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마가복음 13:1-13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말세에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가를 예언하신 것으로서 복음서에 있는 계시록이라고도 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에 오늘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말세의 징조들이 지금 실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종말의 재난가운데서도 여전히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종말이 오는데도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심으로 말세에 사는 우리의 사명이 바로 복음전파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종말의 시대에 명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잘 배우심으로 말세지말에 사명을 변함없이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겉만 추구하면 다 무너뜨려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3)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신 후 제자들과 함께 나가실 때였습니다. 이 때 제자 중 하나가 성전 건물에 감탄하며 말하였습니다. "와! 예수님 저 엄청난 돌들을 보세요. 저 웅장한 돌들을 보세요. 으리으리합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촌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생전 처음으로 서울 구경 온 시골아이들처럼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성전을 떠받치고 있는 화려한 대리석 돌기둥들과 웅장하고 장엄한 건물들을 보고 마음이 현혹되었습니다. 이들은 엄청나네를 연발하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대들에게는 세가지 자랑이 있었는데 첫째는 하나님이요, 둘째는 성경이요, 셋째는 성전이였다고 합니다. 이 성전은 헤롯 대왕이 기원전 20년 경부터 46년 동안이나 지은 것으로 예수님 당시에도 완공되지 않았었습니다. 헤롯은 이를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하였고 최고의 기술과 건축술을 동원하였습니다. 돌기둥 하나의 길이가 15m, 폭이 6m나 되었습니다. 특히 성전 입구 쪽과 지붕은 황금으로 입혔습니다. 그래서 해가 뜰 때마다 찬란한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로 환상적이였습니다. 이런 엄청난 건물을 볼 때 제자들은 거대한 건물, 화려한 기술, 위대한 건축술에 완전히 압도되었습니다. 제자들은 거대한 물질문명에 대한 부러움과 호기심으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놀라운 예언을 하셨습니다. 2절을 보면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제자들은 성전의 화려한 겉모양만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의 타락상과 종교지도자들의 부패를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않고 다 무너뜨려 진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와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실제로 주후 70년에 이 성전은 로마장군 디투스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되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하는가를 배웁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영적인 눈으로 보셨습니다. 우리가 제자들처럼 세상에 대하여 호기심과 부러운 눈으로 볼 때 이 세상은 화려하게 보입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첨단 과학이 꽃을 피우고 있는 시대입니다. 오늘날은 마치 테크노피아의 시대가 열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은 심히 부패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낭만적으로 보면 아름답고 화려하게 보입니다. 추석명절이 곧 다가오는데 친척들을 만나면 모두 잘 살고 부티가 흐릅니다. 그래서 명절마치고 돌아올 때는 눈이 가재미 눈처럼 돌아가 있습니다. 중심이 흔들리는 분들이 생깁니다. 믿음으로 살다가 제자들처럼 거대한 물질 문명에 현혹되어 나의 삶은 초라해 보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이 하루 아침에 거지처럼 보입니다. 자신을 가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절대로 속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이 시대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이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박한 세상입니다. 이 대단한 아파트들은 모래성과 같이 무너질 것이며 빌딩하나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아파트 하나도 남지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네로 황제의 극심한 박해가 있을 때 성도들은 재산을 몰수 당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하나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정든 고향을 버리고 본도, 갈리다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에 흩어져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생활은 참으로 비참했고 거지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베들로는 그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산돌이신 예수님께 나아가.. 제사장이 되라 하며 그들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벧전2:9) 세상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무능하고 쓸모 없는 자같고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자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왕같은 제사장으로 보십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남의 집에 가서 청소해주고 부엌 일해주고 설거지하는 자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이런 믿음의 눈으로 자신을 보고 세상에 대한 상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런 것들의 겉모습을 보고 감탄하기보다는 그 안에 건물에 걸맞는 신앙이 있는가를 보아야합니다. 참된 신앙은 겉모습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과 믿음에 있습니다. 