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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G.에벨링의 해석학적 관심
에벨링은 푹스와 함께 해석학의 주제를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에 필요불가결한 조력자로 만들면서, 해석학을 성서의 텍스트에서 현대의 선교적 선포에 이르는 하나님의 말씀의 흐름을 이해하는 이론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에벨링의 사상에 있어서 해석학은 중립적 혹은 세속적인 성찰 방법으로 생각되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신학적인 것이 되고 있다. J.M.로빈슨의 지적대로, 에벨링의 해석학적 설계는 “우리 시대를 위한 성서의 의미 진술로서의 기독교 신학과 공통 경계선에 접하고 있는 것이다”. 한 걸음 더나가, 에벨링은 신학의 과제는 성서가 말하는 것을 오늘날 우리를 위한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므로 신학 자체는 해석학이다는 확신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론을 포함하고 전 신학적 작업에 초점을 맞춘 그의 해석학에 관심을 기울인다. 여기서 로빈슨은 “새로운 해석학은 새로운 신학이다. 이는 마치 전 세대의 해석학이 변증신학이었고 또 그 이전에는 리츨사상(Ritschianism)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라고 말한다.
에벨링은 그의 전 신학적 작업을 神에 대한 신앙을 해명하는 데 기울인다. 여기서 그의 해석학적 사고가 나타난다. 그래서 에벨링의 해석학적 신학의 주요 관심은 성서적 신앙을 현대의 언어적 정황 속에서 해석하는 데 있다.
“기독교적 선포는 부름(Ausrufung), 가장 필요한 것에 대한 선포이다. 神만이 가장 필요하다. 神이 가장 필요 불가결하기 때문에 신앙도 역시 가장 필요 불가결하다. 기독교적 선포가 여러가지가 아니라 단 하나만을 말해야 한다면, 기독교적 선포는 그것에 적합한 이해성(das Verständnis)과 구속력을 가질 수 있다”
에벨링은 기독교적 선포의 유일한 본질인 神에 대한 신앙을 해명하는 해석학적 작업을 신학의 과제라고 말한다.
에벨링은 그의 신학의 중심이 되어온 말씀과 신앙의 상관관계(the correlation)를 기독론적 이해와 관련하여 해석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이해와 해석의 과정에서 신앙과 말씀의 관계는 주관에서 말씀으로 움직이는 관계가 아니고, 오히려 말씀으로 부터 이해하는 주관으로 움직이는 관계이다. 신앙이 말씀과 부합하지 않는다면, 신앙은 믿겨지지 않고 또 이해될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그 실제 본성과 의미에 있어서 파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씀과 신앙의 이 상관관계는 그 말씀의 일반적 구조의 근거에서 말씀에 속한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에 대한 증거에서 말씀에 속한다. 이 증거 안에서 성육신 분이 현재 만나진다. 성서의 모든 말씀 안에서 우리는 오직 성육신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한다. 이것은 성서의 유일한 말씀이 신앙과 상관관계 안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그 말씀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관계가 아니라 오직 신앙의 관계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말씀과 신앙의 관계는 하나님과 실존의 유일한 접촉이다. 신앙안에서 말씀의 이해는 바로 성서의 기독론적 해석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두 본성이 함께 결합되어 있듯이 말씀과 신앙도 결코 분리되지 않고 함께 결합되어 있다.
“말씀이 신앙을 발견치 못하게 될 때 계시인 그것(저자 주:그리스도 계시)은 단지 선포된 사건으로만 만나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단지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말씀으로만 만난다. 그것은 믿어진 말씀으로서 그것이 증언하는 것의 사건이 되지 않으면, 즉 “있음이 사건이 됨”(fieri des factum esse)이 야기하지 않으면, 계시는 인간적 말씀만으로 만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이 선언할 수 있는 진정한 말은 ‘신앙의 말씀’(das Wort des Glaubens)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신앙을 일깨우는 말씀으로서 인간이해의 대상이 되는 것 이상으로 인간 실존을 조명하는 빛의 원천이다. 이 빛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실존과 현실을 그 원천에 있어서 조명한다.
