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강무정(浿江無情)
조지훈
평양(平壤)을 찾아 와도 평양선엔 사람이 없다.
대동강 언덕길에는 왕닷새 베치마 적삼에 소식(蘇式) 장총을 메고 잡혀 오는 여자 빨치산이 하나
스탈린 거리 잎 지는 가로수 밑에 앉아 외로운 나그네처럼 갈 곳이 없다.
십년 전 옛날 평원선(平原線) 철로 닦을 무렵, 내 원산(元山)에서 길 떠나 양덕(陽德) 순천(順川)을 거쳐 걸어서 평양에 왔더니라.
주머니에 남은 돈은 단돈 십이 전(十二錢), 냉면 한 그릇 못 먹고 쓸쓸히 웃으며 떠났더니라.
돈 없이는 안 오리라던 그 평양을 오늘에 또 내가 왔다 평양을, 내 왜 왔노.
대동문(大同門) 다락에 올라 흐르는 물을 본다. 패강 무정(浿江無情) 십 년 뒤 오늘! 아, 가는자 이 같고나, 서울 최후의 날이 이 같았음이여!
(시집 『역사 앞에서』, 1959)
[어휘풀이]
-패강 : ‘대동강’의 옛 이름
-적삼 : 윗도리에 입는 저고리 모양의 홑옷.
-소식(蘇式) : 소련식.
-평원선 : 서포와 고원 사이를 잇는 단선 철도. 서해안과 동해안을 연결하는 것으로
1941년에 개통되었다. 길이는 212.6km
-대동문 : 평양시에 있는 내성(內城)의 동문(東門), 태종 6년(1406년)에 창건하여 중종 36년
(1541년)에 소실된 것을 선조 10년(1577년)에 재건하였으며, 정교한 3층
누문(樓門)으로 구조가 웅대하다.
[작품해설]
이 시는 6.25 당시 국군에 의해 탈환된 평양의 폐허화된 모습을 보고 전쟁의 참혹상과 민족의 비극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시는 전쟁의 의미 추구나 이데올로기의 우열(優劣)을 주장하는 격한 감정의 전쟁시가 아니다. 따라서 시인은 의도적으로 행 구분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 연을 긴 행 하나로 처리함으로써 전쟁을 바라보는 화자의 허망한 마음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이 작품은 내용상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1~3연의 첫째 단락은 미군의 공중 폭격으로 인해 온통 폐화화되어 을씨년스러워진 평양 거리의 풍경을 ‘사람이 없다’는 구절로 요약, 극적으로 제시한다. 그 때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잡혀 오는 한 여자 빨치산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한다. 이렇듯 황량한 폐허 속에서 화자는, 북한이 소위 ‘스탈린 거리’로 명명한 거리에 웅크리고 앉아 시나브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면 외로운 나그네와 같은 수심에 빠져든다.
4~5연의 둘째 단락에서는 화자가 십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원산에서 평양까지 걸어서 왔던 기억과, 돈이 없어 그 유명한 평양냉면 한 그릇 사먹지 못하고, 쓸쓸히 웃으며 평야을 떠났던 일을 떠올린다. 볼 것 많고 먹을 것 많은 이 곳 평양에 ‘돈 없이는 다시 안 오리라’는 다짐을 하며 떠났던 그 옛 추억에서 현실로 돌아온 화자는 6~7연의 셋째 단락에서 전쟁으로 인해 잿더미가 된 이곳을 왜 찾아왔던가 하고 뉘우친다. 차라리 이 곳을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비록 십 년 전의 그 즐겁지 않은 추억이나마 가스에 간직하고 있는 편이 훨씬 더 아름답고 정겨웠을 것이다. 이렇게 후회스러운 마음으로 대동문 다락에 오른 화자는 마침내 그 곳에서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발견하고 패강(浿江), 즉 대동강의 무정(無情)함을 탄식한다. ‘아, 가는 자 이 같고나’라는 말은 공자(孔子)가 사물의 그침 없는 변화를 일러 한 말로서 이 작품에서는 전쟁의 비극과 덧없음을 자연의 의구함에 대비시텨 강조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작가소개]
조지훈(趙芝薰)
본명 : 조동탁
1920년 경상북도 영양 출생
1939년 『문장』에 「고풍의상(古風衣裳)」, 「승무(僧舞)」, 「봉황수(鳳凰愁)」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41년 혜화전문학교 문과 졸업. 오대산 월정사 불교 전문 강원 강사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 협회 조직
1947년 고려대학교 교수
1950년 문총구국대 기획위원장
1968년 한국시인협회장
1968년 사망
시집 : 『청록집』(공동시집 1946), 『풀잎 단장(斷章)』(1952), 『조지훈 시선』(1956), 『역사 앞에서』(1959), 『여운(餘韻)』(1964), 『조지훈 전집』(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