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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키를 낮춰야만 천국 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의 여정이 계속됩니다. 주교좌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성당의 구조가 게르 형태입니다. 주임 신부님이 콩고 출신 콘솔라타 수도회 소속 신부님인데, 아주 친절하게 환대해주셨습니다.
미사후 살레시오회 몽골 지부장 최원철 티모테오 신부님의 대성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대성당 중앙 제대 오른편에 작고 소박한 목각 성모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사연을 들어보니 참으로 특별했습니다.
다르항 성당 근처 쓰레기 야적장을 터전삼아 어렵게 살아가시던 할머니 한분이 하루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특별한 형상을 한 목각 인형을 발견했습니다.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집에 가져와 장롱 속에 고이 모셨습니다.
어느날 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녀님들이 그 할머님 집을 방문하셨는데,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장농을 열어 보여드렸더니 수녀님들 보기에 성모상이 틀림없었습니다.
그 소식이 몽골 지목구장 조르지오 추기경님 귀에 들어갔는데, 추기경님은 그 성모상을 대성당 제대 옆에 모셨습니다. 성모상을 최초 발견한 할머님은 후에 세례를 받고 열심한 신자가 되었답니다.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몽골을 방문하셨을 때 그 할머님은 주교좌 성당 바로 옆에 특별히 마련한 전통 게르 안에 전통 복장을 한 채 교황님을 맞이하는 특별한 임무를 맡으셨습니다.
전통 게르의 출입문은 아주 낮습니다. 키를 낮추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바티칸 시국의 최고 수반이며 가톨릭교회 최고 목자이신 교황님이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고개를 크게 숙이시어 게르에 들어오신 후 할머니와 친밀하게 인사를 나누시는 모습은 당시 몽골 국민에게 크고 신선한 충격을 남겼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오후나 흐렐수흐 몽골 대통령을 만난 뒤 방명록에 평화의 순례자로서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젊고 고대적인, 현대적이고 전통이 풍부한 나라를 찾아오게 되어 기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너무나 따뜻하고 소탈하며 인간미 넘치는 모습에 몽골 대통령은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황님께서 선종하신 후 유럽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만사 제쳐놓고 그분께서 묻혀 계신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찾아 참배했습니다.
주교좌 성당 바로 옆에 살레시오회 몽골 지부가 위치해 있습니다. 6명의 형제가 공업학교와 오라토리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멀리 한국에서 피정객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송구하게도 여름 캠프 중이던 아이들이 인사하러 왔습니다. 얼굴들을 보니 8-90년대 제가 돌보던 우리 아이들의 얼굴과 흡사해 깜짝 놀랐습니다. 앳되고 순박한 아이들이 저희를 위해 노래까지 한 곡 불러 주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강력한 어조로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순례 기간 중에 회개가 무엇인가 많이 묵상했습니다.
좁디 좁은 우리의 시야를 넓히는 것이 회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정 관념의 틀을 과감히 깨고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회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보다 경제력이 약하다고 무조건 아래로 보고 불쌍히 여기는 의식을 버리는 것이 회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만, 우리 가족만, 우리 국민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웃 나라, 가난과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웃 나라도 내 일처럼 안타까워하고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참된 회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안식년
이사야 7,1-9 마태오 11,20-24
은총이 많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
어떠한 판단을 내릴 때, 배가 부를 때 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배고플 때 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배가 부르면 교만해져서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판단을 할 때 될 수 있으면 배가 고플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세상은 이전보다 많이 배가 부른 상태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하는 선택들 때문에 결국 자멸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남태평양의 이스터섬이 있습니다.
비교적 높은 수준의 문명이 존재했던 이스터섬은 1,200년을 전후해 인구가 2만 명에 이를 만큼
번창했었습니다.
그러나 1722년 이들을 처음 본 네덜란드인들은 이스터섬이 황량한 모래로 가득 차 있었으며
3,000명 정도의 원주민들만 비참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왜 풍요롭기만 했던 이들이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일까요?
바로 높이가 20미터에 이르고 무게가 90톤이 되는 정교하게 조각된 거대 석상인 모아이를 운반하기 위해 수많은 나무를 베어 숲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사라지자 섬이 황폐해졌고 겨울엔 땔감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더 문제였던 것은 나무가 없으니 물고기를 잡을 카누도 만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가장 풍요로울 때 거대한 석상들을 만들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 했고 그것이 멸망의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나라나 모든 개인은 이런 식으로 망합니다.
