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는 당신이 타고난 재능을 하나쯤은 갖춘 사람인지 과감히 테스트하려 든다. 당연히 먼저 테스트에 접어든 사람들은 바로 이 드라마의 두 주인공이다. 이미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 천재 피아니스트 박준영(김민재)은 재능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믿으며, 반대로 재능이 없어서 늘 부진을 면치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채송아(박은빈)는 그 말에 화를 낸다. 어느 쪽의 입장에 공감하든 상관없다. 이미 드라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연출의 색감과는 반대로 차갑고 냉정하게 시청자를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서 어린 라흐마니노프를 처음 마주한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의 니콜라이 즈베르프 교수는 말한다. “스쳐지나갈 사람하고는 악수 안 해. 네가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를 증명해봐.” 채송아는 국내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켜지만, “3수인가 4수인가 한 언니”에 머무를 뿐이다. 즉, 그는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를 증명”할 수가 없다. 이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받아온 강요를 마주한다. 모두가 베토벤을, 모차르트를, 라흐마니노프나 브람스를 꿈꾸라고 가르치는 현실 말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다. 이 드라마는 실제로 유수의 대학에서 클래식을 전공한 작가의 이력을 백 번 활용해 말한다. 현실은 이상과 다르니 마음의 준비를 할 것.
이토록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드라마에서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브레이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수많은 화려한 예술인들 사이에서, 먹이사슬의 최하위에도 끼지 못하는 채송아가 주인공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아노를 치고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켜는 젊은 음악가들은 아름답고 우아한 존재처럼 묘사되지만, 공연 중 휴식시간을 뜻하는 ‘인터미션’이라는 이름을 지닌 펍에 앉는 순간 예술의 효용을 자조한다. “그런데 정말로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아무도 선뜻 답을 하지 못하는 순간, 여기에 망설임 없이 답을 내놓는 것이 바로 채송아다. “그래도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다고요. 왜냐면 우리는 음악을 하기로 선택했으니까요.” 그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있는 어른이자,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며 더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어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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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그래도 믿어야”만 이 산업이, 세계가 유지될 거라고. 정작 “나조차도 음악으로 위로받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던 채송아가 절망적인 순간에서 박준영이 말없이 건네는 연주에 불현듯 눈물을 터뜨린 순간은 예술이 한 사람의 세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예술의 얼굴을 하고, 작가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직업이 지닌 가치를 믿느냐고.
이 드라마가 조용히 일으키는 파동은 여기에서 나온다. 굳이 예술을 전공하거나 미술, 음악, 공연 등에 취미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 이 드라마의 직설적인 물음 앞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단순한 매뉴얼에 따라 업무를 보는 사람이든 작가처럼 매번 새로운 것을 써내야 하는 사람이든 간에,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함께하는 일에서 단 한 번이라도 “가슴이 뛰는” 순간을 발견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누군가는 시원한 답변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을 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당신이 선택한 길은 가치 있는 것이 되고, 채송아처럼 비록 꿈만 꾸다 끝나는 삶일지라도 그 삶이 절대로 의미없는 길은 아니게 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의 제목은 결국 당신의 삶을 사랑하냐는 물음이다. 브람스, 슈만, 클라라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 각자의 삶이었다는 뜻이다. 재능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완성되는 게 진짜 삶이다.
에디터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묻는 직업의 가치 | 지큐 코리아 (GQ Korea)아직 드라마 를 시작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친절하고 유혹적인 안내서. www.gqkorea.co.kr
첫댓글 캬 좋다
글 가져와줘서 고마워!! 위로가 됐어
너무 좋다 북마크하고 두고두고 읽을래 고마오
와 소름 ...진짜 ....두고두고읽어야지
난 드라마 보면서 송아가 결국 현실에 타협할지 엔딩을 어떻게 끝낼지 전개가 되게 궁금했거든. 이 글 보고 되게 반성한다ㅜ 참 하고 싶은 걸 계속 한다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라는 걸 이제야 안 것 같아
뭔가 울컥한다 너무 좋다
글 내용 너무 좋다... 드라마 안 보는데 보고싶어졌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의 제목은 결국 당신의 삶을 사랑하냐는 물음이다. 브람스, 슈만, 클라라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 각자의 삶이었다는 뜻이다. 재능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완성되는 게 진짜 삶이다.
이 부분 정말 좋다. 주로 멜로적인 부분이 언급되는데 가끔 이런글 올라오면 짜릿하고 아주 흥미로워ㅋㅋㅋ 인물들이 성장하는 과정이 진짜 이 드라마의 주제라고 생각함..
당신의 삶을 사랑하세요? 이거 너무 좋다 ㅜㅜ
글 진짜 너무 좋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좋은 이유 중 하나가 주인공들의 고민과 방황을 보고 공감하면서 내가 선택한 길에 서있는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기 때문인데.
와 글 너무 좋다... 라흐도 너무 보고싶어졌어 이거 볼때마다 라흐 생각했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