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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학사랑 글짱들 원문보기 글쓴이: 김용복
스토리텔링 시낭송
하늘에 닿은 논개의 절개
김용복작/ 이완순 각색 연출
등장인물,
나래이션: 박덕환, 민효선
시낭송가: 이완순, 양동길, 신익현, 이경숙, 박정숙, 길선주, 이찬로, 깅임구, 문 경화, 이재븐
양동길: 난타공연에 이어 회심곡 장단을 두드린다.
꽹과리를 두드리며 회심곡 연주자가 등장하며 양 동길 회심곡 중 부모은중경을 부른다.
어머니는 아기를 잉태하여 열 달 동안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느니라.
잉태한 첫 달의 태아는 마치 풀잎 위의 이슬이 아침에 잠시 있을 뿐 저녁까지도 보존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른 새벽에는 피가 모여들었다가 낮이 되면 흩어지느니라.
잉태한 지 두 달째의 태아는 우유를 끊었을 때 엉킨 것처럼 되느니라.
잉태한 지 석 달째의 태아는 마치 엉긴 피와 같느니라.
잉태한 지 넉 달이 되면 차츰 사람의 모양을 이루느니라.
잉태한 지 다섯 달이 되면 어머니 뱃속에서 아기의 오포가 생기나니,
오포는 머리와 두 팔꿈치와 두 무릎을 합친 다섯 부분이니라.
잉태한 지 여섯 달이 되면 어머니 뱃속에서 아기의 여섯 가지 정기가 열리나니,
여섯가지 정기란 눈, 귀, 코, 입, 혀, 뜻을 이르나니라.
잉태한 지 일곱 달이 되면 태아는 어머니 뱃속에서 삼백육십 뼈마디와 팔만사천 모공이 생기느니라.
잉태한 지 여덟 달이 되면 뜻과 지혜가 생기고 아홉 구멍이 커지느니라.
잉태한 지 아홉 달이면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무엇인가를 먹기 시작하되 복숭아, 배, 마늘, 오곡을 직접 먹지 않느니라.
어머니의 심장 등 오장은 아래로 향하고, 대장 등 육부는 위로 향하여 있는데,
그 사이에 한 산이 있고 이 산은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리나니, 첫째는 수미산이오,
둘째는 업산이며, 셋째는 혈산이니라.
이 이 한번씩 무너져내리면 한 줄기의 엉긴 피가 되어 태아의 입속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느니라.
잉태한 지 열 달이 되면 비로소 태어나느니라. 만일 효순한 자식이면 주먹을 모아 합장하고 나와서 어머니 몸을 상하지 않게 하느니라.
그러나 오역죄를 지은 자식이라면 어머니의 포태를 쥐어뜯거나 가슴과 배를 웅켜잡거나 발로 골반뼈를 밟아
어머니로 하여금 마치 천 개의 칼로 배를 휘젓는 듯한 아픔을 느끼게 하고 만개의 창으로 가슴을 쑤시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하느니라.
이와 같은 고통을 겪으며 이 몸을 태어나게 하셨으나, 그 위에 다시 열 가지의 큰 은혜가 있느니라.
회심곡 연주가 끝나면 나레이션을 맡은 박 덕환, 민 효선이 등장하여 서로 손을 잡고 청중에게 인사한다.
(남자 나레이션) 박 덕환, (여자 나레이션) 민 효선
박덕환: 忠이 孝이고 孝가 곧 忠이다.
홍익인간이라는 개국이념으로 우뚝 선 조선의 후예는
忠孝로 뭉쳐 어떤 외침에도 절대로 굴하지 않았다.
민효선: 한민족의 孝는 의무를 강요하는 종교의 효와 다르다.
우리 민족에겐 부모가 곧 하늘이다.
박덕환 하늘이 없으면 민족이 없고 민족이 없으면 부모가 없다.
하늘과 민족, 부모를 동일체로 여기기 때문에
우리의 효에는 반드시 충이 깃들며 자발적으로 실천한다.
