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마지막 명령을 받을 때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09/09월(月)막 10:46-52
“그는 더욱더 큰 소리로 외쳤다”(막 10:48).
기독교의 핵심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따라 역사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성령의 역사, 성령의 환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보통 환상을 성령의 언어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그 환상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세 사람이 너를 찾고 있다”(행 10:19).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성령을 통해 환상을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여 인도하십니다. “여기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 환상을 바울이 본 뒤에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행 16:9-10).
환상을 가진 자가 실제 삶에서 응답받는 길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영적인 눈이 떠져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눅 5:8).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영안이 열려 주님과 자신을 보게 됩니다.
▣구원받은 자가 말씀을 받으면 성령의 은혜로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막 10:47). 소경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가 메시아로서 자신의 구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란 믿음이 있습니다.
▣결단하고 간절히 원할 때 자기의 바라는 것이 환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들은 여리고에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막 10:46-47). 결단하고 간절히 구할 때 믿음은 환상으로 오게 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환상을 가진 자는 끝까지 주님의 명령을 받아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눈먼 사람을 불러서 그에게 말하였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막 10:48-50). 바디매오는 환상을 소유하기까지 어려움을 부르짖음으로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지막 명령인 ’저를 부르라‘는 응답을 얻기까지 간절히 원했습니다. 명령을 끝까지 순종하기 위해 겉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는 축복의 말씀으로 눈을 뜨게 되므로 환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And...
신앙의 마지막 단계는 순종입니다. 믿음의 확신이 오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결국,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응답의 확신이 있어도 보이는 부정적인 환경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시기가 오면 저는 과거에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그 어렵던 시절,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눈물로 기도하던 시간 들, 그 시간에 기도했던 문제들이 지금은 다 응답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간절히 기도하는 그 문제도 미래의 적정한 시간에 실체로 나타날 것을 믿기에 기다리는 이 시간 주님을 바라보며 현재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과를 위한 과정의 훈련 시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진노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어 부정적인 환경을 하나님의 징계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믿어 부정적인 환경도 사랑으로 해석합니다. 어떤 상황으로 해석할지라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환경이 가장 최선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비록 환경은 어렵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에 순종합니다.
2020년도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4주 동안 사회복지관에서 현장실습을 하였습니다. 실습의 일부로 어르신들의 전화 상담이 있었습니다. 매일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이 불편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어 담당자와 연결해 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는 과정에서 어르신들이 제 번호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해 주십니다. 전화 한 통에 감격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외로우시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바로 주님께 하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주변에 어려운 이웃이 있다면 먼저 안부를 묻고,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열심인 만큼 이웃에게 관심이 있는지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너무도 인색했음을 고백합니다. 지금 참으로 어려운 시대입니다. 대부분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들을 보면 많은 것을 가진 부자들이 아니라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어려운 사정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주변에 힘들어하는 이웃이 있다면 전화 한 통의 안부를 묻는 그런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아니 이웃까지는 아닐지라도 부모님에게 안부 전화 한 통이라도 드리면 좋겠습니다. 어르신들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자식새끼들도 전화 한 통 안 하는데 이렇게 전화로 매일 안부를 물어줘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도 오늘 말씀 정리하며 실버타운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안부 전화를 드렸습니다. “전화 해주어서 고맙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고맙다고 말씀하셔서 조금 죄송한 마음을 가집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오늘 하루 행복하고, 주님의 은혜로 살면 된다고 통화하면서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작은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로비에 놓인 빈 바구니에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그러나 다른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나누는 일입니다. 누가 가져다 놓고, 누가 가져가는지 모르지만, 매주 바구니가 비는 것을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나눔의 실천인 것 같습니다. 작은 실천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순종은
https://youtu.be/Fzt5Fi6oBJI?si=gudx6S5mq3KFSI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