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深雪山行 명개리 내면분소⇒두로령(12㎞)⇒상원사(18㎞)⇒적멸보궁(19.5㎞)⇒상원사(21㎞)
지난해 6월에 백복령→닭목재→대관령 산행 후 구룡령→진고개→대관령 구간을 남진코자 구룡령 아래 명개리를 가기 위해 함양에서 08:50 대전행 버스를 타고 대전에 도착한 후 10:30 홍천행 버스로 청주, 원주, 횡성을 거쳐 14:15에 홍천에 도착하니 내면행 버스는 15:00 출발이라,
45분을 기다려 내면행 버스를 타고 16:10 내면에 도착하니 명개리행 버스는 17:20에 출발이다. 때 아닌 꽃샘추위 속에서 1시간 10분을 기다려 출발한 버스는 오대산국립공원 내면분소가 있는 명개리 종점에 17:50에 도착한다. 함양에서 9시간이 걸렸다.
내면분소 앞 승희민박
소백산 아래에서 왔다는 심마니 한분과 함께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9시 뉴스시간 일기예보는 내일 영서지방에 눈이 내린다하여 걱정이 되지만 1㎝쯤 온다고 했으니... 05:00에 아침식사 하고 구령령에 태워다 주면 06:00경 산행할 계획임을 알려 준 뒤 잠자리에 든다. 새벽 04:00경 주인 내외분의 말소리에 잠이 깬다. 문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 눈이 엄청 많이 내려서 차량이 구룡령 올라 갈 수 없겠으며 산행도 못하겠다고 하신다. 밖을 내다보니 밤새 폭설이 내렸다. 남녘에는 매화가 지고 복사꽃, 개나리, 진달래가 만발한 3월말에 폭설이라니... 오후에 진고개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서울에는 비가 오는데 산행할거냐며 전화가 온다. 아침뉴스는 강원도에 대설경보가 발령되었다고 한다. 이를 어쩌나... 얼마나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렇지만 혼자서 폭설로 위험한 대간 마루금을 산행할 자신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대간산행을 포기하고 오대산국립공원 내면분소에서 한강기맥인 두로령 넘어 상원사까지 임도 심설산행하기로 작정하고 다운자켓과 오버트라우져 꺼내 입고 눈길을 나선다.
산행지도(내면분소 ⇒ 두로령 ⇒ 상원사)
06:30경 두로령 가는 길 통행금지하고 있는 내면분소에서 서성거려 보지만 TV소리만 들리고 인기척이 없어 재빨리 바리게이트를 넘는다. 발등이 빠지는 눈 내린 길은 아름답고 고즈넉하다.
돌아보니 내 발자욱만 남는다
금강산에 견줄만한 뛰어난 풍광의 오대산, 주봉인 비로봉(毘盧峰, 1,563m)과 호령봉(虎嶺峰, 1,566m), 상왕봉(象王峰, 1,491m), 두로봉(頭老峰, 1,421m), 동대산(東臺山, 1,433m) 등 다섯 봉우리를 가진 산,
봉우리 사이사이로는 중대(中臺, 지공대)·동대(東臺, 만월대)·서대(西臺, 장령대)·남대(南臺, 기린대)·북대(北臺, 상삼대) 등 5개의 평평한 대지로 둘러싸여 있어 오대산이라 하며,
또한 중대·동대·서대·남대·북대는 각각 문수보살·관음보살·대세지보살·지장보살·아라한 등이 상주하면서 설법하던 곳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국보와 보물, 문화재가 많고, 부처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비롯하여 상원사, 월정사 등 우리나라 최고의 불교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지리산 아래 살면서 지난겨울 심설산행 한번 해 보지 못했는데, 때 아닌 3월에 오대산 심설산행을 하게 되다니... 이것도 큰 축복을 받은 셈이다. 두로령까지 12㎞, 두로령서 상원사까지 6㎞, 모두 18㎞를 시간당 3㎞씩 6시간쯤 걸으면 될거라는 계산으로 순백의 눈길을 걷는다. 30여분 만에 명개교에 다다른다. 왼편 조개골 개울과 두로령 개울물이 합쳐지는 곳. 합쳐진 개울은 계방천을 이루고, 호령봉에서 흐르는 내린천(?)과 합쳐진 후 인제 내린천, 소양강, 북한강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들까?