이 조명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반응 곧 하나님이 말씀이 창조하는 경험이 신앙이다. 신앙이란 실존과 현실을 조명하는 말씀의 빛이 참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의 전달’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질문이 있는 곳에 현실에 대한 질문이 있고, 구체적인 현실이 포기되는 곳에 신앙의 질문도 포기된다. 에벨링은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인간은 무한한 미래를 향해 개방되며, 진정한 역사적 실존, 곧 진정한 인간 실존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인간성 실현은 어떤 천상의 영역이나 순수 내면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인간 체험과 행동의 구체적 세계속에서만 이루어진다. 에벨링에게 있어서는 신앙적 실존의 처소는 이 세계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말씀은 세계를 향해서 선포되어야 하며, 이 세계를 상실해서는 안 된다. 신앙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해서 야기되며 인간의 말의 충족이다. 이처럼 에벨링의 해석학적 신학은 총체적 세계현실과 인간 실존과 신앙의 총체적 이해를 주요한 과제로 다룬다.
에벨링은 교회의 선포가 현대인들에게 ‘낯선 언어처럼’ 들려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현상으로부터 기독교 선포의 위기를 더나아가 기독교 선교의 난점을 직시한다.
“우리는 언어에 있어서 두 가지 언어에 익숙해져 있다. 즉 이천 년 이라는 존귀한 연륜(Patina)을 지닌 기독교 언어와 우리와 관계하는 현실의 언어에 친숙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의 불꽃은 작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두 가지 언어성에 있어서 포괄적인 번역지침이 결여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사건은 이미 성서 속에서 다양성을 지니고 있고, 그러나 교회의 역사를 통과하면서 성서의 전승과 해석에 있어서 아주 다르고, 극도로 복잡한 속에서 하나의 언어전통을 형성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현대인에게는 쇠퇴해 버린 성서시대의 속박과 표상으로부터 풀어내는 일 대신에 에벨링은 지속적으로 의미심장한 성서적 교회 역사적 언어 전통을 오늘의 ‘이해 가능성’을 위해 개봉하는 것과 또 역으로 오늘 여기서 듣는자를 그리스도교적 사고및 그 언어 전통에 관여시켜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해석학의 과제란 기독교 선포에 있어서 말씀 선포의 장애를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건화시키고자 한다. 에벨링은 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독교 신앙의 상황연계성을 강조한다. 하나님 말씀은 교회의 전통 속에 주어져 있으면서 ‘현실을 현재적 언어사건 속에서 만나며, 새로이 표현하고자 한다’.
에벨링은 신앙의 언어란 세계와 삶으로부터 유리된 특수언어가 아니라, ‘세계와 시간의 언어’ (die Sprache von Welt und Zeit)라는 것을 강조한다. 특수언어로써는 신앙은 전달될 수 없다. 에벨링에 있어서 ‘말씀사건’(Wortgeschehen)이란 말해지는 상황과는 분리되는 진술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전달’(Mitteilung)이다.
“말씀사건의 기본형태는 말할 때의 구체적인 상황을 도외시한 것일 수 없다. 왜냐하면 말씀은 두 대화자 사이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전달’인 말씀은 ‘사실적으로가 아니라 인격적으로’(personhaft) 이해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말씀은 ‘의사소통’(Kommunikation)을 한다. 이처럼 에벨링은 오늘날 청취자인 현대인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될 수 있도록 해석학적 과제를 수행하고자 한다. 신앙의 언어는 세계언어와의 접촉 속에서, 타자 언어의 이해 속에서 획득되어야 한다.
“말할 때 제기되는 문제는 어떻게 이해시키느냐 이다. 어떤 사람이 이해하는 언어가 어떤 사람에게는 이해 불가능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어는 언제나 동시에 이해와 몰이해를 낳고 인간 상호간의 화해와 분열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모든 말씀은 불신앙을 문제시한다는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하고, “신앙의 언어(die Rede des Glaubens)는 불신앙의 언어를 능가해야 한다. 다시말하면 신앙의 언어는 언어사건(Sprachgeschehen)을 산출해야만 한다.”
