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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여름 가족여행
코로나19가 지구촌을 골병들게 한 2020년도다. 금년 여름 가족 여행은 직장의 휴가 기간들이 다를 수 있고 학교의 보충수업 일정들이 서로 각각이기에 부득이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가족들 삶의 궤적을 더듬어 보았다. 1960년대 초 한국경제는 나`남 없이 퍽도 어려웠다. 당시 나는 군대를 마치고 1962년부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호남비료주식회사 나주공장에서 근무하다가 옥봉초등학교 교사 강청자와 결혼한 뒤 일에 푹 빠져 아들딸 구분 없이 하나만 낳아 잘 기르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낳은 큰딸 은미가 현재 (사)한국현대무용진흥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이태원 중심가 2층에 숨무브먼트 작업실을 벌여놓고 일반인 모두를 위한 움직임 교육센터 ‘스페이스 소마’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무용 테크닉, 즉흥, 아이키도, 휄든크라이스 수업을 열면서 춤, 소마틱스, 무술을 함께 연구하는 수련장을 운영하는 예술 감독인 그는 2019년 10월부터 또 하나의 일 365라는 개인의 움직임 Project를 추가하여 매일 짧은 영상을 SNS에 올리는 작업을 펴고 있다.
은미가 예쁘게 자라고 있을 때 돌아가신 어머님 소원으로 얻은 둘째 딸이 유미인데 자랄 때 7년 차 언니한테 치이고 남동생한테 부모 사랑을 빼앗겼다고 소외감을 가지고 자랐지만, 그것이 오히려 강한 독립심을 갖게 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유미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으나 대학원은 보석공예전문대학으로 옮겨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홍콩을 드나들면서 보석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또 하나의 Project, ㈜우영을 이끌어가느라 동분서주하며 보람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셋째 진호도 둘째 누나와 연년생으로 맨 끝에 아들로 태어나 엄마의 치마폭에 서 자랐기에 더러 나약해 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압구정동 구정중학교 재학 중 영어가 서투른데도 미국유학을 결심하여 보스턴에 있는 영국계 명문교 우스터 아카데미로 편입하여 기숙사에 들어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결행한 바 있다.
진호가 그런 결심을 실현하게 된 데는 어쩌면 그의 큰 누나인 은미의 지대한 역할 덕분일 수도 있다. 은미는 뉴욕대학원(N,Y,U)에 다니면서 매주 금요일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보스턴으로 달려갔다. 진호를 기숙사에서 호텔로 데려가 먹을 것을 챙겨주고 일요일까지 영어를 가르친 후 다시 진호를 기숙사에 들여보내곤 했다. 그런 후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기를 반복적으로 생활화하였으니 누나지만 엄마 역할 이상을 한 것이다. 그것이 남매의 유학조건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어쨌든 진호의 유학 생활은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성장한 진호가 대학에 진학하여서는 자동차를 직접 몰고 북미대륙을 횡단하였고, 벌레를 무서워하고 모기만 봐도 기겁을 하던 녀석이 귀국하여 병역의무를 마친 후 자동차와 선박부품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을 의연히 이끌고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강청자는 상속을 거부한 남편을 만나 전남 영산포 중앙초등학교로 도외 전출을 했다, 신혼살림을 영산포 중앙동에서 단칸 셋방살이로 시작하였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의 가진 것 절반은 강청자의 역할이라 인정하며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귀로를 함께 찾고 있다.
2020년 7월 어느 날 큰딸 은미의 전화를 받았다. 8월 3일부터 7일까지 5일 동안 권병철 교수는 아진이 학원 때문에 함께 못하지만 권무진과 함께 깊은 산골 청정지역 ‘여산재’에서 머물겠다며 나의 계획을 물어온 것이다. 그래서 2020년 가족 여행을 이 시간에 맞추기로 하고, 시간이 허락하고 동참 의향이 있는 가족은 여산재로 모이라는 메시지를 날릴 수 있었다.
