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영어 사용 의무화 방침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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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여자프로골프협회)가 선수들의 영어 사용 의무화 방침을 2주 만에 철회했다. 소속 선수, 미국 내 언론,
정치인에 이어 후원사까지 비난 여론이 들끓자 본래 계획을 취소한 것이다. 불씨는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
어렵다. 대다수의 골프관계자들은 “이러한 방침이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더군다나 JLPGA(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는 현재 영어·일본어 사용 의무화 방침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글│이종길•디자인│정종호
LPGA의 영어 사용 의무화 조치가 2주 만에 해프닝으로 끝났다. 캐롤라인 비븐스 LPGA 위원장은 지난 9월 6일(한국시간) “영어 사용 의무화와 관련된 벌칙 규정을 무효화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이전까지 수많은 반대에도 완강하던 LPGA가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영어 의무화 조치’는 ‘차별대우’에 휘말릴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국 내 언론이나 소속선수들이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피력했다. 모든 공식 인터뷰를 스페인어로 하는 앙헬 카브레라는 “LPGA의 결정은 프로암대회부터 경기를 준비하는 여성선수들을 정신없게 만들 것”이라고 했고, 브리티스오픈 등 메이저대회 2연승을 달성한 파드리그 해링턴은 “말 못 하는 농아 선수는 아예 못뛰게 할 작정이냐”며 LPGA의 정책을 꼬집었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영어 의무화는 영어가 서툰 선수를 차별하는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라며 ‘이러한 규정을 선수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모욕적이자 자멸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LPGA의 규약이나 운영요강에 투어 참가자가 영어 구술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게 맞지만 갑작스럽게 내세운 방침에는 허점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논란이 붉어졌던 2주 동안 LPGA는 소속선수들이나 미국 내 언론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이크 스캔런 LPGA 대변인은 “이번 조치는 협회가 소속 선수들의 전문가 자질 개발과 언어훈련을 위해 수년 전부터 해온 일을 단순히 확대한 것”이라며 “효과적인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LPGA 사업과 선수들의 성공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다. 요구 수준을 달성할 때까지 투어 참가자격을 박탈한다는 벌칙규정마저 마련했다. 거센 반대의 파도를 예상하고도 LPGA가 2주간 강력하게 기존 입장을 고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골프계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LPGA는 영어 의무화에 대한 공식발표는 물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적이 없다”며 “공격적인 입장 표명만으로 여론과 스폰서의 반응을 관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LPGA는 이번 논란을 교훈삼아 체계적인 준비로 영어 의무화는 물론 다른 방안까지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이번 방침 철회가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이번 논란은 LPGA의 첫 번째 잽이 들어맞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LPGA의 첫 번째 잽
LPGA가 영어 의무화 조치를 취소한 건 미국 내 여론이나 소속 선수들의 반대 때문이 아니다. 방침 철회 3일 전, LPGA는 아시아계들이 많은 캘리포니아의 주정부 인사와 상ㆍ하원 의원들의 비판과 법적 대응 방침이 이뤄질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이를 선두에서 지휘한 건 캘리포니아 주 르랜드 이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LPGA가 조치를 취소하기 이틀 전인 9월 4일 “영어 사용 의무화 조치에 대해 법적 대응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이 의원은 이날 “LPGA가 추진하는 새 규정은 작업장 평등과 관련한 캘리포니아 주 법에 위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만일 LPGA의 조치가 입법위원회에서 합법으로 판단해도 이를 막기 위한 새 법안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LPGA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골프관계자들은 “법적 대응까지 갔을 경우 LPGA가 밀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를 수차례 겪은 미국에서 차별대우만큼 승산 높은 소송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어 의무화 방침 발표 이후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에는 인권변호사들의 전화가 수차례 걸려 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만약 한국선수가 소송을 걸었다면 무조건 승소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LPGA는 처음 영어 의무화를 거론하면서 그 대표적인 이유로 후원업체들의 불만을 꼽았다. 그러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후원사들은 법적 대응에서 패해 망신을 당할 것을 우려해 LPGA의 조치에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스테이트 팜 보험사는 “LPGA의 이번 조치에 동의한 적이 없다. 아연실색했다”고 했고, 초이스 호텔스 인터내셔날은 “이번 결정에 대해 다시 검토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국 골프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르랜드 이 상원의원의 발언 뒤 영어 의무화에 동의한 몇몇 기업이 사전에 LPGA와 접촉해 한걸음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계획된 후 원업체의 반대로 LPGA는 외견상 깨끗하게 계획을 포기할 수 있었고, 후원사는 자신들의 이미지 제고에 좋은 영향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골프관계자 A씨는 “후원사들이 처음부터 반대 입장이었다면 왜 처음부터 공식성명을 발표하지 않았겠느냐”며 “이번 논란은 LPGA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영어 의무화를 강조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해프닝이자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말했다.
꺼지지 않은 불씨
LPGA는 영어 의무화를 포기했다. 그러나 백기를 든 것은 아니다. 잠시 한 걸음 물러났을 뿐이다. 캐롤라인 비븐스 LPGA 위원장은 영어 의무화 방침 철회를 밝힌 자리에서 “자격정지의 벌칙이 포함되지 않은 새 정책을 연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선수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게 하겠다는 기본 입장은 유효하다. 모두에게 유익한 비즈니스 기회를 증진시키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연말까지 확정될 벌칙 조항은 완화 되겠지만, 영어 사용에 대한 선수들의 부담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LPGA가 이토록 영어의무화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LPGA는 최근 미국 내에서의 입지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10년 전까지 3%를 유지하던 시청률은 최근 0.1%를 넘기기가 힘들어졌다. 미국의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메이저대회인 여자브리티시오픈 최종일 중계를 시청한 사람은 1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LPGA에서 38승을 올리며 명예의 전당에 가입한 캐롤 만은 “친구들이 외국 선수들이 리드에 있는 걸 보면 무조건 채널을 돌린다”며 “특히 한국선수처럼 영어를 못하는 선수들에게선 어떠한 공감대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만의 친구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 내LPGA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만의 친구들과 비슷한 이유로 LPGA를 시청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대다수는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챔피언을 보면 피로감이 생긴다고 답변했다. 외국인 선수를 보면 거부감이 들어 채널을 돌려버린다고 답한 이도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미국선수들이 랭킹 1위인 멕시코의 로레나 오초아와 많은 한국선수들의 기세에 눌려 선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탓에 LPGA의 인기가 저조해졌다고 말한다.
LPGA 투어에서 뛰는 26개국, 121명의 외국 선수 가운데 한국선수는 총 45명. 전체 외국인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37%다. 이들은 올해 LPGA투어 5개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가운데 2개는 메이저대회였다.
캐롤라인 비븐스 LPGA 위원장이 이러한 이유만으로 영어 의무화 정책의 칼을 빼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KLPGA를 비롯한 국내 골프관계자들은 “영어 의무화는 이미 3년 전부터 거론돼 왔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며 “올 것이 온 거라 별로 놀랍지 않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예감을 직감한 건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세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한 일이다”라고 했고, 이선화는 “좋은 스폰서십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제도가 생길 것을 예측했다”고 했다. 이들은 어떻게 일찍부터 영어 의무화를 예상할 수 있던 걸까.
자세한 내용은 THE GOLF 10월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