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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mādiṭṭhiyā dassanaṭṭho abhiññeyyo; sammāsaṅkappassa abhiniropanaṭṭho abhiññeyyo;
sammāvācāya pariggahaṭṭho abhiññeyyo; sammākammantassa samuṭṭhānaṭṭho abhiññeyyo;
sammāājīvassa vodānaṭṭho abhiññeyyo; sammāvāyāmassa paggahaṭṭho abhiññeyyo;
sammāsatiyā upaṭṭhānaṭṭho abhiññeyyo; sammāsamādhissa avikkhepaṭṭho abhiññeyyo.
35. 바른 견해(正見)에서 봄(見)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른 사유(正思惟)에서 마음 쏟음(現前解)20)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른 말(正語)에서 받아들임(攝受)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른 행위(正業)에서 일어남(等起)21)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른 삶(正命)에서 청정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I.17]
바른 정진(正精進)에서 정근22)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른 마음지킴(正念)에서 확립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른 삼매(正定)에서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23)
20) '마음쏟음(abhiniropana 現前解)'이란 'abhiniropeti(옮기다 · 이식하다)'의 명사형으로
특정한 대상에 대해 마음을 옮겨 심는 것, 즉 '마음을 쏟음'을 말한다.
본 장의 36절에 “거친 사유(尋)에서 마음쏟음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vitakkassa abhiniropanaṭṭho abhiññeyyo).”는 구절이 있고,
I.마하박가 1.제17장 1-(1)에
“시각대상(諸色)에 대해 보고난 후, 마음을 쏟는 것은 이숙에 의한 마음의 계에 속한 의식의 작용이다
(rūpesu diṭṭhattā abhiniropanā vipākamanodhātu viññāṇacariyā).”는 구절이 있다.
21) 일어남(samuṭṭhāna 等起)'이란 samuṭṭhahati의 명사형으로
'일어나다' · '생기다' · '흥기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이 단어는 'sam(함께)' · 'ud(위로)' · 'sthā(서다)'로 분석되는데,
여기에서 'sam'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현상들이 무언가에 의존하여
'더불어 생겨나는 것'임을 나타낸다 하겠다.
22) 여기에서 '정근(精勤)'의 원어로 제시된 'pariggaha'는 문맥상 'paggaha'의 오기로 판단된다.
정정하여 번역한다.
23) '여덟의 바른 길(八正道)'에 관해서는 본 장 85-(1)절 이하에 기재되어 있다.
[*Netti
Yadā hi bhikkhu atthassa ca nāmaṃ jānāti, dhammassa ca nāmaṃ jānāti,
tathā tathā naṃ abhiniropeti.
비구가 의미와 관련된 명칭을 알고 법에 관한 명칭을 알아
그와 같이 마찬가지로 그것을 적용한다.]
♦ 13. indriyānaṃ ādhipateyyaṭṭho abhiññeyyo; balānaṃ akampiyaṭṭho abhiññeyyo;
bojjhaṅgānaṃ niyyānaṭṭho abhiññeyyo; maggassa hetuṭṭho abhiññeyyo;
satipaṭṭhānānaṃ upaṭṭhānaṭṭho abhiññeyyo; sammappadhānānaṃ padahanaṭṭho abhiññeyyo;
iddhipādānaṃ ijjhanaṭṭho abhiññeyyo; saccānaṃ tathaṭṭho abhiññeyyo;
payogānaṃ VAR paṭippassaddhaṭṭho abhiññeyyo; phalānaṃ sacchikiriyaṭṭho abhiññeyyo.
36. [다섯]근에서 탁월함(增上)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다섯] 힘(力)에서 동요하지 않음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일곱] 깨달음의 요소(覺支)에서 [윤회로부터의] 나감(離)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여덟의 거룩한] 길(道)에서 원인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네 가지] 마음지킴의 확립(念處)24)에서 확립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네 가지] 바른 노력(正動)에서 노력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신통의 요소(神足)에서 성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네 거룩한] 진리(諦)에서 여실함(如)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실천행(加行)에서 그침(止滅)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성취(果)에서 겪음을 통한 앎(現證)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24) '네 가지 마음지킴의 확립(四念處 cattāro satipaṭṭhānā)'이란 구체적으로
몸(身) · 느낌(受) · 마음(心) · 법(法) 등을 대상으로 하여 '마음지킴을 확고히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에서 'satipaṭṭhāna'란 'sati'와 'paṭṭhāna'의 합성어로,
'sati'는 '마음지킴'의 의미이며, 'paṭṭhāna'는 '앞으로 나아가는 곳'
즉 '시작점'의 의미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한역어의 '사념처(四念處)' 에서 '처(處)'에 해당하는 원어의 정확한 의미는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Vism(p.4 64)에 나온 바, “[마음지킴은] 견고한 지각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하거나,
몸 등의 마음지킴의 빳타나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한다
(thirasaññāpadaṭṭhānā, kāyādisatipaṭṭhanapadaṭṭhānā vā)." 라는 구절은
'paṭṭhāna'의 의미가 마음지킴의 '직접적인 원인' 즉 '시작점'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그러나 'paṭṭhāna'는 'sati'와 결합하여 합성어로 쓰일 때에는,
'확립(setting up)'의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가 더 많다.
The Pali Text Society's Pali-English Dictionary (p.402)에 기술된 바, Rhys Davids에 따르면
이 경우에는 확고한 마음지킴' 혹은 '마음지킴의 확립'의 뜻으로 사용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satipaṭṭhāna'가 '수행방법' 즉 '수행도구의 용도로 사용될 경우에는 이를
'마음지킴의 시작점'으로 번역하되,
'수행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춘 말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마음지킴의 확립'으로 달리 번역하고자 한다.
'네 가지 마음지킴의 확립(四念處 cattāro satipaṭṭhānā)'이라는 용어에 관한 더욱 자세한 설명은
본 텍스트 III. 빤냐박가 8. 마음지킴의 확립(念處)에 관한 논의, 제1절의 각주에 논의되어 있다.
♦ vitakkassa abhiniropanaṭṭho abhiññeyyo; vicārassa upavicāraṭṭho abhiññeyyo;
pītiyā pharaṇaṭṭho abhiññeyyo; sukhassa abhisandan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ekaggaṭṭho abhiññeyyo. āvajjanaṭṭho abhiññeyyo;
vijānanaṭṭho abhiññeyyo; pajānanaṭṭho abhiññeyyo;
sañjānanaṭṭho abhiññeyyo; ekodaṭṭho abhiññeyyo .
