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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송백(歲寒松栢)
세월과 추위에 관계없이 한결같은 송백이라는 뜻으로, 세태에 관계없이 제자의 한결같은 의리를 칭송한 말이다.
歲 : 해 세(止/9)
寒 : 추울 한(宀/9)
松 : 소나무 송(木/4)
栢 : 측백 백(木/6)
(유의어)
상풍고절(霜風高節)
설중송백(雪中松柏)
세한송백(歲寒松柏)
출전 : 세한도(歲寒圖) 발문(跋文)
이 성어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 발문(歲寒圖 跋文)에 나오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해(1843, 헌종9)에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집(大雲山房集) 두 책을 부쳐주었고, 금년에 또 우경(藕畊)이 지은 황청경세문편(皇淸經世文編)을 부쳐주었다.
去年以大雲晩學二書寄來,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이들 책은 모두 세상에서 언제나 구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니, 천만리 먼 곳에서 구입한 것이고, 여러 해를 거듭하여 입수한 것이지, 한 때에 해낸 일이 아니다.
此皆非世之常有, 購之千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 非一時之事也。
그리고 세상의 도도한 풍조는 오로지 권세가와 재력가만을 붙좇는 것이다.
且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趍。
이들 책을 구하려고 이와 같이 마음을 쓰고 힘을 소비하였는데, 이것을 권세가와 재력가들에게 갖다주지 않고 도리어 바다 건너 외딴섬에서 초췌하게 귀양살이 하고 있는 나에게 마치 세인들이 권세가와 재력가에게 붙좇듯이 안겨주었다.
爲之費心費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 如世之趨權利者。
사마천(司馬遷)이, “권세나 이익 때문에 사귄 경우에는 권세나 이익이 바닥나면 그 교제가 멀어지는 법이다” 하였다.
太史公云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疏。
그대 역시 세속의 거센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다.
君亦世之滔滔中一人。
그런데 어찌 그대는 권세가와 재력가를 붙좇는 세속의 도도한 풍조로부터 초연히 벗어나, 권세나 재력을 잣대로 삼아 나를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 不以權利視我耶。
사마천의 말이 틀렸는가?
太史公之言非耶。
공자(孔子)께서, “일 년 중에서 가장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대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셨다.
孔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소나무, 잣나무는 사철을 통해 늘 잎이 지지 않는 존재이다.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
엄동이 되기 이전에도 똑같은 소나무요 잣나무요, 엄동이 된 이후에도 변함없는 소나무요 잣나무이다.
歲寒以前, 一松栢也。
歲寒以後, 一松栢也。
그런데 성인께서는 유달리 엄동이 된 이후에 그것을 칭찬하셨다.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곤경을 겪기 전에 더 잘 대해 주지도 않았고, 곤경에 처한 후에 더 소홀히 대해주지도 않았다.
今君之於我, 由前而無加焉, 由後而無損焉。
그러나 나의 곤경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然由前之君無可稱, 由後之君, 亦可見稱於聖人也耶。
성인께서 유달리 칭찬하신 것은, 단지 엄동을 겪고도 꿋꿋이 푸르름을 지키는 송백의 굳은 절조만을 위함이 아니다.
聖人之特稱,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역시 엄동을 겪은 때와 같은 인간의 어떤 역경을 보시고 느끼신 바가 있어서이다.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아! 전한(前漢)의 순박한 시대에,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같이 훌륭한 사람들의 경우도, 그 빈객들이 그들의 부침(浮沈)에 따라 붙좇고 돌아섰다.
於乎西京淳厚之世, 以汲鄭之賢, 賓客與之盛衰。
그러고 보면 하규(下邽) 땅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방(榜)을 써 붙여 염량세태(炎凉世態)를 풍자한 처사 따위는 박절한 인심의 극치라 하겠다. 슬프다!
