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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노선계획은 1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지 한참 되는 1930년 후반에 수립되었습니다. 나치당의 국가사회주의 정책으로 독일 국철이 다시 국유화되고, 독일 경제는 지독한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었으며, 독일 국철의 전문가들은 히틀러의 아우토반 계획처럼 미래를 위한 거대한 계획을 수립하려 했습니다.
1937년, 객차와 화차의 대차 한계속도를 200Km/h로 끌어올리고, 100Km/h이상의 초고속으로 여객, 화물영업을 하며, 도시를 관통하지 않고, 자유로운 입체교차로 독일의 동서남북을 철도로 연결하려는 계획이 독일 국철 내의 연구진에게서 시작됩니다.
1939년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 동유럽을 비롯한 소련으로의 침공이 시작되면서, 독일 점령정책은 '동구를 독일 국민의 거주지로 만들자!'였습니다. 당시 독일에게 있어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던 동유럽을 식민지화 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운송수단의 확충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동유럽을 속속 점령하면서 기존의 도로와 철도로는 운송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나치스 제 3제국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도로, 철도, 해운의 대대적인 건설계획을 지시했습니다. 히틀러는 아우토반 건설에 참여하기도 한 프릿쯔 토드의 Friz Todt(1891.10.4~1942.2.8)의 '초대형 광궤를 건설, 초고속 열차를 운행하여 독일제국의 수도 베를린과 점령지를 이읍시다!' 라는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천재적인 정치가이자, 군사적인 재능(전격전 작전의 계획,수립), 그리고 크고 아름다운것을 좋아하는 히틀러에게 초대형 광궤철도 건설은 장난감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1942년 5월 히틀러의 지시를 받은 독일 국철과 독일제국 교통성은 최초에 4000mm의 궤간을 계획하나, 이후 3000mm로 축소합니다. 독일 연구진들의 의욕이 넘쳤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차량한계는 제한높이를 7500mm로, 전차선이 위치하는 높이는 8000mm로 설계되었습니다.
*무궁화호 객차의 높이가 약 3700mm입니다. 무궁화호가 복층으로 붙어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 계획에 투입될 차량의 규모가 감이 올 겁니다.
열차의 최고시속은 250Km/h에, 이를 떠받들 차축의 지지한계는 35톤으로 계획이 잡혔습니다. 400m의 여객열차가 1500명의 승객을 탑승시키고, 1100m의 화물열차는 약 1만톤을 수송하도록 영업계획이 수립됩니다. 또한 전 노선의 평균 영업속도는 최소 100Km/h 이상으로 잡혔습니다.
여객열차에는 히틀러의 생각대로 호화로운 차내 시설이 설치될 계획이었습니다.
계획 노선과 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략적인 Breitspurbahn 노선의 이해 용도로만 참고하세요.
동서선-Ost-West-Trasse zur Erschließung der eroberten Gebiete
(청색) : 인도, 이란에서 출발-바쿠-로스토우-도네츠크-오데사-스탈린그라드-키예프-크라코프-브레우슬라우-코흐부스-베를린-하노버-뷔필트-아헨-파리-브레스트
브레우슬라우에서 바르샤바,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카잔으로의 지선 건설도 계획되었습니다.
북남동선-Nord-Südost-Trasse
(적색) : 함부르크-뷔히텐베르게-베를린-라이프치히-밤베르크-뉘른베르크-뮌헨-린츠-비엔나-부다페스트-베오그라드-부르카스-이스탄불
북남선-Nord-Süd-Paralleltrasse
(분홍색) : 베를린-드레스덴-프라하-비엔나-트리에스테-로마
제 2 동서선-Ost-West-Trasse II
(녹색) : 뮌헨-아우크스부르크-슈트르가르트-카를수르에-메츠-랭스-파리-마르세이유-스페인 마드리드까지 연결
기관차
기관차는의 길이는 약 128m에, 12개의 대차를 설치하고, 증기-터보-전기, 가스-터보-전기 등 다양한 조합이 계획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선정된 것은, 증기/가스터빈, 디젤, 그리고 전기기관차였습니다. 선정된 차량조합의 출력은 11,400Kw와 18,400Kw였습니다.