거친 사유(尋)에서 마음쏟음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미세한 사유(伺)에서 전념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기쁨에서 두루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즐거움에서 결과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마음(心)에서 하나로 집중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마음기울임(傾心)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분별(識)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알아차림(了知)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지각(想)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한곳에 고정됨(一趣)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自內證에 대해서 '앎(已知)'이라는 의미를
본인이 직접 경험하여 알아야(自證하여야) 한다. …
無爲에 대해서 '無行'을 自證하여야 한다. ☜ '아빈냐'란 行(만)을 아는 지혜가 아님.]
abhiññāya ñātaṭṭho abhiññeyyo;
37. 철저한 앎(證智)에서 알려진 것(所知)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pariññāya tīraṇaṭṭho abhiññeyyo;
pahānassa pariccāgaṭṭho abhiññeyyo;
bhāvanāya ekarasaṭṭho abhiññeyyo;
sacchikiriyāya phassanaṭṭho25) abhiññeyyo;
25) passanaṭṭho, S,
완전한 앎(遍智)에서 건넘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끊음(斷)에서 포기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닦음 (修習)에서 한 맛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겪음을 통한 앞에서 접촉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khandhānaṃ khandhaṭṭho abhiññeyyo;
dhātūnaṃ dhātuṭṭho VAR abhiññeyyo;
āyatanānaṃ āyatanaṭṭho abhiññeyyo;
saṅkhatānaṃ26) saṅkhataṭṭho abhiññeyyo;
asaṅkhatassa asaṅkhataṭṭho abhiññeyyo.
26) saṅkhāt, M.
[다섯] 온에서 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열 여덟] 계에서 계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열 둘의] 터전(入處)에서 터전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유위법(有爲法)에서 유위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무위법(無爲法)에서 무위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14. cittaṭṭho27) abhiññeyyo; cittānantariyaṭṭho28) abhiññeyyo; cittassa vuṭṭhān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vivaṭṭan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hetuṭṭho29) abhiññeyyo; cittassa paccay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vatthuṭṭho30) VAR abhiññeyyo; cittassa bhūmaṭṭho31) VAR abhiññeyyo;
cittassa ārammaṇ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gocar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cariy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gat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abhinīhār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niyyān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nissaraṇaṭṭho abhiññeyyo.
27) cittassa cittaṭṭho, S, 28) cittassānaṁ darikaṭṭho, S.
29) hetaṭṭho, M, 30) vattuṭṭho, S. 31) bhūmaṭṭho, M.
38. 찟따(心)32)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간단없음의 의미를 걸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벗어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물러남의 의미를 길저히 알아야 한다.
찐따에서 원인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연의 의미를 철지히 알아야 한다.
찐따에서 밧투(事)33)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경지(境地)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인식의] 의지처(所緣)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인식이 미치는] 영역(行境)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작용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다른 존재로 나아감(趣)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이끌어 냄(引發)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나감(離)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벗어남(出離)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34)
32) 여기에서 말하는 '찟따(citta)'란 보통 '마음' 혹은 '정신'으로 번역되는 말이다.
초기불교의 경전에서 'citta'는 보통 'mano'와 혼용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을 엄밀히 구분하자면 'citta'는 'mano'에 비해 보다 더 본질적인 것으로서,
정서 · 감정과 관계되는데 비해, 'mano'는 미세한 느낌 혹은 사유에 관계된다고 한다.
본 번역에서는 이들 둘에 대해 엄밀한 구분이 필요 없는 대목에서는 모두 '마음'으로 번역했지만,
본 대목에서와 같이 구분해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대목에서는 원어 그대로를 음사하였다.
33) '밧투(事 vatthu)'라는 용어에 관한 설명은 I.마하박가 1.제7장 3절의 각주에 논의되어 있다.
34) '찟따(心 citta)'는 간단없이 이어지는 연속적인 것으로
'감각적 쾌락에 의한 존재 (kāmabhava 欲有)' · '물질적 요소에 의한 존재(rūpabhava 色有)' ·
'물질적 요소를 지니지 않은 존재 (arūpabhava 無色有)'를 포괄한다.
본 단락은 찟따의 속성에 관련한 여러 가지 측면을 열거한 것이다. 영역, p.135 참조,
♦ 15. ekatte āvajj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vijān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pajān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sañjānanaṭṭho35) abhiññeyyo;
ekatte ekad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upanibandh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pakkhandanaṭṭho36) abhiññeyyo; ekatte pasīd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santiṭṭh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vimuccanaṭṭho37) abhiññeyyo;
ekatte “etaṃ santan”ti38) pass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yānīkat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vatthukataṭṭho39) abhiññeyyo; ekatte anuṭṭhit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paricit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susamāraddhaṭṭho abhiññeyyo;
35) sañjāyananaṭṭho, S. 36) pakkhandhanaṭṭho, S. 37) vimuccanaṭṭho, S.
38) ekasantati, S. 39) vattukataṭṭho, S.
39-(1). 하나됨(一性)에서 마음기울임(傾心)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분별(識)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1.18]
하나됨에서 알아차림(了知)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지각(想)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한곳에 고정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결합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약진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밝음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안정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해탈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40)
하나됨에서 '이것이 고요함이다'고 보는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정통함(作乘)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철저히 실천함(作實)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따라 이룸(隨成)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축적함(遍習)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노력의 다짐(善精勤)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41)
40) pakkhandhati(약진하다)' · 'pasīdati(밝게 되다)' · 'santiṭṭhati(안정되다)' · 'vimuccanati(해탈하다)'에
관련하여 MN, vol.3. p.105에
“아난다여, 다시 다른 비구가 있어, 사람에 대한 지각 (想)에 마음을 내지 않고,
아란냐에 대한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고, 흙(地)에 대한 지각에 대해서만 단일하게 마음낸다.
그러한 비구는 흙에 대한 지각으로 인하여 마음이 약진하고, 밝게 되며, 안정되고, 해탈한다
(puna ca paraṃ, ānanda, bhikkhu amanasikaritvā manussasaññaṃ, amanasikaritvā araññasaññaṃ,
pathavīsaññaṃ paṭicca manasi karoti ekattaṃ.
tassa pathavīsaññāya cittaṃ pakkhandati pasīdati santiṭṭhati vi<*adhi>muccati.)."라는 구절이 있다.
