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새 세상에 서라는 루쉰 사상에 학생들 환호해요” 【짬】 루쉰 연구자 이욱연 교수
<루쉰 읽는 밤-나를 읽는 시간>(휴머니스트).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루쉰(1881~1936) 작품 해설서다. 이 교수는 해설서에서 주요하게 다룬 루쉰 소설과 산문을 주제별로 따로 묶은 작품집 <루쉰 독본>도 함께 냈다. 그는 고려대 박사과정 1년 차이던 1991년 루쉰 산문선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를 편역했다. 국내 저자의 첫 루쉰 산문선이었다. 이 책은 10만 권 이상 팔리며 1990년대 초반 한국 사회의 ‘루쉰 열풍’을 이끌었다. 그 뒤로 루쉰 소설과 산문집을 다섯 권 더 냈고 이번에 첫 해설서를 낸 것이다. 9일 서강대 연구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사상가인 루쉰에게 문학은 중국인의 허위의식을 일깨우는 창과 비수였다. 대표작 <아큐정전>과 <광인일기>는 물론 여러 산문집을 통해서 ‘중국인들이 전통에 사로잡혀 서로 잡아먹으려고만 한다’고 질타했다. 이런 루쉰을 두고 중국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마오쩌둥 은 “중국 문화혁명의 최선봉 장수였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 교수는 2014년부터 매년 가을 학기에 ‘루쉰과 현대’라는 전공과목을 개설해 가르치고 있다. 해설서는 이 강의록을 보완한 것이다. <루쉰 독본>에 실린 글도 수강생 호응을 기준으로 추렸다. “지금 한국 청년들의 고민을 중심에 놓고 도움이 될 루쉰의 글로 수업을 구성했어요. ‘기성세대와 어떻게 살 것인가’ ‘등급 질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여성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희망과 절망’ ‘기억과 망각’ 등의 주제였죠.”
청년들이 가장 흥미를 보인 루쉰의 사유는? “중간물 사상입니다. 루쉰 사상의 독특한 점은 자신은 어둠의 마지막 인물이며 새 시대의 주인공이 못 된다는 생각이죠.그는 내가 새 시대를 열어주겠다는 게 아니라 나는 어둠과 같이 쓰러질 터이니 청년들이 새로운 세상에 서라고 했어요. 자신을 포함해 어른들은 아무리 깨끗한 척해도 때가 묻어 있다는 거죠. 죄인 의식 혹은 희생 의식입니다. 역사가 발전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죠. 지금 한국 청년들은 어른들에게 그런 의식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학생들은 루쉰의 이런 생각이 담긴 ‘우리는 지금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할 것인가’ 같은 산문을 보며 통쾌해 하죠.”
그는 1985년 고려대 3학년 때 고 리영희 교수의 글을 읽으며 루쉰을 처음 만났다. 1991년 산문집 출간 때도 직접 리 교수를 찾아 서문을 받았다. “처음 루쉰을 만났을 때는 어려웠어요. 너무 큰 산이었죠. 이제는 내 나름의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길이 조금 보입니다.”
“리영희 교수 글 보며 루쉰에 관심” “지금도 다수주의와 근대 비판 등 유효” “청년들 다른 세계 상상 키우는데 도움”
1991년 첫 산문선 내며 ‘루쉰 열풍’ 주도
그는 한국 사회의 루쉰 붐이 1990년대 말 이후 시들해졌다며 말을 이었다. “루쉰의 사유는 독재나 언론 탄압 시기에나 적실하지 민주화를 이룬 한국 사회에서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에서죠.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왜냐고 하자 그는 근대와 다수주의를 비판한 루쉰의 사유를 들었다. 지금도 유효한 사고라는 것이다. “루쉰은 다수의 힘을 누구보다 믿지만 다수가 가진 어둠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민중이 떨치지 못한 노예 정신 같은 게 대표적이죠. 그 때문에 다수 민중이 건설뿐 아니라 파괴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수의 빛과 그늘을 늘 같이 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죠. 루쉰은 또 자기다움을 강조해요. 특히 생각의 자기다움이죠. 옛날부터 그래 왔고, 다수가 옳다고 해서 옳은 일이냐는 거죠. 요즘 사람들이 과잉 정치화하면서 자기 판단이 중지되기도 하잖아요.” 근대 비판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루쉰은 모든 문명에는 다 편향이 있다면서 근대도 역사의 한 시기일 뿐이라고 해요. 그래서 근대도 성취와 그늘을 함께 봐야 한다고 하죠. 이런 통찰은 청년들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도록 합니다.”
