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7년간 정들었던 옛집을 뒤로하고 난생 처음 찾은 경기도 신도시는 낯설음 그 자체였다.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기 전에 마치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 이곳 저곳을 꼼꼼히 되돌아보았다. 인식하지 못했던 사소함들이 마치 눈도장이라도 찍으려는 듯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번 이사는 원해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서울보다 값이 저렴한 경기도로 옮기길 종용했고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을 감춘 채 익숙함을 버려야 했다. 25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청렴하게 사셨던 아버지는 어느 때보다 힘들어 보였다. 생의 대부분을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했건만 서울에서 평범한 아파트 하나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서럽고 속상했다.
우연히 이삿짐을 싼 신문 조각들 사이로 심은하의 결혼과 은퇴 그리고 파혼 등에 대한 기사가 적힌 스포츠 신문이 보였다. 대중의 인기를 기반으로 거액의 개런티를 받으며 광고에 출연하고 영화를 찍는 소위 스타라 불리는 심은하는 몇몇 사진들 속에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면서 다양한 표정을 선보이고 있었다. 기사의 내용은 그녀가 결혼을 준비하며 얼마만큼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는지'와 과연 그녀가 '스크린으로 돌아올 것인가'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엄청난 지면을 할애하며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모 냉장고 CF에서 그녀가 웃음을 팔며 벌어들인 수익이 1년에 3억이란다. 초특급 배우로 대우받는 충무로에선 그녀를 영화에 출연시키며 서울시내 30평 아파트 한 채 값에 해당하는 돈을 쥐어줬단다. 그녀의 나이 고작 29세. 연예계에 데뷔한지 약 10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결혼관련 사건으로 인해 이미지에 손상이 가긴 했지만 여전히 그녀를 원하는 곳은 많기만 하단다. 스포츠신문들 곳곳에 연예계에서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는 내용이 경쟁적으로 실려있다.
혹시나 아버지가 신문을 보시게 될까 얼른 구겨버렸다. 누구는 뼈빠지게 고생을 해도 명퇴다 혹은 구조조정이다 하면서 가족들의 끼니를 걱정해야 할 판인데, 누구는 하루 정도 CF찍고 수억을 챙기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하다. 그래, 그녀는 배우니까 그녀는 스타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녀가 가져오는 경제효과가 크니까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일반 회사를 다니는 샐러리맨이 만약 음주운전을 하다가 불구속 입건되거나, 뺑소니 사고를 냈다가 발각되었다거나 또는 마약을 복용한 사실이 들켜 물의를 일으키게 되었다면 과연 사건을 무마하고 원래자리로 되돌아오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다니던 직장에서 스트립 쇼라도 해대면 더 빨리 복직하게 해 줄 것인가. 아니면 회사에다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며 눈물을 훔치면 '그럴 수도 있지 뭐'하고 용서해 줄 것인가.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조폭 마누라>의 주연 신은경은 음주 뺑소니 사고를 쳤다가 <창>이란 영화에서 과감한 연기를 펼친 덕분에 지금은 예전 못지 않은 인기를 얻으며 더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솔로로 새 출발한 강타 역시도 소녀팬들의 휘호 속에서 음주운전 사고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린 듯 하다. 섹스 비디오 스캔들로 물의를 일으킨 백지영은 새로운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에 등장해 동정표를 구하려한다.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인 전력을 가진 류시원은 여전히 거울을 드려다 보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해 돈을 벌고, 무릎 수술로 군 면제를 받은 김원준과 변우민은 각자의 위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활동을 하고 있다.
뭔가 억울하다. 단지 이혼녀란 사실로 혹은 이혼남이란 사실로 인해 냉대와 눈치를 주는 한국 사회에서 연예인들에게는 무슨 이유로 그렇게 너그럽단 말인가. 연예계란 곳은 도덕이 존재하지 않은 무풍지대란 말인가? 혹은 미모만 받혀 준다면 누구나 용서받을 수 있는 면죄부라도 받게 되는 것일까?
그들은 이미지를 먹고사는 예인들이 아니었던가. 범인들 보다 특별한 이미지를 가지고 보다 쉽게 돈을 벌고 보다 화려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들 스스로 '공인'임을 주장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은 왜 회피하는 것인가. 아무리 사생활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생활 또한 공인이면 공인다운 면모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