여산재에 머물면서 전라북도 관광명소 중심으로 일귀여행(日歸旅行)을 하기로 급조한 가족 여행계획이다. 이번에도 모든 계획을 권무진이 짰다. 권무진은 신장이 184.5cm로 큰 편이지만 외국인학교 BC Collegiate (B,C,C) 중2 과정인 아직 어린 학생이다. 권무진이 짠 일정계획의 실행 그 대강을 아래에 기술해 본다.
첫날 8월 3일은 서울출발 13시경 여산재 도착, 오찬 후 무진이가 준비한 통발을 여산재 앞 하천에 설치하고 주변 도로를 산책하면서 은미 365 프로젝트 노상 영상촬영을 한다.
둘째 날 8월 4일은 통발을 걷어 생각 이상 수확한 50여 마리의 물고기를 수거하고 재설치한 후, 전주시 덕진공원으로 이동하여 연못가를 산책하고 연지에 설치된 데크 중간 정자에서 365 프로젝트 영상촬영을 마치면서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국은미 강청자 권무진 덕진 연못 쉼터에서
여산재로 돌아오면서 완주군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에 들러 권무진이가 외사촌 여동생 윤빈에게 깜작 선물로 특수요리를 만들어주겠다며 장보기를 했다.
권무진 요리사가 고른 재료를 보면 크라운 조리 퐁, 해태 포키, 해태 홈런 불초코, 한우 안심 로스(국내산),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참깨라면 용기, 해태 코코팜 탱글 복숭아, 오리온 초코파이, 수박 한 덩어리, 생수 등으로 여산재에 돌아와 요리를 시작하다. 서울에서부터 준비한 요리 기구를 이용하여 장장 15시간 동안 조리를 했다. 사용재료는 소고기 안심, 카다멈, 로즈마리, 팔각, 화양 씨, 소금만으로 ‘소고기 안심 수비드’를 만들었다, 또 하나의 요리는 백설의 부라우니 믹스와 물만으로 만든 ‘부라우니‘를 정성을 다하여 조리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외사촌 여동생을 사랑하는 살가운 마음이 예쁘게만 보였다.
정다운 권무진 국윤희, 권무진 특별요리 ’부라우니, ‘소고기 안심수비드’ 위의 조리기구
셋째 날인 8월 5일 여산재에 가족 모두가 모여 2020가족 본격 여행이 시작되었다. 오전 10시에 박재욱 여산재 관장이 운전하는 여산재 승합차에 은미, 권무진, 윤빈, 박경숙 이모, 김연지 미래 보건의료공무원, 박재욱 관장 등 6명이 탑승했고, 진호 사장이 운전하는 리무진 승용차에는 나, 강청자, 김마야, 윤희 등이 탑승했다. 11명 전원이 격포의 이어도 횟집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회를 먹자는 메뉴도 권무진이 정했다. 급조된 간이 가족 여행이라 선약이 있어 참여치 못한 둘째 딸 유미, 여산재 조리장 하정례, 김태열 기사, 권병철 교수와 권아진 등 함께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우리는 이어도 횟집에 모두 모였다.
이어도 서두영 사장이 정군수 은사님께서 잘 모시라고 부탁하셨다면서 내외가 정성을 쏟아 최선을 다해주어 고마웠다. 정성껏 만든 요리를 권무진 학생을 비롯한 가족 모두가 만족스럽게 감식하는 모습이 정말 흐뭇했다.
부안의 변산은 바다와 접한 해안 쪽을 외변산, 산봉우리들이 첩첩 쌓인 내륙 쪽을 내변산이라 하는데 안팎을 가릴 것 없이 서해에서 최고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 복 받은 지형으로 꼽히면서 변산반도를 ‘서해의 진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식후에 격포항, 채석강을 거쳐 잘 조성되어있는 빨간 카펫 길 따라 맨 끝 하얀 등대 위에 올라 볼 요량으로 밖으로 나갔다.
