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릉리(武陵里)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에 있는 리(里).
전형적인 농촌이며 이곳은 태기산과 백덕산에서 내리는 맑은 계곡이 요선암과 어우러져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므로 마을 이름도 '무릉리'라 하였다. 무릉도원은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상향으로 사람들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설구산 동쪽동네를 '무릉리', 그 서쪽을 '도원리'라 부르고 있다. 자연부락으로는 중방동, 명마동, 하동, 두릉동, 송곡, 토실 등이 있으며, 벼농사와 더불어 담배, 고추, 인삼 재배 등을 하고 있다.
무릉리(武陵里)
강원도 정선군 남면에 있는 리(里).
400m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능전, 자고치, 자뭇골 등이 있다. 능전(能田)은 골이 깊고 평평하여 능히 밭을 일구어 농사 지을 수 있는 마을이라 하여다고 불러진 이름이다. 자뭇골은 두위봉 입구에 위치한 마을로 주목(朱木)이 많이 자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릉도원은 중국의 명승지를 비유하여 이름한 것인데, 냇물을 따라 떠내려오는 복숭아꽃을 보고 옛선비들이 인가가 있다고 생각하여 하천을 따라 올라가 자리잡은 이곳이 무릉리이다. 무릉리는 남면에서도 가장 넓은 지역이며 삼한시대부터 문인들이 이곳에 모여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릉리(武陵里)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리(里).
본면의 중서부에 위치하며 산지가 많고 마을도 해발 200m 이상의 산간에 형성되어 있다. 사방의 산이 높고 그윽해서 마치 '무릉도원(武陵桃原)'과 같다하여 '무릉(武陵)' 이라 하였다고 하며, 옛날에는 도원리와 한마을이었다. 자연마을로는 소골, 안산막이, 바깥산막이 등이 있다. 안산막이는 산막골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바깥산막이는 산막골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산지에 위치하여 논이 적고, 밭이 경작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경지율도 낮다. 주요작물로는 벼, 고추, 담배, 콩 등이 재배 된다.
무릉리(武陵里)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였던 법정리.
무릉리는 전통적으로 살미면의 중심 지역이었다. 서쪽으로는 문천(汶川)을 따라 이어진 골짜기를 따라 내사리와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문화리를 통해 남한강 하류로 이어진다. 동남쪽으로는 신당리가 있고 남한강 건너에는 한수면 역리가 있다. 문천을 따라 논이 많은 편이었다.
충주댐의 완공과 함께 1985년 수몰되어 지금은 충주호 속에 잠겨 있다. 이문안에서 신구실을 거쳐 신당진(新塘津)까지 마을이 연결되어 있고, 신구실과 신당진을 중심으로 장이 서기도 했다.
조선시대 살미면의 리와 호구 변화를 살펴보면 그 기록이 1759년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까지 이른다. 이곳에 무릉(武陵)이 나오는데 무릉리를 말한다. 무릉이라는 이름은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읍지(湖西邑誌)', '충주목지도', '충주군읍지(忠州郡邑誌)』'서도 확인된다. 1907년에 발표된 '한국 호구표'에도 무릉리가 나온다.
-1911년 4월 살미면 소재지가 내사리에 설치되었다가 10월에 다시 무릉리로 이전하면서 살미면 중심 마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문안, 능골, 신구실, 신당진, 뜨시골, 아랫말, 용골 등이 무릉리가 되었다.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마을 전체가 수몰되어 주민들이 모두 떠나게 되었다. 수몰 당시 무릉리에는 135가구 657명(남 329, 여자 328)이 살았다.
무릉리라는 이름은 능골에서 유래했다. 능골은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에 공이 큰 김시민 장군의 무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경상감사를 지낸 김철(金撤)의 무덤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무릉리(武陵里)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릉리는 주천면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선봉[699m], 남쪽으로는 갓모봉[741m], 서쪽으로는 봉화산[803m] 줄기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서쪽은 봉화산에서 금남 정맥을 따라 북진하는 곳을 경계로 하여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와 접경하고, 북쪽은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도계 지점인 게목재에서 도계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대양리와 접경한다. 선봉에서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와 접경하여 명덕봉[845m]에 이르러 싸리재골 옆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갓모봉으로 올라 무릉천으로 내려와 다시 봉화산에 오르는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주천면 대불리와 남북으로 접경한다.