如下邳榜門, 迫切之極矣。悲夫。
(阮堂老人書)
발문의 끝에 보이는 적공(翟公)의 고사는 이러하다. “한(漢) 나라 때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실각하자 이내 그의 대문에는 참새 그물을 칠 정도로 인적이 끊기고 말았다. 그 뒤 그가 다시 정위가 되자 또 당초처럼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에 그는 대문에다 ‘죽고 사는 갈림길에 서봐야 교정을 알게 되고, 사업에서 망하고 흥해봐야 교태를 알게 되며, 벼슬길에서 귀천을 겪어봐야 교정이 나타난다(一生一死,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熊, 一貴一賤, 交情乃見)’라고 써 붙여 세상 사람들의 염량세태를 신랄하게 책망하였다.” (史記/汲鄭列傳)
세한송백(歲寒松栢)
歲寒以前一松柏也.
歲寒以後一松柏也.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 하나의 송백나무요, 추워진 뒤에도 하나의 송백나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발문에 나오는 글이다. 세한도는 투박한 풍격으로 널리 알려진 조선 후기 문인화의 대표작인데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으로도 유명하다.
추사는 만년에 제주도에 유배돼 많은 고생을 했는데 당시 역관(譯官)으로 중국을 자주 드나들던 제자 이상적(李尙迪)이 스승을 잊지 않고 중국에서 구한 귀한 책들을 보내주자 감격해 그에게 세한도를 그려주면서 그의 한결같은 의리를 칭송했다.
추사는 송백은 사철 시들지 않기 때문에 날씨가 추워지기 전이나 후나 한결같음을 강조하고 다만 공자께서 세한 이후를 들어 말씀하셨을 뿐이라고 쓰고 있다.
추사는 공자가 특별히 세한 이후를 들어 말한 것은 송백의 절개를 칭송하는 의미도 있지만, 공자 또한 세한에 뭔가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공자가 세한에 특별한 감회가 있어 그런 말을 했다는 풀이는 조금 과도한 해석이라는 느낌도 주지만, 추사의 귀양 생활이 그만큼 힘들었고 그런 처지에서 받은 온정이어서 더욱 감격스러웠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제 동지도 지나 한 해에서 가장 추운 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맹자는 일찍이 선비는 항산(恒産)이 없어도 항심(恒心)을 지닐 수 있지만, 서민은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는 말을 했다.
항산은 경제적 안정을 가리키고 항심은 도덕을 가리킨다. 날씨가 추워지면 추사처럼 높은 뜻을 지닌 선비도 힘들어 하는데 하물며 춥고 배고픈 서민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모두에게 팍팍하고 힘든 계절이지만, 나보다 추위를 더 크게 느끼는 이웃을 위해 자그마한 온기라도 베푸는 훈훈한 마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세한송백(歲寒松栢)
이 성어는 추운 계절에도 소나무와 잦나무는 잎이 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역경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굳은 절개를 의미한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
날씨가 추워진 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에 시듦을 안다고 풀이되며 역경에 처하여도 지조(志操)와 절의(節義)를 굽히지 않는 군자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말이다.
흔히 절개와 의리를 상징하는 말로 세한송백(歲寒松柏)이라는 말을 쓴다. ‘추운 겨울이 와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는 뜻이다. 즉 사람이 태평성대한 시대에 살 때는 별로 표시가 나지 않지만 큰일을 당하고 나면 그 사람의 절의와 지조를 알수 있다는 내용의 말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1844년에 제주도 유배지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논어 자한편의 이 글에 담긴 뜻을 되새기며,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에 그 뜻을 담아 내었다 하고, 의사 안중근(安重根)은 1910년 3월에 만주(滿洲) 뤼순(旅順) 감옥에 수감중에, 이 글을 정성스럽게 옮겨 적었다고 한다.
조선 전기, 이행(李荇)은 거제도로 유배되었을 때, 그곳에 작은 정자를 짓고 세한정(歲寒亭)이라 하였으며, 김부필(金富弼)은 거처하던 당을 후조당(後彫堂)이라 하였는데, 군자는 환난을 당하더라도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이 글의 뜻에 공감하고, 그 뜻에 따르려 했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세한송백이란 사자성어는 윗글에서 나온 것이며, 세한(歲寒)이란 날이 추워졌다는 말로, 세상이 어지러워졌다는 뜻이며, 이런 역경에서도 신념을 지켜 나가겠다는 굳은 마음을 세한심(歲寒心)이라 하고, 시절이 아무리 어려워도 절조를 잃지 않겠다는 맹서를 세한맹(歲寒盟)이라 하고, 세한맹으로 지키려 하는 그 절조를 세한조(歲寒操)라고 한다.
