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1월30일 [(녹)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수도회] 환상이 아닌 부활을 실천하는 믿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2사무 18,9-10.14ㄴㄷ.24-25ㄱㄴ.30-19,3
† 복음 마르 5,21-43
◈ 오늘의 묵상
복음서의 치유 이야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진실과
간절함입니다. 자신의 딸의 치유를 간절히 바라던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의 능력을 확실히 믿고, 치유를 간절히 청했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은 소녀를 다시 일으키십니다. 회당장은 믿음 안에서 죽음까지
이겨 내는 하느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고통 때문에 몸도 마음도 성하지 않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댈 때에는, 어떤 방식으로도 치유되지
못했던 자신을 예수님만큼은 낫게 해 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중은 호기심으로 예수님께 다가서고 밀쳐
대기까지 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여인에게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하고 위로하십니다.
신체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던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하시고,
몸과 마음이 성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것입니다.
아들 압살롬이 죽은 것을 알게 된 다윗의 통곡은 반란자를 제거했다는
기쁨으로 가득 찼던 그의 신하들과는 대조됩니다. 비록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아들이지만,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죄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했기에 다윗은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하며 슬퍼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에서 자신의 죄과가 자손들에게까지 물려지는 아픈
현실을 하느님께서 살피시어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의
마음이 읽힙니다.
우리도 치유받고 싶은 내면의 상처와 병들이 있습니다. 과연 나는
얼마나 간절히 하느님께 치유를 청하며, 믿음을 갖고 회심과 보속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믿음이 주님의 힘을 가져오며, 나의 가치도 올라갑니다.
2018년 나해 1월30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8,9-10.14ㄴㄷ.24-25ㄱㄴ.30-19,3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어떤 분께서 이러한 질문을 하십니다.
“신부님, 어떤 사람에게 100만 원짜리 바이올린과 1억 원짜리
바이올린이 있습니다. 그런데 100만 원짜리 바이올린의 소리가 훨씬
좋습니다. 그렇다면 10년 뒤에 어떤 바이올린이 더 높은 가치를
보일까요?”
저는 “지금은 비록 100만 원과 1억 원의 큰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100만 원짜리 바이올린의 소리가 훨씬 더 좋으니까 10년 뒤에는 더 큰
가치를 갖지 않을까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웃으면서 “1억 원짜리 바이올린이 더 큰 가치를 갖게 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세요.
“비록 소리가 10만 원짜리보다 못하지만, 워낙 비싼 악기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그 가치에 맞는 대우를 하면서 길을 들이고 공을 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10년 뒤에는 1억 원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됩니다.”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연주자가 자기 악기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연주했느냐, 그리고 그런 시간을 얼마나 가졌는가가 악기 수준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득 우리 인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나의 가치는 분명하게 달라집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면 어떨까요? 내 자신이 형편없다고 감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통해 당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면 어떠한 순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바로 내 자신의 가치를 높여줄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믿음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회당장에게 어린 딸을 살게 해 달라는 청을 받았을 때
그의 믿음을 보고서 치유를 해주십니다. 열두 해 동안 하혈하면서
힘들게 살아왔던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면서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밖에도 성경 곳곳에서는 믿음으로서 주님으로부터
은총을 받는 경우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당장의 딸이 자고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믿음 없는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자리에서 내쫓으십니다.
믿음이 주님의 힘을 가져오며, 이로써 나의 가치도 올라갑니다. 그러나
믿음 없음은 곧 주님과 함께 하는 영광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믿음은 어떠할까요?
필연적인 것은 단지 참고 견디는 게 아니며, 감싸 주는 것도 아니며,
사랑하는 것이다(니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바이올린입니다. 34억에 팔렸다고 하지요?
