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이었을까. 그의 침대 발치에 마련된 간이 침대에 허리를 펴고 잠시 누우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그의 코끝에 내 얼굴을 가져다댔다. 어둠 속에서 그가 빙긋 웃었던 것이다. 그가 웃었던가? 너무 작아서 소리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나는 분명 그의 입가에서 일어난 어떤 기미를 웃음으로 정확히 감지했다. 벽에 어슴푸레 보이는 시계 바늘이 새벽 한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왜……?”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표정을 살폈다. 환청이었을까? 그의 가쁜 숨결이 내 것인 양 콧속으로 훅 디밀고 들어와 심장에 박혔다.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눈은 반쯤 감긴 채 입은 쉬임 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기억)을 토해내고 있었다.
“영상자료원…….”
환청은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느렸지만 각별히 유정했다. 영상자료원? 뜬금없이 내뱉어진 말을 황급히 주워섬기며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또 무엇이 그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그는 매초마다 다르게 눈앞에 펼쳐지는 기억의 페이지를 따라가느라 한주일이 넘도록 제정신이 아니었다. 배에 차오르는 복수를 이삼 일에 이천에서 삼천 씨씨씩을 빼내다보니 피가 부족하고 부족한 피를 주먹만한 병에 담긴 누리끼리한 액체의 알부민으로 충당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는 오십 씨씨짜리 알부민을 두 병 연달아 맞을 때면 심하게 현기증을 일으키며 메스꺼워했다. 누런 액체가 병의 바닥에 깔릴 때쯤 그의 얼굴은 시뻘겋다 못해 검붉어졌고 갑자기 홀쭉해진 뱃거죽에 사지는 축 늘어진 채 혼곤히 잠에 드는가 싶다가는 잠도 아닌 의식의 혼란에 빠져 급기야는 헛소리로 이어졌다.
헛소리는 그의 눈앞에 나타나는 헛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앉아 있다가도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발작처럼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시뮬레이션!” 선뜻 내가 무슨 뜻인지 헤아리지 못하자 그는 천천히 말을 풀었다. “가상 현실이라고 하나? 대상이 겹으로 보이고 내 몸이 직각 이동하는 듯했어…….” 그는 그의 몸과 정신에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변화를 세세하게 내게 알리고 또 보호받아야 할 처지에 있었다. 어느새 나는 그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누구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 나는 정신은 금강석보다 더 단단하고 마음은 구리보다 더 유연하게 가지며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처해야 했다. 아이와 어머니, 그와 나를 통칭하는 우리라는 말에서 예전에는 그에게 무게 중심이 있던 것이 이제는 고스란히 내게 옮겨와 있었다. 내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태초의 어두운 심연에 홀로 던져진 듯한 당혹스러움과 외로움이 물밀 듯이 밀고들어왔다. “시뮬레이션 상태에 빠졌었어요.” 그가 전해준 대로 나는 담당 레지던트한테 빠짐 없이 알렸다. “뭐라고요?” 레지던트는 환자 보호자에게서 나온 ‘시뮬레이션 운운’ 하는 내용이 어이없었던지 잘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시뮬레이션, 그러니까, 제자리에 있던 대상이 왔다갔다하고 또 겹쳐 보이고…….” 나와 레지던트 사이의 대화를 그는 숨죽이며 주목했고 담당의는 그제서야 내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는지 핏속의 나트륨 수치와 칼륨 수치의 심한 불균형이 일어나 잠시 환각 상태가 온 것이라고 짧게 설명했다.
나는 잽싸게 병실 문을 나가는 레지던트를 뒤따라 나가서는 제발 헛소리를 멈추게 해달라고 그리하여 단 한 시간이라도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다시피 매달렸다. “약을 써서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잠을 잘 수 있게…….” 젊은 의사는 어떻게 해도 소용없다는 안타까운 표정을 잠시 지어 보이더니 조용히 내게 일렀다. “그 둘의 불균형만으로도 남편분은 돌아가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때그때 발생하는 이러한 불균형 상태를 대증요법으로 막아주는 도리밖에 없고 본 병에 대한 처방법은 아무것도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나는 황급히 돌아서 가는 바쁜 의사를 더는 붙잡지 못하고 석고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가 몹쓸 병에 걸린 것 같다는 불가해한 선고를 받은 날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나. 그때나 지금이나 봄은 봄이었다. 지나간 봄은 잔인했다고 누가 말했던가. 마른 황무지에서 새싹이 돋고 떠났던 새들이 돌아오고 햇살이 바람 따라 넓게넓게 퍼지고……. 잔인을 넘어서는 무한 불행과 악무한의 고독과 두려움을 무어라 이를까.
