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복현아침메일 3369.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19-바람 불어 좋은 날/ 최복현(3/21)

[장미]

19. 바람 불어 좋은 날/ 최복현

바람이 붑니다. 한라산 정상 일대엔 잠시도 쉬지 않고 바람이 붑니다. 그 바람을 못 이겨 나무들이 자라지 못한 것인지, 키 작은 조리대만 정상 부근을 온통 뒤덮고 있습니다. 그 위로 바람이 쉼 없이 불어지납니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조리대가 합창합니다. 때로는 세레나데처럼 부드럽게, 때로는 행진곡처럼 힘차게, 때로는 장송곡처럼 장중하면서도 슬프게 노래를 부릅니다. 바람이 노래를 부르든 조리대가 노래를 부르든 한라산 정상 부근엔 하루 종일 조용하지 않습니다.

지난주에 제주도에 강의를 다녀왔습니다. 제주도에서 바람을 실컷 만났습니다. 맛보았습니다. 모습은 없으면서 무엇이든 움직이고, 무엇이든 소리나게 부추기는 바람을 만났습니다. 바람, 이 바람 중에 레반터라는 바람이 있답니다. 지중해에서 부는 강한 동풍이라는 군요. "바람 한줄기가 불어왔다. 그는 이 바람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바람을 레반터라고 불렀다. 이 바람과 함께 동부 지중해 레반트로부터 무어인들이 쳐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코엘료의 <연금술사>의 한 대목입니다.

모습은 없지만 바람은 그 어떤 신호입니다. 봄바람과 함께 꽃은 피어나고, 여름바람과 함께 계절은 깊어지고, 가을바람과 함께 낙엽은 지고, 겨울바람과 함께 세상은 휴면에 잠깁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뀜에 따라, 바람의 열기나 냉기에 따라 계절이 바뀝니다. 계절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람은 이처럼 무엇인가를 변하게 하고 들뜨게 합니다. 계절이 변하듯 사람의 마음도 계절에 따라 변합니다. 바람은 변화의 상징이고 부추김의 상징입니다. 이를테면 일상을 깨어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진부한 일상으로부터의 변화, 우리 삶에도 가끔 이런 건설적인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강한 바람이 불어오자, 산티아고는 생각합니다. '난 보물과 양들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셈이군.' 여기서 보물이란 일상이 아닌 새로운 일, 양들은 그의 일상을 상징합니다. 일상은 편안합니다. 반면 새로운 일은 확실하지 않으니 위험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무리 없이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삶에 만족하며, 그 삶에 충실하는 것을 제일로 생각합니다. 멀쩡히 잘 지내고 있는 삶을 바꾸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때문에 난 사람과 보통 사람이 갈립니다. 바람 막이 뒤에 은신하는 이들은 많아도 그 바람을 타려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산티아고는 이미 익숙해져 있는 것과 가지고 싶은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물론 양털 가게 딸도 있었지만, 그녀는 아직 그의 사람이 아니어서 양들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이틀 후 그가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아도 그녀는 그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할 것이다. 그녀에겐 모든 날들이 다 똑같을 것이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하루하루가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똑같을 수밖에 없으니까."

바람이 입니다. 그 거센 바람을 보면 그 바람을 따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바람에 따라 흘러가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그것이 이를테면 유행입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진정한 자신을 변화시키는 바람, 자신의 진정한 보물을 찾도록 유도하는 바람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레반터와 같은 바람일 뿐입니다. 그런 바람이 아닌 진정한 바람, 우리 안에서는 항상 좋은 일들이 있다는 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바람을 깨닫지 못합니다. 일상에 푹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무난하니까, 지금 작장이 안전하니까, 지금 생활은 편안하니까,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일상이 나를 지배하여 내 안에서 발버둥치는, 내 안에서 나를 변화시키려는 바람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언젠가 지금의 일상이 나의 것이 아닌 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 날이 오기 전에 진정한 자신의 변화, 새로운 뭔가에 도전해야 합니다.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이면서 내 안에 이는 나만의 보물을 찾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용기 없는 사람에겐 무사안일만 있을 뿐이니, 때로 자신만의 바람에 따라 볼 일입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용기를 가지고 마음에 따라 움직여 보자고요.

-최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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