마을 중심은 분지형으로 사방의 골짜기에서 발원한 무릉천이 어자 마을·선봉 마을·강촌 마을을 적시고 남동류하여 무릉천을 이루고, 무릉리 남동쪽 싸리재골에서 발원한 물이 대불리 삼거리에서 합수하여 주자천으로 합수된다.
무릉리는 진안군에서도 가장 오지에 속하여 게목재를 통하여 완주군 운주면과 연결되고, 하막재·마라지 고개를 통하여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 두문동과 통한다. 마을 부근에는 제법 큰 들판이 형성되어 있다.
조선 말 용담군 이서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진안군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무릉리는 원래 원래 어자리라 했는데 1940년경 현재 무릉리 입구 길목인 삼거리에 홍수가 나 ‘무이암’이라 새겨진 바위가 드러나게 되었으므로 ‘무릉’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중국의 무릉도원과 같다고 하여 무릉리라 명명했다고도 한다.
면적은 12.2㎢이고, 인구는 90가구 170명[남자 81명, 여자 89명]이 살고 있다(2013.11.30 현재). 어자[큰말·양지말·고네미]·선암·강촌 등 3개 행정리로 이루어졌다.
무릉리는 전체 마을[선안·어자·강촌]이 교대로 산신제와 거릿제를 강촌 마을 뒷산에 ‘계목’이라는 곳에서 정월 초사흘날, 10월 초사흘날 2번 지낸다. 산신제 지낸 곳은 상당이라 하고 산신을 위해 매[밥]를 올린 소나무를 하당이라 한다.
어자 마을 동쪽의 선봉에 봉수대가 있다. 봉화터는 선봉과 연결되는 바로 옆 봉우리[690m]에 있으며 금산군과 경계가 되는 지점이다. 봉우리 주변은 가파르며 돌들이 흩어진 상태로 무너져 있다. 지금은 흩어진 돌들을 등산객들이 2기의 탑으로 쌓아 봉화대로 사용했던 원형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양촌 마을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6·25 전쟁 전후까지 삼[대마]을 삶아온 가마터가 있었고 이곳을 삼굿터라 불렀다 한다. 경작지와 그 주변에서 불맞은 돌들이 산재하고 또한 백자와 도기편도 수습되었다.
주요 경제 활동은 논농사와 밭농사이며, 생산 작물은 벼·인삼·콩 등이다. 대불리 삼거리에서 무릉리를 잇는 군도가 있다.
무릉리(武陵里)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里).
넓은 들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천(안망천)이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미천(眉川)이 산부리를 돌아 흘러 들어가므로 무른개라 하였고, 뒤에 무릉촌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트골·중산·몽곡·묵느므가 병합되어 무릉리가 되었다.
무릉1리·무릉2리·무릉3리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마을로 무릉촌(무릉개, 무른개)·돌트미(중산)·동트골·숨실·묵느므(진답, 묵느무)·사안·보안·여싯골, 숨실(몽곡동) 등이 있다. 무릉촌은 미천이 산부리를 돌아서 흘러가므로 무른개라 하던 것이 변하여 된 것이다. 동트골은 옛날 효자 삼척 김씨가 부친의 마중을 갔다가 이곳에서 동사하였다 한다. 묵느무는 묵은 논이 많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숨실은 사방이 산으로 되어있어 숨은 것 같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면적은 9.59㎢이며(2008.12.31 기준), 총 258세대에 537명(남자 276명, 여자 26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5.12.31 현재). 중앙선 철도가 마을 가운데를 지난다. 남후면사무소·남후초등학교·지서 등 각종 기관이 있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특용작물로 포도·생강·딸기를 생산한다. 과수 농사와 한우 사육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을에는 단지계곡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산 위에서 돌을 던지면 항아리 속에 물을 넣는 소리가 난다 하여 단지계곡이라 한다. 옛날 어느 집에서 아기장수를 낳았는데,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벽장 위로 뛰어오를 만큼 힘이 있었으므로 부모들이 겁에 질려 안반(국수를 미는 두터운 널빤지)으로 눌러 죽였다. 그런데 그 아기장수가 태어날 때 단지계곡에서 용마(龍馬)가 나타났다가 아기장수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소장골로 날아 들어갔다고 한다.
