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폰 음악감상실의 추억
윤 영 애
엔진소리와 함께 댄스팝이 흘러 나온다. 어디든 갈 때면 늘 듣는 음악이다. 7~80년대 디스코 음악이 너무 좋아서 몇 년 전부터 계속 듣는데, 좋아하지 않던 남편도 요즘엔 팝 음악을 잘 듣는다. 트롯을 좋아하던 사람이 나와의 취미를 공유해 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도 신나는 음악과 함께 드라이브를 한다. 황금 물결이 눈부신 길을 지나 춥지도 덥지도 않은 추억의 계절을 향해 달려간다.
1970년대 중반 청주에 헤드폰 음악감상실이 처음 생겼다. 신기해서 가 보았는데 거의 팝송만 흘러 나왔다. 그때만 해도 팝송을 안 좋아했다. 초등학교때는 트롯을 좋아했고, 여고시절엔 통기타를 치면서 포크송을 불렀다. 길을 가다보면 알아듣지도 못하는 시끄러운 노래가 나올때면 소음처럼 들렸다.
그런 내가 그 음악감상실을 가다보니 씨스템이 너무 좋아서 빠져들기 시작했다. 또 D.J는 어쩜 그리도 잘 생겼던지 사춘기 소녀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서점으로 달려가서 팝송책 한권을 샀다. 제목이라도 알아야 될 것 같아서 열심히 보았다. 신청곡을 써서 줄 때면 멋있는 명언을 외워서 인용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펜 글씨를 잘 쓴 덕인지 몰라도 다른 신청곡을 제치고 먼저 나왔다. 신청곡 용지로 8절지를 항상 넣고 다니면서 신청곡을 써서 그런지도 모른다. 음악다방에서도 역시 신청곡이 빨리 나와서 친구들에게 항상 인기를 끌었다.
그때부터 팝가수들을 알아가게 되었다. 딥퍼플,롤링스톤즈,비틀즈,비지스,킹크림슨 등 유명한 뮤지션들을 알게 되었다. 감미로운 음악이 귓가에 맴돌때면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야말로 황홀한 그 자체로 이런 소리가 세상에 있다니 신기했다. 음악을 몹시 좋아했어도 이렇게 다양한 장르가 있는지 몰랐다. 주로 록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인천에서 직장 다니다 보니 낯선 곳에서 의지할 것은 음악뿐이라서 동인천역 앞 헤드폰 음악감상실을 찾아갔다. 청주에서 듣는 것보다 씨스템이 훨씬 좋아서 쉬는 날이면 혼자 자주 갔다. 내가 직접 신청곡도 써서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신청곡을 듣다보니 부르진 못해도 들으면 제목과 가수들 이름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비지스의 Don’t forget to remember가 내 18번 노래로 되었다. 대도시의 시끄러운 자동차소리, 전철소리등 소음을 막아주는 유일하고 포근한 장소였다. 음악으로 타향에서의 모든 시름을 덜어낼 수 있는 곳이고, 아픈 몸과 마음도 위로해 주었다. 어느새 길거리에서 팝송이 흘러나오면 귀가 쫑긋해지면서 리듬에 빠져 들었다.
요즘은 소음공해 때문에 길거리 전파사도 없지만, 그 시절엔 어디서든 흔하게 들었다. 어느날 청주에 있는 ***음악사에 들러 사장님과 7,80년대 음악감상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는데, 동인천 헤드폰 음악감상실이 우리나라에서 그 당시에 두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셨다. 어쩐지 씨스템이 넘 좋았다.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오는날엔 Rhythm of the rain을 들으면서 추억에 잠겨본다. 젊음을 마음껏 누렸던 아름다운 시절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팝 음악과 함께 인생의 모든 역경을 담담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답답했던 시간도 훌훌 털어버리고, 선택한 삶에 후회도 미련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와서 우울할 새가 없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서 마음의 큰 부자가 되었고, 현재의 소중한 시간에 늘 감사한다. 내 인생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게 해준 그시절 헤드폰 음악감상실을 선택한 내 자신이 대견스러울 뿐이다.
작열하던 태양을 밀어내고 사랑과 추억의 계절이 왔다. 하늘의 예쁜 구름이 손짓하며 나를 오라고 한다. 독서하기 좋고 여행하기 좋은 가을이 너무 좋다. 오라는데는 없어도 갈 곳은 많아서 몸과 마음이 분주하고 새로운 계절을 가슴깊이 새겨본다.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 입은 가을산은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게 한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계절~!
사랑하기 딱 좋은 이 계절에 웨딩홀에서 많이 흘러나오는 브루노마스의 Marry you를 들으면서 38년전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 화장할 줄도 모르고 수수했던 그 시절을 추억한다. 한달 있으면 결혼기념일이다. 아름다운 이 계절에 멋진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진 거리로 여행을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