민효선: 의암 주 논개가 십구 세에 나라와 남편을 위해
당당히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것이 바로 이 충효의 표상이다.
박던환 논개는 1574년 9월 3일 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술시에 탄생했다.
아버지 주 달문은 아들이 아닌 딸이 개년 개월 개일 개시에 태어난 것을 두고 몹시
안타까워했다.
나라를 뒤집을 운세라며 죽여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민효선: 논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아빠 손을 잡고 걸으며 방실방실 웃고 싶었는데 네 살에 아버지가 요절하셨다.
박덕환: 의지할 데가 없는 논개 모녀는 숙부 주달무 집에 얹혀살았다.
민효선: 간악한 주달무가 토호 김풍헌과 모의하여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아 넘겼다.
해금 연주곡을 배경음악으로 나레이션이 시작되며, 한복을 입은 여자 시낭송가가 무대에
오른다.
낭송이 끝나면 바로 음악이 끝나고, 잠시 후 다음 곡을 시작한다.
박덕환: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어머니는 탈출을 고민했다.
논개를 평생 지적장애인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사람으로 살게 할 수 없었다.
민효선: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며 마음을 다잡고 일단 친정으로 도피했다.
시낭송 도 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낭송가 박 정숙
한이 가득 담긴 아쟁연주곡이 울리며 하얀 한복을 입은 시낭송가가 등장한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 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NM 사악한 김풍헌의 고발로 수사가 시작되었다.
이를 미리 간파한 주 달무는 아무도 모르게 깊이 잠적했다.
NW 논개 모녀는 한 동안 산속 깊은 곳에 숨어 지냈다.
서러운 삶이 지속되었지만 논개 어머니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NM 삶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름답게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논개에게 한민족의 정통성, 지조와 절개를 가르쳤다.
시낭송 조 지훈 “낙화 ” 낭송가 길 선주
가곡 “어머니의 은혜”가 연주되며 여자 낭송가가 등장한다.
시낭송은 대금 연주 가락에 맞춰 진행한다.
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NM 논개 모녀는 이내 포졸에게 붙잡혀 장수 현청으로 압송되어
최경회 현감 주재로 재판이 열렸으나 무죄로 방면 되었다.
의지할 데가 없는 논개 모녀는 최경회 현감에게 도움을 청했다.
NW 최경회 현감의 박씨 부인이 논개 어머니의 간청을 받아들여 침방관리를 맡겼다.
관비로 현감 내외의 수발을 드느라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논개는 “어머니의 삶이 저런 것이구나.” 하며 눈물을 흘렸다.
시낭송 심 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낭송가 이 경숙
해금 연주음악에 맞춰 남자 시낭송가가 당당하게 무대에 오른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 순덕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을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질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
돌아가신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넋두리인 줄만 알았습니다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NM 정갈하고 정성을 다하는
논개 어머니의 행실에 감동한 현감부인이 논개를 자녀처럼 보살폈다.
NW 보잘 것 없는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몽고를 통일하고
중원을 정복하여 원나라를 세운 칭기즈칸을 이야기하며
좌절하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셨다.
시낭송 중국고시 “ 칭기즈칸 ” 낭송가 이 찬로
황병기 작곡의 가야금 연주 음악에 맞춰 어두운 표정으로 남자 낭송가가 무대에 오른다.
칭 기 즈 칸
집안이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었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탓하지 마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군사 수는 고작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00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내 이름 석자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깡그리 쓸어 버렸다.
내가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NM 1579년 최경회 현감이 장수에서 무장으로 전직되자
현감부인이 논개 모녀를 데리고 갔다.
NM 최경회 현감은 영해부사로 영전했고 곧 사도지정이란 중앙관직에 발탁되었다.
박씨부인이 지병으로 따라갈 수 없게 되자 논개에게 남편의 수발을 부탁했다.
NW 1590년 중앙관직에서 담양부사로 임명되자
최경회는 논개를 부실로 맞아 함께 임지로 떠났다.
