건 처참한 고독과 그리움뿐. 비단 누비옷과 버선을 신고 있다. 어딘가 가려는 듯)
씬 110. 바닷가 귀양지 (저녁)
(움막. 무릎 꿇고 단아하게 앉아 있는 종문. 숯으로 쓴 편지를 접어 돌 밑에 감춘다)
종문: (편지 off) 영원히, 당신을 사랑함에 죽음을 선택하네. 내 죽어 그대 그림자가 되리니 다시는, 다시는 이별하지 않으리.
(치솟는 파도. 칼집에서 칼뽑는 손. 종문의 칼 쥔 손이 가늘게 떨린다. 강풍. 눈을 감는다. 그의 잠상 속에 떠오르는 미단의 모습.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스륵 눈을 뜨는 종문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거짓말처럼 미단이 움막 앞에 서 있다. 분명 허상일 테다. 미단 모습에 괴로워하며 고개드는 종문. 눈을 감았다 다시 떠보지만 분명 미단이다.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미단, 사람 형색이 아니다.
믿기지 않는 듯 두 눈 의심하는 종문, 입을 다물지 못한다. 종문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는 미단. 달려가 붙들지 않으면 금방 바람에 날려가 버릴 것만 같다. 종문, 주춤 일어나 미단에게 다가간다.
감격과 감회의 눈물을 흘리는 미단, 걸음이 빨라진다. 격한 감정을 짓누륵 달리는 종문. 미단도 종문을 향해 뛴다. 비틀, 하지만 안간힘 다해 달린다. 기적 같은 재회의 순간. 어디선가 달려오는 말발굽 번쩍 칼날이 허공으로 치솟더니 단칼에 종문의 목을 베어 버린다. 짧은 외마디 비명.
실로 순식간의 일이다. 멈칫! 얼음처럼 얼어붙은 미단. 모래 위, 풀썩 쓰러지는 (무너지는) 종문. 황 장군, 말고삐를 잡아 채 돌려 선다. 순간 정적. 숨소리 마셔 멎은 듯하다.
밀려드는 파도. 떨어진 종문의 목이 파도에 쓸려 들어간다.
미단, 실성한 사람 마냥 허우적대며 머리를 찾아 들어간다.
삼킬 듯 치솟는 파도. 간신히 종문의 머리를 찾은 미단. 한동안 그것을 품속에 부둥켜안고 멍하니 서 있다.
모래사장 위에 꼽히는 장검. 무릎 꿇고 앉아있는 황 장군.
그 옆에 장검이 꼽혀져 있다)
황 장군: 정녕 나의 마음을 거둬 줄 수 없다면 그대 손에 죽겠나이다.
(차갑게 굳은 얼굴로 한곳을 보고 있는 미단. 미단, 황 장군에게 다가가 멈춘다. 휙! 미단에 의해 뽑히는 칼. 번쩍 하늘로 치켜진다. 멈칫 고개 드는 황 장군)
황 장군: !
(미단, 칼을 내리친다. 그 칼로 자신의 배를 가른다. 두둑, 미단의 등을 뚫고 나오는 칼날)
미단: 헉!
(황 장군,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비틀대는 미단의 발로 쏟아지듯 흐르는 피.)
자신의 배에서 칼을 뽑아 휘청대며 종문의 시신으로 향한다.
종문 앞에 풀썩 무릎 꿇는다. 세찬 바람에 모래알이 먼지처럼 날리고, 일그러지는 황 장군.
요지부동.
고개 떨군채 앉아있는 황 장군. 종문의 시신 옆에서 숨이 끊어진 미단. 세찬 모래 바람.
벗겨진 미단의 갓신. 강풍에 밀려온 모래알이 덮어버린다. 시신들도 모래에 덮이고 황 장군도 앉은 그대로 모래에 뒤덮여 있다. 하늘엔 초저녁 보름달이 월식으로 기울고 있다. 그 위로 노공의 소리)
노공: (off) 황 장군도 그들을 따라갔어. 저 세상에서의 사랑마저 용납할 수 없었던 게지.
씬 111. 들판 (은행나루 두 그루 서 있던) 돌 제단.
(땅속에 박힌 낡은 안내판을 들춰내 뽑는 수현. 흙먼지를 털어내고 본다. 칠이 벗겨져 글씨가 다소 분명치 않다. 들판을 휘감는 강풍.