송백(松栢)은 소나무와 잣나무를 가리키며, 언제나 시들지 않는 상록수를 가리킨다. 그것은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시대에도 굽히지 않았던 대쪽같은 선비와 충정(忠情)을 다하는 충직한 충신들을 비유할 때 자주 쓰였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세한도(歲寒圖)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그림으로는 세한도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자인 역관(譯官) 이상적(李尙迪)에게 그려준 것이다.
추사는 자신이 지위와 권세를 잃고 유배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이 스승과의 옛정과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 준데 대한 답례로 이 그림을 그려 선사했다 한다.
탐욕과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오직 지조와 의리를 지키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유학자 추사가 그의 제자 이상적이 지킨 사제간의 의리를 추운 겨울의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에게 그려 준 그림이다. 그림의 소나무와 잣나무는 이상적의 지조와 인품을 상징한다.
김정희의 본관(本貫)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 추사(秋史),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파(果坡), 노과(老果)이고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1809년(순조 9) 생원이 되고,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 충청우도암행어사(忠淸右道暗行御史),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이조참판(吏曹參判) 등을 역임하였다.
24세 때 연경(燕京)에 가서 당대의 거유(巨儒) 완원(阮元), 옹방강(翁方綱), 조강(曹江) 등과 교유, 경학(經學), 금석학(金石學), 서화(書畵)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예술은 시(詩), 서(書), 화(畵)를 일치시킨 고답적(高踏的)인 이념미(理念美)의 구현으로 고도의 발전을 보인 청(淸)나라의 고증학(考證學)을 바탕으로 하였다.
1840년(헌종 6) 윤상도(尹尙度)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 되었다가 1848년 풀려 나왔고, 1851년(철종 2) 헌종(獻宗)의 묘천(廟遷) 문제로 다시 북청(北靑)으로 귀양을 갔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그림 완당세한도(阮堂歲寒圖)는 조선 후기의 화가 김정희가 그린 문인화이다. 크기는 23×61.2㎝이고, 종이에 수묵(水墨)으로 그렸다. 국보 제180호이다.
작가의 농축된 내면 세계에서 표출된 필선(筆線)과 먹빛의 담백하면서도 고담한 분위기는 문인화가 지향하던 사의(寫意)의 세계와 서화 일치의 극치를 보여 준다. 조선시대 문인화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두가지의 의미가 있다. 그중에 하나는 바로 그냥 눈으로 볼수있는 맞지 않는 원근법(遠近法)이나 투시법(透視法)이다. 이것은 아마도 유배지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삐툴어진 사회를 빗대어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두번째는 바로 그 그림에 삽입된 글이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잎이 다른 나무들 보다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여기에서 세한송백(歲寒松栢), 세한삼우(歲寒三友; 소나무, 잣나무 매화)라는 말이 나왔으며 모두 굽히지 않는 선비의 지조와 기개를 말이다.
또한 자신의 전성기때 화려한 시절이 봄여름이라면 지금처럼 유배되어 쓸쓸한 영어의 세월은 겨울이라 비유한 것인데, 여기서 진정으로 자신을 찾아주거나 알아주는 사람을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에 비유한 것이다.
부유하고 풍성할때는 서로 잘 모르지만 곤경에 처하거나 어려울때 진정으로 주변을 돌아볼수 있다는 아주 의미있는 말로 해석된다. 바로 지금과 같은 사회적 혼돈에서 그 빛을 구분하는 시절이 될거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리고 김정희의 호에서 엿볼수 있는 흥미있는 일화가 있다. 보통은 글씨의 대가로 인정할때 우린 문필가로서 김정희를 추사라 칭한다.
그럼 추사 다음으로 많이 씌였던 완당(阮堂)은 무슨 의미일까?
그 일화는 이러하다. 추사 김정희의 아바지인 김노경(金魯敬)이 사절로 청(淸)나라로 가게 되었는 데, 추사도 함께 따라 갔다.
