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훈, 한주형, 종철, 동원이가 2002. 9. 1 – 2002 9. 18 동안 마날리 – 레의 편도485Km 구간을 바이크로 트래킹하며 영훈이와 종철이의 여행수첩을 정리 한 것이다.
중간에 발췌문은 우리 보다 먼저 다녀와 도움을 준 호진이 형이 제공한 “호진이와 래리의 히말라야 여행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9월 2일(월) 02:15 am 출발
후배들이 마련한 쵸코렛, 음료수, 캔디 등의 비상식량과 케이크 등 정성 어린 환송을 받고 모든 준비를 마친 종철이와 나는 배낭을 메고 새벽 1시의 조용한 D.P road를 나섰다. 푸네 스테이션 도착. 한주형과 동원이가 늦는다. 우선 우리는 Waiting Ticket이던 우리의 표를 체크하니 다행히 자리는 모두 나왔지만 시트는 각자 떨어지게 되었다. 여기저기 기차를 기다리는 여행객, 도착할 기차의 짐을 받을 짐꾼들이 플랫폼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워 자고 있다. 짜이 한잔과 담배 한 개피를 피고 있을 무렵, 릭샤 잡기가 힘들어 늦게 온 한주형과 동원이의 손에는 삶은 계란이 들려 있었다.
2일 12:45 pm
새벽 4시에 출발한 열차는 8시간 반정도를 달려 지금 어떤 역에 정차 중이다. 처음에는 AC3(에어컨이 있는 3등 침실칸. 꽤 깨끗하고 쾌적한 편.)칸이라 앉기가 불편했지만 누워서 잘 수도 있고 생각보다 편한 거 같다. 준비해 온 삶은 계란과 쵸코바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책을 읽었다. 시트가 모두 떨어진 관계로 카드놀이나 이야기를 하며 갈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나중에 심심해진 우리는 결국 자리를 만들어 카드놀이를 할 수 있었다.
3일 옥상 레스토랑… 어딨는겨?
새벽 6시에 델리에 도착하여 26시간의 기나긴 기차여행은 끝이 났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후텁지근한 날씨와 함께 역 앞에서는 택시, 오토릭샤, 사이클릭샤(내가 사는 푸네에는 없다.)의 릭샤 왈라들이 매달렸다. 우선 우리는 오토릭샤로 뉴델리 역에 가서 기대하던 비빔밥과 김치찌개를 판다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옥상 레스토랑’을 찾아 아침을 먹고 마날리로 갈 버스를 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고생을 하며 찾아 다닌 끝에 결국은 포기를 하고 ‘김치 하우스’라고 한글로 씌여진 레스토랑에서 열무김치로 만든 볶음밥과 그 김치로 만든 계란 푼 김치찌개, 역시 같은 김치로 속을 빚은 만두 - 배고파서 먹었다 – 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근처 여행사에서 마날리행 버스표를 끊었다. 씻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근처에서 호텔을 찾는데 아침에 맑던 하늘이 이내 어두워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굉장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그만 거리는 금세 빗물이 불어나 발목까지 잠기고 겨우 우리는 호텔을 잡을 수 있었다. 버스 시간까지 쉬고 샤워를 하는데 450루피. 하지만 기차에서 내려 아침부터 반나절 동안 땡볕과 인파 속에 고생한 우? ?“?황금 같은 재충전의 시간이였다. 버스 시간 전 식사를 하고 버스로 약 20시간의 여정을 떠났다.
4일. 버스 고장.