전쟁터나 다름없는 응급실에서 이틀째 맞은 아침 처음 주치의가 와서는 배를 한번 슬쩍 눌러보고 횡하니 가버렸다. 며칠째 뜬 눈으로 새우며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나는 그가 기대 누운 침대에 머리를 묻고 눈을 붙이려는 찰나였다. 금방 주치의와 다녀간 레지던트가 달려와 나를 깨웠다. 나는 바람을 일으키는 그의 빠른 몸동작에 깜짝 놀라 깨어나 얼결에 그를 뒤따르기는 했으나 직감적으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몹쓸 병이라면, 그게 무엇인지……?” 주치의는 영문을 모른 채 눈을 똑바로 뜨고 정색을 하고 서 있는 내게 냉정한 어조로 빠르게 반복해 말했다. “암입니다. 우리가 예상하는 두 가지 중에 이쪽 확률이 현재로선 80퍼센트이고, 그렇게 되면 4기입니다.” 암, 4기. 그래서 어떻게 된단 말인가. 저 사람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도대체 ‘암’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으면서도 다리는 사정없이 후들거리고 있었다. 등 저편에 누워 있는 그에게 눈물 젖은 얼굴로 차마 돌아설 수 없어 나는 응급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하늘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고 누군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에게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아무것도 내 주위엔 없었다. 내가 그의 보호자이듯 나를 붙들어주고 보호해줄 사람은 없었다. 공중전화 부스로 뛰어들었다. 지난밤 대학 동창 은유의 남편인 외과의 정연씨가 구세주처럼 떠올랐던 것이다. 당장 정연씨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가 이 사실을 번복해주기를 바랬다. 지금 이 순간 정연씨만이 아무것도 모른 채 고통받고 있는 소진씨를 구원해줄 것이었다. 뚜우―, 뚜우―. 이틀 전 정연씨의 권유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신속하게 응급실로 쳐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어젯밤 정연씨는 같은 병원에서 박사과정을 밟느라 야간 수업을 마친 후 들렀다가 그의 뱃속에서 뽑아져나오는 불그족족한 복수를 눈여겨본 후 나를 보호자 대기실로 불렀다. “정임씨, 이것은 순전히 만의 하나의 경우일 수 있는데, 어떠한 경우에도 대처해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로 얘기하는 거니까 이 순간 듣고 잊어버려도 되요. 만의 하나 그럴 수도 있다는 거니까요. 현재 제가 보기엔 결핵성 복막염일 가능성이 크지만……, 어쩌면……, 만의 하나……, 암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리가. 나는 만의 하나 암일 수도 있다는 그의 언질을 마음에 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무시해버렸다. 순전히 내가 듣고 싶은 대로 그의 말을 들었던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친구 남편이 보여주는 각별한 성의에 고마움을 표하는 정도의 귀 기울임으로 그의 말을 경청했지 그의 입에서 ‘암’이라는 단어가 나왔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리에게는 결핵성 복막염 정도도 불시에 찾아온 크나큰 시련으로 받아들이기에 벅찼던 것이다. 그런데 결핵성 복막염도 모자라 ‘암’이라니. 하룻밤 만에 보기좋게 악마한테 놀림당한 기분이었다. 그렇다 악마였다. 소진씨는 평생 악마와 한판 내기를 걸어보고자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악마와의 승부! 얼마나 무섭고도 유혹적인 명제인가. 우리는 기꺼이 악마의 꼬드김에 귀를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엇이 그의 귀를 먼저 잡아당겼나?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이것은 아니었다. 그가 정면으로 만나 겨루어보고자 한 것은 암이라는 악마는 결코 아니었다. 그가 미련 없이 신문사에 사표를 내던지고 귀를 열고 마음을 모은 것은 일찍이 저주받은 자들의 구원인 글쓰기, 글쓰기를 추동시키고 지속시키는 악마성에의 간절한 희구일 뿐이었다. 그 속에 그가 차선책으로 꾸린 세계의 지도가 오롯이 펼쳐져 있었다.
“그때 우리가 만났던 것 생각했어?”
대답 대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빙긋 웃었다. 웃음이 거두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입술은 바퀴를 단 듯이 쉭쉭 소리를 내며 바쁘게 움직였다.
1992년 11월 12일 오후 5시 예술의 전당 영상자료원.
이제 그가 살아온 서른다섯 해의 생애 중 이제 서른 살의 페이지가 그에게 펼쳐지고 있는 것인가. 나는 겁먹은 아이의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얼마 만의 웃음인가. 눈물이 맺힐 새도 없이 쏟아지려 했다. 그때 우리가 그곳에서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막 외출하려던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내가 날 만나고 싶으면 예술의 전당에 나가려던 참이니 영상자료원으로 오라고 그에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또 그리고 그날 밤 그가 느닷없이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우리는 지금쯤……. 생각의 둑이 터진 양 내 머릿속은 그날 그 장소 그에게로 달려갔다가는 5년여의 세월을 거쳐 다시 지금 어둠 속에 눕지도 안지도 못하고 세 개의 베개에 곧추 기댄 채 쏜살같이 내달리는 수없는 영상에 시달리고 있는 그의 야위고 야윈 몰골로 되돌아왔다. 우리가 집을 떠나 병원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 만난 것 후회하지 않지?”
나는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가. 말을 한다고 하긴 했으나 너무 유치한 물음이 되고 말았다. 육체의 고통이 그에게서 소리를 앗아가버리자 나도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소리 없이도 우리는 한 몸의 손과 발처럼 서로 어긋남이 없었다. 그는 여기가 어디냐는 듯 눈을 휘둥그렇게 떠본 다음 나와 눈을 맞추자 안심이 되었던지 힘없이 눈꺼풀을 내리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목구멍 속에 억눌려 있던 구역질이 터져나오려 했다. 입덧으로 핼쑥해진 나를 더욱 미안스레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참기 어려워 나는 그 앞에서 구역질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메스꺼움을 가까스로 안으로 삭이며 내 몸이 그의 딱딱하게 부푼 배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나는 그의 볼에 내 볼을 가져다대었다. 볼을 마주대고 있는 이 순간 세상이 정지해버리고, 그리하여 그도 나도 함께 영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기적처럼, 전설처럼……. 내 바람이 그의 볼에 압박을 주었던지 그의 입술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고요해졌다. 나는 그에게서 볼을 떼고 그의 감겨진 눈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눈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간 채 선하게 감겨진 그의 눈. 그에 대한 어느 기억보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는 출근길 차를 타고 있는 동안 내내 예의 눈을 감은 모습으로 잠을 자곤 했다. 공휴일이면 집에서도 아이와 함께 햇고구마를 김치 곁들여 먹는 시간을 제하고는 오전 오후 나른해지도록 낮잠을 즐겼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 잠을 자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너무도 쉽게 그리고 너무도 달게 잠에 빠져들곤 했다. 나는 속으로 그런 그의 느긋한 품성이 부러웁다 못해 잠에 대한 질투로 정발산으로의 소풍을 기획하곤 했고 그는 정발산에 가서도 나와 배드민턴을 한두 차례 치고 나면 어김없이 풀을 베고 아이와 한숨 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단잠을 자는데도 그의 몸에 살이 오르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차에 타거나 소파에 눕거나 하다 못해 내가 생일 선물로 사다준 허리받침이 긴 의자에서도 그는 늘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옆에서 내가 “뭐해? 잠자는 거야?” 하고 얄궂게 깨워 물으면 그는 눈을 뜨지 않은 채 가장다운 목소리를 가장하며 “으음, 구상!”이라고 짐짓 진중하게 내뱉었다. 내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때는 거의 없었다. 다만 나는 살이라곤 붙질 않는 그의 얇은 몸과 머릿속에 깃들인 놀랄 만큼 풍부한 구상(생각)을 인정하고 존중해줄 따름이었다. 어떤 이미지 뭉텅이가 머릿속에 들어오면 글쓰기를 시작해 유화를 그리듯 덧칠해가면서 초벌 재벌 손질해가는 나와는 달리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머릿속에 구성(그가 즐겨 쓰는 용어로 ‘와꾸’)을 쫙 짠 다음 일사천리로 써나가는 형국이었다. 내가 “무슨 구상을 그렇게 밤낮 없이 해?” 하며 그를 방해하려고 다그치고 보면 어느새 그는 조용해져 있었다. 잠이 든 것이었다.