순조(純祖) 9년(1809년)말, 연경(燕京)에 도착한 추사는 맨 처음 청나라의 젊은 학자 조강(曹江)을 만났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이었다.
옹방강은 학계의 원로로 경학과 문장에 능하고 특히 금석학(金石學)과 서화(書畵), 시(詩)에 조예가 깊었다. 당시 청나라의 학풍은 한(漢)나라 시대의 학문을 숭상하고, 송,명대(宋明代)의 성리학(性理學)을 배척하는 풍토가 주류였는데, 옹방강은 두 가지 입장을 절충한 학풍을 견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추사가 연경에 도착한 이듬해에 만났는데, 그때 옹방강은 78세의 노인이었고, 추사는 겨우 25세였다. 옹방강은 한나라와 송나라 절충의 학풍과 금석학(金石學) 및 서화(書畵)로 추사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완원(阮元)은 내각의 대학자를 거치고 태자의 교육을 맡았던 인물로 경학(經學)의 대가였다. 당시 49세의 장년이었던 완원은 청년 추사의 비범한 재주를 알아보고 극진히 환대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인연을 맺게된 완원은 추사의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을 비롯한 그의 한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추사는 옹방강과 완원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옹방강의 호인 담계(覃溪)와 보소재(寶蘇齋)를 본따서 자신의 호를 보담재(寶覃齋)라 짓기도 하고, 완원의 완(阮)자를 따서 완당(阮堂)이라고 했다.
자신과의 교분과 교감의 사람을 잊지 않으려 자신의 호를 정하여 그 초심을 잊지 않고 죽을때까지 간직하려는 그 성품에서 큰 스승이라 일컬지 않을수 없다.
그렇다 교감하고 교류하는 삶은 흥겨움이다, 그것들의 시작은 분명 소통에서 오는 교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소통하는 교감이 꽉 막혀있는 느낌이라 사뭇 안타깝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그가 제주도로 귀양간 지 5년째 되는 1844년에 그린 최고의 명작으로 꼽힌다. 허름한 집 한채를 두고 앞뒤로 한 쌍씩 그려진 네 그루의 나무가 그림의 요체다.
그림 설명에 논어 자한편의 세한송백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였고, 그림의 제목마저 세한도(歲寒圖)이니 우리는 흔히 집 앞의 두 그루를 소나무, 집 뒤의 두 그루를 잣나무라고 해설한다.
과연 그런가? 먼저 짚고 가야 할 부분은 세한도가 실제의 경치를 그린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인가 하는 점이다. 창문이 동그란 원창(圓窓)으로서 흔히 접하는 전형적인 우리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경이 아니고 추사의 마음을 표현한 상상화(想像畵)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독을 깨어 창문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니 원창을 우리 것이라고 하는 견해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에 세한도가 실경산수화라면 무슨 나무일까 하는 전제로 생각해본다. 추사가 귀양가서 살았던 제주도 대정(大靜) 일대는 바다에 가까운 평지로서 자라는 나무 종류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그것도 세한도의 나무 그림이 모두 바늘잎 나무이니 더욱 간단하다.
당시에 주위에서 추사가 볼 수 있는 바늘잎나무는 소나무나 곰솔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잣나무는 제주도에 자라지 않았으며 당시에는 전나무로 알고 있던 구상나무는 한라산 꼭대기 근처에나 있는 나무다. 지금 제주도에 흔한 삼나무는 일제강점기 전후에 들어온 나무일 따름이다.
세한도(歲寒圖)에서 보면 집 앞의 오른쪽 늙은 노목은 껍질이 거북 등처럼 갈라지고 비스듬히 자라고 있으며 늘어진 가지 끝의 잎 모양은 짧고 부드러운 맛을 풍긴다. 왼쪽 나무는 나이가 많지 않은 젊은 나무이며 껍질이 세로로 갈라진 것으로 보이고 줄기도 곧다.
소나무 종류는 노목이 되기 전에는 껍질이 거북 등처럼 갈라지지 않는다. 이런 특징들은 모두 소나무와 곰솔이 갖는 형태 특징이다. 즉 소나무는 잎이 부드럽고 짧은 반면 곰솔은 잎이 억세고 길다.
