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빠져있는 초중고 건강관리
우리나라 생애주기별 국가검진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영유아 검진, 학교 밖 청소년 건강진단,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건강검진 등을 책임지고 담당하는 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다. 하지만 초중고교 학생 건강검진만 유일하게 교육부 소관으로 돼 있다.
즉, 건보공단에서 만 5세까지의 영유아와 19세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 사이 만 6세부터 18세까지의 아동, 청소년은 제외돼 있다. 이들은 학교보건법에 따라 교장 선생님의 주도하에 초등 1, 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건보공단은 전 세계서 유일하게 국민의 건강 데이터를 축적하고 생애주기별로 국민의 건강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태어나서 자라고 성인이 될 때까지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속적인 건강관리를 건강보험을 통해 받는 시스템이다. 최근에는 본인이 어떤 약을 처방받았는지, 또 건강검진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등을 앱이나 인터넷을 통해 자세히 확인할 수도 있게 됐다.
하지만 학생 건강검진은 쏙 빠져 있다. 더욱이 학생 건강검진의 결과는 학교에서 수기(종이 문서)로 관리되고 있으며 나이스에는 검진 여부와 검진기관명만 기록된다. 이러한 건강 기록은 학생들이 졸업 뒤 5년이 지나면 자동 폐기돼 건강 관련 자료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연계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영유아부터 성인까지 생애주기별 건강검진 체계를 통합 구축해 연속적이고 효율성 있게 국민 건강관리를 한다고 하기엔 구멍이 숭숭 나 있는 셈이다.
아이들이 대부분 건강하니 건강검진이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시각도 있지만 요즘 비만, 당뇨병 등 성인병뿐만 아니라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정신질환도 급증하는 추세다.
아이들의 건강검진 비용도 상당히 비현실적이다. 해마다 학교에서는 1만 원이 안 되는 돈에 맞춰 아이들의 건강검진 병원을 찾느라고 진땀을 뺀다. 매년 학교장이 지정한 병원 두 곳에서 건강검진을 받게 돼 있는데 비현실적인 비용이 책정되다 보니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일괄적으로 일정 기간 내에 서둘러 받아야 하는 형식적인 건강검진에 대한 부모들의 불만도 많다. 연중 학생이나 학부모가 편안한 날에 원하는 병원에서 검진받을 수 있기를 부모들은 원한다. 집 근처 가까운 병원에 가지 못하고 항상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지난해 정부는 이러한 학생 건강검진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생애주기 국가검진에 학생 건강검진을 통합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법부터 바꿔야 하는데 이 또한 부처별 이견이 많아 쉽지 않아 보인다.
아이들 건강관리 관련 일을 26년 동안 맡아서 해온 한 교육부 관계자는 “아이들의 건강 문제다. 법 개정이 힘들면 조금씩 양보해 교육부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이관하는 방식을 고려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했는지 최근에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학생 건강검진 제도 개선 추진단을 발족해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그동안 학교장이 지정한 의료기관에서만 가능했던 학생 건강검진을 향후엔 시범사업을 거쳐 학생이나 학부모가 원하는 검진 기관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그리고 검진 결과는 건보공단의 건강관리포털시스템을 통해 영유아부터 성인기에 걸쳐 통합한 건강관리 체계가 될 수 있도록 개선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학생 건강검진이 형식적인 검진이 아니라 정말 꼭 필요한 검진이 될 수 있도록 검진 항목을 제대로 설계하고 비현실적인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학생들의 건강검진을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이관해 보건당국이 통일성 있는 아이들 건강검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직 언제 시행할지 구체화된 것이 없고 복지부와 교육부가 합의할 내용도 많다. 전 세계 유일한 생애주기 통합관리 시스템이 나올 수 있도록 두 부처가 노력해주길 바란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