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이슈]일본 ‘핵무장론’ 급부상
北 핵실험 中 핵 현대화 美 핵우산 한계.. 日 ‘핵 무장’ 명분 쌓기 시작되나?
트럼프 “日 핵무기 갖지 못할 이유 없다” 발언 부인했지만 논란 여전
북핵 압박 위한 中 압력용 해석 불구 美 국방부 “10년 내 현실 가능성”
아베, 헌법 수정 움직임에 日 각료들도 완전 배제 안 해… 귀추 주목
지난해 8월 일본 도쿄 서남부 고텐바 소재 히가시 후지 연습장에서 일본 육상 자위대의 연례 실전 사격훈련 도중 탱크의 포 사격으로 화염막이 펼쳐지고 있다. |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2월 장거리 미사일(로켓) 발사, 3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공화당 대선 후보의 한국·일본에 대한 ‘핵 용인’ 발언 등이 잇따라 터져 나오며 한반도 주변 국가 사이에선 일본의 핵무장론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후보는 지난해 3월 미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CNN 타운홀 미팅에서 “중국·파키스탄·러시아 등 많은 국가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면 일본이 핵무기를 갖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를 가진 북한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또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은 어떤 시점이 되면 논의할 문제”라면서 한·일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트럼프는 그러나 지난해 11월 대선에 당선된 직후 트위터를 통해 “뉴욕타임스는 내가 더 많은 나라가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선거전에서 한 발언을 부인했지만 불거진 ‘일본 핵무장론’의 불을 끄기엔 역부족이었다.
일본의 핵무장을 언급한 미국 인사는 트럼프만이 아니다. 존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해 6월 PBS 인터뷰에서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향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느냐”며 “일본은 사실상 하룻밤에 핵무기를 만들 능력이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서 제기된 ‘핵무장론’은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하기보다는 북핵 압박에 미온적인 중국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목적에서라는 해석이 많다. 무엇보다 핵무장에 대한 국내외적인 걸림돌이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다.
한·일 양국 모두 핵무장을 위해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내의 반발과 국제적 압박에 직면하게 돼 핵무기 개발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특히 일본의 경우 지난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 경험이 있어 내부적인 반발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이와 관련,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2015년 8월 일본 히로시마 원폭 70주년 위령식에서 “우리는 유일한 전쟁피폭국으로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사명을 갖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한·일 양국이 핵무장할 경우 대만까지 핵무기 개발에 나서 동아시아에 핵 도미노가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이를 용인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일본 도쿄 서남부 고텐바 소재 히가시 후지 훈련장에서 일본 지상 자위대가 박격포를 발사하며 연례 실전 사격훈련을 벌이고 있다. |
日, 평화헌법 ‘전수방위’ 원칙 포기하나?
하지만 일본의 ‘핵무장’과 관련해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경고가 나온다. 아베 총리가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9조 개정을 통해 전쟁 수행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진입하려 하고 있고, 일본 각료들도 ‘핵 보유’가 불가하다는 종전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듯한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리(VOA)’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달 27일 북한의 핵 위협을 중대한 안보 위험 요소로 규정하고, 상대방 군사시설을 먼저 공격하는 ‘선제공격능력’ 보유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평화헌법’에 따라 외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만 최소한의 방위력을 행사하는 ‘전수방위’ 원칙을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주변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미 보수군사매체인 ‘워싱턴 프리 비컨’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아베 행정부 관리들이 일본 헌법은 핵무기 보유를 금지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같은 해 8월 극우 성향인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은 기자회견에서 “현 시점에선 핵 보유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해 핵 보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게 아니란 해석을 낳은 바 있다. 일본은 중국의 ‘핵 현대화’와 북한의 핵 개발, 미국의 ‘핵 노후화’ 등으로 인해 미국의 ‘확장억제’ 전략에 따른 핵우산 제공에 한계가 있다는 불안감을 워싱턴 정가에 호소하며 이를 ‘일본 핵무장’의 명분으로 제기할 가능성을 열어놨다.
중·일 핵전쟁 땐 최대 1억 명 이상의 희생자 발생
특히 북한이 지난해 9월 제5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한·일 양국에선 ‘핵무장론’이 급부상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10월, 일본이 중국과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10년 내에 자체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미국 국방부 외부 용역보고서가 나와 주목을 받았다. 워싱턴 프리 비컨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 산하 싱크탱크인 ‘총괄평가국(ONA)’이 지원한 연구보고서는 “일본의 첨단 핵 발전 기반시설과 우주발사대, 크루즈미사일, 잠수함 등에 근거할 때 일본 정부는 10년 안에 스스로 핵무장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1.2메가톤급인 미국의 ‘W-47’과 같은 수준의 핵탄두를 개발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일본의 우주 로켓 엡실론은 10개의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미국의 MX 로켓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핵탄두 개발 능력과 발사체를 이미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은 과거 태평양전쟁 때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 경험이 있어 해안지역이나 잠수함, 이동형 발사대를 선호할 것으로 보이며, 핵전략으로서 ‘응징억제’보다는 ‘거부억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서는 관측했다.
‘응징억제’는 공격을 받으면 더 큰 보복을 가하겠다고 위협하는 전략으로 대도시 등 인구밀집지역이나 산업기반시설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는 반면, ‘거부억제’는 상대 공격을 무력화하는 전략으로 상대 주력부대나 군사기지를 타깃으로 삼는다. 보고서는 중·일 간 핵전쟁이 발생할 경우 중국이 3메가톤급 핵무기로 20~30개의 일본 도시를 공격해 2300만~33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일본은 1.2메가톤 핵무기로 45~60개의 중국 도시들을 공격해 최대 1억2800만 명의 희생자를 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북·일 핵전쟁의 경우, 북한이 10킬로톤 핵무기로 10개의 일본 도시를 공격해 1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일본이 1.2메가톤 핵무기로 반격해 110만 명이 희생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1월 ‘트럼프 당선자의 외교정책 기조와 한국의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일본 아베 총리가 평화헌법을 개정해 자국의 군사력 사용을 제도적으로 공식화하고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트럼프가 동북아 국가의 핵무장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기 때문에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윤태형 뉴스1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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