무섭게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자다가, 깼다가를 반복하다가 한 휴게소에 들러 식사를 했다. 탈 때는 몰랐는데 휴게소에서 보니 캐나다, 이스라엘 등 많은 외국인들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주형이 갑자기 새벽을 달리는 버스 창가를 가리켰다. 수많은 별들이 뒤덮은 밤하늘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버스는 산을 여러 개 넘고 날이 새기 시작하자 휴게소에 한번 더 들른 후 지나는 풍경은 우리나라 시골풍경과 비슷했다. 아마도 이곳 북쪽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위도라 그런 거 같다. 날이 완전히 밝자 잘 달리던 버스에 문제가 생겼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서더니 사태를 파악한 외국인들은 재빨리 다른 버스에 옮겨 타기 시작했다. 버스는 만원이 되어 떠나버리고 우리는 도착지가 생각보다 가까운 줄 알고 열심히 히치를 시도했다. 그러나 많은 차들이 지나쳤고 섰다 해도 부르는 게 값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3시간 정도 더 달려야 하는 먼 거리였던 것이다. 결국 엔진까지 뜯어 정비소로 가지고 갔던 버스의 수리가 3시간 만에 끝나고 다시 출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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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날리 – 레 구간인가?
이 코스는 일년 중 4개월 동안만(6월-9월) 길이 열리는
아름다운 코스입니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굳이 표현하자면 처절하게 아름다운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이 구간은 시즌이 되면 많은 버스와 짚들이 운행을 합니다.
편도 490KM를 1박2일 또는 2박3일간 달려서 레에 도착합니다.
거친 길과 해발 5000M 의 산들을 2-3개 넘는 그리 쉽지만은 않은 길입니다.
이 길을 군사적인 목적으로 1989년에 처음 열린 이후 많은 여행자들에게 각광을 받아왔습니다. 파키스탄과 인도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유일한 다른 대안이 되는 스리나가르-레 로의 길 대신 자주 이용되는데 목적이 군사도로여서 인지 매일 수십 대의 군용 트럭이 분주하게 왕래하는 바쁜 도로이기도 합니다.
스리나가르-레 구간보다 마날리-레 구간이 선호되는 이유는 아마도 '마날리'라는 지역적인 장점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아직도 히피들의 천국(물론 질 좋은 하쉬시-대마초- 때문)이자 여름이면 많은 여행자들이나 인도 피서객들이 더위를 피해 모이는 휴양지 역할을 하고 있죠.
마날리를 북쪽에 있는 고아(인도 남서부의 유명한 해안도시)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레는 잠무&카시미르 주의 라닥 지역의 중심 도시로 영국 지배 전엔 라닥왕국의 중심 지이기도 했습니다. 티벳불교가 성했고 지금도 우리의 절에 해당하는 '곰파'들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고산도시입니다. 지역적 특성 때문에 많은 군부대가 밀집해 있는 군사도시 이기도 하죠.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과 같은 지형이고 저 유명한 인더스강이 지나며 5000m가 넘는 바위 산들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4000m가 넘는 고도 때문에 고산병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히말라야 산맥과 잔스카르가 이어지는 고지대위로 길이 이어져 있고 우리나라의 고개인 '재'에 해당되는 '라(La)',영어로는 Pass를 4개정도 넘어야 합니다. 버스, 짚 이외에도 화물트럭을 이용해 가는 방법도 있는데 참고로 교통편 가격을 대충 살펴보면 비행기는 미화 $70-80이고 버스는 종류에 따라 400루피 정도부터 800루피까지 있다고 하는군요. 짚은 1000-1500루피 정도입니다. 다른 교통편이 최소2일(1박)이 소요 되는 반면 하루 만에 가는 짚도 있습니다.
왜?! 오토바이로 가는가?
래리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재미있으니까…”
버스나 지프의 창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운전해가며 있는 그대로를 직접 보며 가는 그 기분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수가 있고 아름다운 곳에서는 여유 있게 담배한대 피고 갈수도 있습니다
하 지 만!! 이 자유에는 엄청난 책임이 따릅니다
일단 바이크를 끌고 출발하면 좁은 산길에서 추위와 웅덩이, 미끄러운 자갈길, 모랫길, 산더미만한 차, 꼬진 인도차에서 뿜어내는 매연과 싸워 이겨내어야 합니다.
좋지 못한 도로사정상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좋은 길이 나왔다고 해서 땡기다가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웅덩이에 빠져 봉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저와 같이 팀을 이루어간 36세의 노장 라이더이신 이세* 님 입에선
이 말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고통!!, 이 괴로움”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고통 그 괴로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습니다.
