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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고후 4: 7~12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제목 : 심히 큰 능력,
이 시간에는 “심히 큰 능력”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본문은 우리 인생이 즉 내 자신이 질그릇인데 성도들은 그릇 안에 보배를 담고 있다는 것이며 이 보배로 인하여 보잘 것 없는 질그릇 같은 인생이지만 큰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능력이냐 하면 우리가 살다보면 기가 막힌 어려움을 종종 당합니 다. 헤어날 수 없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억눌려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잘나가 던 사업이 예상치 못한 일에 부도가 나서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될 수도 있고, 건강한 사람이 감기 같아서 병원에 가보니 암 말기라는 진찰을 받아 하늘이 캄캄한 경험을 하기도 하고, 인간 관계에서 그렇게 믿었던 사람한테서 배신을 당하여 어쩔 줄 몰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 인간의 한계를 느끼는 일이 인생을 살다보면 너무나 많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자포자기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 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사업을 하였는데 자기 평생 2등을 안했다는 분이 같이 근무를 하였습니다. 일본어는 동시통역 수준이고 영어, 독일어도 능통하신 분입니다. 서울공대를 수석으로 나왔는데 이공계 전공하신 분들이 인문계보다 어학은 좀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분은 모든 면에 대단히 뛰어 나신 분이었습니다. 봉급날이 되어 급료 지불하는데 며느리 이름으로 입금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40세 중반부터 자기 이름으로는 은행거래가 불가능하여 다른 사람 이름으로 급료를 받아 살고 있는데 점쟁이 말 듣다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울대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여 대통령상을 받은 분이 점쟁이 10 여년 말을 듣다 망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명석한 분이 점쟁이 말 을 듣다니 어안이 벙벙했지만 여러분 이것이 인간입니다. 여러분 답답하고 동서남북이 막힌 것처럼 느낄 때 어디 가서 누구 말을 듣습니까? 사람 말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약 1: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죽는 날까지 탐심이라는 우상과 남들 위에 올라서서 지배하려는 이생의 자랑이라는 우상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해외 이민으로 가시는 분들 주의해야 할 제 1조 가 한국사람 말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처음 새로 이민 오는 사람들은 밥이라는 것입 니다. 성경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진리이십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상항과 조건이 달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입니다.
히 13: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약 1: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시 139 : 3.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 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하십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아시는 그런 진리의 하나님, 변함이 없으신 전능의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말씀 하십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 하고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안에 큰 능력이 함께하셔서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롬 8: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하십니다. 우리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크신 능력의 성령님이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1. 그러면 보배란 무엇을 말합니까?
- 보배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말합니다.
6절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그런데 바울은 이 복음의 광채를 경험하였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을 경험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기 위하여 다메섹 도성을 향하여 가고 있을 때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경험한 다음 영안이 열렸습니다. 그 영광의 빛 아래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 보배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합니다.
벧전 2: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라고 말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보배입니까? 그 안에 영원히 사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일 5:12절의 말씀을 보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골 2:3절에 보면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 3:16 “그 우편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시16:11절에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왜 예수님이 우리의 보배가 되십니까?
여러분 인생은 근원적인 두려움과 공포가 무의식에 본능에 박혀 있습니다. 어른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간난 아이들도 어둠을 무서워하고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TV같은데서 보면 3-4살 모르는 아이도 어머니와 헤어지게 되면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필사적으로 치맛자락을 붙들고 비명을 지르며 우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또 살아가며 사람들한테 알게 모르게 가난하다고 멸시받고, 돈 없다고 천대받고, 못 생겼다고 조롱당하고, 가방끈 짧다고 무시당하고, 여러분 그 이유가 얼마나 많습니까? 한도 끝도 없습니다. 대통령되면 괜찮습니까? 대통령이 움직이면 육, 해, 공군, 경찰이 일사 분란하게 움직입니다. 굉장합니다. 그런데 지난번 중국 같는데 시진핑이 TV에서 보니 김정은이 갈 때는 온갖 좋은 것으로 선물을 주고 세심하게 배려를 하는데 문 대통령이 요사이 말로 북경 시내에서 혼밥을 먹는 것을 보니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나는지 몰랐습니다. 포장이야 그럴듯하게 하지만 완전히 홀대하는 것이지요. 미국 가서는 어떻습니까? 트럼프 대통령하고 회담하는데 완전히 면박 주는 식으로 시선도 안 마주치고 동문서답하는 식으로 막 대하는 것을 보면서 온 국민이 처다 보고 있을 텐데 문 대통령이 불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무슨 만족함이 있으며, 어디에 누가 진정한 만족함을 줄 수가 있습니까?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분 안에 영원한 생명과,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있고, 그 분 안에 장수가 있고 부귀와 영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 안에 기쁨이 있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고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의 삶에 가장 귀한 보배이십니다. 이것은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진정한 보배이지요. 내가 체험하지 않으면 남의 이야기는 공허하게 들립니다. 여러분 이 보배를 가지고 계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보배,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연합하고 하나 되고 동행하고 싶어 하십니다. 왜요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보배 만나시고 하나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 질그릇 같은 인생
우리 인생은 질그릇과 같습니다. 인생은 약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 금과 은과 철과 놋으로 만들어진 그릇은 떨어져도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흙으로 만든 질그릇은 살짝만 떨어져도, 살짝만 충격을 주어도 쉽게 깨어져버립니다. 어떤 짐승들 보면 나자마자 뛰어 다닙니다. 제 살려고 풀을 뜯어 먹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만큼 오래 동안 엄마의 돌봄이 필요한 동물은 없습니다. 짐승들이 약이 어디 있고 의사가 어디 있습니까? 인간은 뇌를 조금만 다쳐도 신경이 마비되고 5분 동안 혈액순환이 되지 않고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뇌사상태에 빠지거나 목숨을 잃습니다. 뼈도 얼마나 잘 부러집니까? 각종 바이러스 세균에 쉽게 감염됩니다. 육신뿐 입니까. 우리 마음은 얼마나 약합니까?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면 그 자리에서 실신을 하고 조그만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금방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기도 합니다. 유혹에도 약합니다. 우리 인간은 강한 것 같지만 이렇게 떨어지면 깨어지는 질그릇과 같은 약한 존재입니다. .