"문화제 0호. 수종 은행나무. 고려 중엽 추정 . 암수 두 그루. 수현, 잘 보이지 않자 아예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옷소매로 닦아내며 유심히 읽어 내려간다.)
안내판 -< . 그 중 한 그루 잘려나간 뒤로. 갖은 천재지변. 남은 한 그루위해 해마다 목신제. >
그 아래 하단 부는 거의 읽을 수 없는 상태다. 안내판 내용 보고 멍해진 수현. 그 위로)
노공: (off) 평화롭고 아름다운 들판. 신의 축복 속에 두 사람은 은행나무로 탄생했어.
씬 112. 노공 창고 안 (저녁)
노공: 영원한 사랑의 이름으로.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 그들은 언제나 함께 있었지.
(삽입컷 - 들판위의 두 그루 은행나무. 그 위로)
노공: (off) 하늘의 찬양과 땅의 축복이 있을 뿐 헤어짐의 고통도 기다림의 아픔 따윈 없었어.
(삽입컷 - 바람에 흩날리는 은행나무 잎)
노공: (off) 땅속 깊숙이 서로 뿌리를 맞대고
(삽입컷 - 두 그루 은행나무 주위로 흩날리는 은행잎)
노공: (off)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리라 다짐했지.
(노공, 고개 들어 허공 보며)
노공: 하지만 우주는 두 개의 얼굴로 돌고 도는 법. 사랑은 질투를, 행복은 시기를 부르게 마련이지.
(삽입컷 - 화면 향해 돌진해 오는 매)
노공: (off) 매로 환생한 황 장군의 저주가 다시 그들을 갈랐어.
(삽입컷 - 번쩍! 내리치는 번개. 쓰러지는 은행나무)
씬 113. 들판 돌 제단
(꿈을 꾼 듯 넋 빠져 있는 수현. 한손엔 지팡이를 다른 한손엔 음식. 술 들고 쾡한 눈으로 오는 노파. 약간 실성한 듯 묘한 느낌이다.
돌 제단, 녹아내린 아름다리 촛농. 제단위에 오른 약간의 음식과 잔. 제단 이쪽 저쪽에 술 뿌리는 노파)
수현: 두 그루 중 한그루가 잘려져 나갔다는데 남은 한그루는 어디 있죠?
노파: 뒤 따라 갔지.
수현: 뒤따라. 가다뇨?
노파: (무너진 돌들을 집어 쌓으며) 외로워 지쳐 죽었어. 기다리다 기다리다 결국은 말라 죽었지. 오늘은 삼십이 년째 되는 날이여.
수현: .
노파: 난 밤마다 혼자 남은 은행나무의 울음소릴 들었어.
내 귀엔 지금도 그 울음소리가 들려.
누군가 그 한을 풀어줘야 돼.
(수현 옆을 지나며) 훗날 그 영혼들이 다시 만나면 이 들판도
예전처럼 다시 살아날 꺼야.
꽃도 피고 새도 울고.
(능선 따라 멀어지는 노파)
꽃도 피고 새도 울고.
씬 114. 실명된 환자 영철의 집.
(달동네 좁은 마루. 두 눈 안대로 가린 영철의 얼굴. 지붕 그림자로 얼굴 절반이 어둡다)
영철: (지난 순간 생각하며) 아름다운 여자였어요. 옛날 옷차림을 한 긴 머리 여자. 전류처럼 내 몸속으로 밀려 들어왔죠.
선영: (호기심 가득한).
영철: 온몸에 세포 하나하나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어요. (선영 얼굴 위 off) 잠시 후 그녀가 내 몸을 떠난 뒤 난 내가 죽었다는 걸 알았죠.
선영: 스스로 죽었다는 걸 어떻게 알죠?
영철: 죽으면 알게 돼요. 죽음이 어떤 건지. 말로는 표현이 안돼요.
선영: 꿈일 수도 있잖아요.
영철: 꿈은 산 사람이 꾸는 거죠.
선영: .
영철: 얼마 전에 기자가 찾아 왔길래 얘기 했더니 미친 사람 취급하더군요.
(안대 뜯어내고 선영을 바라보는 영철)
영철: 난 지금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하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아요.
(혼란스런 선영 위로)
영철: (off) 내 맘속에 더 큰 눈이 생겼으니까.