준비사항
* 오토바이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죠. 전 개인적으로 엔필드를 추천합니다. 물론 바자즈나 LML스쿠터로 여기를 넘나드는 인도인들도 있다지만(!) 길 상태와 연료문제, 짐 등을 고려하면 기어 바이크가 유리하고 그 중 엔필드가 인도에 나와 있는 바이크중 가장 낮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일본오토바이가 성능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Suzuki,Hnada,Yamaha,등)
힘도 좋고 단순한 구조로 문제가 생기면 손보기도 편하고 의외로 스페어를 구하기도 더 쉽더군요. (물론 너무 무겁다는 단점도 있죠) 2인이상이 같이 이동을 하시거나 짐이 많은 경우에는 엔필드의 선택이 불가피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350cc짜리 보다는 500cc를 염두에 두시고 짐이 많으시면 캐리어를 부착한 모델을 선택 하시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그럼 이 엔필드를 어디서 구하느냐? 이게 문제군요. 바이크로 인도를 여행 중이신분, 계획 중 이신분 이라면 하나 구입하시면 되니 간단하군요.
하지만 그렇지 못하신 경우엔 마날리에서 렌탈이 가능합니다. 돈받고 빌려준다는 거죠. 고아에서처럼 하루에 얼마씩 해서 빌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빌려서 레 같은 장거리도 다녀올 수 있죠. 시즌 중 렌탈 가격은 350cc가 하루에 200-250Rs정도이고 500cc는 250-275Rs 정도 입니다. 물론 흥정 가능하죠.
렌탈 하실 수 있는 곳은 올드 마날리 근처나 바쉬싯, 그리고 뉴 마날리 타운 아랫쪽 바이크 수리점이나 취급점에서 가능합니다. 올드 마날리나 바쉬싯 근처(티베탄 콜로니)가 빌리기가 쉽고 엔필드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렌탈 샵이 있어 개인적으로 이곳을 추천하고 싶군요.
근처에서 문의 하시거나 엔필드라고 써있는 간판이 보이니 거기서 문의하시면 됩니다. (전 바쉬싯 아래쪽 엔필드 클럽이라는 곳에서 빌렸습니다)
렌탈 기간은 얼마 동안 레에 계실 것인가에 달려 있으니 잘 결정하시고 일정이 길어지면 나중에 돌아와 지불 못한 액수만큼 더 지불을 하면 됩니다.
렌탈을 할때 '디파짓'이 필요한데 비행기 티켓이나 여행자 수표 등을 맡기고 서류에 사인한 후 바이크 관련 도큐멘트를 받으시면 끝입니다. 면허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더군요(이건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죠^^;).
레로 간다고 하면 돈을 더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아마 스페어 값을 따로 받는 경우입니다. 꼭 확인 하시길 바랍니다. 브레이크, 클러치, 악셀레이터 와이어줄이나 핸드레버 등의 스페어와 스페너, 드라이버같은 수리공구를 줄껍니다.
안주면 달라고 해서 챙겨 두십시요. 스페어에 대한 얘기는 아래에서 따로 다루기로 하죠. 레로 가기 전 점검을 꼭 받으시고 문제점을 꼭 고쳐서 이상이 없도록 해서 출발해야 합니다.
가는 길 중 마날리에서 120km떨어진 키롱 이외에는 레에 도착 전에는 어디에서도 점검을 받거나 수리를 받을 수 없음을 염두 해 두셔야 합니다.
오직 Do it yourself !
마날리 도착.