무릉리(武陵里)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릉리는 동쪽의 일산봉과 남쪽의 감투산의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는 산간 소분지이다. 무릉리 서쪽은 거창군 거창읍에서부터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으로 흘러드는 황강이 남류하고 있으며, 황강을 경계로 남하면과 구분된다. 농경지는 마을 중앙을 가로질러 황강으로 흘러드는 개천과 황강 주변을 따라 길게 발달되어 있다.
무릉리(武陵里)는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양곡리·무릉리·월곡리·산포리 등 4개의 행정리와 양곡(陽谷)·무릉(武陵)·월곡(月谷)·산포(山浦)·말리 등 5개의 자연 마을을 관할하고 있다.
본래 거창군 무등곡면 지역으로서 옛 무등곡면의 소재지가 되므로 상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곡동, 양곡동을 병합하여 무릉리로 하고 거창군 남하면에 편입되었다.
무릉은 무릉동(武陵洞)·무등곡(無等谷) 및 무덤실 등으로 불렸다. 마을 뒷산 둘레에 옛 무덤이 많아서 불린 이름으로 전해지며, 또한 마을 내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있었다 하여 무릉(武陵)으로 불렸다고도 전해진다. 마을의 서쪽을 바라보는 북쪽 부분을 ‘넘마’, 남쪽의 남·서로 향하는 곳을 골담 또는 곡촌이라 한다. 1914년 고모현면, 지차리면과 합하여 남하면을 만들 때 면사무소를 두고 무릉리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양곡은 마을 남서쪽 황강 냇가에 벼락 바위 또는 양석(陽石)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는데, 450여 년 전 큰 바위의 그늘을 피하여 양지바른 곳에 마을이 자리 잡았다는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월곡은 마을 남쪽 어귀의 청룡날이 반달 같아서 반월산(半月山)이라 하고 월이곡리(月伊谷里)·달이실이라 하다가 현재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산포는 마을 뒤에는 산(山)이, 앞에는 황강(黃江)이 흐르고 있어 산을 싸고 천(川)이 흘러내린다 하여 ‘산포(山浦)’라고 불린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찾아 가려면 이 마을에서 묻는다는 뜻에서 예전에는 ‘멱실[覓谷]’로 불렸다.
전체 면적은 8.8㎢으로 이 중 대부분이 임야 6.36㎢이다(2015년 12월 현재). 논 0.6㎢, 밭 0.43㎢, 과수원 0.02㎢, 대지 0.13㎢ 등의 토지 이용 현황이 나타난다. 무릉리는 남하면의 중심지로 남하면사무소, 남하 초등학교, 남하면 보건 지소, 남하 치안 센터, 남하 우체국, 남거창 농협 남하 지점 등의 각종 공공 기관과 공공시설 등이 있어 대지 면적이 넓게 나타난다.
무촌리의 인구는 249세대, 484명[남자 238명, 여자 246명]으로 남상면에서 가장 많다(2016.4. 30 현재).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여 벼농사를 짓고 있으며, 일부 주민들은 양파, 복숭아 등을 재배하거나 한우, 닭을 사육하여 농가 소득을 증대시키고 있다.
무릉리 서쪽의 황강 연안을 따라서는 고령·거창을 연결하는 국도 24호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무릉리의 중앙은 동서 방향으로 가조면 기리로 이어지는 지방도 1099호선이 있다.
주요 문화유산으로는 거창 무릉리 정씨 고가[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287호], 영빈 서원[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305호], 거창 무릉리 최 진사 고가[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37호], 무릉리 고분군, 월곡산성지 등이 있다.
무릉리(武陵里)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에 있는 법정리.
낙동강(洛東江)으로 합류하는 지류 하천인 광려천(匡廬川)의 동쪽에 위치하였다. 광려천의 범람원과 인근의 약 150m 정도의 낮은 구릉으로 형성되어 있다. 무릉리의 동쪽에 위치한 야산으로부터 작은 개천이 광려천으로 합류하며, 두 개의 개천에는 각각 못지골 저수지, 무릉 저수지를 축조하여 용수를 확보하고 있다. 광려천 인근 범람원에 넓은 평지가 있다.
칠서면의 남쪽에 위치한 법정리로, 남쪽으로는 함안군 칠원읍, 동쪽으로는 칠북면, 서쪽으로는 칠서면 회산리, 북쪽으로는 칠서면 구포리와 접하고 있다.
무릉리가 속한 칠서면은 칠원현의 서면(西面)이었다가
-1895년 5월에 현이 군으로 승격되면서 칠원군 서면이 되었다.