41) 'yānikata(정통함 作乘)' · 'vatthukataṭṭho(철저히 실천함 作實)' · 'anuṭṭhita(따라 이룸 隨成)' ·
'paricita(축적함 遍習)' · 'susamāraddha(노력의 다짐 善精勤)' 등의 용어에 관련한 해설은
본 텍스트 I. 마하박가 3.25-(1), 25-(2)절의 본문에 상세하게 설해져 있다.
또한 이들 용어에 관련하여 AN. vol.4. p.309에
"아난다여, 누구든지 간에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하고, 정통하고, 철저히 실천하고,
따라 이루고, 축적하고, 노력을 잘 다지기를 원하는 이라면,
아난다여, 그러한 사람은 겁(劫)이 남아있는 동안 계율에 설 것이다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i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ākaṅkhamāno
so ānanda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라는 구절이 있다.
<*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은 사람(*如來 tathāgato)은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
ekatte pariggah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parivār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paripūr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samodhā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adhiṭṭhā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āsev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bhāv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bahulīkamm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susamuggat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suvimutt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bujjh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anubujjh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paṭibujjh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sambujjh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bodh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anubodh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paṭibodh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sambodh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bodhipakkhiy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anubodhipakkhiy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paṭibodhipakkhiy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sambodhipakkhiy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jot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ujjot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anujot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paṭijotanaṭṭho abhiññeyyo;
ekatte sañjotanaṭṭho abhiññeyyo.
39-(2). 하나됨에서 받아들임(攝受)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딸린 것(眷屬)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원만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모음(總攝)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마음 굳힘(攝持)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익힘(習)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닦음(修習)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많이 행함(多作)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잘 이룸(善成就)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잘 해탈함(善解脫)의 의미를 철저히 알 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깨어있음(覺悟)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따라가며 깨어있음(隨悟)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각각에 대해 깨어있음(別別悟)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완전히 깨어 있음(等悟)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깨달음(覺)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따라가며 깨달아 앎(隨覺)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각각에 대해 깨달아 앎(別別覺)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완전히 깨달아 앎(等覺)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깨달음의 요소(覺分)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따라가며 깨닫는 요소(隨覺分)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각각에 대해 깨닫는 요소(別別悟分)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완전히 깨닫는 요소(等學分)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비춤(明)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밝게 비춤(開明)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따라가며 비춤(隨明)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각각에 대해 비춤(別別明)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하나됨에서 완전한 비춤(等明)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 야 한다.
♦ 16. patāpanaṭṭho42) VAR abhiññeyyo; virocanaṭṭho abhiññeyyo;
kilesānaṃ santāpanaṭṭho43) abhiññeyyo; amalaṭṭho abhiññeyyo;
vimalaṭṭho abhiññeyyo; nimmalaṭṭho abhiññeyyo;
samaṭṭho abhiññeyyo; samayaṭṭho abhiññeyyo;
vivekaṭṭho abhiññeyyo; vivekacariyaṭṭho abhiññeyyo;
virāgaṭṭho abhiññeyyo; virāgacariyaṭṭho abhiññeyyo;
nirodhaṭṭho abhiññeyyo; nirodhacariyaṭṭho abhiññeyyo;
vosaggaṭṭho44) VAR abhiññeyyo; vosaggacariyaṭṭho abhiññeyyo;
vimuttaṭṭho abhiññeyyo; vimutticariyaṭṭho abhiññeyyo.
42) patāsanaṭṭho, K. 43) santanaṭṭho, S. 44) vosaggaṭṭho, M.
40. 드러냄(顯示)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비춤(遍照)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번뇌에서 뜨거움(煩熱)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흠을 없앰(不垢)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흠으로부터의 떠남(離垢)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흠이 없음(無垢)의 의미를 철저 히 알아야 한다 ;
평등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모임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분리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분리된 행위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탐냄의 떠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탐냄을 떠난 행위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I.19]
소멸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소멸한 행위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내놓음(最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내놓는 행위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해탈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해탈한 행위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chandaṭṭho abhiññeyyo; chandassa mūlaṭṭho abhiññeyyo;
chandassa pādaṭṭho abhiññeyyo; chandassa padhānaṭṭho abhiññeyyo;
chandassa ijjhanaṭṭho abhiññeyyo; chandassa adhimokkhaṭṭho abhiññeyyo;
chandassa paggahaṭṭho abhiññeyyo; chandassa upaṭṭhānaṭṭho abhiññeyyo;
chandassa avikkhepaṭṭho abhiññeyyo; chandassa dassanaṭṭho abhiññeyyo.
41. 바램(志欲)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램에서 근본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램에서 근거(足)45)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램에서 노력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램에서 성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램에서 확신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램에서 정근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램에서 확립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램에서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램에서 봄(見)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45) 'pāda' 혹은 'pada'란 일차적으로는 '발(足)' · '족적' · '발걸음' 등을 의미하며,
'단위' · '시구(句)' · '시의 한 행'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근거' · '이유' · '장소' 등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영역(p.2 1)에서는 이를 'basis'로 번역하고 하고 있다.
문맥상 이와 같은 영역이 타당하다고 판단되어 여기에서는 이를 '근거'로 번역하기로 한다.
♦ vīriyaṭṭho abhiññeyyo; vīriyassa mūlaṭṭho abhiññeyyo;
vīriyassa pādaṭṭho abhiññeyyo; vīriyassa padhānaṭṭho abhiññeyyo;
vīriyassa ijjhanaṭṭho abhiññeyyo; vīriyassa adhimokkhaṭṭho abhiññeyyo;
vīriyassa paggahaṭṭho abhiññeyyo; vīriyassa upaṭṭhānaṭṭho abhiññeyyo;
vīriyassa avikkhepaṭṭho abhiññeyyo; vīriyassa dassanaṭṭho abhiññeyyo.
42. 정진(精進)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정진에서 근본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정진에서 근거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정진에서 노력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정진에서 성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정진에서 확신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정진에서 정근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정진에서 확립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정진에 서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정진에서 봄(見)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citt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mūl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pād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padhān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ijjhan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adhimokkh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paggah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upaṭṭhān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avikkhepaṭṭho abhiññeyyo; cittassa dassanaṭṭho abhiññeyyo.
43. 찟따(心)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근본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근거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노력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성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확신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정근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확립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찟따에서 봄(見)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vīmaṃsaṭṭho abhiññeyyo; vīmaṃsāya mūlaṭṭho abhiññeyyo;
vīmaṃsāya pādaṭṭho abhiññeyyo; vīmaṃsāya padhānaṭṭho abhiññeyyo;
vīmaṃsāya ijjhanaṭṭho abhiññeyyo; vīmaṃsāya adhimokkhaṭṭho abhiññeyyo;
vīmaṃsāya paggahaṭṭho abhiññeyyo; vīmaṃsāya upaṭṭhānaṭṭho abhiññeyyo;
vīmaṃsāya avikkhepaṭṭho abhiññeyyo; vīmaṃsāya dassanaṭṭho abhiññeyyo.
