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ㅡ 가족사랑 나라사랑 국민통합
조문부ㅡ 국립제주대학교 명예교수
국립제주대학교 前총장
가족사랑은 생명의 연원이자 생활의 온상이다.
인간은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으로 성장하며, 가족 간의 사랑으로 행복을 향유하고
생사고락을 함께하다가 이별의 아쉬움을 남기며 사랑으로 생을 마친다.
인간사회에서 사랑의 보금자리인 가족을 지키는 데에는 씨족사회나 부족사회의 힘만으로는 부족하여
국가사회를 만들게 됐고, 국가사회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가족사랑과 더불어 국가사회를 사랑하게 했으며,
충효사상을 인생의 기본 덕목으로 삼기도 했다.
가족사랑과 동시에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데, 오늘날 발전도상국가에서는 산업사회화로 인하여
가족사랑도 붕괴되고 있고, 국민통합 기반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사랑이나 이기주의적 성향이
짙어져 나라사랑을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선진국가에서는 근대화 이후에 강력한 통일국가를 만들기 위해 가족사랑에 더해 나라사랑을 더욱 강조했다.
근대국가에서는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가족사랑의 보금자리인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무장 조직을 갖춘 통일국가를 필요로 했는데, 군국주의의 역사적 과정에서 각 국가 간에
조직적으로 교육 훈련을 받은 국민을 통해 무력을 증강시켜서 침략전쟁을 야기하고
경쟁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식민지 통치를 자행했다.
국민의 교육 훈련 과정에서 필요로했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로 한 것이
무력에 더한 정신력으로서의 인내심과 단결심이었다.
이러한 정신력의 원천이 바로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이었다.
그래서 근대국가의 교육제도는 국민들로 하여금 나라를 사랑하게 하고,
목숨을 바쳐 나라에 충성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침략전쟁의 국가간 경쟁에서 낙오된 국민은
근대국가를 건설하기도 전에 식민지가 되어 사랑할 조국을 잃고, 국민이 되려는 의지를 갖거나
조직적 훈련을 받을 기회마저 상실해 국민통합의 기반을 잃게 됐으며,
결국 가족사랑 마저도 파괴되는 고통을 면치 못했다.
오늘날 현대국가에서도 국가 간의 경쟁은 정치, 경제와 안보 면에서 냉엄하게 존재하며,
국지전이나 세계대전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나라를 사랑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국민으로서 가족사랑 못지않게 중요시 해야 할 시대적 소명(召命)이 되고 있다.
그런데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방법에 대해서는 국민통합의 역사를 포함한
문화의 상위로 인해 그 인식에 차이가 있다.
근대국가 이후 국민통합의 역사가 축적된 국가에서는 국민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개방적이면서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서 국민에게 신뢰받는 하향적 체제를 갖추고 있고,
또한 국민은 가족사랑이나 개인의 이익을 나라사랑이나 국가이익과 조화를 이루도록 양보하는 자세를 갖춰
국가를 사랑하는 국민이 되려는 의지를 가지고 그 실천적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갖는 상향적 체제가 정착돼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해 국민통합의 기반을 갖추지 못한 발전도상국가에서는
정부의 정책도 국민들에게 신뢰받지 못할뿐만 아니라 국민의 의지나 의사도 국가를 사랑하고
국가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려고 하기 보다는 가족사랑과 자신이나 소속집단의 사리사욕을 우선시 해
갈등과 분열을 자초함으로써 혼란스러운 경향이 많다.
그래서 국민통합의 역사적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데 더해 우리나라의 혈연주의 문화와 같은 것이
종교처럼 신앙화 된 발전도상국가에서는 어떻게 국민통합을 이루어 혼란을 극복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한 정치적 과제며, 나아가 세계평화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국민통합 방식은 군국주의시대 산물로서 전제적 강압적 방법이 주였으나,
지금은 교육적 방식에 의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것도 유소년시절에는 가정교육에 의하여 애국적 명문가의 기반을 구축하고,
청장년기에는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에 의하여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교육환경이 문화환경과
유기적인 연계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말하자면 막스 베버가 말한 것처럼 지식층(교육자, 공무원, 의회의원, 종교인, 언론인, 기업인)의
지적(知的) 애국심과 사회문화적 운동을 선구자적 역할로 하는 국민통합 운동을 전개하도록 해야 한다.