에벨링의 해석학적 과제는 성서의 케리그마를 ‘단지 다른 언어로 번역할 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 다른 사고방식, 다른 정신적 상황’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에벨링은 이해가 직접적으로 되지 아니하는 곳에서 인격의 피상적인 확정에 만족치 않고 외견상 역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이해되고, 현재적으로 이해될 때까지 깊이 있게 해석학적 과제를 수행한다. 에벨링은 여태까지 내려온 전통과 관습에 대해서 성서적 개념을 위한 새로운 언어 사용함으로써 ‘성서적 개념의 비종교적 개념(Die nicht-religiöse Interpretatien biblischer Begr- iffe)을 실현하고자 한다.
3. G.에벨링의 역사적 예수문제
에벨링에 의하면 기독교 선포의 과제는 언어의 부재의 상황속에있는 현대인들에게 다양한 차원을 지니는 현실의 비밀을 가장 넓은 지평을 지닌 언어론으로써 밝히는데 있다.‘기독교 선포의 사실이란 세속성의 인간을 그의 세속성의 자율성속에서 현실의 비밀에서 탈피하고자하는 절망적 시도로부터 구원해나가는데 있다’라고 에베링은 말한다. 에벨링은 이러한 해석학적 과제의 수행에 있어서 기독교 선포는 역사적 예수에 의거하고 그와 더불어 역사적 예수가 기독교 신앙의 원천이고 근거(Quelle und Grund des Glaubens)라고 주장한다.
R.불트만이 신화론적 언어로부터는 선포의 말씀이 사건으로 나타날 수 없다고 보고 실존론적 해석을 통해 비신화론을 이끌어가며 그리고 초대 그리스도교의 케리그마에 근거하여 선포의 과제와 기독교 신앙을 오늘날 해명하는 것과는 달리 G.에벨링은 초대 그리스도교의 케리그마와 역사적 예수의 연속성을 강조하며,오늘날 기독교 선포는 케리그마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사건(Wortgeschehen)자체인역사적 예수에 근거한다고 강조한다.
G.에벨링은 역사적 예수가 신앙의 원천이고 근거라는 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늘날 기독교 선포의 위기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에벨링은 오늘날 기독교 선포의 핵심인 케리그마가 케리그마로서 발생하기 위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를 요청하고 더나아가 예수와 신앙의 관계를 질문하고 예수의 신앙개념을 해명하기 위해 기독론과 연관해서 해석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에벨링은 역사적 예수의 문제를 조직신학과 연결하여 해석하고자 한다. 그러나 불트만은 예수와 역사 문제가 결부될 때 무의미한 사실을 강조한다.즉 예수의 메시아 의식이나 부활의 사실성이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또한 우리를 위해 죽었다는 케리그마는 대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그러므로 불트만은 케리그마의 배후로 돌아가는 시도는 모두가 불법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불트만이 우려하는 것처럼 케리그마의 배후로 돌아가는 것은 반드시 객관적인 사실로 돌아가는 시도만은 아니다.그리하여 에벨링은 위의 시도들뿐만 아니라 순수한 예수의 말씀,구원의 말씀과 관계를 통해 일어난 말씀사건을 해석하고자 한다.