NM 섣달에 어머니가 서거하시자 곧바로 관직을 내려놓고 고향 화순으로 내려갔 다. 첩실과 함께 시묘살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논개에게 고향 장수로 가서 기다리라고 당부했다.
NW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고향에서 홀로 지내야하는 논개는
작고한 어머니가 너무 그리웠다.
시낭송 정 호승 “ 북극성 ” 낭송가 강 임구
북극성
정 호승
신발끈도 매지 않고
나는 평생 어디를 다녀온 것일까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돌아와 황급히 신발을 벗는 것일까
길 떠나기 전에 신발이 먼저 닳아버린 줄도 모르고
길 떠나기 전에 신발이 먼저 울어버린 줄도 모르고
나 이제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와
늙은 신발을 벗고 마루에 걸터앉는다.
아들아, 섬 기슭을 향해 힘차게 달려오던 파도가 스러졌다고 해서
바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들아,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집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비가 그친 것은 아니다
불 꺼진 안방에서
간간이 미소 띠며 들려오는 어머니 말씀
밥 짓는 저녁연기처럼 홀로 밤하늘 속으로 걸어가시는데
나는 그동안 신발 끈도 매지 않고 황급히 어디를 다녀온 것일까?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돌아와
저 멀리 북극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사물놀이 음악에 맞춰 삼베 상복을 입고 머리에 새끼줄을 묶은 남자 시낭송가가 죽창을 들고 맨발로 무대에 오른다.
NM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최경회는 상복을 입은 채로 뛰쳐나와 의병을 모집했다.
NW 천하에 제일 간악하고 짐승만도 못한 일본을 물리치지 못하면
결국 우리 민족이 멸망한다며 목숨을 내놓는 결기로 나서자고 외쳤다.
시낭송 이 완순 “ 말뚝 ” 낭송가 이 완순
시나위 가락에 맞춰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남자 시낭송가가 등장한다.
말뚝
이 완순
백두대간 줄기줄기
혈맥마다 쇠말뚝을 박아
산은 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주접 들어
모이면 싸우고 돌아서면 가슴을 친다.
걸출한 장군 못 나오고
일본 이길 왕후장상 나올 수 없게
빼어난 혈 자리 불로 지지고
혹여 기氣가 남아 있을 세라
까맣게 탄 땅 파 엎고 소금을 뿌렸다
여기餘氣 숨어들어
작은 산에 혈이 맺힌다 해도
요소요소에 박은 말뚝
우리네 가슴 속에도 박혀
우리는 안 돼, 조선은 안 돼
패배주의 짙게 드리운 삶
“마, 그만 용서하십시데이.
그라고 친일 항일 따져 국론이 분열되면
뙤놈, 그 문디 자식들이 쳐들어올지 모릅니데이.“
허허, 이 무슨 허망한 망발이냐.
일본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던 놈들
매국근성 끝내 못 버리고
식민사관 부풀리는 말뚝을 박는다.
일본이 박은 말뚝보다 더 사악한 말뚝을
우리들의 머릿속에 꽝꽝 때려 박는다.
오, 천손민족이여!
깨어 일어나라!
저 말뚝을 뽑아야한다.
한민족의 기개 영원히 보존하려면
저 왜병들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
우리 땅, 우리 가슴에 박힌 말뚝
왜병들을 한데 쓸어 모아 불태우자.
불태우자!
불을 태우자!
NM 화순을 시작으로 광주, 정읍, 전주를 거쳐 장수에 이르기까지
최경회 의병장은 모병에 혼신을 다했다.
장수를 의병의 근거지를 삼아 일본군의 후방 지원활동을 차단했다.
NW 마침내 최경회 장군은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어 진주성에 입성했다.
민족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며 계백장군처럼 결사항쟁을 외쳤다.
논개도 이를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했다.
시낭송 윤 순정 “ 계백의 달 ” 낭송가 신 익현
계면조의 남도음악에 맞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 시낭송가가 등장한다.
계백의 달
윤 순정
백중보름이라 했다
그런 날이면 어쩌다 붉은 달을 볼 수 있다 했다
나는 그 달을 가슴에 품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한 남자를 만나 품었던 뜨거운 가슴으로,
달이 울고 있었다.