44. 사유(思惟)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사유에서 근본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사유에서 근거(足)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사유에서 노력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사유에서 성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사유에서 확신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사유에서 정근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사유에서 확립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사유에서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사유에서 봄(見)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17. dukkhaṭṭho abhiññeyyo; dukkhassa pīḷanaṭṭho abhiññeyyo;
dukkhassa saṅkhataṭṭho abhiññeyyo; dukkhassa santāpaṭṭho abhiññeyyo;
dukkhassa vipariṇāmaṭṭho abhiññeyyo.
samudayaṭṭho abhiññeyyo; samudayassa āyūhanaṭṭho VAR abhiññeyyo;
samudayassa nidānaṭṭho abhiññeyyo; samudayassa saññogaṭṭho abhiññeyyo;
samudayassa palibodhaṭṭho46) abhiññeyyo;
nirodhaṭṭho abhiññeyyo; nirodhassa nissaraṇaṭṭho abhiññeyyo;
nirodhassa vivekaṭṭho abhiññeyyo; nirodhassa asaṅkhataṭṭho abhiññeyyo;
nirodhassa amataṭṭho abhiññeyyo.
maggaṭṭho abhiññeyyo; maggassa niyyānaṭṭho abhiññeyyo;
maggassa hetuṭṭho abhiññeyyo; maggassa dassanaṭṭho abhiññeyyo;
maggassa ādhipateyyaṭṭho abhiññeyyo.
46) palibodhanaṭṭho, S.
45. 고통(苦)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고통에서 상해(害)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47)
고통에서 유위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고통에서 뜨거움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고통에서 달라짐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47)본 PTS本에는 이 구절 뒤에 이어지는
“dukkhassa saṅkhataṭṭho abhiññeyyo(고통에서 유위(有爲)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는
말이 빠져 있다. 오식(誤植)에 의한 것이므로 첨가하여 번역한다. 영역, p.136 참조.
일어남(集)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일어남에서 지속하는 힘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일어남에서 인연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일어남에서 결합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일어남에서 장애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소멸(滅)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I.20] 소멸에서 벗어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소멸에서 분리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소멸에서 무위(無爲)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소멸에서 죽지 않음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길(道)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길에서 나감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길에서 원인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 다. 길에서 봄(見)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길에서 탁월함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tathaṭṭho48) abhiññeyyo; anattaṭṭho abhiññeyyo;
saccaṭṭho abhiññeyyo; paṭivedhaṭṭho abhiññeyyo;
abhijānanaṭṭho abhiññeyyo; parijānanaṭṭho abhiññeyyo;
dhammaṭṭho abhiññeyyo; dhātuṭṭho abhiññeyyo;
ñātaṭṭho abhiññeyyo; sacchikiriyaṭṭho abhiññeyyo;
phassanaṭṭho abhiññeyyo; abhisamayaṭṭho abhiññeyyo.
48) tataṭṭho, S,
46. 여실함(如)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무아(無我)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진리(諦)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꿰뚫음(通達)49)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철저한 앎(證智)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완전한 앎(遍智)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법(法)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계(界)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알려진 것(所知)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겪음을 통한 앎(現證)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접촉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명료한 앎(現觀)50)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49) '꿰뚫음의 의미 (paṭivedhaṭṭho)'에서 '꿰뚫음(paṭivedha 通達)'이란 'paṭivijjhati'의 명사형으로
'paṭi√vyadh'에 기원을 둔 말이다. 본래의 의미는 '꿰뚫다'인데
'진입하다' · '획득하다' · '체득하다' · '이해하다' 등으로 그 뜻이 확장된 말이다.
본 장, 54절에 “꿰뚫음의 의미로 밝음(明)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paṭivedhaṭṭhena vijjā abhiññeyyā)."는 구절이 있고,
65절에 “완전한 앎에 의한 꿰뚫음으로 꿰뚫어 고통의 진리를 끊는다.
끊음에 의한 꿰뚫음으로 꿰뚫어 일어남의 진리를 끊는다.
겪어 앎에 의한 꿰뚫음으로 꿰뚫어 고통의 소멸의 진리를 끊는다
(dukkhasaccaṁ pariññapaṭivedhaṁ paṭivijjhanto pajahati,
samudayasaccaṁ pahānappaṭivedhaṁ paṭivijjhanto pajahati,
nirodhasaccaṁ sacchikiriyāpaṭivedhaṁ paṭivijjhanto pajahati)."는 구절이 있다.
50) 명료한 앎(abhisamaya 現觀)'이란 abhi-sam√i에 기원을 둔 말로,
여기에서 'abhi'는 '에 대해' · '을 접촉하여'의 의미이며, 'sam'은 '함께', √i는 '가다'의 의미이다.
말 그대로를 번역하면 '맞닿아 함께 가는 것'이 된다.
‘[현재의 사물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 혹은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 등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I. 마하박가 5, 42-(1)에 “ … 명료한 앎의 의미로 세 가지 해탈(解脫)이 동일한 순간에 존재한다
(abhisamayaṭṭhena tayo vimokkhā ekakkhaṇe honti)."는 구절이 있다.
'명료한 앎(現觀)'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본 텍스트
III. 반냐박가 3, '명료한 앎에 관한 논의에 기재 되어 있다.
♦ 18. nekkhammaṃ abhiññeyyaṃ; abyāpādo abhiññeyyo;
ālokasaññā abhiññeyyā; avikkhepo abhiññeyyo; dhammavavatthānaṃ abhiññeyyaṃ;
ñāṇaṃ abhiññeyyaṃ; pāmojjaṃ VAR abhiññeyyaṃ.
47. [감각적 쾌락에 대한 바램으로부터의] 떠남(出離)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성내지 않음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빛에 대한 지각(光明想)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산란하지 않음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법에 대한 결정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지혜(智)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환희(勝喜)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paṭhamaṃ jhānaṃ abhiññeyyaṃ; dutiyaṃ jhānaṃ abhiññeyyaṃ;
tatiyaṃ jhānaṃ abhiññeyyaṃ; catutthaṃ jhānaṃ abhiññeyyaṃ.
