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idaero47/224326851243
우리말 살리는 뜻벗 김정섭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김정섭 선생님은 저와 함께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을 오래 함께 하신 분입니다. 2년 전 박형준 부산시장이 부산을 영어 상용도시로 만든다고 해서 부산시청 앞에서 한글단체와 부산시민단체가 반대 기자회견을 할 때 아픈 몸을 이끌고 오셔서 “이 선생이 내려올 줄 알고 얼굴을 보려고 왔다”라며 오셔서 뵌 일이 있는데 91살로 돌아가셨다는 알림을 오늘 김영환 교수가 보낸 선생님 아들이 보낸 문자를 보내주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김정섭 선생님은 아는 분들에게도 알리지 말고 빈소 없이 가족들과 장례를 치르라고 해서 늦게 알린다고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정섭 선생님 아들입니다.
아버님께서 2026년 6월 17일 별세하셨기에 삼가 안내드립니다.아버님 뜻에 따라 빈소 없이 가족들과 장례를 모셨습니다. 지인 분들께도 장례 후에 알려드리라고 유언하셔서
이제야 알려드립니다. 너그럽게 양해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6년 6원 24일 아듬 아룀.
AI 활용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에서 "바른 말" 출판을 축하하는 꽃다발을 받고 웃는 김성섭 선생(오른쪽)
https://v.daum.net/v/20080307224305814
심지어 국어사전에도 틀린 말이 많아요 - 책 출판을 알리는 한국일보 보도 기사
김정섭 선생님을 훌륭한 우리말 지킴이셨습니다.
김 선생님은 부산에 있는 중 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국어 선생님을 하시면서 “우리말 바로쓰기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시다가 내가 이오덕, 김수업 선생님과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을 만들 때 참여해 함께 공동대표로 일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대학에 다닐 때 한글전용 찬성하시는 김성배 교수님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대학생 때 명지대 진태하교수와 함께 대학에 다닌 국어교육과 동기인데 진태하교수는 김성배 교수 덕으로 대학교수를 하면서 김성배 교수님이 살아 게실 때에는 한글전용운동을 하는 김성배 교수님을 아버지처럼 모시다가 돌아가신 뒤 등을 돌려 한자혼용운동에 앞장을 섰습니다. 그러나 김정섭 선생님은 이오덕, 김수업 선생님과 함께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로서 한자혼용파와 맞서서 뜨겁게 활동하셨습니다.
김성배교수님은 내가 동국대학에서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국어독립운동을 할 때에 지도교수를 맡으셨고 내 혼인 주례를 보셨는데 “이 군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라고 주례 말씀을 하셔서 제가 감동한 일이 있습니다. 동국대 국문과 이병주 교수는 스스로 이완용 손자라고 강의시간에도 말하는 이로서 한자혼용을 찬성하는 이였습니다. 그래서 한글운동 모임을 만드는 것을 방해했으나 내가 무릅쓰고 모임을 만드는 것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어서 내가 국어독립운동을 하면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김성배교수님이 돌아가신 날 저녁 김 교수님의 아들이고 나와 대학 동기인 김종덕이 서대문구 아현동 김성배 교수님댁 마당 모닥불 앞에서 그가 “이제 네가 태하 형과 함께 아버지 뜻을 이어가야겠다.”라고 말해서 진태하 교수가 김성배교수를 아버지처럼 모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뒷날에 보니 스승이신 김성배교수 뜻을 거스르고 한자혼용 운동에 앞장을 서는 것을 보고 매우 실망하고 화가 났는데 그와 대학 동기인 김정섭 선생은 나와 함께 한글사랑과 우리말 바로쓰기에 서기서 아주 고마웠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편안하시길 바라고 빌면서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아래 둘을 소개합니다.
김정섭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대학 동기인 진태하 교수가 한문글자는 우리 조상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니 그 잘못을 따지는 글을 썼기에 아래 그 글 전문을 올리고 진태하 교수가 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를 만들고 한자혼용운동에 앞장을 서니 그들 주장이 잘못된 것을 밝히는 글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회보에 쓴 것은 길어서 그 글이 있는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방 누리집 주소를 위에 올리니 꼭 읽어보시면 고맙겠습니다. 선생님 글은 아주 배울 점이 많습니다.
가 : 우리말과 한문글자, 한문글자는 우리 겨레가 만든 게 아니다.
우리말 바로쓰기 모임 회장 김 정 섭
1. 우리 겨레가 한문글자를 만들었다고?