인간은 배부를 때 어리석은 생각을 많이 합니다.
동식물이나 자연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교만 때문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마오쩌둥은 1949년 정권을 잡았을 때 가장 어리석은 결정을 내립니다.
당시 중국은 보건 문제가 심각하여 콜레라, 흑사병, 말라리아 등의 전염병이 창궐했습니다.
그래서 ‘제사해 운동’을 시작합니다.
모기와 쥐, 파리와 참새를 박멸하려는 노력입니다.
모기는 말라리아를 퍼뜨리고, 쥐는 흑사병을, 파리는 성가시니까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참새는 한 마리당 곡식을 4.5킬로그램이나 먹어치웠습니다.
전쟁은 승리로 끝났습니다.
쥐 15억 마리, 모기 1,100만 킬로그램, 파리 1억 킬로그램, 참새 10억 마리가 소탕된 것입니다.
그런데 참새 10억 마리가 먹어야 할 해충들이 득실거리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메뚜기 떼가 구름처럼 중국의 곡식들을 싹쓸이하였습니다.
1959년에서 1962년까지 중국에 대기근의 큰 원인이 이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한 사망자 수는 적게는 1,500만 명, 많게는 3,0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교만해지면서 자연을 마구 훼손하게 되었고 그렇게 자신도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인간의 능력이 향상돼서 자연을 좌지우지하게 될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인간이 잘살게 된 것은 많은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은총 바로 뒤에는 멸망이 따라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은총이 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은총은 죄에서 벗어나라고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선물들을 받으면서도 더 큰 죄로 빠져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 코라진, 벳사이다를 꾸중하십니다.
당신께서 많은 은총을 부어주셨음에도 그들은 더욱 악한 길로 빠져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소돔’ 이야기를 하십니다.
소돔도 당시 있었던 도시 중에 은총을 가장 많이 받은 동네입니다.
먹고 살 걱정이 없었고 심지어 두 천사가 다른 동네엔 안 들어가도 그 동네엔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은총 충만의 바로 뒤에는 멸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은총이 충만할수록 어리석은 짓을 많이 합니다.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배고플 때 나쁜 짓 하는 것보다 배부를 때 더 많이 하고 더 크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은총을 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은총을 주시면서도 그 결말이 안 좋을 것을 아시고 지금도 경고하고 계십니다.
인간은 더 잘살게 될수록 더 악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은총이 많은 시대에 멸망이 아닌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돔 꼴을 당합니다.
은총을 부여잡고 롯처럼 이 어리석음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카파르나움, 코라진, 벳사이다도 풍족한 동네였지만 지금은 돌무더기만 남아있습니다.
은총이 많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우리는 은총이 충만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언제나 ‘은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도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배부를 때를 항상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사담당사제
복음: 마태 11,20-24: 회개하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 사람들을 향해 탄식하시며 말씀하신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21절)
코라진과 벳사이다 사람들은 주님의 직접적인 은혜와 기적을 목격했다. 벙어리가 말하게 되고, 눈먼 이가 보며, 다리 저는 이가 걸었으며, 죽은 이가 살아났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굳어져 회개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에 깊은 슬픔과 탄식을 표현하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하느님의 은혜가 풍성한 곳일수록 회개의 책임도 크다. 큰 은혜를 거부하면 더 큰 심판이 따른다.”(Enarrationes in Psalmos, 36,7 요약) 즉, 받은 은혜만큼 우리의 응답도 중요하다. 은혜를 무시하면 그 책임은 더욱 무겁다.
