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성경은 매우 상세한 책이 아니다. (그러나 구속에 관하여는 매우 상세함) 왜 아니그러겠는가? 그 많은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다면 요한의 기록처럼 (요 21:25b)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보면 영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그럴 때는 행간을 읽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가운데 발람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다.
(민 22: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민 22: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민 22: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분명히 우리가 읽은 문장은 하나님이 발람에게 “가라”고 하셨는데 발람이 가자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셨다고 기록한 내용을 본다. 가라고 하실때는 언제고 또 가니 진노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럴 때는 성경의 행간을 읽는 영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성경을 읽어도 우왕좌왕하게 될 것이다. 그 행간의 내용은 이렇다.
하나님은 이미 발람에게 발락이 보낸 모압과 미디안 장로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민 22:12)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하지만 발락이 더 많은 재물과 은금을 보내서 그를 유혹하자 그는 그 재물을 얻을 마음으로 하나님의 의중을 다시 물어 보겠다고 하고는 두 번째 방문한 고관들을 자기 집에 머무르게 했다. 이는 이미 그의 마음에 그들을 따라갈 구실을 찾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것이 두 문장 사이에서 발견 되는 행간의 내용이다.
(민 22:18)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민 22:19)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하나님의 뜻은 명확했다. 그들과 함께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람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달랐다. 재물을 얻고 그들과 함께 가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는 그 선지자가 이미 결심한 그것을 하도록 허락하셨다. 발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노력하지 않았는데, 그가 이미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12절). 그는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기로 이미 결정한 후에 그것을 허락해 주시기를 구하였다.”(재림교회 성경주석)
이것이 가라고 허락하시고는 다시 발람에게 진노하신 이유였다. 하나님은 탐욕에 눈이 먼 선지자를 견책하기 위하여 말못하는 나귀의 입을 열어서 그의 물욕을 지적했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마음과 의지를 강제적으로 지배하지는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단지 기록된 문자만 읽어서는 안된다. 성경이 모든 내용을 다 기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맥의 앞뒤를 잘 살펴 보고 구성해서 성경의 행간을 읽어내는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가라”고 하시고는 가던 발람에게 진노하신 행간의 내용은 바로 하나님의 뜻과 발람의 욕심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을 주의 깊이 자세히 살피고 바르게 묵상하도록 인도하소서. 날마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소원하게 하시고 탐욕과 물욕으로 주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