씬 115. 수현 작업실 안.
(한 걸음, 한 걸음. 침대 향해 다가오는 수현. 어지럽고 답답한 심경이다)
노파: (소리) 기다리다, 기다리다 결국은 말라 죽었어.
(인터컷 - 노파: 엊그제가 꼭 삼십이 년째 되는 날여)
노공: (소리) 자네가 갖고 있는 그 침대는 내 고조부께서 만든 것이네.
(인터컷 - 노공: 악령의 저주로 쓰러진 은행나무로)
(침대로 다가가는 수현의 시야. 기묘하고 벅찬 감정)
또 한편으론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 풀썩 침대 중간에 무릎 꿇고 앉는 수현. 깊숙이 숨을 한번 들이키고는 힘겹게 말문을 연다)
수현: 이럴 땐.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돼. 너의 말대로 황 장군을 피해 도망이라도 가야 돼? 뭐라 얘기 좀 해봐. (도리질) 난 도무지 뭔가 뭔지 모르겠어.
(수현, 벌떡 일어나 침대 주위를 따라 돌며)
수현: 넌 지금 어디 있어? 이 침대 속에? 저 작업대 위에? 어디 있어?
(수현 바로 뒤에 서 있는 미단, 자신의 모습 보여줄 수 없는 스스로가 안타깝기만 하다)
수현: 너의 모습을 보여봐. (미단 앞을 지나는 수현, 멈춰서며) 넌 내가 보여? 날 느껴?
(괴로움에 글썽 눈물 맺혀 수현 보는 미단)
수현: 난 정말 이러다 미쳐 버릴지도 몰라. 널 다시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못할 거 같아. (침대에 풀썩 걸터앉으며) 어떻게 하면 널 만날 수 있는 거니? 어떻게 하면. (괴로움에 글썽)
(수현 앞에 무릎 꿇고 앉는 미단.
눈물 맺혀 떨리는 두 손으로 수현의 얼굴을 감싼다.
물론 만져지지 않고 헛손질.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눈물 흘리는 미단.
이때 한차례 음산한 바람.
미단, 어떤 느낌에 휙 돌아본다.
흩날리는 커튼.
어느새 나타나 창 앞에 서 있는 R)
R: 이게 얼마 만 인가.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였어.
(하얗게 질려 자리에서 일어나는 미단.
R이 시야, 미단을 향해 다가간다)
R: (off). 만지고 싶겠지. 몸이 부셔져라 끌어안고 (미단 주위를 맴돌며) 그의 체취를 느끼고 싶겠지.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밤 세워 얘기하고 싶겠지. 하지만 끝났어. 넌 이제 이 궁중악사를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됐어. 운명의 신이 날 선택한 게지.
(R, 멈춰 서 수현을 돌아본다.
아무것도 모른 채 머리 짓누르고 있는 수현.
몸을 돌려 미단 지나 수현 쪽으로 다가오며)
R: 가엾은 친구. 너의 운명이 내 손 끝에 있어. (수현 앞에 다가와) 물론 널 살려 줄 수도 있어. 하지만 세상은 비교적 공평해. 내가 받은 만큼 너도 느껴봐야 돼. 그게 뭔지 아나?
수현: (뭔가 골똘히 생각)
(미단, 몹시 불안하다. 수현, 노공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간다)
R: (실룩) 너의 마지막 외출이 될 거야.
(R, 침대를 따라 돌며)
R: 여기. 꺼져가는 불꽃이여.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사랑의 신께 저주받은 기구한 영혼이여.
이제 내가 너를 거두리라.
(돌아서 미단 보는 R. 미단, 참담한 얼굴로 서 있다)
씬 116. 심령 연구소.
(원탁. 둘러앉은 죽음 체험자들. 선영, 심각한 얼굴로 듣고 메모하고 있다)
체 험
1: 끝없는 물 위를 걸어갔었어요.
2: 죽은 오빠가 날 데려 갔죠.
3: 눈을 떳더니 깜깜한 관속 이었어요.
4: 돌아가신 아버님이 마중 나와 있었어요.
5: 높다란 갓을 쓴 할아버지가 막 야단을 치시더라구요. 왜 벌써 왔냐구.
6: 세 개의 산봉우리. 꽃 세송이를 들고 있었어요.
7: 제 이름은 김원숙으로 바꾸라고 했어요.