눈은 계속 내리고, 내린 눈은 종아리까지 빠진다. 그러나 길은 생각보다 평탄하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걸으며 사색(思索)을 즐겨보자.
사색은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사고의 능력, 그러나 아무런 체계와 질서가 없는 생각은 망상에 가까울 뿐, 천천히 걸으며 담담하게 나를 객관화해서 바라보자.
개울은 길 따라가고...
百年三萬六千日(백년삼만륙천일), 三萬六千能幾何(삼만륙천능기하) 백 년이 삼만 육천 일이라 하지만, 사람 한 평생은 채 백년도 못 살며, 아이 때와 거동 힘든 노년을 제외하면, 살아 움직이는 날이 그리 많은 것 같지도 않다.
인생을 살아가며 함께 이야기 나누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생에 더없이 큰 복일 터, 知天命을 넘긴 내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善이란 무엇인가? 과연 善은 존재하는가? 善의 상대 개념은 惡이 아니라 不善이라 한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善의 반대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惡이 아니라 不善(선하지 못함)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무들이 모두 눈꽃을 피웠다.
어느 중학교 한문시험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한자말의 뜻을 적으시오 라는 문제가 출제 되었다. 한 학생이 '백 번 묻는 놈은 개만도 못하다' 라고 답을 적었다. 한문 선생은 그 학생의 창의력을 가상스럽게 생각하여 반만 맞은 걸로 평가해 주었다고.... 실화란다.
눈발에 가려 實相은 보이지 않고 지나온 발자욱 역시 눈에 가리웠으므로 나는 어디에 와 있는지 알지 못한다. 實相은 어디 있는가.
바람은 바삐바삐 지나가 버리고 한 발 한 발 찍은 생각들은 거친 눈보라로 날려가 버리고 어쩌다 손바닥 위에 놓인 생각들은 눈처럼 녹아버린다. 實相은 정말 있는가.
돌고 돌아 온 길....
돌고 돌아 가야 할 길....
세상의 모든 어리석음 중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명성과 영광에 대한 관심이다. 그 때문에 실체도 없으며 잡히지도 않는 이 헛된 그림자를 잡기 위해 모두가 노심초사 하는 걸까? 명성이나 영광은 뒤따라오는 것이지 쫓아가는 게 아니라더라....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속 헤메나 밤벌레의 울음 계곡 별빛 곱게 내려 앉나니 그리운 맘 님에게로 어서 달려 가보세 어서 달려 가보세. 돌고 도는 산모퉁이가 하도 많아 다 알지 못하는 유행가 가사를 흥얼거려 보기도 한다.
상원사 9㎞ 표지석(꼭 절반 지점이다) 09:30경 “상원사 9㎞” 이정표가 눈 속에 묻혀있다. 그렇다면 시간과 거리의 절반을 올라 왔다. 눈 속에 쉴 곳이 없어 걷기만 했는데 좀 쉬어 가야겠다.
“기자불립, 과자불행(企者不立, 跨者不行)이라고 발꿈치를 들고 서 있는 자는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가랑이를 벌리고 걷는 자는 오래 걸을 수 없다”고 했으니....
앉을 곳도 없이 온통 눈뿐이라 눈 속에 누워서 쉰다. 겨울동안 녹지 않은 눈이 약 1m, 그 위에 새로 내린 눈니 약 50㎝, 저번 눈이 얼지 않았다면 눈속에 빠져 옴짝달싹도 못하겠다. 앉아서 쉴곳도 없고....
千計萬思量이 紅爐一點雪이라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의 한 점 눈(雪)이로다) 이보시게 친구 살아 있는게 무언가? 숨 한번 들여 마시고 마신 숨 다시 뱉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 어느 한 순간 들여 마신 숨 내 뱉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 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리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게 웬만큼 되거들랑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사람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네 극락이 따로 없다네. 生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뜬 구름 자체가 본래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10:20, 두로봉 아래 두로령 너른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홍천 내면과 평창 진부를 가르는 한강기맥길이 지나는 곳이다. 이정목은 내면분소 12㎞, 상원사 6㎞, 두로봉 1.6㎞, 비로봉 4.1㎞를 표시하고 있다.
한강기맥길에 발 담궈 본다. 눈은 정강이까지 빠진다. 두로령 너머부터는 내리막이리라 생각했는데 도로는 약간의 오르막이 계속된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러셀해 나가자니 몹시 힘들고 지친다.
