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황빛 산불 연기에 갇힌 뉴욕… “하늘 무섭다” 아이들 울음
[‘오렌지 포그’ 뒤덮인 美동부]
加 발생 산불 연기 美 동북부 강타… 평소 50 공기질지수 413 역대 최악
학교 쉬고 항공 결항… 마스크 동나
바이든, 트뤼도에 진화 지원 약속
뿌옇게 가려진 자유의 여신상… 학교는 야외활동 전면 취소 7일(현지 시간) 캐나다 일대를 뒤덮은 대형 산불로 인한 연기가 미국 동북부로 번지면서 뉴욕 자유의 여신상 일대가 뿌옇게 변했다(위쪽 사진). 미 뉴욕의 펠럼 메모리얼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업 도중 주황색 연기가 자욱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날 뉴욕시는 대기오염 지수가 치솟으면서 전 세계 주요 도시 중 공기 질이 가장 나쁜 지역으로 기록됐다. 뉴욕=AP 뉴시스
7일(현지 시간) 오후 2시, 오렌지색 매캐한 연기가 하늘을 덮은 미국 뉴욕시 퀸스의 한 초등학교 내부는 아수라장이었다. 건강을 염려해 일찍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들, 야외 활동이 취소돼 뛰어다니거나 어지럽다고 징징대는 아이들이 복도에 한데 몰렸다. 한쪽에선 1학년 꼬마들이 “하늘 색이 이상해 무섭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교사들은 “방과 후 활동이 취소됐으니 집에 갈 차례를 기다리자”며 아이들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캐나다 남동부에서 사흘째 이어진 산불로 인한 연기가 북서풍을 타고 국경을 넘어 뉴욕을 비롯한 미 동북부 하늘을 덮었다. 이날 뉴욕 공기질은 세계 주요 도시 중 최악으로 나타났다. 공기 오염으로 악명 높은 인도 뉴델리나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보다도 나빴다. 오전까지만 해도 하늘이 뿌연 정도라 센트럴파크에서 축구를 하거나 피크닉을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오후 1시 이후 연기가 짙어지더니 세상이 온통 주황빛으로 변했다.
● 항공기 결항, 휴교령…동물들도 우리로
오후 4시가 되자 뉴욕시 공기질지수(AQI)는 413까지 치솟아 1999년 뉴욕시 측정 이래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6단계인 AQI는 300이 넘으면 ‘위험(Harzadous)’으로 천식이나 심혈관 질환 환자 및 임산부, 노인에게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평소 AQI 50 미만 공기를 누리던 뉴욕 시민들은 대기를 메운 연기에 “화성에 있는 것 같다”며 아연실색했다.
록펠러센터 주변에서 오렌지빛 하늘이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던 관광객들은 눈, 코, 목이 따끔하고 두통이 심하다며 귀가를 재촉했다. 관광객 클로이 씨(32)는 “센트럴파크를 산책하려고 했지만 하늘을 보고 너무 놀랐다. 호텔로 돌아가려 한다”며 “이처럼 무서운 광경은 난생처음”이라고 말했다.
뉴욕주 공립학교는 일제히 야외 활동을 전면 취소했다. 8, 9일은 예정된 휴교일로 교사만 출근하지만 뉴욕 교육청은 교직원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뉴욕시 북부 용커스, 뉴저지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주변 지역에도 일제히 휴교령이 내려졌다.
가시거리는 멀지 않은 건물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짧아졌다. 이에 뉴욕시 라과디아 공항에 9·11테러 때 발령됐던 ‘일시 지상 정지’ 조치가 내려지는 등 미 동북부 일대 공항은 지연과 결항으로 혼란이 빚어졌다.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 메츠 경기뿐 아니라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 센트럴파크 야외 공연 ‘햄릿’ 등도 줄줄이 취소됐다. 뉴저지주는 오후 3시 주정부 공무원들을 귀가시켰고, 뉴욕시 브롱크스 동물원 동물들도 오후 3시 ‘조기 퇴근’해 우리로 돌아갔다.
● 다시 귀해진 마스크…“환경의 역습”
뉴욕까지 덮친 캐나다 산불 연기, 다시 등장한 마스크 캐나다에서 발생한 산불 연기가 미국 북동부 일대에 광범위하게 퍼져 7일(현지 시간) 뉴욕 맨해튼 남부 월드트레이드센터 인근 하늘이 산불에 따른 각종 대기 오염으로 주황색으로 변했다. 미 인구 3분의 1에 달하는 1억 명에게 대기질 경보가 발령되는 등 역사상 최악의 산불 피해로 남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뉴욕=AP 뉴시스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은 “전례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며 “마스크를 쓰거나 실내에 있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시내 한 편의점에 가보니 어린이용 얇은 마스크나 천 마스크만 남았을 뿐 N95(KF-94와 동일) 방역용 마스크는 동이 났다.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는 “8일부터 주 내 주요 시설에 N95 마스크 100만 개를 비치하고 이 중 40만 개는 뉴욕시 지하철에 두겠다”고 밝혔다.