난 사고 당시 죽었고 김원숙이란 여자의 영혼이 들어왔다는 거예요.
씬 117. 선영 오피스텔 안.
(선영, 닥치는 대로 책장에서 책(의학 전문서적)을 뽑아 던진다. 바닥에 찢기고 포개져 떨어지는 책들. 책들을 마구 쓸어내리는 선영.
우둑! 책 뜯는 손.
책 갈기갈기 찢어 팽개치는 선영)
씬 118. 의사협회 (계단 or 현관).
(관리인에 의해 끌려 나가는 선영)
선영: (악에 받혀) 무슨 자격으로! 무슨 권리로 날 징계해! 니들이 뭘 알아!!
씬 119. 다시 선영 오피스텔 안.
(책상위의 책들을 쓸어내리는 선영. 파일. 책들 집고 들어 팽게친다. 자신의 액자 <의사 까운 입고 찍은> 들어 던지는 선영.
와장창! 벽에 부딪혀 박살나는 액자.
선영, 인체구조 마네킹 들고 책장을 후려친다)
씬 120. 다시 의사 협회.
(바동대며 끌려 나가는 선영)
선영: 누구 맘대로 자격 정지야! 절대로 승복 못해! 절대로.
(노려보고 있는 협회간부, 몇 걸음 움직이며)
간부: (손가락질) 창피한줄 알아! (흥분해서) 멀쩡한 사람 병신 만든 주제에 어따 대고 큰소리 야!
선영: 멀쩡한 사람 병신 만들어? 멀쩡한 사람 병신 만드는 게 누군데!!
간부: (같이 날뛰며) 너 같은 돌팔이 사이비들 때문에! 의사 전체가 욕먹는 거야! 알어?!
선영: (모멸감 참으며) 사이비 돌팔이가 누군지 반드시 가려내고 말겠어.
간부: (콧방귀) 미친년.
씬 121. 노공 창고.
(수현과 마주선 노공)
노공: 조금 전 미단이 다녀갔었네.
수현: !!
노공: 돌아가는 즉시 침대를 불사르게. 그리고 거길 떠나. 아주 멀리. 미단의 부탁일세.
수현: (흥분된) 미. 미단은 지금 어딨죠?
노공: 황 장군을 따돌리고 있는 중이야. 시간이 없어. 어서 돌아가.
수현: (머뭇) 침대. 침대를 불사르면 미단은.
노공: 사람은 나면 죽고, 만나면 헤어지고. 그녀는 어차피 저세상 사람. 미단을 잊게.
수현: (도리질) 여기서 물러설 수 없어요.
노공: 모두를 위해선
수현: 지난 천년을 나 하나만을 보고 기다려온 그녀를 이렇게 보내라구요?
노공: 어쩔 수 없잖은가.
수현: (결연한) 황 장군을 만나겠어요. (걸어 나오며) 내 목숨을 원한다면 줘야죠.
씬 122. 수현 작업실 안.
(답답함과 괴로움에 성큼성큼 침대 주위를 맴도는 수현)
수현: 뭘 원해. 내 목숨? 침대? 비겁하게 숨어있지 말고 나오시지? 너의 뜻대로 날 짓뭉개고 이 침대를 가져가. 날 죽여서 미단을 가질 수 있다면 날 죽여! 어서 나와! 나와서 그 훌륭한 칼솜씨로 내 목을 찔러! 뭘 망설이나. 어서 나와서 날 찔러! 찔러!!
(어느새 들어와 멍- 보고 있는 선영.
침울하고 착잡한 심정이다. 수현, 이성 잃고 떠들다 선영을 발견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수현. 괴로움에 침대로 가 풀썩 주저앉는다.)
씬 123. 성수대교 (끊어진 부분쪽) (쾌청하지 않은 오후)
(강풍에 옷자락 흩날리며 서 있는 미단)
미단: (곤혹스런) 제발. 이대로 날 내버려둬요.
R: 지금 내 가슴은 갈갈이 찢겨 걸레가된 기분이야. 미련하게도 천년을 하루같이 한 여자만을 사랑한 남자가 있어. 그 시간도 모잘라 그의 사랑이 무참히도 짓밟히고 있어. 세상은 항상 내게 이런 식이었지. 낯선 타인처럼 등을 돌리고 언제나 비웃듯 나를 손짓해.