불트만은 그리스도의 초대 기독교 메시지를 역사적 예수와 관련시키지 않고,그래서 초대 기독교의 케리그마 개념에서 케리그마의 근거보다 지술자체를 중요시 했다.그러나 에벨링은 케리그마 자체가 예수와 관련된 하나님을 말하고 있으며 또한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임을 중요시한다. 그러면 어떻게 역사적 예수의 생애와 설교가 초대 기독교의 케리그마에게로 까지 발전하였는가? 여기에서 케리그마는 예수의 이름에 집중하고 있는데 만일 케리그마가 예수와 관련하여 아무 것도 확신한 것이 없다면 그 케리그마는 의미 없는 암호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그러므로 케리그마가 예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케리그마적 진술의 요소들이 예수를 서술할 때만 명확하여진다는 사실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케리그마의 내용을 지시할 뿐 아니라 케리그마의 근거를 지시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케리그마 자체는 예수를 케리그마의 기준으로 말하며 역사적 예수의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그러므로 역사적 예수의 문제는 오늘 그리스도의 선포를 위해 필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제는 기독론적 케리그마 보다 예수의 우선성의 사실이 비추는 것과 케리그마와 예수의 차이점이 케리그마의 이해 가능성과 의미성을 줄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케리그마는 예수의 이름을 유지시키므로 케리그마가 일어난 상황을 유지시키는 것에 중요성을 가진다.여기서 예수는 기독론적 케리그마의 근거이다.물론 기독론 케리그마는 단순히 역사해석으로 오늘날의 케리그마일 수는 없다. 기독론적 케리그마는 케리그마적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케리그마로 이해될 수 있다.그리고 항상 케리그마로서 케리그마를 위해 우리는 명시적 기독론적 케리그마 뒤에 암시적 기독론적 케리그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암시적 기독론적 케리그마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속에서 표현된 하나님을 나타낸다는 것으로 말씀사건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로 되는(Zur Sprache Kommen)말씀사건이며 또한 우리의 신앙을 일으키는 사건이 된다.즉 사람인 예수와의 만남은 예수속에 말씀으로 되는 그 분과의 만남을 말한다.그러므로 예수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으로 되고,또한 확실성을 주는 말씀으로서 예수를 말할 때 그 분은 신앙의 근거이며 복음인 것을 알게되는 것이다.
예수와 신앙이 함께속해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die Kontinuität zwischen dem historischen Jesus und Christus des Glaubens)의 근거가 된다.예수는 우리가 신앙의 대상에 대해 말하는데 익숙해져 있는 그런 의미에서 신앙의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신앙의 근거이다.
그러면 ‘신앙의 근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Was heißt " Glaubensgrund?).성서적인 이해에 따르면,신앙의 근거는 잘못된 것을객관적 사실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고립된 객관적 사실이 아니고 오히려 신앙의 근거는 ‘신앙의 발기인과 완성자’(Anführer und Vollender des Glaubens)의 중요한 의미에서 신앙의 증인으로서 오직 예수이다. 그러나 신앙의 근거는 확실히 역사적인 안에서 언어적 표현이 되고자한다,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안에서 언어로 다가오기 때문이다.역사적 예수에 대한 요청은 신앙사건(Glaubensgeschehen)의 근거인 언어사건에 대한 요청이다. 그러므로 기독론의 과제는 예수 자신 안에서 언어로 온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벨링은 기독론의 과제는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Ich glaube an Jesus)라는 명제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에벨링에 의하면 예수는 신앙의 원천이고 근거이기 때문에 예수에 대한 질문과 신앙에 대한 질문은 서로 분리될 수 없고 서로 연관해서만 대답될 수 있다.예수와 신앙이 상호 귀속한다는 사실이 기독론의 근본내용인 진술을 함축한다.에벨링에 의하면 "예수는 ‘신앙의 총체 개념이요 신앙은 예수 사역의 총체개념’곧 ‘예수 자신의 선물’(Jesus der Inbegriff des Glaubens und der Glaube der Inbegriff des Werkes Jesu ,die Gabe Jesu selbst ist)이다“. 그래서 에벨링은 갈3:23.25.에 따라서‘그리스도의 오심은 신앙의 오심’이라고 해석하고,히브리서 12:2.에 따라서 예수는 ‘신앙의 개척자요 완성자’라고 해석한다. 에벨링은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예수를 근거한다고 주장한다.에벨링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로 예수에 대한 신앙이 예수 자신에 있어서 어떤 근거를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그것은 기독론의 종말이라 고 말한다.
에벨링은 ’예수에 대한 신앙의 근거는 역사적 예수에게 있는가?‘ 또 ‘역사적 예수는 어떤 근거를 제공함으로 예수를 믿게 하는가?하는 질문은 외부에서 제기된 악의의 질문이 아니라,그 질문은 기독론을 위해 의미가 있으며,기독교 선포를 위해 항상 새롭게 일어나는 비판적이고 긍적적인 과제라고 말한다.