30분쯤 눈 속을 걷다보니 암자가 보인다. 지도에는 북대 미륵암이고 이정목은 북대사로 표시하고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눈 치우고 있는 스님이 보이길래 반가운 마음에 암자를 향한다.
스님께서 “무슨 일로 오느냐”고 묻는다. 나“처마 밑에 좀 쉬어가고 싶다”고 대답한다. 스님, 손사래를 치며 “출입금지가 보이지 않느냐, 안된다”고 한다.
나, 머쓱하다. 눈길 걸어가다가 지쳐서 처마 밑에서 좀 쉬어가겠다는 불쌍한 중생에게 깨달음의 지혜를 구한다는 스님께서 이럴수가...
上求菩提(상구보리) 下化衆生(하화중생)이라 했거늘,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고 중생을 구제하기는 애당초 글렀나보다.
정(情)은 무엇인가? 나는 정을 나누며 살았는가? 속담에 ‘정에서 노염이 난다’, ‘정은 옛정이 좋고 집은 새집이 좋다’, ‘정 정 해도 늘그막의 정이 제일이다’ 고 했는데...
“... 옛말에 말이시, 콩 하나를 열이서 갈라 묵고 남치기를 둠벙에 던진께로 풍덩 소리가 나드란 말이 있네. 고것이 무신 말인지 안가? 정이란 것은 서로가 나눌수록 커진단 말이시”
정을 나누며 살아야겠다. 이 생각이 결심 되고, 결심이 행동 되고, 행동이 기쁨 될 때 행복과 만족을 얻으리라.
아름답지만 걸어가자니 무지 힘든 길....
자작나무 숲길...
상원사 3.5㎞쯤 남겨둔 지점에서 서울서 온 친구와 상봉한다. 고맙고 반갑다. 상원사까지 자동차를 불도저처럼 눈을 밀고 올라와서, 또 눈길 3㎞를 걸어서 올라 왔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걸어서 내려오는 길이 정겹다. 내려오다가 날지 못하고 눈 속에서 퍼덕거리는 새 한 마리 주워서 공원관리사무소에 건네주었다. 구워먹지 말고 먹이주어 날려 보내라는 당부와 함께....
인생이란, 눈 깜짝 할 사이에 종착역에 도착하는 단 한번의 여행과 같은 것. 혼자서 쓸쓸한 고독을 즐기는 사람은 늘,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편하지만 비가 내릴 때는 서러운 눈물을 흘린다.
둘이서 값비싼 옷을 입고 행복한 듯 웃고 있어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 한마디 없는 사람도 있지만 애틋한 추억을 가슴에 담고 동행의 인연을 감사하며 종착역이 다가오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눈사람 만들고 있는 공단직원들 12:20에 상원사 앞에 도착한다. 공원관리사무소 직원이“한 분은 내면에서 오시느냐”고 묻는다. 친구가 올라가면서 내면에서 넘어오는 친구 마중 간다고 했나보다.
예감이 이상해서 “북대에서 내려오는 길”이라고 얼버무려 보지만, “비로봉 가는 길도 입산금지 아니더냐”고 한다. 어딘가 전화하면서 과태료 물려야 한다며 겁을 준다.
슬금슬금 내려가는데 주소 적어 놓고 가라기에 친구가 주소 적어 놓고 관대걸이를 지나 상원사로 간다.
전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상원사 설경이 참으로 고요하고 아름답다. 문수전은 규모가 엄청 크다. 문수전 뒤 영산전은 상원사 화재때 불길을 모면한 덕분에 오대산 안에서 가장 오래된 절집이라 한다. 상원사 찻집에 들러 난로가에 앉아 다리 쉬며 젖은 옷도 말린다. 상원사는 월정사 산내 암자지만 나라 안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선원으로 널리 명성을 누려오고 있는 절집이다. 특히 세조가 심한 종기를 기도로 병을 고쳐보고자 이곳 상원사로 향하던 중 오대천 맑은 물이 너무 좋아 혼자 몸을 담가 목욕할 때 지나가던 한 동자승에게 등을 밀어 줄 것을 부탁하였으며,
동자승이 등을 밀자 종기가 씻은 듯이 나았고,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으니 그 동자승이 문수보살이며 문수보살의 가피로 불치병을 치료한 세조는 크게 감격하여 화공을 불러 그 때 만난 동자의 모습을 그리고, 목각상을 조각하게 하니
이 목각상이 바로 국보221호인 상원사 문수동자상이며, 우리나라 문수신앙의 중심지가 상원사라고 한다. 상원사 동종은 우리나라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우며 청아한 소리의 한국 종 고유의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는 대표적 범종으로 국보 제36호. 중대 사자암은 옹색한 산비탈에 엄청난 규모의 5층 형식으로 새로 지어져 있다. 터에 알맞은 작은 암자 하나 짓고 참선수행하면 될 것을....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은 1.5㎞, 비로봉은 3.0㎞, 상원사에서 능선길 따라 비로봉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적멸보궁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명당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으로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봉안한 우리나라 5대 보궁 중 하나다. 가파른 길 올라가는데 확성기의 염불소리가 들린다. 육성으로 하면 좋을 염불을 왜 기계소리로 크게 하는 걸까?