미 단: .
R: 하지만 이젠 아냐. 내가 그들을 심판해. 돌린 그 등이 얼마나 시리고 아픈지 (미단 향해 돌며) 기다림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 보여주겠어.
미 단: .
R: (미단 향해 걸어오면서) 날 거역하지 마. 선택은 하나. 너 이제 나를 위해 존재해.
(다가오는 R)
R: (손을 내밀며) 내게로 와. 내게로. (하늘 보며). 들리지 않나. 우리들의 사랑을 축복하는 하늘의 장엄한 합창이.
(뒷걸음질 치는 미단)
R: (계속 접근해 다가오며) 그들이 지금 우릴 오라 손짓하고 있어. (손 뻗어 올려 내밀며) 자, 내 손을 잡아. 뭘 망설이나? 이제 우리 둘만의 세계로 사는 거야. 아무도 없는 우리 둘만의 세계. (점점 거리 좁히며) 내 손을 잡아, 어서!
미단: (뒷걸음질 치며 도리질).
R: 어서, 내 손을 잡아!
(계속 뒷걸음질 치는 미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R: (off) 어서. 어서!
(미단, 뒷걸음질 하다 미끈!!
다리 밑으로 떨어지기 이롭직전.
순간! 미단의 손을 나가 채는 R.
허공을 디딜 뻔한 미단의 발이 앞쪽으로 당겨진다.
미단의 얼굴을 노려보는 R.)
미단: !
R: 더 이상 날 비참하게 만들지 마.
미단: (옅게 눈물이 베어)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그일 만나게 해줘요. 단 한번, 잠깐 만이라도 좋아요.
R: 거절한다면?
미단: 영원히 내 영혼을 가질 수 없을 거예요
R: (실룩) 협박이군.
미단: 당신은 두 번씩이나 죽음으로 우리를 갈라 놨어요. 지금 역시 그 죽음으로 우릴 갈라놓으려 하고 있어요. 그래서 당신이 얻은 게 뭐죠?
R: .
미단: 어차피 그이와 난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타인지금 만나지 못하면, 다시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꺼예요. 마지막 가는 길에 (글썽) 한번만 볼 수 있게 해줘요.
(부릅 노려보고 있는 R)
미단: 마지막 부탁이예요. 그일 만나게 해준다면, 모두. 모두 당시 뜻에 따르겠어요.
(R, 강한 질투의 심정으로 고개를 든다)
R: .!!
씬 124. 수현 작업실 안 (오후)
(창 너머로 인되는 수현)
수현: 네가 맡았던 그 환자가 죽었다 살아난 것도 미단 때문이었어.
(선영, 환다 영철의 말과 일치함에 사뭇 놀란다)
선영: 믿을 수 없어
수현: 내가 너라도 마찬가지 였을거야
난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으니까
(수현을 또렷이 보는 선영.
수현, 돌아서서 몇 걸음 다가서며)
수현: 집으로 돌아가. 넌 여기 있음 안 돼
선영: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수현: 안 돼, 여기 있음 안 돼. 어서 돌아가.
선영: 미단이라는 여자, 어떻게 생겼어?
수현: …….
선영: 네 얼굴은 온통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어 딴사람 같애. 낯설어 내가 만나온 수현이 아니라 궁중 악사 종문우로 보여.
(휙!
요란한 바람 소리.
강풍에 열리는 창문.
그 너머 수현과 선영, 놀라 돌아본다.
빠른 속도로 수현, 선영 향해 다가가는 카메라 강풍으로 커튼. 휴지 등이 공중으로 흩날린다.
우왕좌왕. 놀라 어리둥절 하는 수현과 선영
순간. 선영 향해 빠르게 접근하는 어느 시야
시야 쪽으로 돌아보는 선영
어떤 기운이 몸속으로 파고든다.
쾅!
도로 닫히는 창문
일순 정적
두리 번 살피는 수현
바람, 소요 그치고 종이들 너풀대며 떨어진다. 고요
선영, 수현 바로 뒤에서 섬뜩한 표정으로 수현을 보고 있다.)
선영: (R의 소리) 여자의 몸속이라 향기롭군.
(오싹 놀라 휙 돌아보는 수현.
다름 아닌 선영이 R의 소리를 내고 있다.