따라서 오른쪽 노목은 소나무, 왼편 나무는 잎이 촘촘하고 길며 솔잎을 휘어지게 그렸으나 억센 느낌이 그대로 와닿으니 곰솔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집 뒤의 두 나무를 생각해 본다. 원근법이 강조된 그림이 아니므로 실경이라면 나무의 실제 크기를 그대로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집 앞 나무보다는 더 지름이 가늘고 어린 나무로 볼 수 있다.
작게 그려져 나무의 특징을 찾아내기는 어려우나 줄기가 곧으며, 잎 모양을 상하로 직선 처리하여 집 앞의 젊은 소나무보다도 더 억세게 그려져 있다. 가지 뻗음이 수평인 것은 더 어린 나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 뒤의 두 나무는 모두 곰솔로 볼 수있다.
세한도(歲寒圖)가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라고 본다면 그림의 주 구성 요소인 네 그루의 나무들은 늙은 소나무 한 그루와 세 그루의 곰솔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 歲(해 세)는 ❶형성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岁(세)는 통자(通字), 亗(세), 嵗(세)와 동자(同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戌(술, 세)와 돌아 다닌다는(步) 뜻을 합(合)하여 순환하는 한 해를 뜻한다. 본디 戉(월; 큰 도끼)과 비슷한 무기(武器)로, 수확(收穫) 때마다 희생물을 죽여 제사 지내는 뜻을 나타냈었다. ❷회의문자로 歲자는 '세월'이나 '나이', '한평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歲자는 戉(도끼 월)자와 步(걸음 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戌자는 도끼 모양의 고대 무기를 그린 것이다. 그런데 도끼와 걸음을 함께 그린 歲자가 어떻게 '세월'이나 '나이'를 뜻하게 된 것일까?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고대에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사람들이 많았다. 歲자는 그러한 의미를 담은 글자로 '창(戌)을 들고 싸우면서 보낸(步) 시간'이라는 뜻이다. 歲자에 '한평생'이라는 뜻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歲(세)는 한자로 된 숫자 다음에 쓰이어 나이를 나타내는 말의 뜻으로 ①해 ②나이 ③세월(歲月) ④새해 ⑤일생(一生) ⑥한평생 ⑦결실(結實) ⑧수확(收穫) ⑨목성(木星: 별의 이름) ⑩제사(祭祀)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해 년(年), 해 년(秊)이다. 용례로는 해나 달을 단위로 하여 한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세월(歲月), 섣달 그믐이나 정초에 웃어른께 인사로 하는 절을 세배(歲拜), 세배를 하러 온 사람에게 대접하는 음식을 세찬(歲饌), 해의 첫머리를 세수(歲首), 그 해가 저무는 때를 세모(歲暮), 세밑으로 한 해가 끝날 무렵을 세만(歲晩), 해마다 바치는 곡물을 세공(歲貢), 섣달 그믐날 밤을 세제(歲除), 일년 남짓한 동안을 세여(歲餘), 세월의 현실 상태나 형편을 세색(歲色), 설 전후 추위라는 뜻으로 몹시 추운 한 겨울의 추위를 일컫는 말을 세한(歲寒), 사람이나 생물이 세상에 난 뒤에 살아온 횟수를 연세(年歲), 해의 처음을 수세(首歲), 지나간 해를 객세(客歲), 경축하거나 환호하여 외치는 말을 만세(萬歲), 지난해를 거세(去歲), 설을 쇰이나 해를 보냄을 과세(過歲), 수확이 많은 해를 영세(寧歲), 곡식이 잘 여묾 또는 그런 해를 등세(登歲), 풍년이 들어 태평하고 즐거운 해를 낙세(樂歲), 여러 해를 지냄 또는 그 햇수를 역세(歷歲), 섣달 그믐이 바싹 다가옴을 박세(迫歲), 이름과 나이를 명세(名歲), 나이가 어림 또는 어린 나이를 약세(弱歲), 추운 계절에도 혼자 푸르른 대나무를 일컫는 말을 세한고절(歲寒孤節), 추운 겨울의 세 벗이라는 뜻으로 겨울철 관상용의 세 가지 나무로 소나무와 대나무와 매화나무를 이르는 말을 세한삼우(歲寒三友), 추운 계절에도 소나무와 잣나무는 잎이 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역경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굳은 절개를 일컫는 말을 세한송백(歲寒松柏), 해마다 달마다 늘어남을 일컫는 말을 세가월증(歲加月增),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 뜻으로 세월의 지나감이 몹시 빠르다는 말을 세월여류(歲月如流), 해가 바뀌도록 오래 만나지 못한 얼굴이라는 뜻으로 오래 만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격세안면(隔歲顔面), 오랜 세월 또는 세월이 오램을 일컫는 말을 연구세심(年久歲深), 세월 가는 줄을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부지세월(不知歲月) 등에 쓰인다.