- 볼품이 없고 가장 값이 쌉니다.
바울이 우리 인간을 질그릇으로 비유한 것은 다른 그릇에 비해 볼품도 없고 가장 평범하고 값이 싼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범죄하여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해 버린 우리 인간의 모습은 볼품없고 가장 값이 싼 질그릇과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을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약함을 모릅니다. 자신의 약함을 모르기 때문에 교만합니다. 자신의 무가치함을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판단합니다.
시 90:4-5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인생의 한계를 노래한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3. 심히 큰 능력이 내안에 있으니.
우리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질그릇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릇의 용도는 그릇 자체가 아니라 내용물에 의하여 달라집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그릇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금 그릇이 되고 은그릇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질그릇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질그릇 속에 이 보배를 두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질 그릇 으로 연약하고 볼품도 없습니다. 인정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릇의 가치는 그릇에 있지 않고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딸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보배를 가진 자는 비굴하게 살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복음의 광채를 비추며 살아갑니다.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진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자매가 있습니다. 기독교 TV뿐아니라 KBS 인간극장에서도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었으나 신앙으로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지선 자매의 간증이 5부작으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대유아교육과 4학년에 재학때 한 음주운전자의 과속 차량에 부딪혀 온 몸에 화상을 입어 국내외의 10여 차례의 대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이 어두운 세상에 비추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온 몸으로 증거 하는 하늘나라의 대사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눈부신 아름다움과 빛나는 청춘을 병원에서 다 보내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평생을 고통 중에 살아야 하니 얼마나 억울하고, 비통하고, 원통하고 하나님 정말 당신이 게시거나 한 것입니까 라는 삿대질을 할 법도 한데 이 자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거룩함을 가는데 마다 찬양하는 것입니다.
또 한분, 호주의 닉 부이지치라는 젊은이도 방송에 많이 나와 아실 것입니다. 팔, 다리가 없으니 그저 달랑 몸뚱이뿐이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결혼까지 해서 아들을 얻고 수영을 가르치며 인생을 즐기고, 전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그 불구의 몸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
이 두 분의 삶을 보면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진 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지금 보배를 가진 자로 온 몸으로 보배를 자랑하고, 증거하고, 선포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4.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인간은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분은 지혜와 명철이 한이 없으신 능력의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가지고 있으면 우리 힘으로, 재능으로, 지혜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이미 우리를 괴롭히는 악한 마귀는 무장해제를 당한 것입니다.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하십니다. 머리가 끊어졌으 니 그는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봉독 하겠습니다.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하십니다. 그러니 낙심하고 주저앉을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연약함만을 매일 고백하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자를 들어 쓰시기 때문입니다. 내 힘 가지고 하겠다면 하나님은 내버려 두십니다. 모세 보세요, 잘났다고 나설 때는 쓰시지 않고 나이 80 이 되어 아무 희망도 미련도 없다고 고백할 때, 약해졌을 때, 기가 꺾이고, 주저앉았을 때 그를 들어 쓰셨습니다. 사도바울도 자신의 약함과 하나님의 강함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는
고후 12:5 자신을 위하여는 약한 것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고전 1:27-28 하나님은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천한 것들을 택하사 귀한 것들을 폐하십니다. 왜요 10절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삶의 체험 현장에서 촬영 중인지도 모릅니다. 잠시잠간 촬영이 끝나면 우리의 고귀한 신분 왕 같은 제사장으로 돌아갑니다. 기죽을 이유, 주저앉을 이유 없습니다. 날마다 승리를 선포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