에벨링은 신약성서에 있어서 치유기사,신앙능력에 관한 말씀,권능질문들의 맥락에서 예수께서 사용한 신앙개념을 해석한다. 에벨링은 여기에서 나타나는 신앙이해의 고유한 구조(die eigenartige Struktur des Glaubensverständnisses)를 나타낸다.
1) 신앙은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함‘(das Gott-wirken-Lassen)이다.신앙은 직접 하나님과 관계하지 않으나,간접적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기대된다는 것에 대한 철저한 긍정(die radikale Bejahun g)이다. 신앙이 직접 하나님과 관계하지 않는 다는 것은 신약성서가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고,신앙의 구조적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예를들면
“하나님을 믿으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위의 예수님의 말씀의 例에 의하면 신앙안에서 말씀과 성취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신앙의 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표시된다.그러므로 신앙은 ‘하나님이 행위하시도록 함’(das Gott-in-Aktion-treten-L assen)이다.신앙의 능력과 확실성은 하나님 자신의 능력과 확실성이다.그런 이유로 신앙에 대한 진술들이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지 못할 때,그 진술들은 완전히 의미가 없다.그 진술들은 신앙이 오직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으로써 존재할 때 의미를 가진다.이 신앙은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만나는 신앙‘이다.
2)예수는 신앙을 일깨우신다.에벨링에 의하면 ’예수의 말씀에 나타난 신앙 개념은 결단코 신앙대상으로서 예수와 관련되어 있지않다’에벨링은 마18:6,“나를 믿으라”가 예수의 본래적 말씀이 아니라 초대교회에 의해서 형성된 전승으로 본다.예수와 신앙사이에는 불가분의 긴밀한 연관이 있다.모든 치유기사에 있어서 신앙은 예수능력에 대한 신앙이다.신앙은 예수에 의해서 일깨원진 신앙(erweckter Glaube)이기 때문에,동시에 예수에 관계된 신앙이다.에벨링은 예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앙을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신앙을 일깨우고,신앙하도록 추구하신다고 해석한다.
예수가 일깨우는 신앙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면,그것은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는 구체적인 신앙” 이다. 에벨링은 예수의 신앙을 특히 그의 아멘(αμην)사용을 분석하므로 특징지운다.
“예수는 아멘(das Amen)사용을 통해서 그의 말의 진리와 실재(die Wahrheit und Wirklichkeit seiner Worte)가 곧 하나님의 진리와 실재라는 사실을 강조한다.그 이유로 또 예수의 아멘 사용은 그와 그의 말이 전적으로 동일하고,그 동일함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실재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은 그의 말을 진리로 만든다.그리고 예수는 그의 실존의 근거를 하나님이 그의 말을 진리와 실재로 만드는데 정초한다”
예수의 이 아멘 사용은 ’자기 말씀에 대한 예수의 무조건적이고,全 실존을 부여하는 확신’을 나타낸다.예수의 결정적 선물은 ‘실존을 확신하도록 하는 신앙‘,곧’실존을 그것의 근거로 지시하고,따라서 정초하는 신앙‘이다.예수의 순종은 대리적인 순종으로서 우리 신앙의 원천(Quelle des Glaubens)이 된다.따라서 에벨링은 예수에 대한 신앙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예수는 우리가 신앙의 대상들에 대해서 말하는데 익숙해져 있는 그런의미에서 신앙의 대상이 아니고 ,예수는 스스로 신앙의 근거인 한에 있어서만 신앙의 대상이다. (Jesus ist nicht ein Gegenstand des Glaubens in dem Sinne,wie man von Glaubensgegenständen zu reden pflegt,dann aber ist Jesus nur darum und insofern Gegenstand des Glaubens,als er selbst Grund und Quelle des Glaubens ist).
