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간 토요일 (마르 2,13-17)
나는 사랑받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를 보시고 “나를 따라라”(마르2,14)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는 마태오라는 세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세리는 세금 징수를 위임받은 사람입니다. 이들은 세무 당국과 계약을 맺어 세금을 징수했는데 정한 액수보다도 더 많이 거둬들여 차액을 착복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은 돈밖에 모르는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따돌림받았으며 직책상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다교를 올바로 믿으려면 세리직을 떠나야 했습니다. 하필 그런 세리를 예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
그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음식을 나누며 당신의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단지 거기에 함께한 사람들끼리의 친교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결코 죄인들과는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죄인들이 하느님과의 친교를 뜻하는 식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주 이러한 죄인들과 함께 식사 하셨고, 이 행위 자체가 그들에게 용서를 베풀어 주신 행위였습니다. 그는 죄인이어서 행복하였습니다. 의인을 자처하는 바리사이 율법학자가 아니어서 행복을 차지했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구원을 받는 겸손한 죄인과,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믿으며 자신이 실천한 외적인 의로운 행위로 상급이 마땅하다고 믿는 교만한 죄인”이 존재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부르십니다. 내가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로써 오십니다. 따라서 레위가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듯이 오늘 내가 예수님을 따라나서면 인생이 바뀝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면 행복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자기를 안전하게 지켜 주었고 모든 것을 보장해 주던 익숙한 자리를 버리고 따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쩌면 하나의 인생 도박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창세12,1) 고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는 그대로 행하였고 오늘 우리는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어부를 부르시고 그들을 당신의 제자로 삼으셨고, 세관에 앉아있던 레위를 부르셔서 인생을 새롭게 하였듯이 오늘도 구체적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내 처지나 상황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부르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에 응답하고 감사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십니다. 충만한 자비를 주시고자 부르시고, 기다리시는 주님품 안에서 행복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자비에도 불구하고 함께하지 못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완고함이 문제 아닐까요?.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