ākāsānañcāyatanasamāpatti abhiññeyyā; viññāṇañcāyatanasamāpatti abhiññeyyā;
ākiñcaññāyatanasamāpatti abhiññeyy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māpatti abhiññeyyā.
첫 번째 선정(初禪)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두 번째 선정(第二禪)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세 번째 선정(第三禪)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네 번째 선정(第四禪)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공간에 걸림이 없는 선정(空無邊處定)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의식에 걸림이 없는 선정(識無邊處定)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선정(無所有處定)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非想非非想處定)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 aniccānupassanā abhiññeyyā; dukkhānupassanā abhiññeyyā;
anattānupassanā abhiññeyyā;
nibbidānupassanā abhiññeyyā; virāgānupassanā abhiññeyyā;
nirodhānupassanā abhiññeyyā; paṭinissaggānupassanā abhiññeyyā;
khayānupassanā abhiññeyyā; vayānupassanā abhiññeyyā;
vipariṇāmānupassanā abhiññeyyā;
animittānupassanā abhiññeyyā; appaṇihitānupassanā abhiññeyyā; suññatānupassanā abhiññeyyā;
adhipaññādhammavipassanā abhiññeyyā; yathābhūtañāṇadassanaṃ abhiññeyyaṃ;
ādīnavānupassanā abhiññeyyā; paṭisaṅkhānupassanā abhiññeyyā; vivaṭṭanānupassanā abhiññeyyā.
48. 무상을 따라가며 보는 법(無常隨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고통을 따라가며 보는 법(苦隨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법(無我隨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厭離隨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離貪隨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소멸을 따라가며 보는 법(滅隨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법(捨離隨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다해 없어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盡滅隨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衰滅隨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법(變易隨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드러나지 않음을 따라가며 보는 법(無因相隨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바램없이 따라가며 보는 법(無願隨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공성을 따라가며 보는 법(空性隋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탁월한 혜로써 법을 보는 법(增上慧法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 알아보는 법(如實智見)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잘못됨에 대해 따라가며 보는 법(過患隨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돌이켜 관찰하여 따라가며 보는 법(省察道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물러나 따라가며 보는 법(還滅道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 19. sotāpattimaggo abhiññeyyo; sotāpattiphalasamāpatti abhiññeyyā;
sakadāgāmimaggo abhiññeyyo; sakadāgāmiphalasamāpatti abhiññeyyā;
anāgāmimaggo abhiññeyyo; anāgāmiphalasamāpatti abhiññeyyā;
arahattamaggo abhiññeyyo; arahattaphalasamāpatti abhiññeyyā.
149. 흐름에 나아가는 경지(預流道)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흐름에 들어선 선정의 경지(預流果定)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한번 돌아옴에 나아가는 경지(一來道)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한 번 돌아옴에 들어선 선정의 경지(一來果定)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돌아오지 않음에 나아가는 경지(不還道)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I.21]
돌아오지 않음에 들어선 선정의 경지(不還果)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아라한에 나아가는 경지(阿羅漢道)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아라한에 들어 선 선정의 경지(阿羅漢果定)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adhimokkhaṭṭhena saddhindriyaṃ abhiññeyyaṃ; paggahaṭṭhena vīriyindriyaṃ abhiññeyyaṃ;
upaṭṭhānaṭṭhena satindriyaṃ abhiññeyyaṃ; avikkhepaṭṭhena samādhindriyaṃ abhiññeyyaṃ;
dassanaṭṭhena paññindriyaṃ abhiññeyyaṃ;
assaddhiye akampiyaṭṭhena saddhābalaṃ abhiññeyyaṃ;
kosajje akampiyaṭṭhena vīriyabalaṃ abhiññeyyaṃ;
pamāde akampiyaṭṭhena satibalaṃ abhiññeyyaṃ;
uddhacce akampiyaṭṭhena samādhibalaṃ abhiññeyyaṃ;
avijjāya akampiyaṭṭhena paññābalaṃ abhiññeyyaṃ;
50. 확신의 의미로 믿음의 근(信根)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51)
정근의 의미로 정진의 근(精進根)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확립의 의미로 마음지킴의 근(念根)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로 삼매의 근(定根)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봄(見)의 의미로 혜의 근(慧根)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믿음없음에 대해 동요하지 않음의 의미로 믿음의 힘(信力)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게으름에 대해 동요하지 않음의 의미로 정진의 힘(精進力)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부주의에 대해 동요하지 않음의 의미로 마음지킴의 힘(念力)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들뜸에 대해 동요하지 않음의 의미로 삼매의 힘(定力)을 철저히 알아이 한다.
무명(無明)에 대해 동요하지 않음의 의미로 혜의 힘(慧力)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51) '확신의 의미로(adhimokkhaṭṭhena)' 이하 aṭṭhena는 구격(具格)으로 쓰여
수단을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에서는 문맥상 부사로 전용되고 있다.
이 대목을 '의 의미로 하다'는 형식으로 번역하고자 한다.
upaṭṭhānaṭṭhena satisambojjhaṅgo abhiññeyyo;
pavicayaṭṭhena dhammavicayasambojjhaṅgo abhiññeyyo;
paggahaṭṭhena vīriyasambojjhaṅgo abhiññeyyo;
pharaṇaṭṭhena pītisambojjhaṅgo abhiññeyyo;
upasamaṭṭhena passaddhisambojjhaṅgo abhiññeyyo;
avikkhepaṭṭhena samādhisambojjhaṅgo abhiññeyyo;
paṭisaṅkhānaṭṭhena upekkhāsambojjhaṅgo abhiññeyyo.
51. 확립(近住)의 의미로 마음지킴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念覺支)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고찰의 의미로 법에 대한 선별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정근의 의미로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두루함의 의미로 기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喜覺支)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평안의 의미로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輕安覺支)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로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定覺支)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돌이켜 관찰함의 의미로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捨覺支)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dassanaṭṭhena sammādiṭṭhi abhiññeyyā; abhiniropanaṭṭhena sammāsaṅkappo abhiññeyyo;
pariggahaṭṭhena sammāvācā abhiññeyyā; samuṭṭhānaṭṭhena sammākammanto abhiññeyyo;
vodānaṭṭhena sammāājīvo abhiññeyyo; paggahaṭṭhena sammāvāyāmo abhiññeyyo;
upaṭṭhānaṭṭhena sammāsati abhiññeyyā; avikkhepaṭṭhena sammāsamādhi abhiññeyyo.