“이건 아니야, 무엇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었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그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는 듯 환영을 쫓아가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의 몸 위로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정임아, 염려하지 마. 몸 속에 있는 불순물이 모두 빠져나가면 정상으로 될 거야. 나만 믿어.”
가엾은 사람. 어떻게 자기를 믿으란 말인가. 그는 언제나 나에게 오라버니처럼 말했다.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입원한 지 보름 만에 확진 결과가 나왔다. 암종증. 99.9%의 확증을 가지고도 복강 내에 퍼져버린 암세포의 센터(근원)를 찾아내지 못해 ‘○○암’이라고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서 암종증이란 생소한 병명으로 결론지어졌다. 암종증이란 모든 종류의 암이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을 때 이르는 말이었다. 그는 앞의 네 단계를 뛰어넘고 막바로 마지막에 이른 셈이었다. 그는 꿈에도 자기가 암에 걸리리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나 암이란 백혈병이란 에이즈란 나와는 상관 없는 남의 일로 생각하며 살듯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그래, 난 언제나 소진씨를 믿어. 그런데……,”
악성 종양이래. 그것도 약도 못 쓰는, 최악이야. 나는 하마터면 사실을 말할 뻔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되었다. 사실 나는 밤낮 없이 그를 지키면서 그에게 있는 대로 사실을 알리는 방법을 궁구하고 있었다. 그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가 이 사실을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 그러니까 가장 인간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거꾸로 내가 그의 자리에 누워 있고 그가 내가 된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오오 소진씨, 제발 제게 그 길을 알려주소서. 너무도 잔인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제 입으로 말하라는 것입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나는 두려움 속에 치를 떨며 그 순간을 맞을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아주 나쁜 사람들이야.” 그는 보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하게 병명을 말해주지 않는 냉담한 의료진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나쁜 사람들. 그 말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비난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의 장본인이 나처럼 여겨졌다. 그를 보호한답시고 그가 그토록 안타깝게 기다리는 결정적인 사항을 미루고만 있지 않은가. 그의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이는 바로 그였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고개를 떨구는 일이 많아졌다. 복통의 괴로움과 환각으로 인한 불면 이외에 변을 누지 못해 며칠 동안 고통을 받았고 변을 누게 되는가 싶어지자 또 며칠 설사로 이어져 마침내는 화장실에 걸어가는 일조차 힘들어졌다. 그는 두 팔로 침대를 받치고 고개를 바닥으로 뚝 떨군 채 도저히 추스려지지 않는 몸에 절망했다. 그래도 나는 입을 열지 못하고 그를 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수발 시중에만 열중했다.
“태형아, 이리 왓!”
그의 팔이 힘차게 허공을 가로질러 누군가를 붙잡으려 했다. 나는 재빨리 그의 팔을 거두어 내 손 안에 부여잡았다. 그 동안 잊고 있었던 태형이가 생각나서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는 아이에게 한번도 큰 소리친 적이 없었다. 아이가 사랑스러워 볼을 살짝 꼬집어주거나 발가락을 깨물어주기에도 아까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런 태형이 그의 말을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태형이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해서…….”
꿈이었나. 아니 꿈이 아니었다. 그에게 더이상 꿈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꿈이란 환각의 실체들을 걷어내고 우리의 적당히 고달프고 적당히 행복했던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불과 한 달 전의 현실로. 나는 고였다가 방울져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그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는 퀭한 눈으로 그러나 순하디순하게 나를 어루만지며 뼈만 남아 더욱 커다랗게 변한 손으로 까칠한 내 머리칼을 쓱쓱 쓰다듬었다. 나도 시큰거리는 콧부리에 힘을 주며 누이처럼 그의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손을 뗀 지 불과 십 분도 되지 않아 내 손은 다시 능숙하게 그의 불편한 곳을 찾아가 쓸어주었다. 뱃속의 복수가 불어날수록 복강 내의 뼈들을 위로 치받아 결림이 심해졌고 복수를 빼내고 나면 빼낸 만큼 그 동안 위치를 잃었던 뼈들이 아래로 내려앉으면서 말할 수 없는 통증을 몰고왔다. 그는 결림과 통증을 오로지 내 손끝에 의지한 채 묵묵히 견디고만 있었다. 나는 약도 못 쓰고 시각시각 줄어드는 그의 몸무게를 지켜볼 뿐 주문을 걸듯 그의 배를 애무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시계방향으로 배를 쓸어주되 손끝에만 아주 미세하게 힘이 들어간 상태를 좋아했다. 그렇게라도 그가 편안할 수 있다면 나는 내 손마디가 뭉그러질 때까지 그의 배를 쓸어주고 또 쓸어줄 텐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깐 졸았는지 손바닥만한 창문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창문 위에 매달린 팬은 여전히 덜덜덜덜 돌아가고 있었고 같은 방의 세 채의 다른 침상에서는 환자와 보호자가 뒤엉긴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천생연분이구먼, 천생연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않는 바깥양반이나, 힘들다는 내색 한번 않는 안쪽이나이. 똑겉이 말소리 없이, 둘이 그저 그림 겉구먼. 아즉 젊은 양반들이, 그래 무슨 병이랴아? 그라고 잠은 언제 자남? 쌩으루 날 쌔는 것 겉던디? 저 새댁은 통 먹지도 않고……, 쯧. 환자를 간호하려면 환자보다 더 잘 먹어야 하는 게 철칙이여 철칙.” 우리와 대각선에 놓인 아저씨는 순천에서 광주를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된 간염환자였다. 오전에 잠깐 집에 다녀오니 병실 문 옆에 웬 자질구레한 이삿짐 보퉁이가 부려져 있었다. 까무잡잡한 순천댁 아주머니는 오는 날부터 머리를 질끈 묶어 머리채를 뒤통수 높이 올려붙이고는 병실 바닥이고 복도고 할것없이 수시로 물 젖은 마대 걸레를 들이미는가 하면 공동 냉장고와 공동 욕실도 부지런히 오갔다. 처음 우리가 703호라 쓰인 이 방에 들어왔을 때는 모두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들이 침대에 앉아 우리를 맞아들여서 보통 민망한 것이 아니었는데 40대 후반이기는 했지만 순천아저씨 내외분이 들어와서는 병실이 활기 아닌 활기를 띠었다. 순천댁은 일주일을 못 넘기고 잔뜩 근심을 담은 얼굴로 퇴원장을 요구해 광주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순천댁이 한 한마디가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큰 병원이라고 더 나은 것도 없네라이. 옘병 검사만 받다 판나부렀어. 여그 오면 금시 싹 나아뿌릴까 믿었는디, 여나 거나 깝깝하구먼. 이 참에 확실히 안 것은 병 고치는 데가 병원이 아니라 병 더 나는 데가 병원이라는 것이제잉!” 우리가 들어오고 나서 703호 병실은 우리를 제하고는 벌써 세 팀이 바뀌었다.