이 교수가 91년 편역한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와 일본 저술가 다케우치 요시미의 책을 중역해 87년 출판사 일월서각에서 펴낸 <루쉰문집>. “박정희 전두환 시절만 해도 루쉰 산문은 금서였어요. 다케우치 중역본도 금서 판정을 받았죠.”(이욱연) 그가 보기에 지금 청년들은 ‘사막 안의 폐소 공포증’을 앓고 있다. “사막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해요. 그래서 도저히 바뀔 수 없는 세상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죠. 문제의 근본이 체제와 사회 속에 있는 데도요.”
루쉰이 지금 있다면 청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그는 루쉰의 칼날이 향했던 중국 전통 사회의 등급 질서를 불러 냈다. 그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루쉰 연구서도 한국 사회의 등급 질서로 <아큐정전>을 푸는 책이다. “중국은 송나라 이후 유동적인 등급 사회가 되었어요. 황제만 세습하고 공이나 대부 등 신하를 포함해 다른 등급은 노력하면 밑바닥에서 올라갈 수 있었어요. 루쉰은 이 등급 질서가 사람들 사이에 벽을 치고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다고 봤어요. 상승하려면 기존 질서를 참고 견뎌야 했으니까요. 그는 이 질서를 깨려면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었을 때 이전 주인과 다른 새로운 주인이 되어아 한다고 했죠. 그렇게 제3의 시대를 열자고 했어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루쉰의 글은 소설 <고향>이다. “사람들이 왜 소통하지 못하는지를 다루고 있죠. 루쉰에게 고향은 사람과 사람이 하나 되는 상징입니다.돈이나 계급으로 갈리지 않고 소통해 만날 수 있는 곳이죠. 지금도 사람들이 갑을로 나뉘어 소통이 안 되잖아요. 맹자는 인을 ‘사람의 마음’이라며 ‘차마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것’이라고 했죠.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 사람의 마음이 사라지고 있어요. 세월호 유족이 단식하는 데 옆에서 피자를 먹기도 했잖아요.” 덧붙였다. “유교 문화에서 기원한 동아시아 등급 질서의 갑을 관계가 한국에서 자본주의 계급 사회의 갑을 문제까지 결합해 최악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루쉰 문학 수용자로 리영희 교수와 전우익(1925~2004) 선생을 꼽았다. “91년 낸 산문집을 보고 전우익 선생이 직접 연락을 해와 여러번 만났어요. 일본에서 나온 루쉰 자료집을 한장 한장 복사해 보내주시기도 했죠. 리영희 선생이 비타협적 저항정신이나 허위를 뒤집는 글쓰기 같은 루쉰의 후기 사상에 끌렸다면 전 선생은 개인의 자기됨을 강조하는 루쉰 초기 사상에 관심이 많았어요.”
재작년 한국어로 된 첫 루쉰 전집이 20권 분량으로 그린비출판사에서 나왔다. 그는 개인적으로 해오던 번역 작업 때문에 참여하지 않았다. “전집 번역은 한국의 루쉰 수용 과정에서 굉장히 큰 이정표입니다. 이제 일반인도 루쉰 글을 읽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큰 전환점이죠. 저도 부담을 덜었어요. 이제는 번역이 아니라 많은 루쉰 독자들과 생각을 나누며 루쉰 해석에 더 힘을 기울여야죠.”
마지막으로 루쉰 문학의 위대함을 물었다. “위선이 없는 거죠. 어둠 자체가 루쉰의 문학입니다. 삶이 본원적으로 지니고 있는 어둠이죠. 삶의 어둠 자체를 계속 드러내는, 절망적인 항전의 문학이죠. 계몽문학과 다른 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