<선영의 몸속에 R이 들어갔다>
선영: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빛깔의 영혼을 갖고 있지
선영은 무슨 색깔인지 아나?
수현: (충격 받고 파르르) !
선영: 왜 질투냐?
수현: (질끈 어금니) 거기서 나와.
선영: 넌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천년을 넘게 있었어.
(수현 향해 다가가는 선영의 시야)
수현: 거긴 너의 자리가 아니었어. 어서 나와.
선영: (씨익, 접근하며) 영원히 안 나올 수도 있어
수현: .!
선영: 왜 두려워? 걱정 마.(얼굴 가까이) 여긴 내 자리가 아냐. 난 너와 달라
수현: .
선영: (수현 지나 앞으로 나오며) 오늘밤 월식이 시작되면 여기서 넌 미단을 만나게 돼.
마지막 만남이 될 거야.
(멈춰서며) 어때, 가슴 설레지 않아?
수현: .!
선영: 월식이 끝날 때까지 미단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이 친군 영원히 깨어나지 못해.
(순간 표정 멎는 수현, 휙! 돌아보며)
수현: 그게 무슨 소리야
선영: 걱정 마. 잠시 이 친구 몸을 빌리는 거 뿐이야
수현: 선영일 끌여 들여선 안 돼
선영: 내 말 명심해. 월식이 끝나기 전이야 애매한 이 친구까지 다치는 건 원치 않아
(순간 훅-!! 선영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R.
헉! 휘청하는 선영.
휘청, 가슴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는 선영.
식은땀 흘리며 헛구역질 해댄다.
당혹한 수현, 달려가 돌려 안는다)
수현: (흔들며) 정신 차려! 괜찮아?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워하는 선영)
수현: (off) 나야. 정신 차려!
선영: (비 오듯 땀) 헉헉.!
수현: (난감) 정신 차려. 날봐!
선영: (간신히) 괜찮아. 괜찮아.
(수현, 안되겠는지 들춰 안고 나간다)
씬 125. 선영 근무하던 병원 (저녁)
(빠르게 입원실의 간호 코너로 다가가는 카메라.
분주하고 바쁜 움직임)
간호원: (일지 체크하며) 차트 아직 안 올라 왔어요. 담당자가 없나봐요. 전화해도 안 받아요.
(다가가 수화기 드는 진명)
진명: 어떻게 된 거야. 연락도 없이. 계속 전화 했었어. 어디야 지금, 뭐, 뭐라고? 무슨 소리야?
씬 126. 선영 오피스텔 안(저녁)
(진명과 통화중인 선영, 옷걸이 쪽으로 가며)
선영: 오늘밤 죽음이 어떤 건지 검험하게 될 거예요. 내 환자가 왜 죽었다 살아 났는지 (옷 걸쳐 입으며) 그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모든 게 밝혀지게 될거예요. (화장대 쪽으로) 존경하는 원장 선생님께 전해요. 나의 죽음을 지켜봐 주시면 영광으로 알겠다고. (화장대 위의 백 속에 소도구 챙겨 넣으며) 여덟시까지 갈께요
(쾅! 수화기 놓고 돌아서 백 챙겨 든다)
선영: (화면 밖 수현 보며) 어서 작업실로 가.
수현: (어이없는) 말도 안 돼. 제발 진정해.
선영: (걸어 나오며) 충분히 진정하고 있어.
수현: (막아서며) 바보짓이야. 이런다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선영: (다시 걸어 나가며) 진저리치는 오명을 벗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버리라고?
수현: 오명 따위가 문제가 아냐. 잘못되면 죽어.
선영: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는 와. 괜한 가책 느낄 필요 없어. 널 위해 이러는 거 아니니까.
(수현, 다시 막아서며)
수현: 제발 고집 피지 마.
선영: 시간 없어. 어서 가.
수현: 난 안가.
선영: 가든 안 가든 나는 가.
수현: 내 말 들어!
선영: 어서 가!
수현: 안가!
선영: 이건 내 일이야!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해!
수현: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하지 않아!
선영: 내겐 중요해!
수현: 안 돼!!
선영: 이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야!!
수현: 안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선영: 왜 안 돼! 수현 씨가 뭔데!!!
(순간 휙 돌아가는 선영의 턱)
선영: (턱 돌아간 채 가만).
수현: 미안해.
선영: 나 오늘 자격 정지 먹었어. 내가 왜 이렇게 당해야 돼. (글썽)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수현: .
