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21부- 인생의 정답은 없다
ⓒ디오게네스, 나무위키
키니코스학파
기원전 400여년 전 그리스의 고대도시 코린트에 디오게네스(Diogenes, B.C.412~ B.C.323)가 살고 있었다. 당시는 알렉산더가 정복 전쟁을 통해서 역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넓은 땅을 다스리며 대왕으로서 군림하던 시절이었는데, 디오게네스의 명성도 알렉산더에 버금갔다. 그는 남루한 차림으로, 낮에도 항상 등잔을 들고 다녔다. 이 밝은 대낮에 왜 등잔을 들고 다니냐고 묻는 물음에 그는 정직한 사람을 찾으려 한다고 대답했다. 이 도시에는 정말 눈을 씻고 봐도 정직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구나하며 탄식했다. 그가 말한 정직한 사람이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자신을 속이고 살지 않는 사람이다. 타인과 세상에 대해 자신의 개성과 본질을 속이며 살지 않는 사람이 디오게네스에게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세상의 2/3를 소유한 알렉산더와 정반대로 디오게네스는 물질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되는 물질주의적인 가치가 인간의 영혼을 잠식하는 폐해를 경계했다. 그 연유로 극빈의 삶을 강조하면서 나무로 만든 술통을 집으로 삼으며 이리저리 굴려 다니면서 살았다. 그의 유일한 재산인 물을 떠먹을 때 쓰는 바가지 하나가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날 길을 가다가 개 한 마리가 웅덩이에서 물을 햝아먹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날로부터 디오게네스는 마지막 재산인 바가지마져 버리고 개와 같은 방법으로 물을 마셨고, 그러한 일화로 인해 그는 키니코스학파(견유학파) 철학자가 되었다.
그는 타인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보는 것을 혐오했다. 나 자신의 의지대로, 내 마음가는 대로 살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했다. 그러한 그의 정신의 극단적인 표출이 시장판에서 자위행위였다. 사회적 관습과 문화의 거울에서 비춰보았을 때, 그의 몰염치한 행위는 이해할 수 없는 야만인과 같은 행동이었지만 자신의 생각과 행위의 한계를 자신의 삶에서 직접 실험하고자 했다.
행복하게 사는 법
디오게네스는 명예에 무관심했고, 세상의 권위를 조롱했다. 디오게네스의 명성을 들은 알렉산더가 신하를 시켜 그를 궁궐로 초대했지만 거절한다. 수차례 거듭되는 초청에도 응하지 않자 알렉산더는 괘씸하기도 하고,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기도 하여 몸소 그의 술통 집을 방문한다.
알렉산더가 디오게네스가 살고 있는 술통 집에 도착했을 때, 디오게네스는 술에 취해 다리 쭉 뻗고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말에서 내려서 낮잠을 자고 있는 그를 좀 더 잘 보기 위해서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는 고개를 숙였다. 거지같은 몰골에 수염이 덥수룩한 거지같은 늙은이가 코를 골고있었다. 때마침 인기척을 눈을 뜬 디오게네스를 바라보며 알렉산더가 물었다. "나는 알렉산더 대왕이다. 네 소원을 들어주겠으니 원하는 것을 말하라" 디오게네스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나를 위해 햇빛을 가려지 마시오!" 라고 말했다.
그와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돌아가던 알렉산더는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나는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와의 일화가 사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렉산더가 당대 최고의 지성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기 때문에, 그 말은 결코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견유학파에게 행복이란 헬라어로 아우타르케이아(autarkeia)라고 하는 자기 만족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확고한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삶에 적용하며 살며,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으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인생의 정답
우리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도, 존재하는 이유도, 살아가는 목적도 아름다움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인생에서 아름다움을 남기고 가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추구는 목적이 아니라 여정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중요하지만 여정을 즐기는 삶이 더 중요하다. 인생이라는 험난한 산을 등반할 때 목표를 정하고 목표한 것을 성취하는 정상정복도 중요하지만, 삶의 과정에 가치를 두고 정상을 오르는 여정의 발견이 더 중요하다. 내 삶이 아름다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이 아닌 나만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삶이 예술이 된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그 아름다움에 내 가능성을 실현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의 정답은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타인이 아닌 내가 주인인 삶에서 나만의 주관과 독창성을 가지고,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살기 위해서는, 예술가가 아닐지라도 예술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술이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느끼며, 즐기고, 맛보며 사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여러 나라를 여행해 봤지만, 패키지 여행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남이 짜 놓은 루트, 남이 짜 놓은 핫플레이스, 남이 짜 놓은 일정대로 움직여 본 적이 없다. 남이 만들어 놓은 길, 남이 가라는 대로 가는 길은 재미가 없다. 내가 가는 길이 길이 되고, 내가 사는 삶이 정답이 되어야 한다. 인생은 나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창조해 내는 과정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에 정답은 없고 선택과 책임만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격옹구아(擊瓮求兒)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항아리를 깨 아이를 구하다"라는 뜻이다. 자치통감의 저자 사마광이 어렸을 때 친구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던 중 숨을 곳을 찾다 커다란 물독에 빠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고, 이윽고 어른들이 달려왔지만 어른들도 밧줄을 갖고 와야 한다느니, 사다리가 필요한다느니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 때 사마광이 돌맹이를 가져와 물독을 깨버렸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항아리를 깨버려야 한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 디오게네스처럼 살기 위해서는 물질에 대한 욕망을 버려야 하며, 알렉산더처럼 살기 위해서는 디오게네스의 마음의 평온함을 버려야 한다. 내 인생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그 선택에 따라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는 자기 철학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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