52. 봄(見)의 의미로 바른 견해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마음쏟음(現前解)의 의미로 바른 사유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받아들임(攝受)의 의미로 바른 말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일어남(等起)의 의미로 바른 행위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청정의 의미로 바른 삶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정근의 의미로 바른 정진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확립(近住)의 의미로 바른 마음지킴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로 바른 삼매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ādhipateyyaṭṭhena indriyā abhiññeyyā; akampiyaṭṭhena balā abhiññeyyā;
niyyānaṭṭhena bojjhaṅgā abhiññeyyā; hetuṭṭhena maggo abhiññeyyo;
upaṭṭhānaṭṭhena satipaṭṭhānā abhiññeyyā; padahanaṭṭhena sammappadhānā abhiññeyyā;
ijjhanaṭṭhena iddhipādā abhiññeyyā; tathaṭṭhena52) saccā abhiññeyyā;
avikkhepaṭṭhena samatho abhiññeyyo; anupassanaṭṭhena vipassanā abhiññeyyā;
ekarasaṭṭhena samathavipassanā abhiññeyyā; anativattanaṭṭhena yuganaddhaṃ abhiññeyyaṃ.
52) tataṭṭhena, S.
53. 탁월함의 의미로 [다섯] 근(根)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동요하지 않음의 의미로 다섯 힘(力)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윤회로부터의] 나감의 의미로 (일곱) 깨달음의 요소(覺支)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원인의 의미로 [여덟의 거룩한] 길(道)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확립의 의미로 [네 가지] 마음지킴의 확립(念處)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노력의 의미로 [네 가지] 바른 노력(正勤)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성취의 의미로 [네 가지] 신통의 요소(神足)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여실함의 의미로 [네 가지 거룩한] 진리(諦)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로 사마타(止)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따라가며 보는 법(隨觀)의 의미로 위빠싸나(觀)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한 맛의 의미로 사마타와 위빠싸나(止觀)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어긋나지 않음의 의미로 짝을 이루는 것(俱存)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 saṃvaraṭṭhena sīlavisuddhi abhiññeyyā; avikkhepaṭṭhena cittavisuddhi abhiññeyyā;
dassanaṭṭhena diṭṭhivisuddhi abhiññeyyā; muttaṭṭhena vimokkho abhiññeyyo;
paṭivedhaṭṭhena vijjā abhiññeyyā; pariccāgaṭṭhena vimutti abhiññeyyā;
samucchedaṭṭhena khaye ñāṇaṃ abhiññeyyaṃ;
paṭippassaddhaṭṭhena anuppāde ñāṇaṃ abhiññeyyaṃ.
54. 지킴(律儀)의 의미로 계의 청정(戒淸淨)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로 마음의 청정(心淸淨)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봄(見)의 의미로 [I.22] 견해의 청정(見淸淨)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벗어남의 의미로 해탈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꿰뚫음의 의미로 밝음(明)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포기(永捨)의 의미로 해탈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단절의 의미로 다해 없어짐에 관한 지혜(盡智)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그침(止滅)의 의미로 일어남을 여윈 지혜(無生智)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 20. chando mūlaṭṭhena abhiññeyyo; manasikāro samuṭṭhānaṭṭhena abhiññeyyo;
phasso samodhānaṭṭhena abhiññeyyo; vedanā samosaraṇaṭṭhena abhiññeyyā;
samādhi pamukhaṭṭhena abhiññeyyo; sati ādhipateyyaṭṭhena abhiññeyyā;
paññā tatuttaraṭṭhena53) abhiññeyyā; vimutti sāraṭṭhena abhiññeyyā;
amatogadhaṃ nibbānaṃ pariyosānaṭṭhena abhiññeyyaṃ.
53) taduttaraṭṭhena, K.
바램을 근본의 의미로 철저히 알아야 한다.
마음냄(作意)을 일어남(等起)의 의미로 철저히 알아야 한다.
닿음(觸)을 모음(總攝)의 의미로 철저히 알아야 한다.
느낌(受)을 결합(等趣)의 의미로 철저히 알아야 한다.
삼매를 직접하는 것(現前)의 의미로 철저히 알아야 한다.
마음지킴(念)54)을 탁월함(證上)의 의미로 철저히 알아야 한다.
혜(慧)를 그것의 위의 의미로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해탈을 견고의 의미로 철저히 알아야 한다.
죽지않음에 도달한 열반을 끝(盡際)의 의미로 철저히 알아야 한다.
54) 마음지킴(念)'의 원어인 'sati'는 산스끄리뜨어의 기억하다(√smṛ · smarati)'와
동일한 기원을 지닌 말이며, 'smṛti'와 동의어이다.
사전에 의하면, 'sati'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 의미는 '기억(memory)'이나 '회상(remembrance)'이고,
두 번째 의미는 '주의집중(intentness of mind)' 혹은 '주의 깊음(mindfulness)'이다.
'기억'이라는 말이 이미 경험하여 개념적으로 고정된 사실에 대한 마음의 작용이라면,
두 번째의 '주의집중' 혹은 '주의깊음'은 현재의 사물에 대한 마음의 작용을 나타낸다 할 것이다.
이와 같은 'sati'의 의미는 한역이에서도 '념(念)' · '억념(憶念)' · 수의(守意)' 등으로 번역되는데,
여기에서 '념(念)'이라든가 '억념(憶念)' 등의 번역어는 첫 번째의 의미에 가깝다 할 것이며,
'수의(守意)'는 두 번째의 의미에 근접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쓰임의 예는 주석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Vism(p.464)에서는 이 용어에 대해
“그것에 의해 (사람들이) 기억하거나, 스스로 기억하므로, 혹은 단지 기억 자체, 이것을 사띠라 한다
(saranti tāya, sayaṁ vā sarati, saraṇamattaṁ eva vā, esā ti sati)."고 정의한다.
즉 sati의 일차적인 의미를 '기억'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Vism(p.464)의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sati가 다음과 같이 부연된다.
즉 “이것(sati)은 들뜨지 않음을 특징으로 하며, 잊지 않는 것을 기능으로 한다.
보살핌을 나타남으로 하며, 대상을 향한 상태를 나타남으로 한다.
견고한 지각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하며,
몸 따위의 사띠의 시작점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한다
(sā apilāpanalakkhaṇā sati, asammosanarasā,
ārakkhapaccupaṭṭhānā visayābhimukhībhāvapaccupaṭṭhānā vā,
thirasaññāpadaṭṭhānā, kāyādisatipaṭṭhānapadaṭṭhānā vā,
ārammaṇe daḷhaṃ patiṭṭhitattā pana esikā viya,
cakkhudvārādirakkhaṇato dovāriko viya ca daṭṭhabbā.)."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음챙김은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잊지 않는 것(asmmosa)을 역할로 한다.