예수님께서는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24절)라고 하시며 교훈을 주신다. 티로와 시돈, 소돔과 고모라는 예수님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사도들의 가르침을 믿고 회개하였다. 코라진과 벳사이다는 주님을 직접 보고 은혜를 받았음에도 회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큰 책임을 지게 된다. 이처럼, 은총의 깊이와 책임은 비례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빛을 본 자가 그 빛을 거부하면 더 큰 어둠 속에 남게 된다.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를 단죄하는 길이다.”(Homiliae in Matthaeum, 61,3 요약)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은혜를 받고 있다. 생명, 가족, 일상, 믿음 공동체, 성사 등. 그 은혜에 감사하며, 마음을 돌이켜 회개와 순종으로 응답해야 한다. 믿음의 선물은 그만큼 행동과 삶의 변화를 요구한다. 주님의 기적과 사랑을 경험하면서도 마음을 굳게 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식은 우리를 향한 사랑과 경고이다. 주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통해 우리의 삶을 회개와 성숙으로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코라진과 벳사이다 사람들의 불신과 회개하지 않음은 우리에게도 경고가 된다. 은총을 받았다고 해서 저절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와 기적을 마음에 받아들여 회개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경험하면서도 늘 회개하고, 믿음 안에서 행동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도록 다짐하여야 한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예전에 축구장 필드에 서봤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넓다”라는 소리가 절로 났습니다. 그러나 이 큰 축구장의 관중석에 올라가자, 한눈에 운동장이 펼쳐지면서 그렇게 넓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더 높은 곳에 오르면 어떨까요? 그 넓은 운동장이 손바닥만 하게 보이면서 오히려 조그맣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제 더 높이 오르면, 하나의 점으로만 보입니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떨어져 바라볼수록 별것 아닌 삶으로 비치게 됩니다. 지금 나에게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도 결국 하나의 점처럼 별것 아닐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었음을 깨닫지 않습니까?
찰리 채플린은 인생을 희극으로 표현했습니다. 인생을 한복판에서 바라보면 슬프고 힘겹고 괴로워서 비극처럼 보이지만,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 희극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떨어져서 모든 것을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 시선을 즉,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갈릴래아 고을들인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꾸짖으십니다. 이 고을은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을 가장 가까이서, 그리고 가장 많이 체험한 특권의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방인과 죄인의 땅이라는 티로와 시돈, 소돔을 이야기하시지요. 이 도시들은 교만과 우상숭배, 윤리적 타락으로 인해 하느님의 심판을 받은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그런데 가장 은총을 많이 받은 고을이 역사상 가장 타락했다고 손가락질받던 고을보다 심판 날에 더 곤경에 처하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단순히 신기한 마술이나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너희 가운데 와 있다’라는 강력한 표징입니다. 그래서 기적을 통해 하느님께로 삶을 돌이키는 회개를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적으로 배부르고 눈이 멀어 있었기에, 이방인들이라면 즉시 알아채고 통회했을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성경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까이하며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거행되는 성찬례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바쁨을 이유로,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미사 빠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고해성사를 미사 전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모시는 커다란 선물을 받았고,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수많은 성인과 함께합니다. 그러나 성모님과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주님을 충실히 따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시선,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삶 자체가 얼마나 커다란 은총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잃지 말며, 자신을 저버리지 말라(크리스토퍼 리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7.14.화.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태 11,24)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익숙한 생각을
깨뜨리시고
안일한 우리의 신앙을
흔드십니다.
우리 삶 안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는 우리 마음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가까이에서
보고 들었지만,
그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심판은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하느님께서 가까이 오셨는데도
우리는 그분을 외면하였습니다.
무감각은 감사를 잃게 하고,
감사의 상실은 결국 사랑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매일의 일상은 가장 좋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을
사랑으로 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개는 과거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오늘이 있는 한,
희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심판을 두려워하기보다
은총을 신뢰해야 합니다.
소돔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떠난 우리의 모습과
회개의 간절함을 비추는
진정한 삶의 교훈이 됩니다.
오늘이 진정한
회개의 시간입니다.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은
회개하지 않는
우리 마음입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김경진 베드로 신부님 - 한마음청소년수련원
이스라엘의 고을들은
그렇게 많은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은 반면
이방인들은 절실한 믿음을 드러내며
기적을 불러일으킵니다.
배부른 이들과 절박한 이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질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삶을 대하는 간절함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삶 속에 있어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이상 어둠 안이 아닌
밝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숨 쉬며 살아가고
움직이고 다시 시작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늘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셨지만
그 누구보다 부자였던 이유를 알겠네요...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태11,20)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오늘 복음(마태11,20-24)은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은 고을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 곧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가파르나움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많은 기적들을 보고도, 하느님의 은총을 크게 입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태11,22ㄴ.24ㄴ)
하느님이신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본질)은 '회개'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회개'입니다.
'구체적인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돌아가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신구약성경 73권 전체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이며, '하느님의 큰 기쁨이자, 우리의 큰 기쁨'입니다.