강한 북서풍의 영향으로 이날 뉴욕뿐 아니라 워싱턴, 필라델피아를 비롯한 미 동북부 도시에서부터 남쪽 노스캐롤라이나주까지 하루 종일 뿌연 연기에 시달렸다. 미 환경보호청은 전체 51개 주 가운데 18개 주 약 1억 명이 공기질 경보 영향권에 들었다고 밝혔다.
이날 기준 캐나다 남동부 414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이 진화에 어려움을 겪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전화해 “파괴적이고 전례 없는 산불”이라며 진화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백악관은 소방관 600명을 비롯해 사용 가능한 소방 자산을 캐나다로 보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서부에서는 매년 이런 상황을 경험하지만 상황이 확실히 악화되고 있다”며 “기후위기가 삶과 지역사회를 흔드는 방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심상치 않은 사례”라고 말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기후변화로 고온건조… 캐나다서만 산불 하루 400여건
[‘오렌지 포그’ 뒤덮인 美동부]
加 산불 절반인 239건 통제 불능
올해만 축구장 530만개 면적 불타
연기로 인한 대기오염 문제도 커져
미국 뉴욕시를 포함해 동부 하늘을 뒤덮은 오렌지색 연기는 캐나다 산불로 인한 것이다. 이 지역 산불은 지난달 동부 퀘벡주에서 발생해 빠르게 번지고 있다. 당분간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돼 캐나다 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가 우려된다는 전망이 나온다.
캐나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7일(현지 시간) 기준 캐나다 전역에서 보고된 산불은 414건이며 이 중 239건이 통제 불능 상태다. 산불은 퀘벡주와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 및 앨버타주 등을 중심으로 캐나다 전역으로 확산됐다. 피해가 가장 큰 퀘벡주는 일부 도로가 폐쇄됐고 고압 송전선이 끊기는가 하면 통신이 두절되는 등 주요 인프라가 위협받고 있다. 산불 진압을 위해 모든 국가 자원을 동원하는 ‘국가 준비 5단계’가 선포된 상태다.
이번 산불은 시기상 이례적으로 빠르게 대형 피해를 가져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 캐나다에서는 5∼10월 주로 서부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하는데 올해는 동부와 서부에서 모두 산불이 나면서 피해가 더 심해졌다. 이날까지 캐나다에서는 축구장 약 530만 개 면적인 380만 헥타르(3만8000㎢)가 소실됐다. 5∼10월 기준 지난 10년 연평균 산불 피해 면적의 약 15배다. 빌 블레어 캐나다 비상계획부 장관은 1일 “(극심한 피해가 발생하기에는) 전례 없이 이른 때”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의 한 원인으로 근래 지속된 고온 건조한 날씨를 꼽고 있다. 4월 두 저기압골 사이에 고기압이 끼며 공기 흐름이 정체되는 ‘오메가 블록’이 캐나다 상공에 형성됐는데 이로 인해 캐나다 중남부 산맥 일대 기온이 올라 화재를 키웠다는 것이다. 마이크 플래니건 캐나다 톰프슨리버스대 비상관리소방과학연구소 소장은 “기온 상승으로 산불 진화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며 “현대 들어 관련 기록에서 이런 날씨를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과거보다 더 고온 건조해지면서 산불이 더 자주 발생하거나 불길이 빠르게 확산돼 진화가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나무나 풀이 바짝 말라 있어 평소 같은 번개에도 불이 붙는 경우가 늘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붙을 확률도 커진다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지난달 11만 헥타르(1100㎢ )를 태우고 사망자 21명을 낸 러시아 중남부 쿠르간주 산불도 이 같은 기후변화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유엔은 지난해 지금과 같은 기후변화가 지속되면 2050년까지 연평균 산불 발생 건수가 현재보다 최대 30%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산불이 빈번해질수록 산불 연기가 인간 호흡기 등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산불로 캐나다 대기 오염 수준은 평소보다 서너 배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질 바움가르트너 캐나다 맥길대 인구 및 세계보건연구소 교수는 “산불 연기는 더 이상 인간이 단기적으로 노출되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수현 기자, 이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