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전쟁
스위스와 프랑스 여행 사흘째, 바람은 치즈 냄새를 불러왔다. 길에서도 하수구에서도 그랬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김치 냄새가 난다더니 나라마다 고유의 독특한 냄새가 있음을 이번 여행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 출국을 앞두고 호두씨유와 치즈 선물이 좋다는 가이드의 말에 일행들과 마트로 향했다. 너도나도 냉장창고 쪽으로 가서 치즈를 들고 나왔다. 한국에서 교환해 간 화폐를 어디에 쓸까 고민하던 나는 몸에 좋은 치즈를 본고장에서 사기로 마음먹었다. 영어가 잔뜩 써진 둥근 모양의. 제법 무게가 느껴지는 치즈를 양손에 들었다. 주어진 시간이 촉박하여 꼼꼼히 살필 여유도 없이 사람들은 치즈를 들고 빠르게 마트를 빠져나갔다. 나는 맛있을 것 같은 예감만으로 네 통을 샀다. 가져간 화폐를 치즈와 맞 바꾸고 나니 할 일을 제대로 한 것처럼 뿌듯했다. 숙소 냉장고에 하루 동안 보관했다. 이튿날 가방에 물건을 정리하고도 공간이 남아있는데도 행여 뭉개질세라 치즈만큼은 백 팩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여행용 가방을 끌고 백 팩을 어깨에 메고 낑낑거리며 파리 공항으로 향했다. 열한 시간 걸리는 비행기 안에서 치즈가 녹으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아이들 성장기에 좋은 치즈를 맛있게 먹여야겠다는 소망이 컸다. 비행기 안에서도 줄곧 괜찮아야 할 텐데 조바심을 내며 오직 치즈가 무사하길 바랐다.
인천공형에 도착하자 날씨가 찌는 듯 더웠다. 백 팩에서 치즈 냄새가 배어 나왔다. 녹아서 풍개지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상한 건 아닐까! 공항에서 집까지는 한 시간 이상이 걸릴 텐테 큰일이었다. 드디어 동네에 다다랐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 김치냉장고에 치즈부터 넣었다. 저녁때가 되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냉장고에서 치즈 한 덩이를 꺼내 칼로 잘랐다. 삶은 감자를 써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접시에 예쁘게 담아 기분 좋게 식탁에 내놓았다. 한껏 기대하고 한입 물던 아들 왈, "무슨 맛이 이래요? 농장 냄새가 나서 못 먹겠어요. 둘째 딸아이가 한입 물더니. "야, 너는 이게 농장 냄새나. 솔직히 말해서 농장 안에 있는 젖소들의 똥이란 똥은 다 쓸어서 우유와 버무려 발효시킨 냄새다."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치즈에 대한 모독의 말장난이 벌어졌다. 정말 그렇게 맞이 이상하냐고 내가 문자, 이 치즈는 포상금을 주면서 먹으라고 해도 못 먹겠단다. 설마 그렇게 이상한지 나는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었 다. 부드럽지만, 정말 심각하게 역한 냄새와 느끼한 식감에 숨을 멈추었다. 그래도 칼슘이 많을 거라며, 몸을 위해서 먹자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할 말이 없었다.
식탁의 치즈를 치우며 아이들은 먹을 리가 없으니 나 혼자 날마다 조금씩 먹기를 시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냉장실에서 냉동실로 옮겨졌다. 오래 두면 냉장실도 상할 게 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혹시 누군가는 이 치즈 맛을 제대로 아는 이가 있지 않을까 싶어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마다 치즈를 꺼내 시식하게 했다. 벌써 아줌마 셋이나 진저리를 치고 먹는 데 실패했다. 한번은 둘째 딸아이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치즈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이 된 치즈를 내놓았다. 한입 물더니 도저히 못 먹겠다며 휴지를 가져갔다. 그 아이는 우리 집에 오기 전 양고기로 저녁을 먹고 속이 니글거려 혼이 났는데 그 양고기는 약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한 조각을 먹어 보였다. "와, 대단하세요." 라며 나를 쳐다봤다 "이 치즈가 냄새는 좀 고약해도 몸에 정말 좋으니 눈감고 먹는 거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이후엔 나도 도저히 먹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치즈는 나를 실망하게 한 후 아이스크림처럼 얼려져 냉동고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 아까운 것을 처리해야 할지 불편하기만 했다. 거금 들여 구만리 프랑스에서 사 온 고급 치즈를 버리지도 못하고 난감했다. 궁리한 끝에 강아지 사료에 섞어서 주었다. 맛있다고 더 달라고 혀로 핥으며 빙글 빙글 돌며 좋아했다. 결국 강아지한테 먹이기로 했다. 먹어주는 녀석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에 고마웠다.
프랑스는 로마 시대부터 가장 품질 좋은 치즈를 생산하는 국가 중 하나다. 로마인들이 프랑스 지역을 떠난 뒤에도 그들이 즐겨 먹던 로크포르 치즈와 캉탈 치즈가 계속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왔다고 한다. 7~8세기 경에는 많은 수도원에서 치즈의 제조가 이루어졌다. 그 제조 기술은 자연스럽게 프랑스 전반으로 확산되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치즈 종류는 1,200종이 넘는단다. 치즈가 만들어지는 데는 네 가지 조건이 따르는데 기후, 원유, 토양, 기술(노하우)이 결합하여 지역별로 맛이 디양한 치즈가 탄생한다. 내가 사온 치즈는 나폴레움한테 선물한 카망베르 노르망디 치즈다 특유의 냄새로 '신의 발 냄새'라는 별명이 붙었으니 알만하다 키망베르 치즈는 곰팡이에 의해 숙성되며 건조 과정에서 흰색 페니실린 penicilin 으로 인해 겉면에 가는 출부늬와 솜털 모양의 곰팡이가 생겨난다. 약 3~ 6주 정도의 숙성 키간을 거친다. 프랑스 노르망디 마을의 부인들이 나폴레움에게 대접한 치즈로 유명한 카망베르는 프랑스 혁명 당시 오주 지방의 작은 마을인 카망베르 지역에 살던 마리 아렐(Marie Harel)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치즈 역사는 1967년 벨기에에서 선교사로 온 지정환 신부가 전북 임실에서 임실 지역을 위해 치즈 제조를 한 데서 시작된다. 1972년 서울 평등 유네스코 빌딩에 국내 최초로 피자가게가 생겼고 처음으로 모차펠라치즈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1976년 모차렐라치즈를 완성하기도 했다. 어째든 치즈 살 때는 신중해야 할 것 같다. 내 입맛엔 치즈만큼은 임실 치즈를 비롯해 우리나라 전역에서 관매하는 모차렐라치즈가 휠씬 맛있다. 치즈 전쟁까지 치르고 나니 더욱 못 잊을 여행이 되었다.
김지현 시 산맥 특별회원 2018년 캐나다 한카 문학상 수상 ksr8959@naver.com 시집 선홍빛 서사] "너에게로 가는 시냇물,
숙제는 아직 태산 같고 시간은 너무 빠르기만 하고 하루해는 짧기만 하다. 가끔은 쌓인 책을 읽고 운동도 짬짬이 하지만, 생활은 쳇바퀴 돌 듯 무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