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 릴리스
김 난 석
험퍼딩크의 노래로 널리 알려진 ‘플리스 릴리스 미 렛 미 고
(Please release Me let me go)’는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
그만 놓아달라는 노랫말에 실려 흐른다.
그러나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구속만은 그만두라는 뜻으로 들어두면 안 될까?
사랑은 너무 집착하면 구속에 다름 아니고
너무 놓아버리면 무관심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사랑은 구심력과 원심력이 맛서는 팽팽한 줄 위에 놓여있다.
그런데 영어에는 릴리스(Release) 말고 다른 릴리스(Lilith)도 있다.
이사야서에 밤의 미녀(올빼미)로 기록된 릴리스(Lilith)는
인간 최초의 남성 아담의 아내였다 한다.
그러니까 최초의 남녀 커플은 아담과 릴리스인 셈이다.
그런데 그들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았다 한다.
관계를 맺음에 있어 언제나 아담이 상위였으니,
이에 릴리스는 늘 불평이 많았다 한다.
아담 역시 릴리스에 양보하지 않고 항상 상위를 고집했으니,
화가 난 릴리스는 아담 곁을 떠나 홍해 근처로 도망쳤다 한다.
릴리스는 그곳에서 다이몬(악령)들과 음탕한 생활에 빠졌는데
그 상대 중 가장 유명한 게 다이몬의 우두머리격인 루시퍼였다.
릴리스는 신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신을 신앙의 대상이 아닌
인식의 대상으로 삼아 직접적 신의 체험인 환각이나
환시를 통해 신의 영역에 접근하고자 했다.
이러한 내용은 고대 유대교의 전승 카발라(Kabbalha)에 근거를 둔 것인데,
이 신화를 바탕으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최초의 여성 이브를 창조했다는
성경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물론 나만의 미숙한 상상일 뿐이다.
짝을 이룬 남녀가 한 몸에서 나왔다면
왼손이 오른손보다 먼저였다가 오른손이 왼손보다 먼저였다가 하는 것처럼
한 운명으로 맺어진 부부 역시 위가 아래였다 아래가 위였다 관계하며
연신 바꿔대는 모습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신화의 여성을 끄집어내보지만,
내 갈비뼈에서 나오지 않은 내 아내는
오늘 밤 어디서 신의 영역에 접근하려는지 그게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그런 것처럼 그 신이 그 신이 아니고 그 신일 테니
그쯤이야 허여해도 괜찮지 않을까싶은 것이다.
아내가 돌아왔다.
양평 어느 산골에서 전원생활 한다는 친구의 초청을 받고 쉬다 돌아왔다.
나는 우선 그 남편의 근황이 궁금해 이렇게 물어봤다.
“그 양반 요즘 어떻게 지내셔?”
“틈틈이 동남아를 돌며 사향커피를 수집해 와서 단골 거래처에 넘긴다는데
그 수입이 짭짤하다던데.“
“그분 대기업 임원생활 하더니 참 지혜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군.”
“그런데 당신 친구는 건강해?”
“걔는 타고나길 건강하게 타고나서 원래 씽씽해요.
피부는 까맣게 그을렸지만 작품 활동도 꾸준히 하면서 잘 지내.“
이쯤 되면 친구의 전원생활을 부러워하는 나머지
불평 한 마디쯤 나올 법도 한데
예상 외로 평온한 대화를 한참이나 나누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친구 요즘 이혼했다고 하네.”
“그래? 왜?”
“친구는 남편이 사업을 한다면서 돈만 까먹는 걸 싫어하고,
그 남편은 친구가 돈도 안 되는 작품 활동만 하는 걸 싫어했나 봐요.“
“아니, 그 남편 수입이 짭짤하다면서?
그리고 친구도 이재 관리에 밝아 부동산 수입이 많다면서?“
“그건 그렇지요.”
“그러면 됐지 뭐가 안 맞았을까?”
“..... ...., 사업을 한다고 베트남에 들랑거리다가 그쪽 여성을 건드렸나봐.”
“남편이 그걸 실토를 했나? 아니면 들통 났나?”
“우연히 전화 하는 걸 엿들었는데, 남편은 단순한 거래관계라고 변명하더래요.”
“그분 아내를 베트남 여성으로 대체하려 했을까? 그건 아닐 텐데?”
“남편에게 너무 몰아세웠나 하고 후회도 하던데... 걔가 개성이 좀 강하거든.”
개성? 그건 각 개인 나름의 고유한 성정일 수도 있고 고집일 수도 있을 텐데
남녀관계, 특히 부부관계의 그 오묘한 사실관계와 감정관계를 타인이 어찌 알랴.
‘마리우스가 묵게 된 주막집에서
그의 말 장신구에 이상이 생겨 그의 출발은 지체되었다.
그는 올리브나무가 그룹 지어진 정원에 앉았다.
