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 음악이 만든 하나의 세상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잠든 뿌리를 봄비로 흔들어 깨운다.’
누구나 첫 줄은 알지만 마지막까지 읽은 사람은 거의 없는
엘리엇의 시 ‘황무지’. 422행에 이르는 장황한 이 시의 첫
문장 때문에 20세기 지구촌의 많은 문화 소년 소녀들은 마치
주술에 걸린 것처럼 4월을 잔인한 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가 발표되고 거의 백 년 뒤인 2020년 4월은 중국 발
코로나19의 기승으로 온 세계가 참혹을 매일매일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지구촌의 거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은 문을 닫았고
공연은 취소되었다.
전무후무한 이 ‘비대면 사회’라는 국면에서 영국의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의 발상과 미국의 레이디가가의
기획력이 더해져 세계 유수의 음악스타 백여 명이 참여한
온라인 콘서트 ‘One World : Together at Home' 이 이 잔인한
4월에 무려 여덟 시간 넘게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35년 전 아프리카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와 ’We are the World' 프로젝트
이후 전 지구적인 규모로 음악이 현실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감동적인 온라인 퍼포먼스였다.
나이가 80대에 접어든 롤링스톤스의 등장도 이채로웠고 안드레아
보첼리와 셀린 디옹, 그리고 레이디가가와 존 레전드의 하모니에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의 협연도 감동적이었지만 영화화된 뮤지컬
‘캣츠’에서 그리자벨라 역을 맡기도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가수
제니퍼 허드슨이 자신의 집에서 무표정하게 부른 ‘Memory'도
인상적이었다.
뮤지컬 팬이라면 이 뮤지컬의 가사가 다름 아닌 엘리엇의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한밤중, 거리엔 소리조차 없고/달은 기억을 잃은 걸까?... 추억, 달빛을
받으며 홀로/난 옛날을 생각하며 웃네.” 하지만 이제 곧 아침이 올 것이다.
새벽이 오면 오늘 밤도 추억이 될 것이다. -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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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카페에 옮기게 된 이유가 있다면 ‘잔인한 4월, 음악이 만든
하나의 세상’이란 제목과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맨 뒤에 ’새벽이 오면 오늘 밤도 추억이 될 것이다.‘라는 구절 때문이다.
80 줄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절실한 시간의 흐름이다. 나는
오늘도 그냥 어제처럼 무사히? 하루를 보낸 것에 대해 감사한다.
2박 3일의 속초여행을 비롯해서 거의 열흘 가까이 연속된 일정으로
조금은 피곤했지만 입술을 부풀어 오르지 않은 것은 다행이고 감사할
일이다. 오늘 감사한 서너 가지에 대해 일기장에 옮겨야겠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난 일. 비교적 건강하게 하루를 마칠 수 있던 일.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여건. 맛있는 세끼를 만들어 준 집사람에게도
감사함이다.
첫댓글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아마도 지금의 온라인의 세계를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과학소설이난 만화의 세계에서 어느 정도
근접할 수는 있어도 이렇게 세상이 바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우리 가곡을 비롯해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내 모습을
유튜브에서 영상으로 보며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생각지도 못했다.
아마 친구들 중에서 몇몇은 내 노래하는 모습을 유튜브에서 봤을 것이다.
이번에 영국의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과 미국의 레이디가가의
협력으로 전 세계의 모든 인구들에게 8시간 넘게 음악 선물을 한 것은
획기적이고 정말 감사한 대목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메라른 세계에
단비를 뿌려 준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