무한도전
저는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 싫습니다. 아니 무섭습니다. 그래서 높은
곳에 올라가서 떨어지는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
스카이다이빙 등의 고난이도의 익스트림 스포츠는 물론이고,
놀이기구도 타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것들은 보통 건장하고 담이
큰 젊은이들이 즐깁니다. 그런데 영국의 80대 여성이 이러한 고난이도
스포츠에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영국 옥스퍼드주 애플턴 출신의 올해 86세인 트리쉬
웨그스태프 씨입니다. 작은 몸집과 가는 팔다리를 가지고 있기에 무모한
도전이 아닌가 라고 걱정되지만 웨그스태프 씨의 작은 몸집과 가는
팔다리를 보면 너무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군인의 아내로서 전쟁터 격전지에서의 생활도 해봤고
진짜 위험이 뭔지 잘 알고 있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단순히 스포츠와 전율을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이러한 극한
스포츠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모든 도전은 소외계층을
돕는 자선 행사로 도전에 성공하면 후원단체에 기부금이 전달됩니다.
그래서 10년 만에 15만 파운드(약 2억 2500만 원)의 자선기금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난 지나치게 늙어서 그것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걸 들어왔다. 이제 그 말을 멈추고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하도록 장려할 것이다. 슬프게도 모든 연령대에 사람들이
TV앞에 앉아서 혹은 핸드폰을 만지는 것 이외에는 많은 일에 도전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혹시 중요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쉽게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트리쉬 웨그스태프 할머니.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환상이 아닌 부활을 실천하는 믿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8년 나해 1월30일 연중 제4주간 화, 마르 5,21-43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5,36)
환상이 아닌 부활을 실천하는 믿음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회당장 야이로가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죽어가는 딸의 병을 고쳐 다시 살게 달라고 간청합니다(5,22-23).
그분께서 회당장과 함께 나서시는데, 하혈하던 여자가 군중에 섞여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이 여자는 열두 해 동안이나 병치레를 하며
고통을 겪는 것은 물론, 성전에 들어가지도 유대인들의 축제에
참여하지도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 지냈을 것입니다.
절망을 먹고 살던 그녀는 병을 고치고 싶은 간절한 심정에서
율법위반이나 수치스러움에 괘념치 않고 예수께 매달렸습니다. 그
여자는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며
예수님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댄 것입니다(5,27-29). 그녀는
예수님께서 모든 부정함을 없애주시리라 확신했기에, 부정한 사람과
접촉한 사람도 부정해진다(레위 15,19)는 율법까지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온전한 여성성의 회복을 넘어 인간 존엄의 터로 되돌아오려는 절절한
믿음의 몸부림이 예수님의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소외된 그 여자를 “딸아”라고 애정어린 호칭으로 부르며
치유해주십니다. 예수님의 옷을 만진 많은 사람 가운데 믿음으로
옷자락을 만진 그 여자만이 치유를 받았습니다(5,30-31).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병을 고쳐주시는 사이 회당장의 딸은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분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5,36) 하시며,
절망과 슬픔에 사로잡힌 회당장을 하느님의 권위로 격려하시고 그의
집으로 가십니다. 그리고는 “일어나라!” 하고 말씀하시어 그 소녀를
소생시키셨습니다(5,41-4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확고한 믿음으로 어린 딸의 소중한 생명을
살리려는 회당장에게 생명의 숨결을 돌려주셨습니다.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던 하혈병에 걸린 여인 또한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여성성을 회복했습니다. 그렇게 믿음은 희망을 낳고, 희망은 어둠과
절망을 이길 힘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하시고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심으로써 당신의
연민을 보여주셨고 메시아적 신원을 드러내셨습니다(프루덴티우스).
따라서 사랑이신 분을 믿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면 인간성과
생명이 회복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와 소생은 기적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간성을 온전히 회복시켜주신 사랑의 표현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도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병리적 현상과 죽음의 문화,
불신과 불의,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는 강하고 끈질긴
도전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도전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께 대한 굳건하고 항구한 믿음뿐입니다. 오늘도 실천하는 신앙으로
환상이 아닌 부활을 살아내는 우리이길 희망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마르 5, 34)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1월30일 화.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마르 5, 34)
올 겨울은 유난히 더 춥습니다.