-1906년에 함안군에 편입되면서 함안군 칠서면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통폐합으로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무릉리는 오래 전부터 복숭아, 배 등 유실수를 많이 심고 가꾸어 왔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주세붕이 기념으로 심은 은행나무만 남아 있다.
무릉리(武陵里)는 조선중종(中宗) 때의 유학자인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지은 것으로 사람들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理想鄕)의 마을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중국(中國)의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따온 이름이라 전한다.
면적은 6.84㎢이며, 총 1,356가구에 3,332명[남 1,706명/여 1,62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4년 12월 말 현재).
행정리는 산성(山城) 마을·칠평(漆平) 마을·무릉(武陵) 마을의 3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칠원 중학교와 칠원 고등학교 및 다세대 아파트 단지가 있어 칠서면의 법정리 중에서 인구가 많은 편이다. 무릉리의 서쪽에 중부 내륙 고속 도로로 접어드는 칠서 톨게이트가 건설되어 있다. 문화 유적으로 주세붕의 영정(影幀)과 유품(遺品)을 모신 사당인 무산사(武山祠)[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43호]가 있다.
무릉리(武陵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법정리(里).
대정읍 서부지역의 중심지로 해안 및 중산간을 광범위하게 포용하고 있는 마을이다. 무릉리는 대정읍의 서쪽에 있는 중산간 마을 중 하나로, 서쪽은 신도1리, 동쪽은 영락리와 접해 있다. 전체적으로 해발고도 약 60m 이하의 평지를 이루며, 서남쪽 해안에서 북동쪽 내륙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진다.
정개밭·왕가동산·포제동산·서녁동·앞동산·검은굴왓 등 나지막한 동산들이 있으며, 구남물, 구시흘못 등의 연못이 있다.
-1880년(고종 17) 대정현 우면 무릉리가 되었으며,
-1895년 전국 23부의 지방제도하에 제주부 대정군 우면 무릉리가 되었다가
-1914년 제주군 대정면 무릉리가 되었다.
-1946년 제주도제가 실시될 때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면 무릉리가 되었으며,
-1950년에는 사장밧과 앞르 일대를 무릉1리, 사기소·고밧치·인향이·인행이·인앵이 일대를 무릉2리로 하였다.
-1956년 대정면이 대정읍으로 승격되면서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무릉리가 되었으며,
-2006년에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남제주군이 서귀포시에 통합되어,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가 되었다.
무릉리(武陵里) 또는 도원리(挑源里) 등의 명칭이 쓰인 것으로 보아 중국의 고사인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고, 사기소라고도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무릉1리의 서부락과 동부락, 무릉2리의 본동, 보성 등이 있다. 1654년(효종 5) 대정현감으로 부임한 변만향이 둔포리(현 신도리의 옛이름)의 부락명이 좋지 않다 하여 도원리로 개칭하자, 이웃마을인 이곳도 옛 중국고사에 나오는 무릉도원의 머릿글자를 따서 무릉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무릉리는 서귀포시 대정읍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해안과 중산간에 걸쳐 있다. 면적은 12.22㎢로 대정읍 내 13개 법정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지만, 인구밀도는 101.6명/㎢로 일곱 번째이다.
인구는 557가구, 1,271명으로 남자가 665명, 여자가 606명이다(2012년 2월 현재). 지난 10여 년 사이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마을 단체로는 무릉1리의 마을회·노인회·청년회·부녀회가 있으며, 무릉2리의 정보화마을운영위원회·개발위원회·노인회·부녀회·청년회·새생활개선회가 있다. 주요 기관으로는 리사무소·보건진료소·복지회관·경로당·마을문고·어린이놀이터·소공원 등이 있다.
서귀포 대정농공단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감자·콩·보리 같은 밭작물이 주요 소득원이다. 무릉2리는 2008년에 산림청이 지정한 자연 생태 우수 마을에 선정되었으며, 그 뒤로도 범죄 없는 마을, 녹색 농촌 체험 마을, 살기 좋은 마을, 자립형 마을로 지정되었다. 특산물로는 감자와 콩, 감귤이 있다.
문화재로는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1리에 위치한 무릉리방사탑 1호·2호·3호·4호[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8-12호·13호·14호·15호]가 있다. 무릉2리 제주 자연 생태 문화 체험골을 시작으로 하는 제주 올레 12코스에 포함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