입구 계단길 오르니 평평한 넓은 터 중앙에 정면 3칸 팔작지붕의 보궁 건물이 서 있다. 한쪽 문 열고 들어서니 곁칸과 속칸이 벽으로 구분된 겹집형태다.
안에는 스님 한분과 일고여덟의 남여 신도들이 기도하고 있다. 법당 안에는 불단만 있고 불상이 없다. 난생 처음으로 적멸보궁 참배를 한다.
참배 후 보궁을 한 바퀴 돌아본다. 뒤편에 작은 탑이 눈 속에 반쯤 묻혀 있지만 사리탑은 아닐 것 같고, 정면에 서서 지세와 풍광을 둘러보지만 눈이 내려 알 수 없다.
※ 적멸보궁[寂滅寶宮] 신라 진덕왕 때 자장(慈藏) 스님이 중국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가사와 사리를 받아와 우리나라의 가장 수승한 땅에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여 모셨는데,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부처님 가사와 사리를 모시고 금강계단을 세웠고, 설악산 봉정암(鳳程庵),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태백산 정암사(淨岩寺)에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고 적멸보궁을 세웠다.
정암사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한 것이다. ※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산스크리트어로는 샤카무니 (Sakyamuni)이며,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 불교의 교조로서 석가, 석존(釋尊)등으로 약칭하기도 하며,
기원전 623년 중인도 가비라국 성주 정반왕의 아들로 태어났던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의 부처님이다. 인생의 고뇌를 깨닫고 출가하여 6년 간 고행을 한 그는 이러한 고행을 통해 금욕만으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음을 알고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7일 만에 드디어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이 되었다. 석가모니불은 불교의 교조로 숭배되며, 대웅전의 주존불로 봉안된다. 석가모니불을 나타내는 불상은 손모양이 특이하여 금방 구별할 수 있다. 석가모니불을 나타내는 손모양은 그가 보리수 아래에서 마왕들의 항복을 받은 것을 나타내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이 자세는 왼손 손바닥을 위로하여 단전 부근에 대고 오른손을 무릎에 얹어 아래로 내리 누르는 형상이다.
월정사 천왕문
금강루
친구 자동차를 타고 월정사로 내려간다. 오대산 동쪽계곡의 울창한 수림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월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일연의 삼국유사에 "국내의 명산 중에서도 여기가 가장 좋은 곳이요.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이다." 라 하였으며,
탄허스님이 적광전을 중건하여 어엿한 대가람의 모습을 되찾게 된 월정사는 국보 제48호로 지정된 팔각구층석탑을 비롯하여 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경내 한쪽에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우리나라 절 대분이 많은 돈 들여 삐까뻔쩍 으리으리하게 중건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나보다.
팔각구층석탑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금강교를 건너 나온다.
탄허스님께서 중건하셨다는 적광전
금강루에 올라가지 않아 뭔지 잘 모르겠다.
사하촌 식당가의 30년 전통의 오대산 식당에 들러 황태구이 안주로 동동주 한 단지 반주하여 1인당 15,000원 하는 산채정식으로 늦은 점심 먹고, 서울로 향한다.
진고개 아래서 하룻밤 자고 대관령까지 산행을 할까 생각하다가 폭설로 위험하여 포기한다. 새벽에 상원사까지 차 몰고 와서 북대 아래까지 마중오고 함께 적멸보궁 산행한 후 푸짐한 점심까지 낸 친구의 우정이 고맙다. 오늘 눈길 원없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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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崇仁堂(atman) 원문보기 글쓴이: 숭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