우리는 우선 가장 급한 바이크를 구하기 위해 걸어서 ‘엔필드 클럽’을 찾아갔다. 가는 도중 지나가던 여학생들에게 길을 물었는데 같은 방향이라 함께 가게 되었다. 이곳의 원주민. 우리나라 사람과 많이 닮았다. 그 중에는 혼혈처럼 서양사람 비슷한 사람도 있었다. 예상외로 먼거리를 걸어 겨우 ‘엔필드 클럽’을 찾고 각자 자신의 바이크를 선택을 하고 계약을 맺었다. 주인은 젊고 착해 보이는 청년이였다. 처음 타는 기어 바이크였지만 한국에서 자전거 타던 실력으로? 쉽게 운전할 수 가 있었다. 점검은 내일하기로 하고 우리는 각자의 바이크를 몰고 숙소를 찾기 위해 싸고 좋다는 올드 마날리로 향했다. 중간에 여러 번 시동 꺼트리기를 반복, 초보자 동원이와 나는 한 호텔 마당에서 연습을 하고 종철이와 한주형이 숙소를 찾아 정하고 옆에 있는 티벳음식 전문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짐을 풀고 씻은 뒤, 저녁에 약간의 주행 연습을 더 했다. 이곳의 특산품이라는 애플와인을 사서 마셨는데 맛은 별로 였다.
5일. 신수스님을 만나다.
일찍 일어나 종철이랑 연료를 넣고 오는 길에 한국스님(법명:신수)을 만나 함께 온천이 있는 곳에 다녀왔다. 스님은 굉장히 밝고 명랑한 분이셨다. 헤어질 때 김치를 만들어 줄 테니 묵고 있는 숙소를 알려주시며 놀러 오라고 하셨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일행들과 다시 주행연습 겸해서 키롱 가는 길의 로탕패스 전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각자의 바이크를 점검 받고 필요한 장비와 식량 등을 사서 준비를 마치고 저녁에 스님 숙소에 찾아가 김치와 부침개를 얻어먹고 스님의 추천?으로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양념치킨맛이 나는 시즐러와 치킨 프라이드 라이스를 먹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6일째. 히말라야 트래킹 출발~
드디어 출발하는 아침. 그러나, 체크아웃을 하는 과정에서 호텔에서 치트를 당해 경찰까지 불러 해결하는 일로 조금 지연되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 어제 답사를 다녀온 길은 상당히 수월했다. 아직 마날리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아 가벼운 차림으로 조끼를 하나 걸치고 달렸다. 리더는 바이크 경험이 있는 종철이, 두번째로 초보자 막내 동원이, 세번째가 좀더 나은^^; 초보자 나, 마지막 어릴 때부터 시골동네를 바이크로 누비고 다녔다는 노장 한주형 순으로 20~30m의 간격을 두고 달렸다. 첫번째 관문 로탕패스(해발3975M). 오르기 전까지는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주행이었지만 운전미숙과 가파른 언덕길, 산소부족,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힘든 주행이 시작되었다. 자동차 두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도로의 바깥쪽은 가드레일도 없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낭떠러지였다. 가끔 나오는 작은 개울 건너기, 로탕패스 정상부근은 안개로 뒤덮여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트럭을 신경 쓰며 6시간을 달리다가 출발이 늦어져 로탕을 다 넘을 무렵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인 키롱까지는 아직 70여킬로. 중간에는 ? 틜シ?마을도 없고 숙박시설도 없었다. 그리하여 더 피곤하고 위험한 야간주행을 강행하여 밤이 깊어서야 먼 곳에서 반짝이는 작은 마을 키롱의 불빛들을 보며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키롱에서의 3일…
바이크 고장으로 아침 일찍 출발은 하지 못하고 오전부터 수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낮부터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 어차피 다음 목적지까지 못 도착할거 같아 우리는 하루 더 묵기로 하였다. 호텔값은 하루에 100루피. 수준은 괜찮은 편이였다. 특히 이 호텔의 레스토랑의 모모(만두)는 맛이 일품이였다. 주인도 친절하고 이곳 마을사람들 모두 순박해 보이고 착했다. 내가 사는 푸네의 인도인과는 전혀 달랐다. 하루 종일 각자 오토바이 수리 및 정비를 하고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젤 먼저 일어난 나는 커튼을 걷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커다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을 깨우며 말했더니 모두 믿질 않았다. 인도에서 처음 맞이하는 눈이었지만, 일정이 바쁜 우리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정오까지 멈추지 않고 기온이 풀려 비가 내리자 우리는 일찌감치 또 하루를 포기 하고 설경에 사진을 찍고 마을 곳곳을 둘러 보았다. 