객차
이게 객차라고 믿어지십니까?
여객열차의 편성은 5개의 디젤-전기 기관차 편성에, 객차는 2층으로 편성되었습니다.
1층의 객차 내부에는 라운지, 객차에 필요한 발전실, 객차 외부의 전망대, 바, 영화관, 우체국, 식당, 미술관, 목욕탕, 대기실, 샤워실, 세탁실 등 기타 승객이 여행중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배치되었으며, 2층에는 침대칸이 설치되었습니다.
여객열차의 영업속도는 250Km/h로 설정되었습니다.
또한 전기기관차를 운전하기위해 전차선 급전 방식을 통한 22,000Kw 송전 시스템이 계획되었습니다.
히틀러의 Breitspurbahn 계획은, 과대망상적으로도 보일 수 있는 거대 건축에 열광한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리고 Breitspurbahn계획은 게르마니아(Welthauptstadt Germania : 세계의 수도 게르마니아) 계획과 연계되어 진행되었습니다.
베를린의 새 이름 게르마니아, Bahnhof는 기차역입니다. 2개의 기차역이 남북으로 설치되었습니다.
게르마니아란 유럽을 석권한 대독일 제국의 수도 베를린의 새 이름으로, 히틀러가 총애한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의 도시계획과,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될 것이었습니다. 20만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국민대회당, 개선문. 고속철도 Breitspurbahn과 기존 표준궤가 함께 여객, 화물영업을 하는 북쪽과 남쪽의 베를린역. 그리고 인종 정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유대인 학살의 전모를 낱낱이 드러내는 강제수용소의 소각장에서 가져온 수십만개의 두개골을 전시, 아리아인종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박물관 등...
대독일 제국의 영광과 위엄을 보여주는 이 모든 건축물들의 공사가 1950년까지 끝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에서의 연합군 반격, 만성적인 군수물자의 부족은 독일의 패망으로 이어졌고, 게르마니아 계획의 일환이었던 Breitspurbahn계획은 모형과 설계도 속에서 먼지만 쓴 채, 시도도 못한 허망한 계획으로 남게 됩니다.
-출처-
http://kunst.gymszbad.de/nationalsozialismus/architektur/speer/werk/speer-1937-germania.htm
Http://en.wikipedia.com
http://www.epilog.de/Lexikon/B/Breitspureisenbahn.htm
http://de.geocities.com/breitspur/3000.html
타임 라이프 2차 세계대전 편집부 "나찌스 제 3帝國" 1988, 한국일보사
*일부 독일어 번역에서 실수하여 노선도 오류가 발생한 것을 수정하였으며, 노선도의 내용을 보기 쉽게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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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흥미로운 내용 잘 읽었습니다. 실제로 독일철도의 영업속도가 200km/h 를 넘긴 것은 제국철도(Reichsbahn)의 광궤고속선 계획 이후로도 20여년이 지난 1965년의 일입니다. ^^
만약 세계 2차 대전만 없었으면 아니 독일이 승리했다면 세계 최초로 고속철도가 일본이 아닌 독일에서 달렸겠군요.
독일이 이겼다면 세계는 독일 나치`s의 차지가 될 뻔 했군요. 저런 계획도 있었다니...
흥미롭게도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패퇴한 것에 철도망 이용 미숙과 철도체계 혼란에 따른 만성적인 보급품 부족이 큰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소련의 광궤철도와 독일이나 여타 국가의 표준궤구간이 전환되는 곳에서 대규모 병목현상이 일어나, 어마어마한 만성 적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결국 철도 때문에 망한 독일인 셈이죠.
이는 철도에 비해 차량을 선전 수단, 이동·운송 수단으로 선호했던 히틀러의 개인적 취향이 작용한 비극적 결과라고 합니다.
독일의 야심찬 계획이^^
근데 뭐 저렇게 크게 만들어 900mm 같으면 0.9m() 정도 넓은 궤도 잖아 꼬맹이 한 명이 추가로 더들어가는 수준이네 -ㅅ- 미술관에 영화관.... 침대차... 저기서 태어나서 저기서 죽어도 괜찮겠는걸(퍽타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