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이야기]아내와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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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는 비를 무척 좋아합니다.
: 비가 내리면 바로 창문을 엽니다. 비가 흩날리는 모습을 보기 좋아하지만, 그것보다도 빗소리 듣기를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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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처녀 때는 앞마당에 있는 조그만 연못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아 문을 열어 둔 채 잠이 들었고, 아침에 비가 내리면 그 빗소리가 아까워 학교에 가지 않은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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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회사 봉고차를 몰고 집에 온 적이 있었는데 마침 그날 저녁 비가 내렸습니다. 아내와 나는 차를 타고 근처 야산으로 가 차 안의 의자를 모두 펼친 뒤 하늘을 향해 누웠습니다. 그리고는 또닥또닥 천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오래오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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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식당에 가니 하늘이 맑은데도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웬일인고 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호스로 지붕 위에 물을 올려 처마끝으로 빗물처럼 떨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 아내는 그것을 보고 "앞으로 집을 지으면 이렇게 하고 싶어요." 했고, 나는 "그래요. 스물네시간 빗소리가 들리는 집을 지읍시다."라고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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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는 시쓰기를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시를 참 잘 쓴다'고 칭찬해 주자 그 말 한마디에 수많은 시를 탄생시켰다고 자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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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 아파트 11층에 살고 있습니다. 아주 많은 비, 폭우가 쏟아지지 않으면 빗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베란다 가장자리에 양철판을 붙여 빗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만 이 일도 생각 뿐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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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소리를 듣지 못해서 그런지 아내는 시도 쓰지 않습니다.
: 그냥 평범한 일상의 아내요, 어머니가 되어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다림질하고 청소하고 아이들 뒷바라지에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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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올해는 비가 내릴 때마다 아내의 감성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 되었을까'하고 걱정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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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식사 준비를 하는 아내의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습니다.
: 자세히 보니 식사 준비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야채도 그냥 식탁에 놓는 것이 아니라 싱싱한 것을 고른 뒤 몇 번을 물에 담갔다 꺼냈다 하고, 부추전 하나 부치는 것도 밀가루 반죽하고 부추를 씻고 자르고, 소금을 넣는 것이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고기도 그냥 불판에 올려 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냉장고에서 꺼내 녹이고, 썰고, 올리고, 자르고, 양념장에 상추 마늘 준비하고...
: 빨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탁기에 넣을 옷, 세탁소에 맡길 옷, 손 빨래 할 옷이 다르고, 빤 다음에는 발로 밟고 펴서 물 뿌리고, 다리고, 주름잡고, 걸어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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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손 많이 가고 신경 쓰이는 식사도 하루에 세 번씩이나 하지요. 옷도 위 아래 몇 가지를 거의 매일 갈아 입지요. 또 청소하기 힘든 구석은 왜 그렇게 많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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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아내에게서 빗소리가 멀어진 이유와 시를 쓸 마음이 사라진 이유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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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동규 님의 <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 라는 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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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그대에게 해 주려는 것은
: 꽃꽃이도 벽에 그림달기도 아니고
: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 그냥 설거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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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 붉은 사과 두 알
: 식탁에 얌전히 앉혀 두고 간장병과 기름을 치우고
: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 프라이팬을
: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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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습니다. 꽃꽃이나 그림 달아 주는 일, 옷을 사 주거나 선물을 하는 일, 사랑 얘기가 아니라 이제는 설거지를 해야겠습니다. 그릇을 닦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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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쓰라고 종이와 펜을 내밀 것이 아니라, 빗소리를 들으라고 양철판을 베란다 끝에 붙일 것이 아니라 설거지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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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비가 내리면 창문 쪽에다 의자 하나를 갖다 놓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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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철 (좋은생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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