저녁에 호텔 앞에 전화를 하러 갔는데 앞에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인도인을 만났다. 이곳의 여 공무원으로 전에 수도 델리에서 근무할 때 한국사람을 많이 만났다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셋째날 아침, 우리는 8시 반에 출발을 하였다. 날씨도 맑고 모두들 운전이 숙달되고 푹 쉰 탓인지 빠르게 이동을 하였다. 그리 험한 길도 없이 몇 개의 마을을 지나고 어느새 ‘다르차’라는 검문소에 도착하여 여권검사를 하고 짜이와 버터 짜파티로 간단한 점심을 먹은 뒤 두번째 목적지인 ‘팡’으로 달렸다. 비교적 수월한 길을 달리다가 점심으로 텐트 휴게소에서 ‘마끼’라는 라면을 먹고 그 이후부터 달리는 길은 언덕이 나오며 점점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워낙 강한 햇볕에 첫날에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나와 동원이는 얼굴이 타버려 껍질이 벗겨지고 고통스러웠다. 가는 도중에는 눈도 쌓인 곳이 있어 선글라스를 쓰고도 눈이 부셨다. 두번째 관문인 ‘바라라차 라’(해발 4883m)와 ‘라츠룽 라’(해발 5060m)를 넘으며 추운 날씨, 산소부족으로 인한 현기증으로 고통스러운 길을 달려 저녁 무렵, 민박용 텐트가 몇 개 모여있는 두번째 목적지 ‘팡’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 앞에 최고의 장애물이었던 폭 10미터의 큰 개울이 있었는데 모두들 성공적으로 빠지지 않고 건널 수 있었다. 이건 내 자랑인데 이번 트래킹을 하면서 10여개 이상을 개울? 【?나는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살기 위해선 빠지면 안 된다. 발이 얼어버리기 때문에 모두들 필사적으로 개울을 건널 때 다리를 양쪽으로 벌려 건넜다. 3번 빠진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 같이 생긴 할머니가 운영하는 텐트를 숙소로 정하고 짜이와 와이와이면(우리나라 라면과 흡사.), 오물렛, 짜파티를 먹고 씻을 데도 없고 너무 춥고 피곤한 우리는 두 겹의 솜이불에 파묻혀 잠을 청했다. 여기서 우리의 리더 종철이를 포함한 모두가 심한 두통과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잠을 설쳤다. 나도 조금 머리가 아팠지만 견딜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고산병으로 너무 고생한 탓에 돌아가자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얼마남지 않은 레를 향해 와이와이면으로 아침을 먹고 팡 앞의 검문소에서 또 한번의 여권검사를 한 뒤 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때 검문소의 한 군인이 외치는 말이 인상 깊었다.
“very very high, slowly slowly!”
팡 앞에서 곧바로 구불구불한 고개를 올라가 정상부근에 도착하니 앞으로는 끝없는 평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약 30킬로의 길이 영화에서 나올 법한 평원 속의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뚫려(길 모양만 그렇지 도로상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우리는 속도도 내보고 멋진 장관에 잠시 멈춰 사진도 찍으며 여유롭게 달릴 수 있었다. 다음에 나온 가장 큰 고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차가 다닐 수 있는 ‘타그랑 라’(해발 5328m)의 정상에서 사진도 찍고 내려가니 마을도 나오고 한번의 여권검사를 더 한 뒤, 비교적 쉬운 길을 한참 달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레(Leh : ‘라다크’라는 티벳왕국의 수도.)’에 입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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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주요 경유지
마날리–(55KM)-LOTANG PASS(해발3975M)–(79KM)-GRAMPHU-(84KM)-KHOKSAR-
(100KM) –SISSU-(108KM)-GONDLA-(118KM)-TANDI-(126KM)-KEYLONG-(151KM)-
JISPA-(158KM)DARCHA-(172KM)-PATSEO-(199KM)BARALACHALA(4883M)-
(235KM)-SARCHU-(289KM)LACHLUNG LA(5060M)-(314KM)-PANG-(389KM)-
TAGLONG LA(5328M)-(419KM)-RUMTSE-(426KM)-RONG-(432KM)-MIRU_(447KM)-
UPSHI-(451KM)-KARU-(469KM)-TIKSE-(479KM)-CHOGLAMSAR-(485KM)-LEH
다시 역순으로 같은 길을 돌아옴…
1박 2일 코스는(마날리-사추- 레) 마날리 출발 사추에서 하루 주무시고 레로 가는 코스이지만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천천히 볼수있는 여유도 없고 시간에 쫒겨 위험한 운전 예상됩니다.