창밖으로 날이 새고 있었다. 나는 거칠게 돌아가는 팬을 노려보았다.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온 한기가 그대로 살 속에 박혀 내 몸뚱어리는 냉동실에서 이끌려온 정육점의 고깃덩어리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배 위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뱃속에 새로 자리잡은 생명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이제 겨우 3개월이 되었을까 말까. 움직임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지난해 초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 들으라는 듯이 말하곤 했다. “이번엔 딸을 낳을 거다!” 그의 너스레에 정작 그의 소망을 실행해야 할 나는 난색을 하며 멀찍이 물러나 앉았고 친구들은 그의 확고부동한 목소리 톤에 폭소들을 하며 농담을 얹었다. “그래, 이번에는 니가 낳는 거냐?” 그의 가슴팍은 언제나 얇고 여위었으나 속은 차돌박이처럼 단단했고 나는 그 속에 그의 2세에 대한 자신감이 깃들여 있음을 보고 놀라곤 했다. 결국 일 년여의 그의 대외용 너스레와 암묵적인 압력을 견디다 못해 올 초 그에게 지고 말았다. 내가 그를 한번이라도 이긴 적이 있었던가. 결혼하는 순간부터 아니 그를 만나는 순간부터 그를 이겨내는 수가 내게는 없었다. 그는 언제나 내게 지는 듯이 이기는 강한 사람이었고 겉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듯이 가냘프게 보이면서도 안으로 모든 것을 갖춘 올찬 사람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맨몸으로 시작하다시피한 우리의 생활이 올해부터는 어느 정도 안정 국면에 들어갈 참이었고 무엇보다 어머니와 아이, 우리 가족 구성원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해 그와 내가 열어가야 할 미래에 대한 자신감도 그만큼 넘치고 있었다. 아이 하나로 족하다는 처음의 내 결심이 아이가 자라나면서 생각이 바뀌어간 탓도 있었다. 부모로서 아이에 대한 가장 큰 의무는 교육환경이나 경제적인 뒷받침보다 세상살이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피붙이를 갖게 해준다는 것.
“정임아,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그의 표정을 주시하며 졸다깨다 한 새벽녘엔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기괴한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어둠을 가르며 내가 의아해하고 있는 사이 눈을 뜨지 않은 채 그가 물어왔다. 그는 밤의 대부분을 창문 쪽 침대 난간에 두 팔을 얹고 그 위에 머리를 숙이고 있거나 침대 난간에 등을 뻣뻣이 기댄 채 반쯤 뜬 눈으론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어디쯤 가고 있는 것 같아?”
나는 그의 물음에 담담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태국쯤?…….”
나는 그의 생각을 수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전생의 어느 한 시기로 끌려가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일제시대의 좁은 감방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디로? 무엇이 우리를 끌고 가고 있는가? 그 이상으로 생각을 잇는 데 나는 한계를 느꼈다. 생각의 끝에 다다르면 검은 내부를 감추고 있는 둥그런 항아리 입이 내 의식을 뒤덮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본능적으로 무섭도록 이성적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게 위협적으로 다가온 현실에 대한 자각이 그 이상으로 생각을 끌고 올라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다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통과해야 할 어둡고 긴 터널의 반도 못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이 터널을 빠져나가면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그래, 나도 꼭 태국에 온 것 같아.”나는 목소리에 고이는 습기를 억제하며 그의 말에 동의해주었다. 그가 태국에 가보았던가? 그가 가본 데라고는 미아리 산동네의 이구석 저구석, 그러니까 장석조네 사람들이 올망졸망 모여 살던 기찻집 주변과 그가 고철 부스러기를 주우러 다니던 동방이라고 부르는 언덕배기, 그리고 아버지가 들고나던 돌산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지난해 한 열흘 중국을 다녀온 정도가 그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멀고 긴 나들이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태국이라고? 나는 그가 왜 뜬금없이 태국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이 방을 일제시대 감방처럼 느낀 것처럼 태국의 어느 어수선한 여관방처럼 낯설게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낡고 지붕이 낮은 병실에 거주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낯선 것이었다.
나는 가만히 그의 손을 이끌어 내 배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숨을 한 번 흡 들이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아이만 생각하기로 해, 응?”
내 뱃속에 그의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 그것 이외에 그에게 용기를 줄 길이 내겐 없었다.
“너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정임아, 미안하다.”