겉모습은 비록 초라하고 허름해도 거기 하나님께 대한 참사랑과 예배가 있으면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고 얼마든지 축복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겉모습을 보시고 그 성전이 너무 아름다워 부수기가 아깝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속을 보시고 판단하시고 심판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사울왕이 아말렉의 좋은 것들이 아까워서 “너무 재능이 아까워요” 하며 미련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 내면이 부패했고 심판받을만하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들의 내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겉은 교회직분자로 그럴 듯해 보이지만 우리 안이 음란과 거짓, 불순종과 탐심으로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면 여지없이 심판하십니다. 우리 몸이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하였는데 중심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기보다 자신이 성전의 주인이 되어있고 자기욕심과 거짓이 있다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는 이 시대의 죄와 싸우되 죄악된 이 세대를 본받거나 동화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전에 나와서 성전이 내려다보이는 감람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로소 그들은 자기 문제에서 벗어나 인류의 장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세에 살아야 하는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1)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말세가 되면 거짓 그리스도들이 출현합니다(5,6). 거짓 메시야는 거짓 희망을 가르치며 사람들을 미혹하여 그 영혼을 파괴시킵니다. 오늘날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거짓 그리스도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신천지 이만희 안상홍 장길자, 구원파 박옥수등 오늘날 등장한 거짓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이런 거짓 사이비에 미혹된다고 비난하는데 우리는 거짓 포스트모더니즘과 세상 물질적 가치관에 미혹되어 그것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것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성경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보다 더 권위있고 지혜로운 말씀은 없습니다.
2)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7,8). 말세에는 전쟁, 지진, 기근과 같은 무서운 재난이 연속적으로 일어납니다. 종말의 때에는 사랑이 식으며 인간성이 상실되어 이로 인해 전쟁이 많이 일어납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을 넘어서 양국간에 젊은이들이 200만명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홍수 지진과 기근이 처처에서 발생합니다. 이러한 지진과 기근은 해가 갈수록 그 횟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재난들은 죄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지만 우리 믿는 자에게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연단입니다. 무엇보다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재난은 영어로는 '산통의 시작'으로서 즉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우리 안에 임하게 하는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되게 믿음으로 살고자 하면 반드시 박해를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한가지 이유 때문에 모든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이런 미움을 받을 때 우리는 흔히 타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들다고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구원을 얻기가 어려워 집니다. 몇 년전 코로나로 인해 한국교회는 많은 미움을 받았습니다. 가족들이 교회가는 것을 반대하고 직장에서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승리의 면류관은 끝까지 인내하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둘째는. 복음을 먼저 만국에 전하여야 합니다.(9-13)
그러면 이런 가운데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취할 태도와 방향이 무엇입니까? 9절을 보면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세상이 기독교를 미워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그것을 복음 증거의 기회로 삼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위해, 온 세상 사람들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하고 말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복음은 박해속에서도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기독교는 박해의 때에, 고난의 때에 더 뜨겁게 확산되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복음전파는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입니다.
11절을 보면 이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중 사람들은 제자들을 끌어다가 여기저기에 넘겨줄 것입니다. 이때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은 그때 성령께서 우리 입술에 말씀을 주시고 말하게 하실 것입니다. 부모 형제가 신앙 때문에 서로 원수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b) 로마서 5장은 말합니다. “다만 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라”(롬 5:3-5) 우리는 말세의 때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 연단되고 소망을 얻게 되는데 이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결코 곤고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요 성령께서 우리 심령을 늘 사랑과 확신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소망이 생깁니다. 8절 후반부를 보면 ‘ 이것은 재난의 시작’이라고 했는데 이는 영어로 산통의 시작(the beginning of birth pain)입니다. 산통은 여인이 겪는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입니다. 그런데 이런 산통이 있고난 후에 곧 새생명이 태어납니다. 이처럼 말세의 이런 재난도 우리에게 가장 큰 산통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재난과 고통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우리안에서 태어납니다. 이 재난 후에 우리에게는 사랑과 평화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겉모습을 추구하다가 망할 우리들을 택하시어 이 미움의 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복음이 먼저 만국에’라는 분명한 말씀을 가지고 남은 삶은 전도하고 만민구원하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