▶️ 寒(찰 한)은 ❶회의문자로 집에서는 풀을 깔고 잘만큼이라는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艸+艸(맹; 풀), 人(인)의 합자(合字), 춥고 밖에서는 얼음이라는 이수변(冫; 고드름, 얼음)部의 언다는 데서 춥다를 뜻한다. 집안에 풀을 깔고 사람이 누운 모양, 추위를 나타내며, 이수변(冫; 고드름, 얼음)部는 얼음으로 역시(亦是) 추위를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寒자는 ‘차다’나 ‘춥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寒자의 금문을 보면 宀자와 艹자, 人(사람 인)자, 冫(얼음 빙)자가 그려져 있었다. 특히 사람의 발이 크게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는 얼음이 있다. 발아래에 얼음을 그린 것은 집안이 매우 춥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이불도 없이 풀(艹)을 깔고 있으니 추위를 견디기가 어려운 모습이다. 해서에서는 모습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寒자는 이렇게 변변한 이불도 없이 차가운 방 안에 있는 사람을 그린 것으로 ‘차다’나 ‘춥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寒(한)은 ①차다, 춥다 ②떨다 ③오싹하다 ④어렵다 ⑤가난하다, 쓸쓸하다 ⑥식히다 ⑦얼다 ⑧불에 굽다, 삶다 ⑨중지하다, 그만두다 ⑩침묵하다, 울지 않다 ⑪천하다, 지체(사회적 신분이나 지위)가 낮다 ⑫추위 ⑬절기(節氣)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로 찰 냉(冷), 서늘할 량(凉), 찰 름(凜)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더울 서(暑), 따뜻할 난(暖)이 있다. 용례로는 정도에 너무 지나치거나 모자라서 가엾고 딱함을 한심(寒心), 춥고 차가움을 한랭(寒冷), 겨울철에 기온이 급작스레 내려가는 현상을 한파(寒波), 추위를 느끼는 병을 한질(寒疾), 가난하고 지체가 변변하지 못함을 한미(寒微), 추위와 더위 또는 겨울과 여름을 한서(寒暑), 추위로 말미암아 받은 손해를 한해(寒害), 겨울철의 찬 기운을 한기(寒氣), 살갗에 느끼는 차가운 감각을 한각(寒覺), 찬 기운과 서늘한 기운을 한량(寒凉), 가난하나 깨끗함을 한소(寒素), 몸에 열이 나면서 오슬오슬 춥고 괴로운 증세를 오한(惡寒), 몹시 심한 추위를 혹한(酷寒), 추위를 막음을 방한(防寒), 지독한 심한 추위를 극한(極寒), 몹시 혹독한 추위를 열한(烈寒), 추위를 피하여 따뜻한 곳으로 옮김을 피한(避寒), 찬바람을 쐬어 생기는 오한을 객한(客寒), 모진 추위나 추위의 괴로움을 고한(苦寒), 배고픔과 추위를 기한(飢寒), 추위를 견딤을 내한(耐寒), 친족이 없이 고독하고 가난함을 단한(單寒), 찬 것이 오면 더운 것이 가고 더운 것이 오면 찬 것이 감을 한래서왕(寒來暑往),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가까운 사이의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그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순망치한(脣亡齒寒), 빈한함이 뼈에까지 스민다는 뜻으로 매우 가난함을 일컫는 말을 빈한도골(貧寒到骨),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면 건강에 좋음을 이르는 말을 두한족열(頭寒足熱), 외로이 자는 방안의 쓸쓸한 등불이라는 뜻으로 외롭고 쓸쓸한 잠자리를 이르는 말을 고침한등(孤枕寒燈), 봄 추위와 노인의 건강이라는 뜻으로 모든 사물이 오래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춘한노건(春寒老健) 등에 쓰인다.