아니었다. 그가 내게 미안해할 일이 아니었다. 내 배 위에 서로의 손을 포개고 우리는 숨죽여 흐느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눈물겹게도 그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 그가 나는 한없이 고마웠다. 뱃속의 아이를 의지해서 그가 소생하기만 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어느 날 복도에서 절망적인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정연씨가 내 배를 주목하며 물었다. 외과의인 만큼 이성적인 안목이 번득이는 질문이었다. 나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킨 다음 의연히 대답했다. “그것이야말로 너무나 쉽게 답이 나와 있지요.” 정연씨는 매주 수요일마다 들러서는 소진씨의 차트를 정밀하게 읽고 나름대로 분석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소진씨는 주치의의 순간적인 회진보다는 정연씨의 설명을 귀담아들었고 정연씨가 늦어지거나 다른 사정으로 오지 못하는 날에는 매우 답답해하며 눈이 빠지게 그를 기다렸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낳을 겁니다. 이 아이는 소진씨가 제게 준 마지막 선물이에요. 3년 전 태형이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지요. 그이는 형이 세상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아버님 곁으로 가셨다고 썼습니다. 대신 태형이 태어났으니, 이 땅의 총수는 결국 불변이라고요.” 정연씨는 대견함 반 안타까움 반의 눈길로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지금 누구보다도 정임씨가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실 전 소진씨를 이런 인연으로 뒤늦게 만났지만, 소진씨와 정임씨를 만나고 돌아간 후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외과 의학도로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무수한 젊은 죽음들을 경험했지요. 하지만 이번 소진씨와 같은 경우는 저에게 간단하지 않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소진씨가 저와 같은 나이이기도 하고 또 정임씨가 제 아내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해서 더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 소진씨의 병은 아주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점을, 앞뒤 경황이 없겠지만, 정임씨가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서운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린 친구이니까, 뱃속의 아이에 대해 좀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정임씨가 뱃속의 아이를 어떻게 한다고 한들 아무도 정임씨한테 뭐랄 사람은 없습니다. 가톨릭 신자조차도 지금 상황에서는 입을 다물 겁니다. 저 역시 독실한 크리스천이지만 이론과 현실은 이만큼 거리를 가지고 있고 잔인하다는 것을 감히 깨닫습니다.” 나는 정연씨가 내민 손을 마주잡고 힘을 힘껏 준 다음 엘리베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떼며 말했다. “정연씨, 솔직히 밤이면 밤마다 뱃속의 아이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 아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 아이가 태어날 때쯤이면, 그때쯤이면, 소진씨나 저나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당장 내일, 아니 길어야 몇 달 후, 가까운 미래의 일이지만 전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모른 채 살아온 사람이 저입니다. 제 나이 겨우 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요. 소진씨가 지금껏 작품 속에서 끈질기게 매달려온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한평생 불행하게 살다 가신 아버지였지요. 그가 제 곁에서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끙끙거리고 있을 때 저는 무슨 생각을 한지 압니까. ‘그래 당신 잘났다. 당신은 잘났든 못났든 얼금뱅이든 개흘레꾼이든 아버지라도 있었잖느냐, 아버지라는 존재의 그늘이 있었잖느냐, 난, 당신이 안쓰러워 죽고 못 사는 그런 아비라도 있었으면, 나도 날 낳아준 애비한테 불경스럽게도 개흘레꾼이라는 상스러운 이름을 붙이더라도 그런 대상이 한 세상 함께 했었으면 하고, 한없이 당신이 부럽다’였죠. 그러니 지금 제 머릿속은 어떻겠습니까. 못 먹고 못 자고 똥물조차 넘어오지 않는 몸으로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버티고 있는 지가 한 달이 되어갑니다. 무슨 힘으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저조차 신기한 일입니다. 초인은 아닐 텐데 말이지요. 하루하루 목숨을 줄여가는 사람과 하루하루 자라나는 생명을 동시에 바라보며 껴안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바로 저입니다. 저에게 온 그 둘의 운명을 저는 저버릴 수 없습니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이를 우두둑 갈고 있었다. 정연씨에게는 빠뜨리고 말을 못 했지만 태형을 위해서라도 이 아이는 세상에 꼭 존재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정연씨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염려와 조언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었다.
정연씨가 돌아가고 어두운 복도를 걸어오면서 3년 전, 태형이 태어났을 때를 상기했다. 작품에서는 줄곧 화두로 삼아온 것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몸부림이었지만 역으로 그는 간절히 한 아이의 아비가 되기를 바랐다. “한시라도 빨리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습니다.” 결혼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으면서 그는 매번 철부지처럼 나에게 결혼을 졸랐다. “궁전에 온 것 같아요.” 신행에서 새 살림집으로 돌아와서 첫 밤을 보내는 날 그는 원앙이 수놓인 금침을 펴는 내 손을 부여잡았다. ‘궁전이라고?’ 나는 크게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얼른 안으로 접어넣으며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내가 과연 어떤 사람과 결혼한 것일까,라는 뚱딴지 같은 의문이 새삼 고개를 들었고, 비로소 내가 결혼한 사람이 머물고 있는 생각의 언저리를 공유해야 하는 일이 내게 주어졌음을 스스로 상기시켰다. 나는 그의 순진한 눈동자를 앞에 두고 ‘궁전’ 같다는 이 집의 의미를 마음속에 되새겼다. 차마 집이라고 말할 수 없이 작고 초라했던 그의 미아리집이 떠올랐다. “내겐 너무 과분해요, 이 모든 것이.” 그는 자못 진지해졌고 나는 잠자리를 마저 펴지 못하고 그에게 손을 붙잡힌 채 이불 위에 앉은 황금빛 원앙만 바라보았다.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그는 내가 결혼하기까지 번뇌와 망설임으로 보낸 시간이 헛되다고 할 만큼 가정에 충실했고 주어진 가장 역할을 흔쾌히 수행해나갔다.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그가 바친 순정한 마음을 나는 고스란히 내 몸에 받아들였고 그의 지난한 정을 뱃속의 아이에게 전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그는 세상을 얻은 듯이 뿌듯해했다.
“태형이 보고 싶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다만 웃을 뿐. 나는 그의 눈매며 코며 입이며 귀를 물수건으로 차례차례 닦아주었다. 아이를 만나기가 두려워서 아이에게 자신을 보이기가 부끄러워서 그는 아이가 보고 싶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아?”
내가 잘못 물어본 것처럼 그는 휘둥그렇게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면서
“집에 가면 어떻게 해? 낫지도 않았는데.”
하고 나무라듯 말했다. 나는 낫겠다는 그의 의지가 고마우면서도, 그 고마움을 뚫고 무섭게 치받고 올라오는 절망감에 숨을 죽이고 말았다. “우리도 양성이길 바랐는데, 불행하게도 악성입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담당의는 기계적인 말투로 그에게 쏜살같이 말했다. 그는 우물쭈물 물러서는 담당의에게 예의를 갖춰 절을 했다. 나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가 어떤 반응을 하더라도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해야 할 것을 담당의가 하고 나니 서 있던 바닥이 푹 꺼져버린 듯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인가. 누구인가. 부끄러웠다. 이제 그가 나보다 모르는 것은 없었다. 나는 그의 곁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나는 불안해졌다.