붉게 멍든 가슴으로 울음 삼키고 있었다.
아련한 등잔불 밑으로
다소곳이 아미 숙여 오는 밤이면
하, 조신하여 하얀 보름달 같았을 백제의 여인
깊고 아득한 눈빛으로 나신 슬어 내리며
굵고 단단한 두 팔로 그녀의 부드러운 허리를 안을 때마다
이 뜨거움은 무엇이란 말이냐
사랑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곰삭이며
젊은 계백은 되뇌었을 것이다.
칼을 받아라.
나의 마지막 사랑이니라.
여인은 울지 않았다, 허리를 곧게 펴고
계백의 깊은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 큰 사랑이 황홀하여 목을 길게 늘였다
늙으신 어머니와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백사장에서 평화롭게 모시조개를 건져 올리던 아이들
백강 위로 짙은 안개 서서히 풀리며 햇살 드러나고 있었다
계백은 울지 않았다
백제불멸의 제단에 바쳐질 운명
운명에 앞서 이미 스스로 내일을 정각했던 계백
그는 아들을 베인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았다
투구를 들어 올린 소년은 입술이 붉었다
끝내 되돌아온 화랑의 용과 기를 죽일 수는 없었다
아비의 가슴으로 관창의 머리를 돌려보냈다
죽이지 않는 것이 자극하지 않는 것임을
계백은 익히 알고 있었다
황산벌 불멸의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세상의 그 어느 사랑이
목숨을 접수함으로 사랑을 완성한
계백의 사랑보다 더 고귀한 사랑 있으랴
하늘까지 뻗친 장도의 날 끝에서 영원히 빛부실 휴머니즘이여
21세기의 청명한 동편의 밤하늘에
피를 삼킨 붉은 달이 울고 있었다.
계백의 달이었다
NM 애석하게도 1593년에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최경회 장군은 나라와 백성에게 대역죄를 졌다고 자탄하며 남강에 투신했다.
NW 그 어떤 것으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위로 할 수가 없었다.
의암 논개의 가슴에 적장에 대한 원한이 부글부글 끓었다.
시낭송 한 용운 “ 님의 침묵 ” 낭송가 문 경화
아쟁 연주를 시작으로 여자 낭송가가 등장한다.
님의 침묵
한 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얏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NM 논개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남강 변에서 열린 일본군의 전승축하연에 참석하기 위해 관기로 위장했다.
NW 논개는 빼어난 미모를 미끼로
적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유인하여 끌어안고 의암에서 뛰어내렸다.
시낭송 변 영로 “ 논개 ” 낭송가 이 재분
회심가 가락에 맞춰 출연진이 모두 무대에 오른다.
논개
변 영로(1922)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NM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기생으로 잘못 알려져 빛이 바랜 논개를 재조명해야 일본의 재침을 막을 수 있다.
NW 한민족은 누구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다.
우리의 주적, 일본을 경계하며 친일파를 척결하고
NM. NW 온 국민의 가슴에 논개의 충효가 각인되어 한민족이 굳게 일어서야한다.
시낭송 양동길 “의암사 돌아보니” 시낭송 합송
의암사義巖祠 돌아보니
彩雲 양동길
금수강산 짓밟고
양민을 도륙 하고
잔치를 벌이다니
사랑의 크기만큼
손가락마다 가락지 끼고
누가 그리 뜨겁게
원수를 껴안아 보았으랴
호흡이 멎는 순간까지
그 누가 가쁜 숨 참아 보았으랴
진주 남강 퍼런 물이 마른들
깍지가 풀어질까
넓디넓은 바다로 달려간들
숨 다시 돌아올까
그 잘난 벼슬아치 아니라고
어두운 골목을 떠돌다
수백 성상 지나서야 찾은 이름
진주성에서
주촌마을로
의암사로
검붉은 꽃으로 피어 나누나.
- 낭송이 끝나면 충효를 외치며 청중을 향해 큰절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