한글이나 에스페란토 같은 글자는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똑똑히 알 수 있다. 하지만 한문글자(漢字)는 무엇 하나 또렷이 밝혀진 것이 없고 밝힐 수도 없다. 어렴풋이 짐작해서 하는 말은 모두 옛이야기에 머문다. 그 가운데는 창힐이라는 분이 새의 발자국 모양을 본 따서 만들었다는 말도 있고 짐승의 뼈나 거북 등딱지를 태울 때 나타나는 엉그름의 모양을 보고 귀신글자로 풀이하여 점을 친 데서 뿌리를 찾기도 한다.
어쨌거나 한문글자는 처음부터 말소리를 적는 글자로 옹글게 만든 것이 아니라 어떤 생김새를 그리고 다듬어서 오랜 동안 한 글자씩 만들고 그 속에 여러 가지 뜻을 담아 하나의 글자로 얽어 짠 것인데 거의 다 중국에서 만들었다. 한문글자를 빌려 쓰던 다른 겨레도 저들 삶에 쓸모가 있어서 따로 몇몇 글자를 만들기도 했는데 우리가 만든 ‘국조자(國造字-畓. 垈.乭. 媤)’나 일본에서 만든 ‘국자(國字-腺.歪.膵)’ 따위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겨레가 저희 말을 나타내는 데 중국의 한문글자에서 모자란 것을 덧보탠 것이니 이를 빌미로 배달겨레나 일본 겨레가 한문글자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글자란 무엇인가? 말소리를 담는 그릇이다. 말은 뜻과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는 사람의 목소리이고 이 말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게 적는 연모가 글자다. 따라서 글자는 반드시 말소리를 빈틈없이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말소리가 아닌 뜻이나 생각이나 느낌을 담는 것은 글자가 아니라 그림이나 보람(표)이다. 한문글자는 중국 사람의 말소리를 담는 중국글자이고 우리 말소리는 담을 수 없으므로 우리글자가 아니다. 아무리 한문글자를 배우고 익혀서 모양과 뜻을 휑하니 안다고 해도 한문글자가 우리 글자로 바뀌는 일은 없다.
배달겨레가 한문글자를 만들었다고 하려면 그때, 우리 겨레가 중국말을 썼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중국말을 썼다면 한문글자를 우리 겨레가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옛날 옛적에 우리 겨레가 중국말을 쓰면서 한문글자를 만들었는데 그 뒤 어느 날 갑자기 중국말을 버리고 배달말을 쓰게 되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말이란 겨레의 삶 속에서 땀처럼 배어나와 구슬처럼 엉긴 것이므로 중국말을 쓰다가 배달말로 바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배달겨레와 중국겨레가 서로 다르듯이 우리말과 중국말은 뿌리가 다르다. 우리는 역사 이전부터 배달말을 써 온 배달겨레다. 중국말을 쓴 적이 없다. 그렇다면 배달말을 쓰는 겨레가 중국 말소리를 담는 한문글자를 만들었다고 해야 하는데 그것은 말이 안 된다.
한문글자는 신라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때 신라 사람들은 이미 신라말로 아무 모자람 없이 말살이를 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글자가 없어서 남의 글자인 한문글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향가’가 그 보기다. 그 뒤로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문글자로 우리말을 억지로 적었다. ‘이두(사룀=白. 상사리(上白是), 하늘(大乙)’, ‘군두목(괭이=廣耳. 콩팥=豆太. 갈치=刀魚)’ 따위다. 이것은 중국말과 우리말은 갈래가 아주 다른 말이고 한문글자로는 우리 말소리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말소리를 담을 수 없는 한문글자를 우리 겨레가 왜, 무엇 때문에 만들었을까? 우리 말소리를 담는 글자는 만들지 않고 중국 말소리를 담는 한문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 한자말도 우리말이고 한문글자도 우리 글자라고?
‘표준국어대사전(국어원)’에 실린 오십일만 낱말 가운데서 삼십만 낱말이 한자말이니 한자말은 곧 우리말이라고 한다. 아무리 쌀에 모래가 많이 섞여도 모래를 쌀이라 하지 않는다. 한자말이 아무리 많아도 한자말이지 우리말이 아니다. 그런데 삼십만 낱말이 넘는다는 한자말은 대충 살펴보아도 우리가 쓰는 말이나 써야 할 말은 드물다. 사람 이름, 땅 이름, 책 이름이나 불교, 가톨릭교, 천도교 따위 종교에서 쓰는 말, 우리말로 짓지 않고 일본에서 빌려 온 한문글자 갈말(학술어) 따위 그리고 뜻이 같은 한자말(아버지를 일컫는 한자말은 부친, 엄친, 춘부장, 대인 따위 예순 가지가 넘고 편지는 자그마치 백아흔여덟 가지나 된다.)을 빼면 정작 우리말로 받아들여 쓸 만한 한자말은 기껏 일이만 낱말에 지나지 않는다.