“눈사람 속에 깨진 항아리를 감춰두고 하루 종일 나갔다 들어오니깐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맞이하는 거야. 평소와 다름없이. 엄마가 쳐댈 악다구니를 기대하며 잔뜩 겁을 집어먹고 슬금슬금 들어왔던 내 심정은 어땠겠어. 소설의 결론을 어떻게 맺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지. 그런데 따로 결론이 없는 거야. 그냥 그렇게 끝나는 거지. 있을 거라는 것이 없을 수도 있는 거. 황당함 저편으로 새로운 지평이 확 열리는 기분이었어. 결론은 달리 없이. 그게 세상인 게지. 후후.” 지난 연말이었던가. 퇴근길에 그를 태우고 자유로를 달리고 있었다. 행주산성을 끼고 이어지는 커브길을 도는데 그는 모처럼 신이 나서 구상을 마치고 막 쓰기 시작한 소설의 대강을 이야기했다. 그런 일은 종종 있어왔던 터였지만 그날만큼은 그가 꽤 흥분해 있었다. 아마 『열한 살의 푸른 바다』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었다. 동화를 탈고하고 나서 그는 한 달 반 동안 행복해했는데 이유는 자기의 아이가 커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써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아비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아이도 알아볼 수 있는 일을 해낸 뿌듯함이 옆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오래갔다. “눈사람 속의 항아리. 어때, 뭔가 오는 게 없어?” 어머니와 함께 고모댁에 가 있는 아이를 데리러 상계동에 갔다가 애 데리고 오기가 수월찮았는데 앉은 자리에서 금방 데려가려느냐는 어머니의 퉁바리에 그는 아이 이름도 못 불러본 채 돌아나오면서 그 길로 미아리에 들렀던 모양이었다. 내가 새로 시작한 연재를 잘 써내라는 뜻으로 그는 일찌감치 짐 싸보내듯 아이를 어머니한테 딸려 고모댁에 보냈고, 나는 애까지 밖으로 내몰면서까지 글 쓰는 티를 내고 싶지 않다며 그에게 부득불 어서 아이를 데려오라고 했다. 그는 연말연초에 집중된 밀린 원고를 써대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술에도 웬간히 지쳐 있었지만 내 말에 순순히 반나절 시간을 내어 아이를 데려오겠노라고 했다. 계속 원고에 술에 밀리느니 바람이나 한 번 쏘일 겸 소재도 찾을 꿍심이 없지 않았던 거였다. 그 길에서 찾아낸 이미지가 눈사람 속의 항아리였다. 저 좋아서 글쓰기에 몸을 내맡겼지만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고 오히려 고역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가 제일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소재가 몰캉몰캉하게 김이 나는 살아 있는 이미지와 함께 잡힐 때에는 열에 들떠 유난히 말이 많아졌다. “눈사람 속의 항아리라.” 나는 핸들을 잡은 채 흔들림 없이 앞만을 응시하며 웬 항아리 게임을 나와 벌이려느냐고 그에게 우스개 농담을 던졌다. 그가 이번에 항아리 소설을 써낸다면 둘이 둘씩 숫자로는 비기는 것이었다.
“우리 병원을 옮겨야 할 것 같아.”
나는 한껏 주눅이 든 목소리로 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의 몸은 폭발물이라도 품은 양 툭 건드리면 터질 듯이 벅차게 느껴졌다. 지레 짐작이었나. 그는 담당의가 다녀가기 전이나 뒤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았답니다. 종수씨.”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길에 들러 소진씨 곁에 머물다가는 병실 문을 나서는 종수씨를 배웅하다가 참았던 오열을 터뜨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꺼, 정임씨.” 종수씨는 얼굴 근육을 험하게 일그러뜨리며 뚫어져라 내 얼굴을 응시했다. “몇 달, 아니 두 달, 한 달도 못 살지도 몰라요.” 종수씨는 하루도 빠지는 일 없이 아침 저녁, 심지어는 새벽까지 우리를 찾아와서 누구보다 소진씨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저쪽(암센터)에서도 도리가 없다는군요. 지금 상태로는 약조차 엄두도 못 내지만, 우리가 원한다면, 몸 상태가 조금이라도 양호해지는 시기를 봐서 약을 써보는 선에서 손을 떼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퇴원을 하든지 하라고…….” 내 입에서 퇴원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나는 그가 겪고 있는 시뮬레이션 현상이 전이되어온 듯 잠깐 의식이 명멸하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이 병원에서 무얼 했다고 이제 와서 퇴원을 하라는 겁니꺼!” 듣다 못해 종수씨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 몸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종수씨, 소진씨를 살려야 해요! 꼭 살리고 말겠어요! 저는 종교가 없지만, 이제부터 제 종교는 기적이에요. 기적!” 나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창밖 한 군데만을 바라보며 마력을 모으듯 울부짖었다. “정임씨, 병원을 옮깁시더. 이런 극악한 병실에 있는 소진이나 정임씨나 더 눈뜨고 못 보겠슴더. 예?” 종수씨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허겁지겁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무슨 방법이 있을 깁니더!” 나는 눈물 젖은 눈으로 꼼짝하지 않은 채 닫힌 엘리베이터 문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문이 닫히려는 찰나 그가 내게 던진 마지막 구절이 귓가에 쟁쟁했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 서로 피붙이 형제보다 더 의지하며 살던 종수씨였다.
“병원을? 으응, 그렇지.”
그는 중요한 사항을 잠시 망각했던 듯 기억을 환기시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복도에서 어느덧 슬리퍼 오가는 소리가 분주하게 들려왔다.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시 반이었다. “정임씨, 한방 쪽으로 옮겨봅시더, 예?” 오후가 되기도 전에 종수씨는 달음박질 선수처럼 내게 달려와서는 애원하듯 말했다. 나는 종수씨의 의견이라면 무엇이든지 좇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곧 소진씨의 마음이기도 했다. “그쪽에서 최선을 다해보겠다고요.” 이쪽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되 처방법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양의학, 그러니까 과학적인 원칙에 입각한 통계에 따른 대증요법에 소진씨의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의 의사들이란 그러니까 과학자의 다른 이름일 뿐 인간의 마음까지 아우르며 보듬어가는 존재들은 아니었다. “그쪽에 길이 있을지도 모릅니더. 우리 몸이란 잘 맞는 약재 한 가지만 찾으면 불가능에서 기적이 일어나듯 거짓말처럼, 정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낫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거예요. 정임씨, 이쪽에서는 확실한 진단명도 내리지 못하고서, 이제 와서 나가라는 것 아닙니꺼.” 종수씨는 마치 그곳에 가면 나아질 수 있기라도 하듯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나를 설득하려 하였다. 나는 종수씨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그에게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언젠가 정연씨가 일렀던 말이 생각났다. “중심은 여기에 두되 밖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십시오.” 정연씨의 말에 힘을 얻어 이곳에서 보내는 동안 한방 쪽의 지원을 계속 받아온 것은 사실이었다.
“정임아, 지금까지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차근차근 말해주겠니?”
아! 나는 절로 탄식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나는 그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심지어는 내가 그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쩔쩔매면서도 그는 다 알면서 그저 나를 건너다보고 있으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다시 며칠 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주치의의 통보를 접하던 날 아침에 빠졌던 혼란이 되살아남과 동시에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이고도 가장 덜 놀랄 수 있는 대답을 찾고 있었다. 그는 침대 난간으로 등을 끌어올리려 애를 쓰며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듯 내 입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이없이 그를 쳐다보다가 그가 편안할 수 있는 자세를 눈으로 그려본 다음 그의 겨드랑이에 내 머리를 끼워넣고 그의 몸을 위쪽으로 곧추 세워주려고 했다.