2받 3일 코스
(마날리–키롱-사추 –레)
마날리출발 키롱에서 하루쉬고 사추에서 또 하루쉬고 레 입성
“호진이와 래리의 히말라야 여행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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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우리는 마날리 – 키롱 – 팡 – 레의 코스로 중간에 기상악화로 4박5일 걸렸다.
레에서의 첫날
이곳 레는 마날리와는 또 다르게 티벳인이 많아 건물들과 함께 중국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도착하자 마자 문제가 있던 한주형 바이크는 수리를 하러 가고 우리는 기름을 넣고 기다렸다. 숙소를 찾으러 가는 길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태워달라고 해서 우리가 가는 곳까지 태워주고 마날리에서 한 이스라엘 인에게 추천을 받았던 게스트하우스를 한참을 헤맨 끝에 간신히 찾았으나 시설도 안 좋고 비싼 편이였다. 그리하여 작지만 싸고 괜찮은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짐을 풀었다. 이 숙소가 가장 맘에 들었던 이유는 안의 작은 마당에 탐스럽게 익은 살구나무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말 맛있었다. 첨에는 주인 몰래 조금씩 따먹다가 나중에 허락을 받고 씨앗도 그냥 버리는 게 아니고 깨면 안에 아몬드 같은 맛있는 씨가 있다는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이날 저녁을 먹으로 나갔다가 한 티벳 레스토랑에 갔는데 모두 양고기로 맛을 내 무엇이든 잘 먹던 우리 입맛에 도저히 맞지 않아 작은 빵집에서 빵을 먹고 있는데 두 명의 한국인과 한명의 이스라엘인 일행을 만났다. 서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여기 올 때 들었던 송어 매운? 좇?함께 먹으러 가기로 하고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밝은 달에 비치는 설산과 주위로 반짝이는 별들이 참 아름다웠다.
둘째날 – 송어 매운탕 먹기 대작전.
그리 춥지 않은 아침을 맞이하고 숙소 내에서 주문이 가능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어제 만난 한국인(이은화 누나, 김태운 형), 이스라엘 여성 ‘소시’와 송어 매운탕을 먹으러 가던 중 종철이의 바이크가 펑크가 나서 조금 늦어졌다. 길 모르는 막내 동원이와 소시가 탄 바이크가 먼저 출발했는데 행방불명이 되고 우리 일행은 둘이 데이트 간 줄 알고 과감히 버리고 레에서 20여 킬로 떨어진 ‘셰이’라는 곳으로 매운탕을 먹기 이해 열심히 달렸다. 그러나 그곳 주변을 열심히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의심이 가던 곳을 다시 가니 그제서야 그런 게 없다고 말했던 그 인도인이 사실을 고백했다. 가끔 낚시를 하지만 요즘 감시가 많아 오늘은 준비를 못했다고. 아쉬움을 남긴 채 우리는 간단히 점심을 먹고 근처의 우리나라 절에 해당하는 ‘틱세 곰파’에 들렀는데 부처상이나 벽화, 분위기가 모든 스님들이 빨간옷을 입은 것을 빼고는 우리나라 절이랑 비슷하였다. 다시 레로 돌아와 어디 갔었냐고 투덜거리는 동원이를 만난 뒤 그 일행들에게 저녁 대접을 받았는데 역시 이곳 티벳 음식은 우리 입에 맞지 않았지만 예의상 절반은 먹을 수 있! 었다.