보호하는 것(ārakkha)으로 나타난다. 혹은 대상과 직면함으로 나타난다.
강한 인식이 가까운 원인이다. 혹은 몸 등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이 가까운 원인이다.
이것은 기둥처럼 대상에 든든하게 서 있기 때문에,
혹은 눈 등의 문을 지키기 때문에 문지기처럼 보아야 한다." (Vis.XIV.141)
"마음챙기는 자(satimā)라는 것은 [몸을]
철저하게 거머쥐는(*pariggahaka) 마음챙김을 구족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는 이 마음챙김으로 대상을 철저하게 거머쥐고 통찰지(반야)로써 관찰한다.
왜냐하면 마음챙김이 없는 자에게 관찰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DA.iii.758)
"각각의 대상들에 내려가고 들어가서 확립(*upaṭṭhāna)되기 때문에 확립이라 한다.
마음챙김 그 자체가 확립이기 때문에 마음챙김의 확립이라고 한다.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에서 그들을 더러움[不淨], 괴로움, 무상, 무아라고 파악하면서,
또 깨끗함, 행복, 항상함, 자아라는 인식을 버리는 역할을 성취하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네 가지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라 한다." (Vis.XXII.34)
“그의 마음이 수승한 마음챙김으로 보호(*ārakkha)될 때" (Vis.XVI.83)
A4:191
api ca kho opapātiko opapātikaṃ sāreti – ‘sarasi tvaṃ, mārisa, sarasi tvaṃ, mārisa,
yattha mayaṃ pubbe brahmacariyaṃ acarimhā’ti.
So evamāha – ‘sarāmi, mārisa, sarāmi, mārisā’ti.
그러나 [먼저 그곳에] 화현한 자가 [나중에 그곳에] 화현한 그에게
'존자여, 당신은 기억 하십니까? 존자여,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전생에 청정범행을 닦았지 않습니까?'라고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그러면 그는 '존자여, 기억합니다. 존자여, 기억하구말구요.'라고 말한다.
Dandho, bhikkhave, satuppādo; atha kho so satto khippaṃyeva visesagāmī hoti.
그러면 그에게 느리게 마음챙김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중생은 재빨리 특별함으로 인도된다.
So muṭṭhassati [muṭṭhassatī (sī.)] kālaṃ kurumāno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Tassa tattha sukhino dhammapadā - plavanti [pilapanti (sī. syā. kaṃ. pī.)].
Dandho, bhikkhave, satuppādo; atha so satto khippaṃyeva visesagāmī hoti.
그는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죽어서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서 행복한 그에게 법문의 구절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그에게 마음챙김이 일어나는 것은 느리다. 그러나 그 중생은 재빨리 특별함으로 인도된다.
(apilapanti / apilāpati / apilāpeti <√lap> cf.√plu)
.
apilāpana(nt.)는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api + √lap(to prate, to speak)에서 파생된 명사로 간주하여
'헤아림, 반복함'의 뜻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음챙김은 반복해서 거듭 챙기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는 말이겠다.
둘째는 a(부정어) + √plu(to float)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조롱박 등과 같이
[물위로] '둥둥 떠다니지 않는 것(DhsA.147)'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음챙김은 대상의 주위로 맴돌지 않고
대상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는 말이다.>
❊ 경문에 나타나는 <muṭṭhassati>는 '잊어버린다. 망각하다'의 의미이고
그 다음에 나타나는 <api-lap-anti> '중얼거린다. 암송한다'라는 기억의 의미이고
만약 '떠오르다'라고 해석하면, 가라 앉아 있던 것(잊고 있던 것)이 ‘기억나다'라는 의미
그래서 그 다음에 <satuppādo> '(잊어버린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은' 느리지만...이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것이다.
M21
Na me, bhikkhave, tesu bhikkhūsu anusāsanī karaṇīyā ahosi;
satuppādakaraṇīyameva me, bhikkhave, tesu bhikkhūsu ahosi.
12. 나는 그들 수행승들에게 가르침을 베풀 필요가 없었고,
오로지 그들 수행승들에게 새김을 환기할 필요가 있었다.
[대림스님 역 맛지마 니까야 1권 521쪽 하단 주>
" '마음챙김을 일으키도록 했다(satuppāda-karaṇīya)'는 것은 계속해서 가르침을 베풀 필요가 없었고,
오로지 이것은 해야 하고,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챙김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만 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도록 했다는 뜻이다."(MA.ii.97)]
따라서 sati의 의미가 단순히 과거의 것에 대한 기억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 국어사전 기억(記憶) [명사]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 한글 '기억'과 빨리어 'sati‘ 모두 '入력', '저藏', '出력' 하는 정신 기능을 의미한다.
과거에 말했거나 행동한 것을 지금 '기억해낸다.'라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경험하는 것을 '기억시키다.'라는 의미가 있으며
과거에 '기억'한 것이 지금 현재 '작동'한다'면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도 미래에 '작동할 것이다.'
예를 들어 4념처 수행방법을 경문에서 보거나 혹은 도반이나 스승에게서 들으면
그것을 지금 '기억'하고서, 그 후 집에 돌아와서 그 '기억'을 따라서 그대로 수행한다면
그리고 수행하면서 '身이 不淨하다'고 직접 체험하거나
혹은 계속해서 관찰하여 '身은 不淨하다'라는 '기억'이 확립된다면
그 '기억'은 마음에 확고하게 확립되어 더 이상 常樂我淨이 아니라
(不淨)-無常-苦-無我로 확립된다면 그것이 4념처 수행이지 싶다.
즉, 4념처 수행이란
1. 수행을 어떻게 할 것인지 배워서 '기억'하고
2. '기억'한 대로 수행하고 있는 중이며(= 배운 것에 대한 '기억'이 작동 중이며)
3. 그렇게 수행하면서 경험한 내용을 '기억'하게 되며
4. 그 '기억'이 작동하여 대상에 대해서 더 이상 집착하거나 매이게 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사띠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이므로, 수행주제를 '놓치지 않게' 하여
'떠 올리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잊지 않는' 역할을 하며,
자신을 '보호'하여, 대상에 대해서 문지기처럼 '굳게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래 설명처럼 내로나 외로나 더 이상 흔들리거나 방황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 싶다.]
