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토) 예레미야 40:7-16 찬송 263장
7. 들에 있는 모든 지휘관과 그 부하들이 바벨론의 왕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그 땅을 맡기고
남녀와 유아와 바벨론으로 잡혀가지 아니한 빈민을 그에게 위임하였다 함을 듣고
8. 그들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두 아들 요하난과 요나단과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느도바 사람 에배의 아들들과 마아가 사람의 아들 여사냐와 그들의 사람들이
미스바로 가서 그다랴에게 이르니
9.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그들과 그들의 사람들에게 맹세하며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
10. 보라 나는 미스바에 살면서 우리에게로 오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리니 너희는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을 모아 그릇에 저장하고 너희가 얻은 성읍들에 살라 하니라
11. 모압과 암몬 자손 중과 에돔과 모든 지방에 있는 유다 사람도 바벨론의 왕이 유다에 사람을
남겨 둔 것과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그들을 위하여 세웠다 함을 듣고
12. 그 모든 유다 사람이 쫓겨났던 각처에서 돌아와 유다 땅 미스바에 사는 그다랴에게 이르러
포도주와 여름 과일을 심히 많이 모으니라
13.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들에 있던 모든 군 지휘관들이 미스바에 사는 그다랴에게 이르러
14. 그에게 이르되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네 생명을 빼앗으려 하여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보낸 줄 네가 아느냐 하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믿지 아니한지라
15.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미스바에서 그다랴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되 청하노니
내가 가서 사람이 모르게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죽이게 하라 어찌하여 그가 네 생명을 빼앗게 하여
네게 모인 모든 유다 사람을 흩어지게 하며 유다의 남은 자로 멸망을 당하게 하랴 하니라
16. 그러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 이르되 네가 이 일을 행하지 말 것이니라
네가 이스마엘에 대하여 한 말은 진정이 아니니라 하니라 (개역 개정)
- 그다랴 총독의 유다 통치와 이스마엘의 그다랴 살해 음모 -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 함락 이후로부터 유다 남은 백성들이
애굽으로 이주하여 정착할 때까지의 일정 기간 동안에 있어서의
예레미야의 사역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제40-44장까지 계속되는
일련 기사의 연속 부분으로,
예레미야의 석방과 관련하여 언급한 어제 말씀(1-6절)에 이어
그다랴 총독의 유다 통치 및 이스마엘의 그다랴 암살 음모에 관련하여 언급한다.
이러한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전반부 40:7-12은 그다랴가 유다 총독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흩어졌던 군대 장관들과 인근 나라로 도피했던 유다 백성들이 모여든 사실과
그다랴가 대외적으로는 친바벨론 정책을, 대내적으로는 경제 부흥 정책을 펴
파괴된 유다의 재건에 심혈을 기울인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다음으로 후반부 40:13-16은 요하난의 그다랴에 대한
암몬 왕 바알리스와 이스마엘의 암살 음모 고발 및
이스마엘 처단 건의와 그에 대한 그다랴의 반응으로
그가 요하난의 이스마엘 제거 건의를 일축한 사실을 말씀한다.
여기서 이스마엘은 왕족 출신으로서(41:1)
그다랴가 유다의 통치자가 된 것에 불만을 품었고
때마침 유다의 재건을 원치 않은 암몬 왕과 의기 투합하여
그다랴 암살 모의를 하게 된 것이다.
한편 요하난의 제의를 거절한 그다랴의 태도는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한 것이나
사태의 심각성을 살피지 않은 것은 지도자로서의 치명적 실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본문은 우리에게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영적 실패를 노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찾는 악한 세력이 있음을 알고
이에 대해 철저히 경계해야 함을 교훈해 준다.
15절)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미스바에서 그다랴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되 청하노니 내가 가서 사람이 모르게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죽이게 하라
어찌하여 그가 네 생명을 빼앗게 하여 네게 모인 모든 유다 사람을 흩어지게 하며
유다의 남은 자로 멸망을 당하게 하랴 하니라」
요하난은 그다랴에게 이스마엘의 위협에 대해서 경고하였다.
하지만 그다랴는 요하난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요하난은 이 일이 다시금 일어서야 할 유다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였기에 또 다시 그다랴를 찾아갔다.
15절에 의하면 이번에는 비밀스런 가운데 일대일로 찾아갔다.
그리고 더 이상 이스마엘을 방치한다면 그다랴의 목숨이 위태롭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제 막 다시 시작하려고 모인 유다 사람들이
다시 흩어지는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하지만 그다랴는 이렇게 급박하고 위급한 상황 속에서의
요하난의 충언에 대해 거짓말이라며 그의 말을 그 자리에서 일축하였다.
물론 그가 이렇게 행한 데에도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이 처한 위치와 막중한 책임을 아는 지도자였다면
무작정 자기 견해와 맞지 않는다하여 요하난의 의견을 묵살하고 외면하기보다는
적어도 그토록 애절하게 말하는 요하난과 군 지휘관들의 말에 대한
구체적 진상을 가리는 노력 정도는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다랴는 이에 대하여 너무나 안이하였다.
그의 이와 같은 행동은 지도자로서 참으로 무책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유다의 주변 상황은 전쟁이 완전히 종식된 상태가 아니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그 전쟁의 여운은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고
모압, 암몬, 에돔 같은 주변의 이방 나라들은 언제든지 기회만 있으면
유다를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때문에 그다랴는 유다의 운명을 손에 쥔 자로 주도면밀하게 주변국의 움직임과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그들의 공격에 철저히 대비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려 드는 악한 세력들에 대하여 신속하게 대처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는 요하난이 제기하는 바에 대해 보다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사실 여부를 세밀하게 조사하여 사실 여부를 밝히고 그에 적합한 대처를 강구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서 여유로울 정도로 안이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러한 그다랴의 안이한 태도로 인하여 그 자신에게는 죽음이란 비참한 결과를,
그가 책임져야 할 공동체는 다시금 구심점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며 유랑하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댜랴가 이처럼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그가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대하여 지나치게 무관심한 결과이다.
이러한 일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나라의 역사를 통해서도 실례를 들 수 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가장 처참한 전란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부터 지금의 일본인 ‘왜(優)’에는 심상찮은 움직임이 여러 가지로 포착되었다.
이에 대해 이율곡과 같은 이는 당시 위기를 지적하며
이에 대처하기 위해 십만양병설과 같은 방비책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조선 조정의 어느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으며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정쟁, 당파 싸움을 일삼으며
도리어 사분오열(四分五裂) 갈라져 싸울 뿐이었다.
그 결과 조선의 강토와 백성들은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상해와 수욕을 당해야만 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우리 삶 속에,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위기가 찾아올지 모름을 항상 주시해야 한다.
또한 우리 인생에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고
처절한 절망 가운데 내몰 수 있는 위기들이 산적해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씀한다.(벧전5:8)
그리고 이러한 위험스런 인생, 위협적인 사탄의 공격 대상은
다름 아닌 깨어 있지 않은 자, 경계를 소홀히 하는 자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닥쳐오는 어떤 위기에도 너끈히 대처하기 위해
항상 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갈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