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수르 군대 장관 랍사게의 조롱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회유
(열왕기하 18장 26-37절)
26-29.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유다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랍사게가 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말로 크게 소리 질러 불러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랍사게는 히브리어에 능통했던 것 같다. 그가 이렇게 유다 말로 말한 것은 유다의 사기를 꺽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유다의 세 사람이 유다 말로 말하지 말고 아람 말로 해 달라고 한 것이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이는 계속적인 악순환만 있을 뿐이며 헤쳐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비유한 표현이다. 즉 앗수르의 군대가 장기간 예루살렘을 포위할 경우에는 성벽 위에 앉아서 자기의 말을 듣고 있는 일반 백성도 왕의 신하들과 함께 먹을 것이 없어서 대변과 소변을 먹어야 할 처지가 되고 말 것이니 지금 항복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말이다. 랍사게의 이런 말은 이스라엘 백성을 현혹하며 위협하는 것이다.
즉, 백성들이 이와 같은 말을 듣고 하루 속히 항복하기를 원하도록 하려는 위협적인 술책이다.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랍사게의 말은 예루살렘 성 위에 있는 백성들과 병사들을 향하여 히스기야에게 속지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유다를 도와 주실 것이라는 충고와 함께 앗수르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사야 31장 8절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30-31.또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의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히스기야는 굳센 신앙 가운데서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라는 말로써 군대 장군들과 백성들을 위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히스기야의 그러한 행위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힘입을 것이다. 그런데 랍사게는 이제 히스기야가 다시금 돌이켜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소리쳐도 그에 귀기울이지 말라고 선동함으로써 민심을 동요시키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베라카) 내게로 나아오라”
베라카는 무릎꿇다, 송축하다 라는 바라크에서 유래된 것으로 축복, 번성을 의미한다. 무릎꿇고 나오면 오히려 너희에게 물질적 축복이 있을 것이다 라는 유혹의 말이다. 이는 오늘날 육적인 몸은 신도 자신에게 하나님 말씀보다, 세상의 물질이 앞선다는 말로 들릴 것이다.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의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포도와 무화과를 먹는다는 표현은 풍요의 땅 가나안에 대한 묘사와 유사하다. 그리고 우물의 물을 마신다는 표현 또한 물질적인 풍요를 비유하는 말이다. 하늘의 생명수가 아니라 이 땅의 풍요의 물이 되는 것이다. 물로 인해서 식량이 많아지므로, 살기 좋은 복된 나라가 된다는 말이다.
랍사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복하고 앗수르에로 나아올 경우 그곳에서 풍족한 삶을 살게 되리라고 유혹하고 있는 것이며, 반대로 앗수르를 따를 경우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곧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한다.
32-35.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 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 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랍사게는 앗수르의 이주 정책을 미화시켜 유다 백성들을 설득하고 있다. 앗수르의 군대 장관이 예루살렘 성민들에게 허황된 약속을 하는 것이다. 산헤립의 전왕 사르곤 2세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타 지역으로, 그리고 타지역의 사람들은 사마리아로 이주시켰는데, 이는 혼혈정책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라라는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랍사게는 여호와에 대한 유다 백성의 신앙을 빼앗아 앗수르에게로 그 마음을 돌이키려고 애썼다. 그는 여호와께 의뢰하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여호와가 유다 백성에게 주신 축복을 앗수르 왕도 줄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이방 신들과 마찬가지로 너희 신 여호와도 유다 백성을 앗수르의 손에서 건지지 못한다고 말한다. 랍사게는 이스라엘의 여호와를 열국의 이방 신들과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하맛의 신들은 하맛 사람들이 믿는 신이라는 의미이며, 아르밧의 신은 아르밧이라는 지역에서 성행하는 신들을 의미한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마리아 함락 이전에도 이방 신들을 많이 섬겼으며, 특히 함락 이후 그곳 잔류민들은 새 이주민들의 종교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구해 주지 못했으니, 이제는 새 종교들에 희망을 걸어 보자고 생각하며, 그 종교들을 더욱 열심히 승배했을 것이다.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랍사게의 입장에서 볼 때 앗수르왕의 주장은 타당할지 모른다. 실제로 사마리아는 앗수르의 침략 앞에서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멸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마리아 멸망이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지 단순히 앗수르의 침략 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36-37.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이에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 내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전하니라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히스기야 왕이 랍사게와 앗수르의 오만함과 여호와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명령을 미리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다 성민을 자극시켜 그들의 불평을 유도, 내란 사태에 빠뜨리려는 랍사게의 계획은 들은 척도 아니한 백성들의 자세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다.
성경에는 여러 형태의 옷을 찢는 행위가 언급되어 있다. 옷 찢는 행위는 슬픔이나 고통, 분노 등을 나타낸다. 히스기야의 신복들이 분노를 표시한 것은 왕과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무시하여 조롱했기 때문이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대신 애굽을 의지한 결과 앗수르 대왕로부터 참람한 말을 들은 것이다.
(요약 정리)
열왕기하 18장 26-37절은, 앗수르의 위협과 조롱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침묵을 지킨 유다 백성의 이야기이다.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랍사게의 유혹인데, 당시 유다는 앗수르의 침략으로 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앗수르 왕은 랍사게라는 군대 장관을 보내 예루살렘을 위협하고 있었다. 랍사게는 교묘한 언변으로 유다 백성의 마음을 흔들려 했다. 그는 먼저 히스기야 왕을 불신하게 만들고, 나아가 하나님까지도 의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랍사게의 전략은 매우 교활했다. 그는 유다의 관리들에게 아람어로 말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모든 백성이 알아들을 수 있는 유다 방언으로 큰 소리로 외쳤다. 이는 백성들의 마음을 직접 흔들어 놓으려는 의도였다. 그의 말은 매우 유혹적이었다. "우리와 화친하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하라는 유혹에 다름 아니었다.
둘째, 침묵하는 유다 백성들이다. 랍사게는 하나님을 모독하기까지 했다. 그는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져내겠느냐"라고 오만한 말을 내뱉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비웃고, 유다 백성의 믿음을 무너뜨리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유다 백성의 반응은 침묵을 지켰다.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표현이었다. 또한 히스기야 왕이 미리 백성들에게 대답하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셋째, 랍사게의 위협적인 말을 들은 후, 히스기야의 신하들은 옷을 찢고 왕에게 돌아갔다. 이는 분노의 표출이었다. 열왕기하 19장에서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기도했고, 선지자 이사야의 조언을 구했다고 말한다.
성도는 구약에서 전쟁의 상황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내 속에 영적인 전쟁으로 비유될 수 있다. 세상을 의지하려는 육적인 마음과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영적인 마음이 부딪히는 것이다. 성경은 육적인 것에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육의 눈과 몸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은 잊어버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히스기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켜 나아갈 때,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처럼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다가오는 것이다.
믿음은 내가 믿는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인 그 분과 하나가 되는 믿음이며, 그 믿음은 성령이 인도하실 때 주어지는 믿음인 것이다. 나의 육적인 마음을 포기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라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