▶️ 松(소나무 송/더벅머리 송, 따를 종)은 형성문자로 鬆(송)의 간자(簡字), 枀(송), 枩(송), 柗(송)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公(공, 송)으로 이루어졌다. 잎의 색깔이 언제나 변치 않는 상록수(常綠樹)의 뜻이다. 소나무를 그 대표적인 것으로 삼았다. 그래서 松(송, 종)은 성(姓)의 하나로 ①소나무 ②더벅머리(더부룩하게 난 머리털) ③성(姓)의 하나 ④느슨하다 ⑤헐겁다 ⑥긴장(緊張)이 풀리다 ⑦기분(氣分)이 가볍다 ⑧여유(餘裕)가 있다 ⑨풀다 ⑩해이(解弛)하다 ⑪게으르다 ⑫거칠다 ⑬놓다 ⑭헝클어지다 그리고 ⓐ따르다(종) ⓑ좇다(종)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송백(松柏), 소나무나 잣나무 따위의 줄기에서 내솟는 끈끈한 액체를 송진(松津), 소나무의 꽃 또는 그 꽃가루를 송화(松花), 소나무와 대나무를 송죽(松竹), 소나무 숲을 송림(松林), 소나무 사이를 송간(松間), 소나무의 잎을 송엽(松葉), 소나무를 켜서 만든 널빤지를 송판(松板), 송충이로 솔나방의 애벌레를 송충(松蟲), 소나무 숲 속으로 나 있는 좁은 길을 송경(松徑), 큰 소나무를 거송(巨松), 노송나무의 준말로 늙은 소나무를 노송(老松), 오래 된 소나무를 고송(古松), 외따로 서 있는 소나무를 고송(孤松), 키가 작고 가지가 뻗어서 퍼진 소나무를 반송(盤松), 푸른 소나무를 창송(蒼松), 헌출하게 자란 큰 소나무를 장송(長松), 말라죽은 소나무를 고송(枯松), 소나무를 매우 얇게 켜서 만든 널을 박송(薄松), 소나무 베기 금지령을 어김을 범송(犯松),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남이 잘되는 것을 기뻐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송무백열(松茂柏悅), 소나무와 잣나무는 서리를 맞고 더욱더 무성해진다는 뜻으로 건강한 체질을 이르는 말을 송백지질(松栢之質), 가지가 아래로 축축 늘어진 키 큰 소나무를 낙락장송(落落長松), 솔을 심어 정자를 삼는다라는 뜻으로 바라는 일이 까마득한 것을 가리킴을 식송망정(植松望亭), 깨끗한 땅에는 소나무를 심고 지저분한 땅에는 대나무를 심음을 정송오죽(淨松汚竹) 등에 쓰인다.
▶️ 栢(측백 백)은 형성문자로 柏(백)의 속자(俗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百(백)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栢(백)은 ①측백, 측백나무 ②측백나무의 잎 ③잣, 잣나무 ④가까워지다, 다가오다 ⑤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껍데기를 벗겨 버린 알맹이의 잣을 실백자(實栢子), 백주라는 시를 지어 맹세하고 절개를 지킨다는 뜻으로 남편이 일찍 죽은 아내가 절개를 지키는 것을 이르는 말을 백주지조(栢舟之操), 소나무와 잣나무는 서리를 맞고 더욱더 무성해진다는 뜻으로 건강한 체질을 이르는 말을 송백지질(松栢之質), 추운 계절에도 소나무와 잣나무는 잎이 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역경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굳은 절개를 이르는 말을 세한송백(歲寒松栢)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