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
뒤돌아보다 마주친 저 수많은 얼굴들
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
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냈을까
무표정한 저 얼굴 속 어디에
아침마다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밖에서는 기척도 들리지 않을 이 깊은 땅속을
밀물져 가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하늘 한구석 별자리마다 쪼그리고 앉아
별들을 가마에서 구워내는 분 계시겠지만
그분이 점지하는 운명의 별빛 지상에 내리겠지만
물이 쏟아진 듯 몰려가는
땅속은 너무나 깊어
그 별빛 여기까지 닿기나 할는지
수많은 저 사람들 몸속마다에는
밖에선 볼 수 없는 뜨거움이 일렁거리나 보다
저마다 진흙으로 돌아가려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불가마 하나씩 깃들어 있나 보다
저렇듯 십 년 이십 년 오십 년 얼굴을 구워내고 있었으니
모든 얼굴은 뜨거운 속이 굽는 붉은 흙 가면인가 보다
▶ 시 _ 김혜순 – 김혜순(1955~ )은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1979년 『문학과지성』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 기계』 등이 있다.
▶ 낭송_ 선정화 – 배우. 연극 「김영하의 흡혈귀」, 「아 유 크레이지」 등에 출연.
배달하며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무수한 익명의 얼굴들을 만나는데요, 그 얼굴들이 “붉은 흙가면” 같다는 생각! 왜 시인들은 남다른 상상을 하는 걸까요? 그것은 심미적 이성의 눈을 뜨고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지하철에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냈을까”를 상상하는 게 그렇지요. 그 얼굴들은 아침마다 눈을 뜨고 역동하는 하루를 맞는 사람들의 것이지요.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저마다 진흙으로 돌아가려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불가마”가 하나씩 깃들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침이면 벌떡 일어서서 간밤에 불가마에서 구워낸 제 얼굴을 쓰고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이겠지요.
문학집배원 장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