3)신앙은 실존의 부분적 행위가 아니라 全 실존적 행위이다.신앙은 ’전 실존에 관계하는 것‘ (was die ganze Existenz betriff)으로서’전 실존의 운동‘ ’전 실존의 방향정위‘로서 이해되어 진다.에벨링은 단지 믿는것을 믿고,생각하기에 적절한 것을 믿는 그런 그럴듯한 신앙은 산을 옮기는 신앙은 아니라고 말한다.에벨링에 의하면,산을 옮길만한 신앙은 믿는 자의 실존과 그 자신을 전적으로 포함한다.’치유기사‘에서 하나님을 향해 던져짐의 운동을 통해서 실존 전체가 보여진다.예수는 또한 주인의 빵부스러기를 줍는 사마리아 여인이나,예수의 옷자락을 만지는 혈루병 걸린 여인에게서 보여지는 것처럼 실존을 전체로 집중시키고,하나로 요약하는 신앙을 가르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같이 에벨링은 역사적 예수란 신앙의 예수라고 규정하고,역사적 예수의 본래적 모습이 우리를 향해 말하는 것은 그의 신앙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는것이라고 피력한다.역사적 예수는 신앙의 예수,곧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오늘날 기독교의 선포속에서 인간실존과 세계현실을 그 원천에 있어서 조명하는 말씀사건으로 현존한다.에벨링은 현대 신학자 가운데서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불가분적 관계를 강조하는 독특한 입장에 서 있다.
4.G.에벨링의 성서개념의 비종교적 해석.
G.에벨링은 기독교 신앙이 지니는 세계적 현실 연관성을 D.본회퍼로부터 이어 받고 있다.에벨링은 본회퍼의 후기 사상의 연구를 통해서 재래적 종교의 두 공간적 사고를 극복하게 된다.1955년의 에 쓴 그의 논문 ‘성서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에서 에벨링은 본회퍼의 후기 사상인 비종교적 기독교의 착상을 해석한다.
에벨링은 여기서 본회퍼의 성서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의 기본전제를 3가지 차원에서 해명한다.
1)비종교적 해석은 기독론적 해석이다(die nicht-religiöse Interpretation ist die christologischen Interpretation).본회퍼의 사고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하고 있다.그가 옥중에서 쓴 서신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의심의 흔적을 조금도 나타내고 있지 않다.오히려 그 반대로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신앙에 더욱 근본적인 방식으로 관심을 가졌고,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신앙의 근거를 찾고자 하였다.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타자를 위한 존재’(Für-andere-da-sein)로 보고,신앙은 예수의 그 존재에 참여하는 것으로 주장하였다.“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종교적인 관계가 아니라,그 관계는 ‘타자를 위한 존재’의 새로운 삶,즉 예수의 존재에 참여하는 새로운 삶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본회퍼의 비종교적 해석의 문제는 본회퍼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의심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정확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비종교적 해석의 문제는 그의 신학의 근거와 중심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기독론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이다.그러므로 본회퍼에게 있어서 비종교적 해석은 바로 기독론적 해석이다.
2) 비종교적 해석은 구체적인 해석을 의미한다(die nicht-relig- iöse Interpretation meint konkrete Interpretation).
신앙으로 고백하는 모든 것이 신앙의 본래적인 증언의 규범에 의해 그 자체를 입증해야 한다.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므로 우리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를 아주 정직하게 묻고 그 질문에 답하는 것에 의해 그 자체를 설명해야 한다.여기서 신앙은 구체적인 신앙(der konkrete Glaube)이 되어야 한다.그렇게 될 때만 신앙은 신학에서 그리고 선포에서 종교적 방법에 의해 규정된 도식(das Schema)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앙으로 해석될 수가 있다.즉 신앙은 나의 현실과 관계된 신앙,나의 全 현실을 포함하는(meine ganze Wirklichkeit einvernehmend)신앙으로 해명될 수 있다.