격포 해수욕장에서 격포항 등대가 있는 곳까지 1km 정도 펼쳐진 채석강은 하루 두 번씩 썰물. 물 빠진 채석강을 걸으면서 퇴적암층에 붙어있는 바다생물들이며 해식동굴의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우리는 밀물 때였기에 아쉬움이 컸다. 중국의 이태백이 술에 취해 뱃놀이하다 강물에 뜬 달그림자를 잡으려고 물에 뛰어들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그 모습이 흡사해 채석강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바닷가의 절벽을 바라보며 거닐었다. 춤꾼 은미와 사진사 권무진은 하얀 등대 길을 따라가면서 멋진 무대를 찾아 365 프로젝트 영상촬영을 하고, 나는 윤빈 윤희와 함께 갈매기를 몰고 다니며 새우깡 주기에 푹 빠져 즐겼다.
등대길 바다 쪽에 설치된 테트라포드(Tetrapod)의 기능은 방조제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다리를 가진 콘크리트 구조물인데, 개당 무게만도 1톤 정도 나가는데 다리가 있어 구조물끼리 엉켜 강한 파도를 파쇄하는 기능을 가졌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등대길 맨 끝에 세워진 하얀 등대에 가서 5살배기 윤희가 재빨리 등대 위에 오르더니 혼자 서서 왔던 길을 되돌아보는 의젓한 모습을 보여 인상적이었다.
갈매기와 함께 등대지기 윤희 국은미 365 프로젝트 영상
격포항 북 방파제 빨간 카펫 등대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해안 쪽의 하얀 테트라포드 위에 앉은 갈매기들과 내항 쪽에 정박된 고깃배들, 낚시꾼들을 만날 수 있다. 잘 조성되어있는 등대로 길을 걸으면서 남방파제의 빨간 등대와 북 방파제의 하얀 등대가 마치 견우직녀처럼 보여 좋았다.
격포 주변을 돌아보고 선유도로 출발했다. 확 트인 새만금 방조제 도로 33km는 환상적인 드라이브코스였다. 개발속도가 늦은 것에 못내 마땅찮아 하면서도 시원하게 달려 무녀도를 거쳐 선유도 해수욕장 명사십리 거쳐 망주봉 풍경 횟집 앞에 차를 세웠다. 반대 방향에 우리와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여산재 관장 차를 맞았다
나는 1962년도부터 선유도를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교량을 통한 육로 길은 처음이었다. 망주봉 주변 도로가 협소하여 가슴을 조이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선유도 근처 넓은 주차장으로 이동하고 싶은 심정이 일었다. 의견을 수렴하여 해수욕장을 다시 지나 선유도 넓은 주차장에 주차하고 도보로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섬을 도는 여객선이 출발 직전이라며 반값 승선을 권유하는 호객행위자가 있었지만 우리는 결국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체온을 확인한 뒤 해수욕장으로 입장하여 가는 모래의 촉감을 느끼며 벤치에 앉아서 해수욕장을 가로질러 고공 낙하하는 ‘집라인’을 즐기는 관광객들을 구경했다. 매력적이어서 타보고 싶다는 충정을 말했더니 아이들이 위험하다며 극구 말렸다. 이내 바지를 걷어 올리고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파도 조심하라고 걱정하는 아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진한 가족애를 느끼며 적당히 파도와 함께 놀다 나왔다.
박재욱 관장이 찾아뒀다며 커피숍으로 안내했다. 천사 같은 마음으로일까? 엔제리너스(angel in us)라는 커피숍에 들렀다. 일`이층으로 되었는데 전망 좋은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 타임에 나는 별도의 테이블에서 선유도초도 환경을 그려봤다. 1960년대 중반, 아마도 당시 ‘돼지의 꿈’이라는 영화 제목의 촬영지가 선유도였던 것 같다. 나는 결혼 직후 처가 식구 중 처제 6명과 처남을 데리고 선유도 해수욕장을 찾았다. 군산항에서 대형여객선을 타고 3시간 반이나 걸려 선유도에 도착했다. 처제들이 하나같이 멀미를 하여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선유도 해수욕장은 부대시설도 열악했다. 백사장뿐이었고 숙소는 연립형 창고 스타일의 숙박시설이었다. 모기가 많았고 특히 빈대가 많아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뒤에도 우신엔지니어링주식회사 영빈관을 선유도에 짓겠다고 부지를 찾으려고 여러 번 선유도를 드나들었다. 그런데도 오늘같이 다리가 이어져 자동차를 몰고 직접 찾은 것은 처음이다. 군산 앞바다 총 63개의 크고 작은 섬(유인도 16개, 무인도 47개)을 일컬어 고군산 군도라 하는데, 그중 가장 아름다워 신선이 놀았다 하여 부르게 된 선유도에서 이순신 장군도 승전 후 잠시 쉬다가 가신 것으로 알고 있다.