위태로운 우리의 삶에 좋은 일들이
더 많기를 이 겨울 예수님께 더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아름답지만 아픈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프고 아픈 이들을 믿음으로 치유하여 주십니다.
치유는 삶을 지켜내는 힘이 예수님께 있음을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아픈 이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다시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치유의 방향은 믿음이며 믿음의 방향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병고는 삶을 온통 뒤흔들어 놓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더 간절해 지는 주님 은총입니다.
다시 봄처럼 치유의 선물이 우리자신과
우리가족을 위해 준비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5, 34)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연중 제4주간 화요일
밀양의 화재로 많은 분들이 사망하고, 부상을 당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의용 소방대원, 자원 봉사자들이 현장으로 갔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입을 것과 먹을 것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웃의 슬픔과 아픔에 동참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화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화재의 현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정치인들입니다. 정치인들은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책임 소재를 묻습니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성을 만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안전과 법규라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많이 쓰던 기자가 있었습니다. 언제부턴가
거울을 보니 화가 난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밥을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판을 많이 했지만 변한 것도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인전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인들의 삶을 묵상하고
글로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인들의 삶이 숭고했고, 성인들은 모든 시련과
아픔을 신앙으로 극복하였습니다. 성인들의 삶을 글로 쓰면서 기자는 마음이
편해 졌다고 합니다. 거울을 보니 웃음 띤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밥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좋은 글을 읽고 있다는 이웃들의 인사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컵에 담긴 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걱정과 근심이 먼저인 사람은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고 합니다. 긍정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합니다. 같은 컵의 물이지만
생각에 따라서 마음이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
다윗은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말하면서 가슴 아파합니다.
비록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 했지만 연민과 용서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은 불신과 원망이 커져가기 마련입니다.
내 탓임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이해와 용서가 커져 갈 것입니다.
회당장이 딸의 아픔에 대해서 걱정과 근심으로 시간을 보냈다면 예수님께
청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딸을 고쳐 줄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이
있었기에 딸은 건강을 되찾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혈하는 여인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세상을 원망하였다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흘러내리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깨끗한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고통은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기 위한 표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듯이 살면서 많은 아픔과 고통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욥 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더욱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18년에도
많은 아픔이 있을 것입니다. 사고도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웃의 죽음도
만날 것입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진흙탕 속에서도
한 송이 꽃이 피듯이, 시련과 아픔 속에서도 희망의 꽃이 필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 모두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의지하며
걸어간다면 병이 나았던 여인처럼,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던 소녀처럼 살아서도,
죽어서도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청주] 고통은 은총의 한부분이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1월28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마르5,21-43)
고통은 은총의 한 부분입니다.
어려서의 기억입니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어머니께서는 놋쇠
밥그릇 뚜껑을 따뜻하게 하여 배에 올려놓고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때때로 “내 손이 약손이다” 하시며 배를 만져주시면 곧 통증이
멈추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배를 차게 해서 아프니까 밥그릇
뚜껑을 이용해 따뜻하게 해 줌으로써 그 원인을 치료해 주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다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이 담긴 약손이었으니 낫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명예와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회당장이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누구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항복한다는 것이요, 모든
것을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그의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딸이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다가온 큰 고통이
그를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의 능력을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고통도 은총의 한 부분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회당장이라는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으면
근심걱정거리가 없을 것 같지만 내면을 보면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통하여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무릎을
꿇고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마르5,23). 하고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만약에 회당장이 죽어가는 어린 딸을 절망과 슬픔
속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아이를 살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지위도
있고 아쉬울 것이 없는 회당장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린 딸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그보다 더한 일도
하게 합니다.
우리는 일상 안에서 남모르는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 못할 고민이나 근심 앞에서 회당장처럼 무릎을 꿇는지,
아니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4,39) 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취한
제자들의 모습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련과 고통, 어둠 속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5,3-4) .오늘은
믿음의 손이 그리운 날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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