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0·20대 한복 열풍]
 
거리로 나온 한복 소녀들… '입고 싶은 옷' 문화를 만들다
 
불편하고 고리타분한 옷으로 인식됐던 한복이 패션이자 놀이로 젊은 세대를 파고들었다.
작년부터 시작된 유행이 해를 넘겨서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자유분방하게 자기 표현을 즐기는 젊은 세대가 전통 문화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주로 인근 대여업체에서 한복을 하루 빌린 10~20대 여성들이다. 남자 친구와 함께 한복을 빌려입고 데이트에 나선 전수지(22)씨는 "한복은 색깔이 화려해 사진이 잘 나온다"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들 돌아보니 연예인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친구 네 명과 같이 한복을 빌려입고 인사동을 걷던 이정화(26)씨는 "주말에 한복 나들이를 자주 나온다"며 "일본에선 유카타 입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우리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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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빛깔 고운 한복 차림으로 서울 인사동을 거니는 젊은이들. 명절이나 결혼식 때 입는 어렵고 불편한 옷으로 여겨지던 한복이 젊은이들 일상 속 패션 아이템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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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고 고리타분한 옷으로 인식됐던 한복이 패션이자 놀이로 젊은 세대를 파고들었다. 작년부터 시작된 유행이 해를 넘겨서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자유분방하게 자기 표현을 즐기는 젊은 세대가 전통 문화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의 여성 한복 판매량은 2014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특히 20대에서 2014년 30%, 2015년 21%로 가장 많이 늘었다. 설 명절이 있는 1월보다 나들이철인 5월에 판매량이 두 배 이상 많았다. 남성 한복도 2014년까지 줄어들다가 지난해 전년 대비 78%로 크게 늘었다.
사진 전문 SNS 인스타그램에서 '한복'을 검색하면 36만건이 주르륵 뜬다. '한복스타그램' '한복스냅' '한복체험' 등의 검색 결과도 수만건씩 된다. 유튜브에선 '연예인 같은 한복 화장법'을 알려주는 동영상 조회수가 22만건을 넘었다. 무릎 길이 치마, 면 소재 등 디자인을 다양화한 생활한복 온라인 쇼핑몰도 지난 1년 새 급증했다. 서울의 한 한복 대여점 대표는 "외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대여점을 차렸는데 내국인 손님이 훨씬 많아 깜짝 놀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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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의 경우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박세상(31)씨가 2012년부터 '한복데이' 축제를 열면서 유행을 일으켰다. 현재 한옥마을 내 대여점은 60여곳에 이른다. 2011년 창설된 '한복놀이단'은 한복을 입고 참여하는 파티나 플래시몹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
한복놀이단 권미루(36) 단장은 '한복여행가'로도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스페인, 네팔 등 외국 여행을 다니면서 SNS에 찍어 올린 한복 사진이 화제가 돼 여러 차례 전시회도 열었다. 권씨는 "젊은이들에게 한복이 '입어야 하는 옷'에서 '입고 싶은 옷'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젊은이들 사이 한복 열풍은 개량한복이 큰 인기를 끌었던 1990년대를 떠오르게 한다. 당시 정부가 한복 입기 운동을 펼치면서 공무원들이 토요일마다 개량한복을 입고 출근했다. IMF를 계기로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각성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덕분에 1990년대 말 생활한복 브랜드가 2000여개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으나, 저렴하고 질 나쁜 중국산 제품이 쏟아지면서 '싸구려' 이미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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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권미루씨가 한복 차림으로 외국 여행객들과 함께 찍은 사진. /한복여행가 권미루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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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 생활한복 업체 '돌실나이' 김남희 대표는 "한복 매장에 발길도 하지 않던 젊은이들이 요즘은 '와, 한복이다!' 외치면서 들어설 정도로 인식이 달라졌다"고 했다. 21년간 생활한복을 만들어온 돌실나이는 3년 전 젊은이를 타깃으로 삼은 생활한복 브랜드를 새로 출범시켰다. 3년 만에 매출이 2.5배 늘었고 올해는 작년 대비 3배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왜 한복에 열광할까. 생활한복 디자이너 이향씨는 "일본에선 오래전부터 전통 의상 기모노를 편안한 소재와 다양한 디자인으로 풀어낸 유카타가 젊은이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며 "이런 흐름이 국내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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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 온 관광객이 한복 체험 학습 나온 중학생들과 경복궁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고운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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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류학회 회장인 박길성 고려대 대학원장은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와 달리 모든 개념으로부터 자유롭다"며 "기성 세대는 젊은이들이 애국심이나 민족주의 때문에 한복을 입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지나친 해석"이라고 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젊은이들이 개인적·민족적 정체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현상"이라면서 "기성 세대가 개입하거나 국가에 의해 강요된 행위가 아니라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움직임이기 때문에 우리 문화가 한결 성숙해졌다는 것을 증명해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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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축구 응원/한복놀이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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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산하 최정철 한복진흥센터장은 "한류 붐을 타고 해외에서 우리 문화의 위상이 높아지자 젊은이들에게 우리 전통문화가 자랑할 만하고 따라 해보고 싶은 대상이 됐다.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도록 콘텐츠 개발이 과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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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복궁을 찾은 중학생들이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 고운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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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복 입기가 유행인 가운데 서울 경복궁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부산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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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복 입기가 유행인 가운데 서울 인사동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시민들이 거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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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한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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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고 스페인광장에서 사진을 찍은 한복여행가 권미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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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한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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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 한복 관광객들 경기전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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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에 한식·한옥은 있는데 정작 한복은 없었죠"
전주 '한복데이' 만든 박세상씨
전주 한옥마을에 가면 '한복 물결'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젊은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한복을 입고 있으니 한복 입지 않은 사람이 어색해 보일 정도다. 이런 풍경을 누가 만들어냈을까. 서른한 살 젊은이 박세상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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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공간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사회적 기업 ‘불가능공장’ 박세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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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사회적기업 '불가능공장' 대표를 맡고 있다. 충남대 재학 시절 대학가에 문화 공연을 기획하고 상점 쿠폰을 발행하는 등 상권 살리기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장관 표창도 받은 적 있다. 그가 다음으로 눈을 돌린 곳이 고향 전주였다. 2012년 '한옥마을을 한옥마을답게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고 한복을 주목했다.
박씨는 "한옥마을에는 한식과 한옥, 즉 먹고 자는 문화는 있었지만 '입는 문화'가 없었다"며 "여행객들이 한복을 입고 한옥마을을 관광하는 문화를 만들어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우선 '한복데이'라는 축제를 기획했다. 저렴하게 한복을 빌려주고 한복 차림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놀이와 이벤트를 마련했다. 젊은이들 사이 입소문을 타면서 매달 열리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작년 1월엔 한옥마을 첫 한복 대여점 '말순이네'를 열었다. 시간당 사용료를 받고 한복을 빌려주는 전문점은 처음이었다. 손님이 몰리자 동종업계가 형성되면서 1년여 만에 대여점이 60여곳으로 늘어났다. 그는 "한복 전문가가 아니라 도시 기획자였기 때문에 한복을 대중적으로 해석하기 수월했던 것 같다"며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한복을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문화·놀이·파티·여행 등 확장된 개념으로 접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경주, 남원 등 전국 각지에서 노하우를 공유해달라며 찾아오는 청년 기획자가 많다고 한다. 박씨는 "한복을 입어보는 것으로 만족했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머리 스타일과 액세서리까지 꼼꼼히 챙기는 등 제대로 갖춰 입는 것에 점점 더 관심을 보인다"고 했다.
취재=최수현 기자 , 편집=뉴스큐레이션팀,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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