셋째날 – 다시 마날리로…
일찍 일어난 나는 혼자 시내에 나가 엽서를 사와 다같이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특별한 엽서를 쓰고 아침을 먹고 오늘 하루는 바이크 수리와 각자 정비를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새벽 2시에 레를 떠나기로 하였다. 이유는 키롱에서 너무 지체된 탓으로 바이크 렌탈기간에(이곳 물가로 상당히 비싸다. 하루에 260루피,한화 약7000원 정도. 식사조절 실패로 예산부족이 생김) 못 도착할 거 같고 또 우리가 고산병으로 고생을 했던 팡에서 묵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위해서였다. 새벽 2시에 출발하여 키롱까지 300킬로 이상 되는 긴 여정을 위해 간단한 쇼핑(이곳이 원산지인 염소의 목털로 만든 카쉬미르 숄과 스웨터)과 저녁식사를 마친 뒤 출발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2시. 몸이 너무 무겁고 피곤하였지만 우리는 예정대로 캐리어에 각자 짐을 싣고 시동을 거는데 한바탕 한 뒤 조용한 레의 새벽거리를 나왔다. 차도 없고 평탄한 길을 수월하게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2시간 정도 달렸을 무렵, 맨 뒤로 포지션이 바뀐 종철이의 바이크가 크게 혼을 울리며 섰다. 또 펑크가 난 것이다. 이미 레에서 한번 펑크가 나서 튜브를 갈았는데 아마 타이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어두운 골짜기에서 멈추니 막막했다. 다행히 조금 더 가니 검문소 다리가 있는 작은 휴게소가 있어서 겨우 끌고 갔다. 그 무렵 먼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휴게소 안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조금 휴식을 취한 뒤, 바이크를 수리하기로 하였다. 오전 9시 정도. 늘 일찍 일어나는 나는 혼자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혹시나 하고 검문소에 가서 군인들에게 타이어 펑크를 고칠 수 있냐고 물어 봤더니 흔쾌히 도와 준다고 하였다. 이미 잠자기 전에 뒷타이어를 분리 해놓은 상태라(우리는 가기 전에 몇 가지 공구와 예비용 부품을 받아 간단한 수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타이어에서 튜브를 빼는 작업은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하였다.) 종철이를 ? 嚮?예비용 튜브와 타이어, 공구, 펌프를 들고 검문소로 갔다. 여기에 군인들 세 명이 달라붙어 열심히 튜브를 갈고 바람을 넣었다. 난 처음에 이들이 너무 열심히 하길래 뭔가를 바라고 그런 줄 알고 한 100루피정도 준비해 놓았는데 수리가 다 끝난 뒤 주려고 하자 이들은 돈을 받지 않았다. 너무 고마워서 작은 성의로 아침을 사주려고 해도 사양 하였다. 그래서 다시 짐을 꾸리고 가는길에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안받으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주고 작별인사를 한 뒤 출발하였다. 후에도 군인들에게 도움 받을 일이 있었는데 이 곳 군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종철이의 타이어 펑크를 염려하며 내가 제일 후방을 맡아 우리는 또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에 걱정을 하며 방수천을 씌우고 우의를 입고 천천히 달리다가 가장 높은 타그랑 라를 넘을 때는 안개 속에 비가 오다가 맑다가 눈이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정상부근에 이르러서는 우박이 쏟아져 얼굴이 따갑고 상당히 고생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닥쳐올 고통의 전주곡에 지나지 않았다. 타그랑 라를 다 내려와 30여킬로되는 벌판을 달릴 때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비가 많이 내렸다. 이미 몸은 다 젖었고 바이크의 열기로 의지하던 다리와 손은 점점 굳어져 갔다. 나중에는 굳은 발로 기어변속조차 힘들었다. 비가 쏟아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릴 때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머릿속으로는 가족들과 친구들,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가고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자연 속에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그 동안 트래킹을 하며 느낄 수 없었던 공포가 엄습했다. 