선영: (고개 돌아간 그대로) 수현씨. 나 어떻게 공부했는지 모르지 남들 학원가고 과외 받을 때 난 중학생 가르쳐서 그 돈으로 학교 다녔어. 아버지 뇌출혈로 쓰러져 동생들 대학 엄두도 못 낼 때 바닥바닥 우겨서 아버지 병원비로 대학 간 게 나야. (눈물 뚝) 이제 기껏 사람 구실 하는가 했는데.
(수현, 다가와 선영을 꼭 껴안는다)
수현: .
선영: (안긴 채) 나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울먹) 내가 널 얼마나 사랑 하는데. 보란 듯이 살아날 꺼야.
수현: .
선영: 어서 가. 가서 그녀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봐줘.
(찡. 저며 오는 가슴 참는 수현)
씬 127. 도시 (초)야경 (초야)
(도심 초야경.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곳곳에 물빛들이 들어오고 덩그러니 높이 뜬 보름달이 어슴프레 자취를 드러낸다)
TV: (소리) 잠시 후 아홉시 칠 분 정각에 월식이 시작됩니다. 다행이도 지금 (남산 쪽으로 Tilt up) 서울의 밤하늘은 어느때 보다 쾌청합니다. 먼저 남산으로 연결해 관측 나온 우주 소년 단원들을 만나 보겠습니다.
씬 128. 선영 근무하던 병원 (현관) (초야)
(현관문을 활짝 디밀고 들어서는 선영.
손에 든 비디오카메라 박스.
성큼 성큼 현관 로비를 가로질러 간다)
씬 129. 작업실 가는 도로 (초야)
(끼익익.
모서리 돌아 나오는 수현차.
자신의 작업실로 전력질주.
운전석의 수현, 자못 긴장되고 흥분된 표정이다)
씬 130. 남산 야외 관측소.
(우주 소년 단원들.
천체 망원경으로 하늘을 살피고 있다.
삼각대 펼쳐서 설치하는 단원.
메모지에 기록하는 단원.
친구들과 장난치는 단원.
보호자와 사진 찍는 단원.
왁자지껄)
TV: (소리) 지금 가정에 계신 분들은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창문을 활짝 열어 하늘을 보십시오. 둥그렇게 떠 있는 저 달이 이제 곧 마술처럼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
(둥그렇게 떠 있는 달)
씬 131. 병원 복도.
(병원장. 협회간부. 진명. 기타 동료 의사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진명: 월식이 시작되면 자신의 육신이 빠져 나가 일시 죽게 된대요. 기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살려내는데 잠시 쓰였다가 월식이 끝나기 전에 돌아온답니다.
병원장: 손톱 하나 까딱 않는데 저절로 죽는다? 완전히 구제 불능이군. 돌았어.
씬 132. 도로2.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수현차)
TV: (소리) 지금 시간이 아홉시 이분을 막 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오 분 후면-
씬 133. 병원 수술실 or 일실.
(우르르 수술실 안으로 몰려오는 의사들.
병원장, 앞으로 걸어 나오며)
병원장: 뭘 보여주겠다고? 그 사이 어디 가서 마술이라도 배워왔나?
(기다리고 있는 선영)
선영: 앉으시죠.
병원장: (선영 앞으로 다가서며) 내가 그따위 엉성한 쇼 구경 할 만큼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나?
선영: 나 역시 엉성한 마술쇼 보여줄 만큼 한가하지 않아요.
병원장: 그 일 때문이라면 여기서 나가 주는 게 좋겠어.
선영: (원장 쪽 보며) 죽었다 살아난다니까 의사 밥줄 달아날까 두려운가 보죠?
(부릅 노려보는 병원장)
씬 134. 터널 안.
(달리는 터널 안 시야.
긴박한 속도감으로 지난다.
차안. 시계 보는 수현.
초조하다)
씬 135. 밤하늘.
(옅은 구름에 비쳐 흐르는 보름달)
씬 136. 병원 수술실.
(선영에 연결된 맥박기. 혈압계.
지이익 -!
파도치듯 그래프 긋는 맥박기.
돌아가고 있는 8마리 카메라.
이 갑자기 경직되며 바르르 떨기 시작한다.
이윽고 가슴을 움켜쥐는 준, 숨을 내뿜고 수면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