군산 선유도 망주봉일원(群山仙遊島 望主峰一圓)은 대한민국의 명승 제113호로 지정되었다. 망주봉은 옛날 억울하게 유배된 한 충신이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하늘과 바다가 모두 붉은 색조로 변하는 ‘선유 낙조’를 볼 수 있는 탁월한 장소이기도 하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 긍이 편찬한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따르면 망주봉에는 바다 신에게 제사 지내던 오룡묘가 있고, 송나라 사신을 영접했던 숭산행궁(객관) 선유도 고려유적, 군산정(정자), 자복사 사찰 터가 남아있어 역사적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그래서 선유 8경 중 6경인 망주봉, 선유 낙조, 삼도귀범, 명사십리, 무산 12봉, 평사낙안 등이 망주봉에 있다.
격포에서 점심을 얼마나 잘 먹었는지 오후 늦은 시간에야 저녁 메뉴를 상의하더니 비응도로 건너가 바지락 명가 장가네로 결정하고 이동하여 푸짐하게들 맛있게 잘들 먹었다. 역시 명가 음식점다웠다. 다 늦은 시간에 여산재로 돌아왔다.
넷째 날 8월 6일은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뒤집혔는데도 통발에 몇 마리가 잡혔다. 관장이 배를 따고 박경숙 이모가 맛있게 튀겨서 점심에 온 가족이 잘 나눠 먹고 은미가 6살 때 사준 영창피아노를 엄마와 번갈아 치고 무진 사진사가 열심히 조정하며 촬영을 했다.
비가 내리는데도 350년 수령의 느티나무 길을 산책하면서 은미는 우산 들고 365 프로젝트 영상촬영을 했다. 권무진 사진사가 따라 다니면서 촬영해주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저녁 시간엔 진호가 마야, 윤빈, 윤희와 함께 왔다. 권무진이 특별요리 ‘소고기 안심 수비드’를 맛있게 먹고 남은 한 개는 진공포장 상태로 들었다. 옷을 곱게 차려입고 온 윤빈이는 내사촌오빠 권무진이 만들어준 ‘부라우니’를 그렇게 잘 먹고 접시에 붙어있는 것까지 싹싹 긁어 비웠다. 요리사 권무진 오빠가 기분 좋아하는 모습일랑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족애의 표본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큰고모 또 언제 올 수 있느냐며 고모 품에 안겨 흐르는 눈물을 꾹 참는 모습이 참으로 애틋해보였다. 윤희한테 그림 그리면서 놀라고 준 크레용을 가지고 은미가 나의 초상화를 그리는 모습을 보더니 윤빈이도 옆에서 강청자 할머니 초상화를 그리면서 고모와 실력대결을 했다. 또 윤희와 무진이도 따라서 그림을 그렸다. 잠시 5분여 동안에 그린 초상화가 그럴듯해서 나의 생전장례 기록물에 포함 시켜 뒀다.
아빠 국중하 초상화 할머니 강청자 초상화 권무진 국윤희
가족 여행 마지막 날 8월 7일 아침. 식사 후 비가 많이 와서 여산재 공연장에서 강청자 엄마는 피아노 연주를 하고 큰딸 은미는 365 프로잭트 공연하고, 아들 권 무진은 열심히 엄마 공연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들의 모습을 감상하는 관객인 나는 흐뭇하기만 했다.
이렇듯 2020 가족여행을 마치고 10시 30분에 은미는 권무진과 함께 서울로 출발했다. 장대비가 쏟아져 걱정이었는데,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서는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