나중에 텐트에 도착했을 때 막내 동원이의 고백에 의하면 그냥 핸들을 놓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힘든 관문을 오직 살겠다는 ! 일념으로 모두가 고산병으로 고생하여 싫어했던 팡을 오아시스처럼 생각하며 우리가 묵었던 텐트에 도착하였다. 걷기도 힘들 뿐더러 손도 움직이지 않아 우의를 못 벗자 주인 할머니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벗겨줄 때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따뜻한 짜이를 두잔이나 마시고 웃을 갈아 입고 할머니가 마련해 주신 버너에 옷과 신발을 말렸다. 비가 새고 깨끗하지 않은 텐트였지만 버너로 옷을 말리고 따뜻한 국물이 맛있는 와이와이면, 럼 한잔… 우리에겐 그 동안 갔던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보다 최고의 휴식처가 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계속 내리던 비가 눈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후에 비가 되고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재충전을 한 우리는 다시 출발하기로 하고 질퍽한 진흙길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 무거운 바이크도 이리저리 미끄러질 정도로 길이 심했다. 다행히 가는 도중에 비가 그치고 저 먼 하늘에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라츠룽 라를 넘고 순조로운 주행을 하다가 그만 가장 잘 달리던 내 바이크가 고장이 나버렸다. 그동안 우리가 배운 기술로 모두 검사를 해봤지만 엔진에 큰 문제가 있는 거 같았다. 또 한번 황량한 벌판 속에 바이크가 고장나자 정말 난감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20여키로 남은 사추까지 가기로 하고 숙소에서 빨랫줄로 사용하던 줄을 묶어 바이크 운전에 능숙한 한주형과 종철이가 몰고 가고 나는 한주형 바이크를 타고 사추로 가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먼저 달렸다. 몇 개의 텐트와 군대가 있는 사추에 도착하자 수많은 버스와 트럭들이 있었다. 지금 앞의 바라라차 라에 눈이 많이 내려 제설작업 중이라 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나는 우선 군대로 가서 기술자를 찾았지만 고칠 만한 사람이 없었다. ? ち傷?우리 일행들이 도착해서 회의를 한 결과, 우리는 바이크를 트럭에 싣고 마날리까지 가기로 하고 군의관의 도움으로 트럭운전사를 고용하여 예상한 것 보다 싼 값으로 트럭에 바이크를 싣고 가게 되었다. 이날은 길이 통제되어 이곳에서 묵기로 하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숙소에 자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인근 부대에 군인들이 마련해준 창고에 자리를 깔고 자다가 바이크가 염려된 한주형과 종철이는 바이크를 실어둔 트럭에서 자러갔고 동원이와 나는 춥고 무서운 창고에서 공포의 밤을 보냈다. 다음날 오전, 길이 열리자 13시간 논스톱으로 달려 우리가 출발했던 마날리에 도착하였다. 돌아오는 길은 기상으로 인해 며칠 사이에 길이 유실되고 낙석도 떨어져 전혀 다른 길 같았다. 트럭으로도 가기 쉽지 않은 길이였다. 또한 높은 고개에서는 눈사태로 제설작업을 해놓은 곳은 트럭 높이의 눈이 쌓여 있었다. 때문에 모두들 내 바이크 고장에 감사해했다. 하지만 우리의 바이크를 타고 당당히 마날리에 완주를 못한 것이 한편으론 아쉬웠다.
이번 트래킹을 통하여 많은 것을 느꼈다. 대자연 앞에 인간의 나약함, 험한 상황에 대처하며 적응하고 극복하는 과정에 얻은 소중한 경험과 추억들, 도중에 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을 만나면서 공유한 히말라야의 아름다움과 경외감… 지금도 늘 추운 날씨와 피로에 지친 몸으로 마시는 히말라야의 정이 담긴 따뜻한 짜이 한잔이 그립다…
마지막으로 노장답게 우리를 잘 챙겨준 베스트 라이더이자 여자 앞에선 과묵한 한주형과 짜디짠 공금관리로 우리의 뒤 치다꺼리를 했던 귀여운(ㅡ,.ㅡ) 종철이, 트래킹 내내 잼있는 이야기와 영어공부를 시켜준 말썽꾸러기 막내 동원이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못했던 소프트 가이 영훈이가, 성공적인 트래킹의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