그는 그의 기쁨을 함께 나눌 어떤 사람을 찾고 싶었다.
그런 사람과 친밀하게 지낸다는 것은
이 고달픈 인생순례의 도정에서 가장 큰 기쁨인 것이다.
지루한 여행의 발걸음을 두 배로 가볍게 해주는 길가의 장미처럼
그의 까다로운 성품이나 기분을 참아주고
어린 시절부터 이 지상에 온 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자신의 철학에 공감하는 충실한 친구가 또 있을까?
만일 친구 하나 없이 그가 이 지상에 홀로 남는다면
온 세계가 소멸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공상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그 세계 속의 여행자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어
나란히 평원을 걷고 있었다.
이를테면 플라톤과 그와 다른 철인과
최근에 읽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통해 터득한 만상 속에서
작용하는 살아있고 실제적 의미의 동반이 가능한 ‘정신의 예시’로 돌아왔다.
이러한 각성과 이해가 그에게 임함에 따라
순수한 물질세계는 자기 주위로부터 용해되고 무산되고 마는
가상이요 허상에 불과했다.‘
이것은 페이터의 산문 중 ‘위대한 이성’ 중의 한 구절이다.
인생에 있어 영원한 동반자는 물질도 타인도 아니요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자각되는 자신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영원한 동반자는 누구일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일까?
그들은 그들 중 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 존귀한 존재이다.
그들은 그들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나갈 권리가 있는 거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그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는커녕
괴롭히거나 괴롭게 하거나 적어도 언짢게 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럴 때면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철인들은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분석하고 처방을 내놓기도 했으니
바로 성악설이니 성선설이니 하는 것도 그런 것 중 하나일 터이다.
성악설은 원래 나쁜 품성을 타고났으니 부단히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고
성선설은 원래 좋은 품성을 타고났으니 나쁜 물이 들지 않도록
부단히 다스려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나 저것이나 부단히 갈고 닦아야 한다는 건 마찬가지라 해야겠다.
그러나 남이야 남이 갈고 닦을 일이니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
무엇보다 자신을 갈고 닦아
고양된 자신의 이성이 자신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때
외롭지 않고 떳떳하며 보람된 삶이 가능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러면서 가끔은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허리를 굽히고
주위의 풀잎이라도 매만지며 바람의 향긋한 내음을 맡아보는 것도
긴장된 이성을 쉬게 하는 것이려니
이런 감성도 이성에 못지않은 나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는 것이리라.
떨어져나갈 일도 돌아설 일도 없는 바로 나의 영원한 동반자,
그건 결국 나의 이성과 감성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첫댓글 난석님~
맞습니다
지금 남을 생각할 때가 아니지요
제 자신을 갈고 닦아야 자신과의 동반자로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지요
저녁 맛나게 드시고 고운 밤 되시길 바랍니다
맞아요
내 안에 나의 동반자가 있으니까요.
부부가 한번 믿음이 깨지면
참 힘든 것 같아요
제 지인은 여자가 잘못해서 이혼했다 다시 합첬는데 그 친구
못살겠다고 다시 집 나왔더라고요
남편이 사고친건 여자들이 많이 이해하고 덥던데 남자는
여자에게 그런 아량은 부족한 듯합니다.
네에 청담골 여사님의 심성도 살짝 엿볼 수있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오묘한 부부관계나 이성관계는 자신도 잘 모를 경우도 있는것 같습니다.
그런땐 결국 자신 안의 이성이나 감성을 다스려 동행하는게 현명한 것 같아요.
다른것은 모르겠지만
동남아에 남성들 혼자 오시면 여자들 들러 붙어서 그냥 못갑니다.
회사를 통하여 사업하러 오는 남성들 여자 안만났다는것
99.9% 뻥입니다.
그렇군요.
하긴 사람이 많으니 별사람들이 많겠지요.
https://youtu.be/ch_Fz2Np-Z4
요렇게 좋은 음악을 놓고 이야기를 하셨군요.
이제야 읽어서 안타깝네요.ㅎ
베트남으로 따라갈 것이지 뭐하러 혼자 보내고 양평에 남아서 남편도 뺏기고
그 남자가 행복하다면야 뭐 잘 보냈습니다.ㅎ
PLAY
적시타 날리셨군요.
그런데 사람이 많으니 별의별 사람들이 많죠.
남편을 뺐겼는지 잠시 한눈 팔았는지
아니면 비지니스였는지 누가 알겠어요.
내집 내울타리 내꽃밭이나 잘 간수하다가
그것도 안되면 내안의 동반자나 불러내는거죠.
끝까지 부부로 산다는건 지금세상에는
흔한일이 아니더이다 ᆢ 절반 이상
이혼을하고 나머지 절반은 이혼은
아니더라도 절혼 따로국밥 시대이다보니 ᆢ 어려운 시대인가 봅니다
따로비빔밥도 있지 않던가요...?
사람 사는 게 참 다양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