본회퍼가 참회,신앙,의로움,신생,성화의 개념들이 어떻게 세속적인 개념으로 재해석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를 반성한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믿는가?’라는 문제의 엄격한 맥락에서 그 개념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우리의 전현실과 관계하는 방식에서 그 개념들이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에 대한 반성과 같다.그러므로 본회퍼에게 있어서 ‘비종교적 해석은 구체적인 해석을 의미한다.
3) 비종교적 해석은 신앙의 해석이다(die nicht-religiöse Interpretation ist die Interpretation des Glaubens).
본회퍼가 반성하는 비종교적 해석의 3번째 전제는 모든 신학적 사고의 기본 요소가 되며,선포의 과제로의 정향(die Ausrichtung auf die Aufgabe der Verkündigung)이다.여기에서 교회개념이 다시나타난다.그의 신학적 사고는 교회에 대한 올비른 정향이 되기 위하여 교회를 교회로 만드는 것으로 정향된다.그것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이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로부터 말해지는 모든 것들의 규범이 된다.본회퍼는 이 교회 존재의 근거에서 현대 교회가 화해와 구속의 말씀을 인류와 세상에 가져올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은 올바른 선포의 문제다.확실히 교회 형태의 문제다.그러나 단순히 이것은 교회의 형태의 문제와 관련되게 아니라 언어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그것은 새로운 언어,비종교적인 언어,예수의 말씀처럼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그런 언어일 것이다.또 그것은 새로운 의와 진리의 언어,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화평을 또 그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는 그런 언어일 것이다.“
또 “어떻게 그리스도가 비종교의 주가 될 수 있는가?”(Wie kann Christus der Herr auch der Religionlosen werden?)는 질문은 선포와 해석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언어와 신학의 문제이다.이 문제는 기독교 선포의 내용에 대한 자기 비판으로 이끈다.기독교 선포의 이해 가능성의 기준(das Kriterium der Verständlichkeit der Predigt)은 신앙인이 아니라 비신앙인(nicht der Gläubige sondern der Ungläubige)이다.그러므로 신앙인을 그 기준으로 삼고있는 오늘날 교회는 선포의 말씀을 낮선언어로 들리게 하고 참된 신앙을 잠재운다.본회퍼는 비종교적 해석에서 하나님 말씀을 위한 새로운 언어의 발견,기독교 신앙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을 더듬거리며 재발견하고자 한다.비종교적 해석은 신앙의 해석이다.
에벨링은 본회퍼의 비종교적 해석을 긍정하면서,해석학적 문제,곧 선포에 있어서 구체성의 문제가 본회퍼의 全 신학적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기독교 선포의 이해성의 문제가 이 구체성의 문제와 연결된다.에벨링은 자기목적이 되어버린 교회의 선포속에서 성서적 개념들의 능력 상실과 예수의 언어처럼 비종교적이고 구속하는 새로운 언어가 기독교 선포를 위해 요청된다는 본회퍼의 주장들에 동의한다 .
에벨링도 성서의 본문이 비종교적 해석에 타당하고 또 궁극적으로 비종교적 해석을 요청한다는 점을 긍정한다. 그리고 에벨링은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의 구체적인 실존상황에서 구원과 화해의 말씀사건으로 그리고 전 실존을 조명하고 실존의 참된 미래를 개방하는 참 말씀으로 나타나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과 언어와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시도한다.그래서 에벨링은 성서의 본문을 단지 다른언어로 번역하는 것뿐만 아니라,다른 시간,다른 사고방식,다른 정신적 상황으로 번역하는 것을 해석학의 과제로 삼는다.에벨링은 성서의 본문을 성서시대의 속박과 표상으로부터 풀어내려는 불트만의 시도와는 달리 성서적이고 기독교적인 언어 전통을 오늘의 상화에 이해 가능케하고 또 역으로 오늘 그 말씀을 듣는 자로 하여금 기독교적 사고및 언어 전통에 관여시키므로써 그 해석학의 과제를 수행하고자 한다.이와 관련해서 다음 장에서 본 논문의 중심 주제가 되는 하나님 말씀과 언어,하나님 말씀과 해석학,그리고 해석학적 신학의 역사적이고 교의학적 기능을 논구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