한자말에서 꼭 쓸모가 있는 말은 들온말로 받아들여 써야 한다. 그것은 많고 적고를 따질 일이 아니다. 그리고 들온말이 된 한자말은 우리말이므로 우리말 맞춤법에 맞게 우리 글자인 한글로 써야 한다. 우리말 속에는 한자말 말고도 여러 겨레말이 들어와 우리말로 쓰인다. 일본에서 들어온 ‘가마니, 구두, 가방, 고구마, 냄비 따위, 중국에서 들어온 무명, 배추, 상추, 시금치, 지단 따위 몽골에서 들어온 나귀, 달구지, 보라매, 사둔, 설렁탕 따위, 만주에서 들어온 메주, 선지, 수수, 호미 따위, 서양에서 들어온 담배, 가스, 버스, 택시, 커피 따위인데 이들 들온말을 본디 나라 글자가 아닌 한글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자말에서 들여온 들온말도 반드시 한글로 써야 한다. 어쩌다 ’가마니‘를 ’가나‘로, 배추를 한문글자로, 호미를 만주글자로, 버스를 로마글자로 쓴다면 그때부터 그 말은 우리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한자말도 한문글자로 쓰면 우리말이 아니다.
또 한자말에는 소리 같은 말이 많아서 한문글자로 쓰지 않으면 뜻 가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터무니 삼아 한문글자를 섞어 써야 한다면서 그래서 한문글자를 우리 글자라고 하는 말은 앞뒤가 서로 이어지지 않는 말이다. 한자말을 빌려 말하자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한문글자는 대충 5만 자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한문글자를 읽는 소리는 400 가지쯤 된다. 중국은 ‘4성’이 있어서 아마 1600 가지 소리로 읽지 않나 싶다.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는 5만이 넘는 한문글자를 400 가지 소리로 읽으려니 평미리쳐서 한 가지 소리에 뜻이 다른 한문글자가 125 자가 된다. 그러니 소리 같은 한자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요즘은 볼 수 없지만 전에 ‘전화번호부’에서 사람 이름을 찾아보면 같은 이름이 수두룩했었다.
‘표준국어대사전’ 책장을 넘겨서 소리 같은 한자말을 찾아보면 서너 가지는 보통이고 스무 가지가 넘는 것도 더러 눈에 띈다. 이런 한자말을 모두 한문글자로 써서 뜻 가름을 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다른 길을 찾으면 모든 것이 아주 쉽게 풀릴 터인데 스스로 한문글자라는 틀 속에 갇혀서 이제는 아예 거기에 눌러앉아 벗어날 엄두를 내지 않는다. 오십 년 가까이 애를 써 보아도 끝내 이루지 못했다면 그 생각이 잘못임을 깨닫고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옳다. ‘야로’라는 낱말을 보기를 들어보자. 겨레말 ‘야로’는 남몰래 꾸미는 나쁜 속셈이나 수작이고 한자말 야로(冶爐)는 ‘풀무’, 야로(夜路)는 ‘밤길’, 야로(夜露)는 ‘밤이슬’, 야로(野老)는 ‘시골 늙은이’, 야로(野路)는 ‘밤길’이다. 이것만 깨치면 길이 바로 열린다. 굳이 한문글자에 매달릴 까닭이 없다. 또 한문글자를 끌어들인다고 풀릴 일도 아니다.
3. 한문글자의 굴레, 하루바삐 벗어나야
한자말은 버리고 겨레말을 찾고 다듬고 새로 만들어 쓴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말글살이에 한문글자를 끌어들이는 일은 그보다 몇 갑절 더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앞날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된다. 이것은 그냥 힘든 일이 아니라 매우 무서운 일이다. 한문글자 섞어 쓰기(국한혼용)가 우리 삶과 생각을 옥죄던 일은 스스로 뼈저리게 겪어보지 않았는가? 지난날의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잘못을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쓸데가 있으면 마땅히 한문도 배우고 중국말도 익히고 일본말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한문글자를 우리 말글살이에 끌어들이는 것만은 안 된다. (끝)
나 :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결성에 붙여-
김성섭 선생님이 1998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회보 4호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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