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꽃
조지훈
까닭 없이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시집 『풀잎 단장』, 1952)
[작품해설]
해방 지구 조지훈은 박목월, 김동리, 서정주, 조연현 등과 함께 순수 문학을 표방하면서 1946년 4월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한 바 있다. 그는 문학이 정치에 복무하는 것을 배격하면서 순수한 시 정신을 옹호하였다. 그에게 있어 시 정신이란 “시류(時流)의 격동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영원히 새로운 것”이었다. 이 시는 6.25 직전의 어수선한 시대 상황하에서 씌어진 작품으로 바로 그러한 순수한 시 정신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기·승·전·결의 전통 구조에 따라 의인화된 민들레꽃을 통해 임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어느 봄날, 노랗게 피어난 민들레꽃을 발견한 화자는 그것을 임의 현신(現身)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애틋한 사랑의 심경을 여성적 어조로 나직이 노래 부른다. 임과의 사이에 가로놓인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로 인해 ‘까닭 없이 마음 외오울 때’ 발견한 민들레꽃이기에 그것을 임의 모습이라고 확신하는 화자는, 민들레꽃이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는 순간, 자신의 절실한 그리움에 ‘얼마나 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아득한 거리’라는 구절을 고려한다면, 시적 대상인 ‘임’은 화자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화자는 ‘사랑한다는 말 이 한 마디는 /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이라면 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다짐한다. 이렇게 화자는 외롭고 그리운 마음을 민들레꽃에 투영하여 사랑의 다짐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작가소개]
조지훈(趙芝薰)
본명 : 조동탁
1920년 경상북도 영양 출생
1939년 『문장』에 「고풍의상(古風衣裳)」, 「승무(僧舞)」, 「봉황수(鳳凰愁)」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41년 혜화전문학교 문과 졸업. 오대산 월정사 불교 전문 강원 강사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 협회 조직
1947년 고려대학교 교수
1950년 문총구국대 기획위원장
1968년 한국시인협회장
1968년 사망
시집 : 『청록집』(공동시집 1946), 『풀잎 단장(斷章)』(1952), 『조지훈 시선』(1956), 『역사 앞에서』(1959), 『여운(餘韻)』(1964), 『조지훈 전집』(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