이와 같은 'sati'에 대해, PsA(p.471)에서도
“사띠란,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산란하지 않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을 사띠라 한다
(satīti ajjhattabahiddhāvikkhepahetubhūtā sati)."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이 용어는 '기억하다'라고 하는 기본적인 의미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거기에서 나아가 '마음상태' 혹은 마음조절'에 관련한 개념으로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Vism(p.464)의 인용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잊지 않음(saraṇa, asammoha)'이라는 마음의 기능(rasā)'을 통해
'들뜨지 않음(apilāpana)'이라든가 '산란하지 않음(avikkhepa)'을 낳는
행법의 의미로 정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sati'라는 용어가 '마음상태' 혹은 '마음조절'에 관련한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과거의 것에 대한 기억이나 회상의 의미가 배제된 용례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쓰임에 관련하여 I. 마하박가 1.제1장 85-(2)절에 등장하는 것으로,
“바른 사띠(正念)란 무엇인가? 여기에 한 비구가 있어, 몸에 대해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正知)과 사띠(念)를 지닌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식별할 수 있다 … 이것을 바른 사띠라 한다
(katamā sammāsati? idha bhikkhu kāye kāyānupassi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ññ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 ayaṁ vuccati sammasati)."라는 구절과,
I.마하박가 3.5절의 “들숨을 따라가는 것, 날숨에 따라 가는 것이 곧 사띠라네 …
(anugacchanā ca assāsaṁ passāsaṁ anugacchanā sati)."라는 구절 등은
sati의 대상이 현재적인 것임을 분명히 해준다.
즉 '몸'이라든가 '숨' 등에 관련된 '내부적 · 외부적' 현상은 현재 진행되는 사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이와 같은 용례를 근거로
'sati'를 “(현재 진행되는) 특정한 대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거나(anupassī)
따라 감으로써(anugacchanā) 마음의 방황을 멈추게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정의에 바탕하여 이것의 우리말 번역어를
‘(에 대한) 마음지킴' 혹은 ’(을 통한) 마음지킴'으로 하고자 한다.
이렇게 될 때 본 연구자는 앞서 언급했던 한역어 중에서
수의(守意)'에 부합하는 번역어를 채용한 셈이 된다.
♦ ye ye dhammā abhiññātā honti te te dhammā ñātā honti.
taṃ ñātaṭṭhena55) ñāṇaṃ, pajānanaṭṭhena paññā. tena vuccati —
“ime dhammā abhiññeyyāti sotāvadhānaṃ, taṃpajānanā paññā sutamaye ñāṇan”ti.
55) taṁ ñātaṭṭhena, M.
55. 무릇 철저히 안(證智) 제법이 있다는 것은 곧 그와 같이 알려진 제법이 있다는 것이다.56)
그와 같이 알고 있다(所知)57)는 의미에서 지혜(智)이며,
알아차린다(了知)58)는 의미에서 혜(慧)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이들 제법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고 새겨들은 바,
그것에 관해 알아차리는 혜로서 들음을 통해 이루어진 지혜가 있다」고,
56)앞에 나오는 관계사 ye ye는 dhammā abhiññātā honti를 하나의 종속절로 묶어
지시사 te te를 수식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문장구조는 반복을 통해 강조의 의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철저히 안 제법이 있다(dhammā abhiññātā honti)."에서
'abhiññātā(철저히 알다)'는 과거수동분사형으로 'dhammā(제법)'과 격(格)의 일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번역의 엄밀성을 유지하기 위해 능동형으로 바꾸지 않고 직역한다.
57) 여기에서 'ñāta(알려진 것 所知)'는 'jānāti(알다. 이해하다)'의 과거수동분사로서,
'어떠한 상태', 즉 '어떠한 앎을 지닌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이해된다.
본 텍스트에서 'ñāta'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 즉 '앎의 내용'을 가리키는 말로 파악되지만,
본 문장의 경우에는 뒤에 나오는 'pajānana'와 대비를 이루어
'지혜(ñāṇa 智)'를 부연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까닭에 '알고 있다'로 달리하여 번역하였다.
58) 여기에서 'pajānana(알아차림 了知)'는 'pajānāti(알아차리다)'의 명사형으로서
'혜(慧 paññā)'를 설명하는 술어로 사용되고 있다.
앞에 나온 'ñāta(알고 있다)'와 상대되는 술어로 쓰이고 있는 까닭에
'알아차린다'로 동사화하여 번역하였다.
♦ dutiyabhāṇavāro.
첫댓글 지금까지 모두 [아빈냐]에 대한 내용입니다. - 이후의 내용은 직접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이 단어는 <본인이 직접 경험하여 알게 된 지혜>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기억한다>라고 번역하면 부드럽게 문맥이 연결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사띠]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의 의미입니다.
삿된 사띠가 아니라면 [과거에 대한 추억 회상]의 의미로만 쓰이지 않고
지혜와 결합된 바른 사띠는 본문에 소개해 드린대로 말 그대로 <기억>의 의미입니다.
[아빈냐]는 본인 직접 경험한 <앎>이여서 <기억>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사띠]는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 것도 포함되는 <기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선 선배 수행자들의 경험담(경문 포함)을 기억하였다가
그 분들이 수행하신 길(팔정도)을 따라 흉내내기를 하는 것이 Dhamma - anu -dahmma입니다.
[아빈냐]든 [사띠]든 [담마]든
본인이 규정한 범주로만 해석해서
앞뒤 문맥이 연결되지 않으면
그 범주를 너무 넓게 잡았거나 좁게 잡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명하는 사람은 동쪽을 가리키는데
서쪽이라고 주장을 하면... 곤란합니다.
특히 초심자는 자기의 알음알이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경우는 그럴려니 하지만
어느 정도 공부가 되었다고 자부하시는 분들 중에
처음 초입에 잘못 들어가면
그 이후는 점점 길에서 많이 벗어납니다.
실참이든 교학이든 동일하지 싶습니다.
가는 만큼 남는 것이 아니라
간 만큼 이상 되돌아 와서 다시 방향을 잡을려면
대부분 ........... 이렇게 계속 가보지 뭐^^...........
모든 일에 기초가 잘못되면 그 다음은 쌓을 수록 기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 싶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api-lāp-ana(nt.)는 두 가지로 설명한다.]에서
<lap>는 현재 [랩] [래퍼]라고 할 때의 그 <rap> 혹은 <rapper>와 같은 어원이 아닌가 하는 망상^^
사두사두사두
_()_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