“그러니까, 소진씨는 악성 종양이야. 어디에서 연원되고 있는지 중심을 찾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지. 다만 세포가 복수로 인해 복강 내에 퍼져 있대.”
나는 그의 축 처진 몸을 끌어올리느라 시뻘게진 얼굴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심조심 그에게 말해주었다.
“으음, 그랬구나.”
그는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흐흡 숨을 들이마시고는 눈으로 한껏 부풀어오른 배 쪽을 가리켰다. 배를 쓰다듬어달라는 눈짓이었다. 내가 그에게 말한 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는 내가 여느 때 일상적인 집안 일들을 얘기해준 것처럼 심각하지 않게 듣고 있는 것이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자기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어느 책에선가 보았던 한 내용이 머릿속에 선명히 되살아났다. 그 책에 의하면 보통 우리 인간은 자기 앞에서 당장 ‘이제 당신은 죽습니다’라고 말해주어도 그것을 사실로 수용하기까지는 보통 6개월, 적어도 3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씌어 있었다. 그런데 소진씨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인가? 그것에 생각이 닿자 몸에 소름이 죽 돋았다. 며칠 전 우리의 결혼을 주례해주셨던 김선생님께서 문병오셨을 때 나는 소진씨에게 사실 그대로 알릴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그분은 이제 더 늦추어서는 안 됨을, 그가 사실을 받아들일 시간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임을 충고해주시고 가셨다. “정임아, 힘을 내거라. 슬퍼하지 말거라. 우리도 잠시 이곳에 왔다가 가는 것뿐이다. 다만 김소진이란 친구가 좀더 빨리 가는 것뿐이다. 이제 우리는 김소진이란 친구가 우리와 함께 있었지, 하고 추억하며 살아갈 뿐이다.” 선생의 나직한 음성이 가슴에 박혀 시때없이 흐르려는 눈물을 막아주었다. 나는 아직 있지도 않은 추억을 떠올리는 나 자신에게 몸서리를 치며 멎었던 기계를 돌리듯 자연스럽게 그의 배를 쓸어주기 시작했다.
“몸이 좀 튼튼해지면 약을 써볼 텐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기에서 약을 써볼 길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몇 숟가락 뜨던 죽도 못 받아넘기며 일주일째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급기야는 시퍼런 물을 열 컵씩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넘칠 듯이 출렁거리는 시퍼런 물을 종이컵에 받아내면서 무서워서 그의 몸 위로 무너지고 말았다. “괜찮아. 이 독이 다 빠지면 나을 거야. 정임아…… 나는, 괜찮아.” 그는 토하는 중에도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달래느라 헉헉거렸다.
“한 가지 약초 뿌리라도 자기한테 맞는 것만 찾아내면, 길이 있대. 우리 몸이 얼마나 신비한 것인지, 자기도 잘 알지? 현대 의학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기적 같은 비밀이 우리 몸에는 숨겨져 있고, 항시라도 우리가 풀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어. 종수씨가 한방 쪽으로 모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자기가 싫다면 모두 그만두고…….”
그는 종수라는 이름이 내 입에 오르자 얼른 문께를 바라보았다.
“종수…….”
아침이 되었으니 곧 종수씨가 얼굴을 내밀 것이었다. 언제 봐도 반갑고 든든한 친구였다. 병실 안팎으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드나들었다.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미음을 받아 냉장고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도 그는 받아넘기지 못해 번번이 들어온 채로 되물려 나갔다.
“여기서 멀지 않아. 한 정거장 정도. 이쪽과는 오늘 이야기해볼게.”
창문 밖을 바라보며 내 말을 듣고 있다가 그는 나에게 입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나는 얼른 그의 입에 내 귀를 가져다댔다.
“여깃 사람들한테 최대의 예의를 갖춰서, 공손하게, 의논하듯 말을 꺼내. 알았지?”
그는 거의 속삭였다. 나는 끝까지 지나치게 착하고 예의바른 그의 품성에 울컥 눈물이 솟으면서 동시에 화가 치밀었다. 그는 절대 정상인이 아니었다. 몹쓸 암세포가 그의 몸을 집어삼키고 있어서만이 아니라 그의 정신이 그랬다. 불현듯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생각되었다. 애초부터 그는 우리와는 다른 존재, 그저 잠시 이곳에 들른 다른 세상의 다른 존재가 아니었을까.
“응. 그래야지. 여깃 사람들도 할 만큼 했어. 최선을 다했어. 알지?”
그래 우리는 잘 알았다. 오늘이면 이 병실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갈 것이다. 마지막 실낱 같은 희망에 목숨을 걸고 찾아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숨이 막힐 듯 천장이 낮은 이 병실도 떠나려니 새로이 보였다. 소진씨의 체취가 묻은 침대며 창가, 눈물바람으로 조용히 드나들던 출입문, 절망에 절망을 얹어주던 어둡고 긴 복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수없이 고개 숙여 떠나보낸 얼굴들…….
“정임아!”
꺼져가듯 절박한 그의 비명음에 눈을 뜨니 새벽 다섯시였다.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변을 치운 것이 네시 조금 넘은 시각이었으니 채 한 시간이 못 되었다. 나는 그의 발치에 대각선으로 누워 그를 주시하다가 잠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창가에 마련된 가습기에서 습기가 모락모락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며칠 전 병실을 옮겼음을 인지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 침상에서 육중한 체구의 할아버지가 요란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이곳은 중풍환자 전문 한방병원이었고 저쪽에 있을 때부터 이곳의 진료부장은 소진씨의 상태를 가지고 한의학 의료진들과 세미나를 하며 한약 처방을 내려주고 있었다. 저쪽에 비해서 월등 병실 환경도 좋았고 병원 문을 들어서면 콧속으로 훅 끼치는 한약 냄새도 좋았다. 이곳은 그러니까, 병원이되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소진씨가 이곳 환경에서 평온함을 되찾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다만 저쪽 병원에서 체력을 너무 빼앗아놔서 지금으로서는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목해보는 것은 변입니다. 언제 소진씨의 변이 인간의 것으로 모양을 되찾기 시작하느냐에 소생가능성이 달렸다고 봐야겠지요.” 종수씨와 함께 인사 겸 이쪽의 소견을 듣기 위해 진료부장실에 들렀을 때 주치의는 자못 힘을 주어 말했다. 한의학과 양의학은 병에 대한 접근 방법부터 달랐고 저쪽에서 불가능한 것이 이쪽에서 치유될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진료부장의 방을 나서면서 불끈 힘이 솟는 것 같았다. 나나 종수씨나 모두 이곳으로 옮기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며칠 나아지는 기미조차 보여서 나 대신 소진씨를 지키던 그의 누이들은 조심스레 희망을 갖기도 한 모양이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줘.”