절대 확신으로 힘차게 도전
나쁘다고 하지만 부처가 되면 법화경의 힘이 나타나리라.
따라서 임종이 나쁘다면 법화경의 명예가 손상되리라. (어서 1476쪽)
통해
(니치렌은 세간으로부터 악인이라고 불리고 있는 자이지만) 만약 악인이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면
법화경의 힘이 현증될 것이다. 따라서 임종이 나쁘면 법화경의 이름을 손상하게 되는 것이다.
◇ ◇
"불법은 승부"라고 하지만 묘법신앙의 증명을 현실의 생활과 인생에서 나타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하는 어문이다. 묘법 철리의 위대함을 활자와 말로 선양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 위대한 철리를 사실의 모습으로서 증명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신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 혁명해가는 모습, 흔들림 없는 확신에 서서 사회구제에 행동해가는 모습.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인격과 생활상에서 부처의 경애를 열어 나타내는 그 사실의 모습이 묘법의 힘을
무엇보다도 강하게 현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승리의 실증 앞에는 과거의 오해도, 혹은 불행도 무산되고 말 것임에 틀림없다.
반대로 인간으로서 패배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묘법 그 자체의 이름을 손상시키는 것이 되고 만다.
실로 불법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을 매개로 하여 인생과 생활에서 승리하는가, 패배하는가,
어느 한쪽의 모습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가슴속에는 항상 '임종이 나쁘다면' 이라는 자계와 긴장감을 띠고 묘법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원천으로
하루하루의 과제에 힘차게 도전하자.
한국은 문화 대은의 나라
'한민족 독립의 아버지' 안창호 선생의 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자네도 일하고 나도 일을 하자."
"자네도 주인이 되고 나도 주인이 되자."
사람에게는 '위'도 '아래'도 없다. 모두 평등하다.
전원이 중요한 사명을 가진 '주인'이다. ('도산 안창호의 생애')
안창호 선생은 이렇게 단언하셨습니다.
"단결한 각자가 단(團: 조직)을 사랑하고 단우(團友: 그 조직의 벗)를 사랑하고 조직의 지도자를 사랑하고
조직의 건물과 기구를 사랑하는 것, 그것을 마치 자기 것처럼 사랑함으로써 비로소 단결이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더욱이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 동지의 '정의(情誼: 친밀감)'를 이용해 나를 속이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를 속여도 나는 그 사람과의 동지의 의(義)를 지키리라."
"세상에 마음 편히 믿는 동지가 있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대체 어디에 있겠습니까?"라고.
신뢰할 수 있는 동지가 있는 것이 '최대의 행복'입니다. 단결이야말로 '최대의 힘'입니다.
성훈에 "이체동심이면 만사(萬事)를 이루고 동체이심이면 제사(諸事)가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 (어서 1463쪽)라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단결 제일'로 사이좋게 어디까지나 사이 좋게 전진하기 바랍니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불교가 전래된 것은 '538년' 혹은 '552년'이라고 합니다.
당시 한반도는 백제, 신라, 고구려로 이루어진 '삼국시대'였습니다. 일본은 '야마토 시대'였습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일본서기'의
"552년 10월, 백제의 성왕이 금동불상· 경론(經論) 등을 일본으로 보냈다"는 기록을 토대로
'552년 설(說)'을 취하시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래될 무렵, 이를 적대한 일본 세력은 모조리 멸망했습니다.
대성인은 그 일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석가불은 상벌(賞罰)이 올바른 부처이니라." (어서 1168쪽)
<한일우호대표자회의, 2000년 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