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번잡한 쌍용계곡 대신에
도장산 동쪽계류인 다락골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옻닭백숙을 안주삼아 부라보~~!!
밤이 늦도록 부라보를 외쳐대니
과연 내일 새벽에 산에 갈 수 있을 것인가 걱정이 된다.
모기는 커녕 벌레도 한 마리 없는 천혜의 요새지만 날씨가 서늘하여 모닥불을 피웠다.
그동안 못다한 얘기들.. 자매들간의 수다가 밤이 늦도록 이어진다.
아이들 마냥 불장난도 해가며..
밤 12시가 넘어서니 불꽃도 점차 사그러든다.
처제와 처형들은 텐트속으로 들어가고 동서들과 나는 개울옆에서 하늘을 지붕삼아
침낭속에서 잠을 청한다. 가끔은 번개도 치고 천둥소리가 들리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다.
오랜만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감회가 새롭다.
구름에 달이 가니 덩달아 별도 바쁘다.
내 마음도 별따라 하늘로 오른다. 심산유곡의 신선함.. 1박2일(?)의 프로그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새벽에 과연 몇 명이 일어나 산으로 향할 것인가?
새벽이 되었는데도
술이 웬수였는지 지난번처럼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 1박2일의 강호동이 나타나 복불복! 외쳤다면 모두들 벌떡~ 일어났을 것이건만..
홀로 조용히 차를 몰고 들머리인 용추교로 향한다.
용추교에서 차량은 더 이상 진입할 수가 없다.
심원사까지는 2km, 계곡옆으로 붙어 등산로가 이어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축축한 느낌이다. 혹시 빗님이 오시려나 싶어 작은 우산을 챙기고
배낭대신 물 한 병만 카메라가방에 넣고 달랑달랑 산문으로 든다.
<심원사 500m> 이정표가 있는 표시기가 많은 지점에서 좌측길로 오른다.
심원사는 하산길에 들러보기고 했으나 오늘 알바로 두 번이나 심원사에 들르게 될줄이야..
도장산 지도를 프린트해놓고도 챙겨가지 않은 죄의 대가는 심했다.
30여분 가파른 길을 치고 오른다.
어제먹은 술 때문인지 눈알이 빙빙돌고 어지럽다. 안부에 있는 고목 그루터기에 앉아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651봉에 올라서니 운무속으로 노송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하지만 조망은 꽝이다.
작년 꼭지와 걸었던 백두대간 속리산 주능이 보고싶었는데..
..................
706봉 3거리 갈림길..
이곳에서 심원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1시간의 대형알바의
전주곡이 시작되었다. 어젯밤 술이 덜깼는지.. 직진하면 엉뚱한 능선으로 빠지는 줄 알고
바로 우측능선으로 붙었는데 그 길은 심원사 하산길이었다.
중간쯤부터 계속 내려가는길이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시 올라가기가 귀찮아서 계속 내려가버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심원사 일주문이 떡 버티고 서서
'너 이놈! 도장산에는 안가고 왜 이리로 내려오느냐.'며 호통을 친다.
'우째 이런일이.. ' 마치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라
내려왔던 길을 헉헉대며 다시 올라가니 그 맛은 세상에서 가장 죽을 맛이다.
이로서 어제먹은 술은 다 해독된 셈..
길은 좋고..
조금전에 내려왔던 706봉을 다시 올라선다.
여전히 조망은 없지만 운무속의 솔숲길이 은은하게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능선에는 꽃며느리밥풀이 군락을 지어서 억울함을 호소한다.
아저씨! 아저씨!
'난 밥이 다됐나 맛보려고 밥풀 두개를 입에 넣었을 뿐인데
시어머니가 몰래 밥 훔쳐 먹는다며 나를 두들겨 패 죽였어요.' 한다.
그 억울하게 죽은 며느리가 피어난 꽃이 꽃며느리밥풀이다.
'세상사에 억울하게 죽은이가 어찌 너 뿐이겠느냐.'며 '다 시절을 잘못 만난 탓이니라...'
꽃며느리를 위로하고 걸음을 옮긴다.
도가 감취진 산이라는 뜻의 '도장산'
속리산권의 조망이 좋다고 했지만 오늘은 운무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역시 길은 좋다.
퍼질고 앉아 밥먹기에 딱 좋은
헬기장을 지나니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행운인지 모르지만 두번이나 마주친 <도장산 심원사>
심원사는 660년(신라 무열왕7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도장암이라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때 전소되었다가 1729년 낙빈대사가 중창하여
심원사라 개칭하였다. 그 후로 이름있는 절간으로 명맥을 유지했으나
1958년 실화로 전소되었고 1964년 법당과 요사채를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용추교에서(2km) 오직 두 발로 걸어서만이
갈 수 있는 심원사, 이름에 어울리듯이 속세에 때묻지 않는 절집이다.
작고 초라하지만 유서깊은 절이라 구석구석 눈길이 간다.
등산객들이 얼마나 귀찮게 했으면
'이곳을 통과하는 등산로는 없읍니다.'라는 안내문을 일주문에 걸어놓았을까..
절집에는 비구니스님께서 계시니 조용조용
아니온듯 다녀가야 하겠다.
나무 울타리와 양철지붕으로 된 일주문을 지나
뒤를 돌아보니 건너온 개울이 정겹다. 동심으로 돌아가 돌을 뒤집으면
금방이라도 가재가 두 손들고 항복! 하며 튀어나올 것 같다.
어느 절간에서 이렇게 소박하고 아름다운 일주문을 만날 것인가..
부처님이 계시는 대웅전 앞뜰에는
코스모스가 살랑살랑 재롱을 떨며 헌화공양을 올린다. 대웅전이 초라해보이지만
심원사라는 이름에는 더 어울린다.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으니
대웅전 불사도 쉽지않아 보인다.
도장산의 정기가 쏟어져 내리는 심원폭포에 내려서니
삐리릭~~! 이크! 마나님 꼭지의 전화다. 지난번 옹강산(청도) 말등바위에 앉아서
'좀 태우러 온나.' 했더니 '그냥 탁 뛰어내렸뿌라.' 하더니 오늘은 웬일인지 '서방님 빨리 오세요' 한다.
ㅎㅎ.. 그래도 그렇지 산꾼이 폭포의 유혹에 어찌 그냥 갈 수 있으랴.
에라 모르겠다. 풍덩~~!!
계곡의 기암..
<용추교에서 바라본 쌍용계곡>
땀으로 범벅이 된 육신을 씻고
계곡을 빠져나오니 몸과 마음이 개운하여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다.
청룡과 황룡이 물장구치며 놀다가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실감나는 계곡이다.
ㅡ 끝 ㅡ 감사합니다.
첫댓글 매년 이맘때 가족 모임에서는 꼭 이같은(?) 일이 되풀이 되네요.. 다음날 새벽 홀로 산행하시는......^^ 산도 절도 가족간의 우애도 좋아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