그는 침착한 어조로 천천히 말했다.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내 위에 있는 것을 모두 치워!”
그의 말이 하도 단호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그의 몸을 덮고 있던 푸르딩딩한 솜이불을 확 제꼈다.
“그리고 깨끗한 기저귀로 갈아줘. 알라신이 준 것으로 .”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알라신이라고? 나는 다급해진 마음으로 거칠게 그를 흔들어 깨웠다. 알라신이라면 그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태국에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해서 아라비아 반도에 머물고 있는가. 정녕 서역 만리 길을 시작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이제 헛소리도 거의 하지 않았고 다만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모아집는 동작만 되풀이했다. 기력이 떨어지면서 헛소리도 줄었고 놀라는 일도 드물었다. 바쁘게 돌아가던 기억의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막막하게 들었다. 나는 그의 고요해진 입을 바라보며 짧은 시간이 주는 엄청난 몸의 변화에 기가 막혔다.
“무서운 꿈을 꾸었어…….”
나는 그의 몸을 붙잡아흔들던 손을 탁 놓고 말았다. 그는 정말로 꿈을 꾼 것인가?
“나를,”
악몽이 되살아나는지 그는 말을 하려다가 눈을 찌푸리며 울려고 했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아준 다음 머리칼을 위로 쓸어넘기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를 진정시킬 어떠한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이마며 눈이며 코며 어루만져줄 뿐이었다.
“죽이려고 했어!”
나는 그의 몸을 안아주듯 두 팔로 꼭 붙잡았다. 천장에 박힌 소등용 전구가 우리 둘의 머리를 말없이 비춰줄 뿐 고요히 시간이 흘렀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그의 머리를 제자리에 반듯이 놓아주며 헛구역질 같은 마른 것이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헛헛한 기분으로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데에 따른 움직임 이외에는 아무런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더이상 내 뱃속에는 생명이 자라지 않았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틸 겁니다.” 주위의 걱정을 뒤로 한 채 나는 뱃속의 생명이 소진씨에게 마지막 희망이 되고 있음을 고집스레 믿어왔다. “태아가 움직이지 않은 것은 벌써 삼사 일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상태로 어떻게 지내셨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의식을 되찾고 보니 내 팔에는 링거액이 매달려 있었다. 소진씨가 이쪽 병원으로 옮겨오는 날 아침 종수씨가 들르기 전까지도 나는 내 뱃속에서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꽃무늬 벽지가 눈에 들어오면서 눈물 젖은 언니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당장 소진씨한테 달려가고 싶었다. 그가 사무치게 보고 싶고, 만지고 싶었다. 있는 힘을 다해 배를 움켜잡았다. 아무리 움켜잡아도 생명이 꺼져버린 배는 허전할 뿐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우는 거야?” 아이를 잃고 그에게 오니 놀랍게도 그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그는 우는 일이 없었다. 그의 형이 세상을 뜨셨을 때도 그는 짝잃은 외기러기처럼 홀로 상주의 자리를 지킬 뿐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웬 눈물인가. 기이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사이에 눈이 두 배로 커져 있었다. 살이 거의 다 빠져나간 까닭이었다.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눈물이 그의 눈에서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거짓말 같았다.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우는 게 아니야.” 그의 큰누이가 나를 달래주느라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소진씨, 우는 거 아니지? 그냥 눈물이 흐르는 거지? 그냥 눈물일 뿐이지?” 나는 커다란 새처럼 가녀리게 헐떡이고 있는 그를 붙잡고 확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듯 거듭 물었다. 그는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을 말해주듯 크게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집으로 가자!”
변을 치우느라 화장실에서 나오니 그는 산소호흡기를 걷어내려고 헛손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세 시간에 한 번 아니 한 시간에 한 번 누던 똥을 이제는 삼십 분에 한 번씩 누었다. 한줌도 되지 않는 검은 똥, 그것은 인간의 똥이 아니었다. 검은 똥을 누면서 그는 하루에도 두세 차례 의식을 잃었다. 그가 밤낮 없이 줄기차게 감행해온 이승에서의 여행은 이제 이쯤에서 잠시 멈추어지나 보았다. 우리가 집을 떠난 지 한 달 보름. 우리는 아주 먼 길을 돌아온 셈이었다. 그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그에게 집에 가고 싶냐고 물었을 때 그는 한사코 고개를 저었었다. 그런데 이제 아이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그리고 그와 내가 거실에 모여앉아 햇고구마를 벗겨 먹던 햇볕 따뜻한 겨울날 오후가 생각났던 것일까.
“니가 해줘!”
내가 얼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자 그는 펜을 달라는 시늉을 했다. 펜을 손에 쥐어주었다. 그는 손끝에 힘을 주지 못해 글씨를 이루지 못했다.
“구상, 거의, 다, 했어…….”
그는 할딱거리면서도 또릿또릿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그 동안 그는 서른다섯 해를 아우르느라 너무 바빴는지 한꺼번에 서른다섯 해를 살아버린 듯 몹시 피로해 보였다. 나는 백지에 그가 한 말을 써 그에게 보여주었다. 바로 그거야!라는 듯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내가 어떤 문제를 놓고 고민하다가 그에게 털어놓으며 해결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가 내게 해주던 말이 ‘바로 그거야!’였다. 나는 막 구상을 끝내고 자기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를 숙연히 지켜보았다. “어머니, 태형일랑 다 나에게 맡기고 이제 편안하게 눈을 감아.” 그는 다시 한번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어떻게 저녁이 오고 밤을 맞았는지, 기억할 수 없다. 다만 벽이 갈라지듯 세상이 쪼개지듯 쩡! 하는 소리만이 귀에 선연히 남아 있을 뿐이다.
새벽이 되자 그의 혼은 한 마리 새가 되어 어둔 허공 속으로 날아갔다.
(태어나지 못한 불쌍한 아가야. 미처 너를 돌보지 못한 이 엄마를 용서해다오. 아빠가 떠날 낯설고 외로운 길, 길동무나 같이 하면 나 또한 태형이와 함께 평생 동무하며 살아갈 것이다. 내세를 기약하며 그 동안 부디 편안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