날마다 '바로 지금'이 '회개의 때'요,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어느 수녀님께서 제게 이런 팝송을 보내주셨습니다.
팝송의 제목은 'One moment in time'(삶의 한 순간)입니다.
'힘든 삶을 사는 모든 이에게 위로가 되는 팝송'이라고 합니다.
노래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난 나의 삶에서 한 순간을 원해요.
(I want one moment in time)
내 삶의 그런 한 순간을 주소서.
(Give me one moment in time)
만약 그 한 순간을 꼭 쥔다면 당신은 인생의 승자입니다.
(If you seize that one moment in time, You're a winner for a lifetime)
내 생애의 최고의 날을 위해서 그 한 순간을 주소서.
(Give me one moment, for my finest day)
나는 자유로워질 겁니다.
나는 영원히 자유로워질 겁니다.
(I will be free)
(I will free eternity)
나에게 있어 그 '한 순간(one moment)'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게 주어진 '바로 지금'이 '회개의 때'이고. '터닝포인트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기도 용인땅(한덕골성지)에서 태어나, 일반대학교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하다가 1995년 32살(만30살)의 늦은 나이에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서울가톨릭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서, 성 프란치스코처럼 살고 싶어서.
그리고 2004년 6월 28일, 서품 동기 중에서 제일 많은 나이(41살)로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2026년 올해는 저의 사제서품 22주년의 해입니다.
늦게 사제가 되었기 때문에, 늘 남들보다 두 세배로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복음적 자유 안에서 '보다 더(radical)'를 살고 싶어서, 2019년 3월에 수도회를 떠나 마산교구로 이적했습니다.
수도회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교구로 이적해 와서 최근까지도 저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그리고 저의 영원한 사부이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보면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저의 기쁨'이었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이정숙사비나 어머님의 '열정(땀)'과 이종만마태오 아버님의 '급한성격'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저의 그 열정과 급함이 좋은 결과도 가져왔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을 빌어 그동안 제가 살아오면서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형제자매님들에게 용서를 청합니다.
저는 '지금(now)'이 저에게 주어진 '한 순간(one moment)'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일은 참으로 힘들었지만, 많은 분들의 기도로, 그 간절한 기도의 힘으로 3일 만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마산가톨릭우리농을 떠났지만,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다시 태어나는 '회개의 때'요,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의 시간'으로 생각하면서, 나의 자유(부활)와 나의 영원한 자유(영원한 생명)를 위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한 순간(one moment)'을 꼭 잡겠습니다.
'지금(one moment)'은 저에게 주어진 매우 값진 '쉼의 시간'입니다. 이 쉼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습니다.
육체적으로도 잘 쉬고, 그래서 영육이 함께 다시 부활하는 은총의 기회로 삼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서두르지 않고 잘 쉬어가면서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겠습니다.
고난의 때처럼 여겨지는 '지금. 이 한 순간(one moment)'은 '은총의 시간'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사도18,10)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이사7,9ㄴ)
(~ 시편90,17)
복음말씀
제1독서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7,1-9
1 우찌야의 손자이며 요탐의 아들인 유다 임금 아하즈 시대에,
아람 임금 르친과 르말야의 아들인 이스라엘 임금 페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지만 정복하지는 못하였다.
2 아람이 에프라임에 진주하였다는 소식이 다윗 왕실에 전해지자,
숲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떨듯 임금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떨렸다.
3 그러자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아들 스아르 야숩과 함께
‘마전장이 밭’에 이르는 길가 윗저수지의 수로 끝으로 나가서
아하즈를 만나, 4 그에게 말하여라.
‘진정하고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르친과 아람, 그리고 르말야의 아들이 격분을 터뜨린다 하여도
이 둘은 타고 남아 연기만 나는 장작 끄트머리에 지나지 않으니
네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5 아람이 에프라임과 르말야의 아들과 함께
너를 해칠 계획을 꾸미고 말하였다.
6 ′우리가 유다로 쳐 올라가 유다를 질겁하게 하고 우리 것으로 빼앗아
그곳에다 타브알의 아들을 임금으로 세우자.′
7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8 아람의 우두머리는 다마스쿠스요
다마스쿠스의 우두머리는 르친이기 때문이다.
이제 예순다섯 해만 있으면
에프라임은 무너져 한 민족으로 남아 있지 못하리라.
9 에프라임의 우두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우두머리는 르말야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0-24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