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사참배(甲寺參拜)
甲寺參拜鬧處翁갑사참배요처옹
武寜王陵又探訪무령왕릉우탐방
生居痕迹遺物言생거흔적유물언
奔忙休日往復來분망휴일왕복래
<和翁>
요처
늙은이
계룡산 갑사 참배하였네.
백제 25대
무령왕릉도
더 탐방하였는데
생거
흔적은
유물이 그대로 말해주었고
휴일 하루
분망하게
갔다가 돌아왔네, 그려!
공주 갑사는 네이버 자료에 의하면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 서쪽 기슭에 있는 천년 고찰이다. 창건연대는 백제27대 위덕왕3년(556년)에 혜명대사가 중건한 것으로 나온다. 그 뒤로 의상대사께서 도량을 설치하고 법당을 중수하여 사찰 규모가 커졌고, 원래 창건연대는 백제구이신왕 원년(420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갑사가 거찰로 발전한 것은 백제가 멸망한 후에 통일신라시대 위덕왕3년(556년)에 혜명대사께서 천불전과 진광명전을 중건하고 신라 의상대사께서 당우 천여칸을 중수하여 화엄지학지소를 창건하여 화엄종의 도량이 된후에 화엄종 10대 사찰로 번창한 것으로 전해온다. 임진왜란 때는 영규대사가 왜군에 항거하여 승병궐기의 거점도량이 되기도 했다. 갑사는 조선선조30년(1579년)에 정유재란시 침입한 왜구들에 의해서 한꺼번에 소실되었다가 선조37년(1604년)에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건을 시작으로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 고창이다. 갑사는 국보와 보물이 있는 문화재 지정사찰이다. 공주 갑사 삼신불괘불탱은 국보 제298호이고, 철당간은 보물 제256호이고, 팔각원당형 승탑은 보물제257호이고 동종은 보물제478호이고, 월인석보목판은 보물제582호이다. 그 외 유형문화재도 많은 사찰이다. 백제 제25대 무령왕릉과 왕비릉은 1971년에 배수로 공사중에 우연히 발굴되었는데 1500년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상태로 발굴되었다고 한다. 소재지는 충남 공주 송산리 고분군(公州宋山里古墳群)이다. 무령왕릉은 구조는 터널형의 전축분이고, 분구의 지름은 약20m이다. 무령왕릉(武寧王陵)은 공주송산리고분군(公州宋山里古墳群:사적)에 있는 7기의 고분 중에 하나로, 1971년 고분내 5․6호분의 침수 방지를 위한 배수로 작업중에 발견되었다.
무령왕릉은 풍화암반층의 경사면을 깎아 만든 것으로 분구의 지름은 약 20m이다. 능은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인 연도(羨道)와 시신이 안치된 현실(玄室) 그리고 배수구가 갖추어진 터널형 전축분(벽돌무덤)이다. 이러한 형식의 전축분은 풍수설에 따른 입지조건과 아울러 중국 남조(南朝)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108종 3,000점 가까이 되며 중요 유물은 다음과 같다. 먼저 연도(羨道)에서 발견된 것으로 돌짐승(석수,石獸)을 들 수 있다. 이 돌짐승은 높이 30cm, 길이47cm, 무게48.5kg으로 머리 중앙 부분에 닭 벼슬과 같은 철제 장식이 달려 있다. 무덤에서 악귀를 쫓아내고 무덤의 주인공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는 상상의 동물로 신선사상이나 도교 사상에 따른 중국 장례풍습이 백제에 전해진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갑사 참배하고 공주 한옥마을 관광하고 무령왕릉 탐방하고 늦게 귀가하였다. 일요일이라 KTX는 좌석표는 없고 입석표뿐이라 서서 귀경하였다. 서울서 공주역까지는 1시간 8분정도 걸린다. 공주역은 허허벌판에 설치가 되어서 택시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름이 공주역이니, 공주 시내에 역전을 처음부터 설치했다면 공주를 찾는 관광객들도 교통 편익이 편리하고 좋았을 터인데 무슨 연유인지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역을 시설했으니, 문제점이 참 많았다. 공주 한옥마을은 요즘에는 젊은 청년들이 많이 한옥 체험을 하기 위해서 찾아온다고 한다. 주차장도 자가용이 꽉차 있었고 한옥 숙소는 객실 청소 한다고 세탁물을 가득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아주 바쁘게 청소를 하였다. 얼벗님들! 휴일 공주 갑사 참배 단상이 었습니다.
여여법당 화옹 합장.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